〈 46화 〉 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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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덕질의 천국이라는 일본에 워킹 홀리데이로 입국한 독일계 일본인 코토나시 아사히는 선라이즈에 떠도는 유나 매니저에 대한 소문을 믿지 않았다.
‘무슨 헛소리야? 어떻게 일개 매니저가 방송에 출연해서 구독자 수를 늘리고 캐릭터화가 되어서 상품으로도 나오고 많은 선배들이 그녀와 함께하기를 원한다고?
이건 외국인 신입에 대한 선라이즈의 이지메인가? 이런 헛소문을 믿으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따돌림을 하기 위한 밑밥인 거야?’
실제로도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로 치부해도 될 정도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쇼핑센터 앞에 만난 소문의 유나 매니저의 얼굴을 보고 바로 납득했다.
저 얼굴과 외모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저 사람이… 정말로 이런 오타쿠 회사에서 일하는 일개 ‘매니저’라고?’
사실 코토나시는 이전에 유나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말리아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다른 사람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잊었는데, 돌이켜보니 그 당시 말리아의 옆에 있던 ‘인싸’같은 미녀가 있었던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오타쿠’처럼 여겨지지 않는 그런 분위기의 ‘인싸 ’였기에 그녀는 유나가 다른 업계에 일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아니 당장 텔레비전에서 자신이 예쁜 줄 알고 떠드는 저런 어중간한 연예인보다 훨씬 예쁜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오타쿠 업계에 일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선라이즈 프로덕션의 매니저였다.
다시 본 유나는 말리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흔들릴 정도로 대단히 아름다웠다.
오죽하면 작년에 돌아가신 아름다움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극 보수적인 크리스천이었던 할아버지가 무덤 밖에 튀어나와서 청혼해도 이해 해줄법할 만한 미녀라는 생각이 들었겠는가
유나는 자신의 연적다운 굉장한 미인이었다.
자신의 옆방 이웃이자 짝사랑하는 말리아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진면목을 봐버린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가진 투지가 깡그리 날아갔다.
오죽하면 그녀의 부드러운 인사를 받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말리아의 뒤에 숨어서 인사를 받았겠는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쭉 그녀에게 휘둘렸다.
그녀가 골라준 유카타와 머리 장식은 자신이 고른 물품보다 훨씬 자신에게 어울렸고
말리아의 머리를 마술처럼 만져서 아름답게 묶어 올려서 목덜미를 드러내게 하는 그 손놀림은 가히 예술이었다.
그리고 조금 음침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담당 버튜버인 쿠로가와 나에를 완벽하게 요정으로 바꾸게 하는 패션 센스를 눈앞에서 목격한 아사히는 전의를 꺾었다.
저 사람은 오타쿠들이 절대 이길 수 없는 태양 속에 살아가는 인싸다.
날 때부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오타쿠였던 자신이 이길 수 없는
게임 타이틀의 주인공 같은 존재가 유나였다.
‘그래도… 상대가 강적이라고 해도, 사랑은 포기할 수 없어’
자신의 사랑, 말리아의 마음을 훔친 대상은 분명히 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은 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유나를 극복해야만 진정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 믿는 당찬 독일계 소녀는
기회를 노리다가 유나에게 다가가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척’하는 인싸가 자신이 이끄는 대로 조용한 곳으로 따라와 주었다.
과연 자신감이 넘치는 게 인싸 그 자체다웠다.
그녀의 당당한 태도는 오히려 코토나시의 투지에 더욱 부채질했다.
“말리아 클라크는, 말리아는, 제가 사랑하는 여자에요. 그러니까 그녀에게 그만 다가 가줘요.”
또박또박
아사히는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의 연적에게 선포했다.
그리고 그 선언을 들은 그녀는…
“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표정으로 그런 대답을 내놓았다.
아사히는 그런 그녀를 조용하게 노려보았다.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에 지나간다.
그러니까 코토나시씨가 말리아에 대해서 누가 보더라도 들이대는 이게 컨셉이 아닌 진짜라고?
정말 동성애자인 거야? 이게 외국식 표현인 거야?
아니 근데 왜 그걸 나에게 밝히지?
나하고 말리아씨는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
“어… 좋은 사랑 하세요?”
내가 성사시켜준 남&여 커플은 많았지만 나에게 여&여 커플을 커밍아웃 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다.
나는 험난한 연애의 길을 걷게 되는 이 소녀를 응원하는 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내 대답에 그녀는 기가 찼는지 독일어로 욕으로 짐작되는 무언가를 말하고는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당신 말에 안 속아요! 말리아를 그렇게 꼬셔 두고 무슨 순진한 척 하는거에요? 이 Hure!! 천박한 여자!! 서큐버스!!”
이건 조선 유교 걸인 나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아니 제가 언제 말리아씨를 꼬셨다고 그래요?”
“매일 아침 데이트했다면서요! “
“그 논리대로라면 같이 운동하는 친구 사이는 다 연인사이에요?”
친구끼리 매점 가듯
아침에 일어난 하우스 메이트랑 빵집같이 가는 게 어째서 데이트야!
“말리아에게 정겹게 대해준 거는요?”
“이웃에게 친절하게 구는 게 어째서 연애 목적의 호감인 거에요!”
“그, 같이 쇼핑한 거…”
“장 보는 거 말고 쇼핑하러 가는 걸 혼자 가나요?”
가볍게 뭐 사러 가는 거 말고
쇼핑을 혼자서 한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호, 혼자 가는데…”
하지만 내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는 듯
그녀는 갑자기 침울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아…”
몰랐다.
아니 저렇게 해맑고 통통 튀는 소녀에게 친구가 없을 거라고 누가 예상했나!
그녀가 쥐어짜듯이 물었다.
“그, 그럼 이, 입사 시험 당시에 말리아에게…”
“말리아씨는 충분히 빛나는 인재였으니까요. 당신도 동의하지 않나요?”
과감한 행동력
그를 뒷받침하는 독기
거칠고 터프한 영어를 하는 주제에 행동거지는 예의 바르다
음색이 고우면서도 목소리에는 사람의 귀를 기울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사실 유나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어. 말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에게 기회를 준 건 유나였으니까…”
갑자기 기분이 떨어진 그녀는 살짝 울먹이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와서… 말리아를 만난 게 너무… 너무 좋아… 그, 그래서 유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 하려 했는데…”
“이, 일단 울지 말고 말해봐요.”
“근데… 말리아가… 유나를 좋아한다고… 말리아가 나만 좋아했으면…좋겠는데… 말리아가 유나를 잊지 못하고…있어서… 그게 너무 화나서… 으에엥”
나는 정말로 당황했다.
아니 정말 말리아와 나는 아무 사이 아니라니까?
여성으로서 말리아는 매력적인 게 맞지만
그래도 그건 동성 친구로서 매력적인 거지 연애 대상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도대체 왜 이 오타쿠들은 비약이 심한 거야??
“이, 일단 진정해요. 저는 정말로 말리아씨에게 직장 동료 이상의 호감은 없으니까, 코토나시씨오 제가 다툴 이유는 없어요.”
“정말, 정말이지?”
나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코를 휑하고 풀었다.
역시 서양인이라 그런지 코 푸는 소리도 크다.
“그럼요. 제 자동차를 걸고 말할 수 있어요.”
사실 회사 차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그럼 믿을게.”
나는 내가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의 남자 친구를 뺏은 오해를 사는 여자의 입장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내 진심 어린 맹세를 듣고 진정한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다른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고 가방에서 새로운 마스크를 꺼내서 그녀에게 씌워주었다.
“유나, 지, 지금… 뭐, 뭐 해?”
뒤에서 나에 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먹고 있던 솜사탕을 떨어트리고, 경악에 찬 표정으로 나와 코토나시씨를 가리켰다.
울고 있는 나보다 어린 여성에게 마스크를 씌워주느라 얼굴을 잡고 있는 나
누가 보더라도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이, 이 바람둥이!”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나 보다.
“또, 또, 또 여자 울리고 다니는 거야?”
다가온 그녀가 내 가슴팍을 때린다.
예전에는 고양이 안마와 다를 바 없던 그 투정이
이제는 근육이 붙어서 그런지 제법 아프다.
“아 언니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로!”
이번에는 내 잘못이 아니다.
멋대로 상황을 해석한 코토나시씨가 나와 말리아의 관계를 의심하고
자기 멋대로 감정 조절을 못 해서 운 거니까
“정말이지 유나는 내 매니저고 나만 바라봐야 하는데 왜 자꾸 딴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거야?”
그, 매니저와 버츄얼 유튜버 사이에는 그런 끈끈한 관계가 형성 돼 있던가요?
“잠시 눈만 돌리면 으슥한 곳에 여자와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말을 너무 오해를 사기 쉽게 말한다
그 말을 듣던 코토나시씨도 이 상황이 웃기는지 퉁퉁 부은 얼굴로 웃기 시작한다.
나는 이 상황이 안 웃겨요. 이 화상아
“얼마 안 있으면 불꽃 축제 시작인데 그사이를 못 참다니 유나는 너무 나빠. 문란해!”
“아니 언니 잠시만요.”
“조용!”
그렇게 말한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서 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변명하지 마.”
나는 언니의 박력에 질려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코토나시씨를 잠시 째려본 나에 언니는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그나저나, 나에 언니가 유리아로 말할 때 말고 말을 이렇게 유창하게 하는 건 처음 본다.
뚱한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이면서
처음에는 보기만 해도 눈을 피했던 그 언니가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한다는 게 너무나도 낯설었고 두근거렸다.
“휴, 다행이야. 다른 사람들이 여기 모였으면 어땠나 싶었는데…”
그녀가 데려온 곳은 이름 모를 언덕에서 툭 튀어나온 장소다.
적당한 높이에 탁 트인 시야
밑으로는 화려한 등불과 가마를 메면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유나야, 저기 봐 저기! 진짜 불꽃 축제야!”
그리고 비산하는 화약통과 거기에서 피어나오는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처음 경험한 아이들이 그러하듯
폴짝 이면서 허공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문양들을 보며 흥분하면서 나와 함께 불꽃놀이의 아름다운 순간을 만끽했다.
인간의 기술이 발전한 것을 증명하듯
불꽃놀이는 단순히 꽃 모양만 피지 않고 도라에몽이나 미키 마우스 같은(우습게도 저작권 문제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도 친숙한 캐릭터 모양도 선보였다.
“역시 아름답네요.”
그리고 순수한 아이의 반응처럼 처음 나온 축제를 진심으로 만끽하는 나에 언니에게는 내가 미쳐 가지지 못하는 순수한 기쁨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왜 일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귀여움에 대한 갈망으로 도달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귀여우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나는 그 감탄을 숨기지 않고 표출했다.
“응 정말 예뻐!”
단둘이 있어서 그런가?
그녀는 마스크를 내린 채 해맑게 미소 지었다.
허공에 피어나는 불꽃놀이가 만들어 내는 아름답게 비산하는 꽃보다
더 환한 웃음이었다.
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마력에 이끌려서 나도 모르게 나에 언니에게 다가갔다.
이 작고 귀여운 사람에게 나는… 마법에 걸린 듯이…
“유나 언니! 나에 언니!”
나를 부르는 미우의 부름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를 찾느라 돌아다녔는지 힘들어하는 미우와 그 뒤에서 죽을 것 같이 숨을 내뱉는 마츠시타씨가 보였다.
추태를 보일 뻔했다.
“붑부! 말없이 사라지면 어떻게 해요. 언니!”
“유나, 유나 씨… 사, 사내연애는…”
삐친 표정과 말로 묘한 시선을 보내는 미우
그리고 숨도 고르지 않고 이상한 말을 내뱉는 마츠시타씨
말도 없이 사라진 내 잘못도 있기에 나는 그 둘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그만.”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내 사과를 도도한 태도로 받아들인 미우는 내 옆에 다가와 팔짱을 꼈다.
“후아, 그래도 이쁜 장소를 찾아서 다행이네요. 여기라면 불꽃놀이 구경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나에 언니!”
“응, 그래… 미우도…여기를 발견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아까의 축제를 즐기던 밤의 요정은 어디 가고
일본 전래동화에 나올법한 무서운 귀신같은 표정을 지은 나에 언니가 그 반대편에 팔짱을 꼈다.
그녀들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아니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삼각관계의 치정 상태에 놓인 두 친구 사이의 그 느낌이 왜 지금 일어나지?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본 나지만
두 사람의 감정 변화를 알 수 없었다.
이게 국민성 차이란 말인가?
아니면 아직 오타쿠 사회에 완벽히 동화되지 못한 자의 비극?
마츠시타씨는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이지
속이 갑갑해져온다.
차를 운전해야 해서 술을 못 마시는 게 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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