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46화.
* * *
나, 말리아 클라크는 자신의 이웃인 아사히가 변한 것을 알아챘다.
평소라면 말리아씨~ My True Love~ 하면서 찐득거리게 다가오면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감정을 표출하던 그녀였지만
최근에는 뭐랄까
“Honey~ 아~ 하세요~”
먹을 거로 자신을 꾀려는 듯 가라아게 한 조각을 잡고 입을 벌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사히가 살짝 영악해진 기분이 든다.
마치 이전에는 좋아해 정도 고백밖에 못 하던 아이가
어설프게 로맨스 만화의 장면을 따라 하기 시작한 정도일까나
다만 그 맹랑한 다갈색 눈동자에는 전에 없던 음흉함이 깃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역에서 유명한 가라아게 전문점의 가라아게를 거부할 정도로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아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간장 가라아게 튀김에 유자 마요네즈를 찍어 주는데
그게 또 취향에 맞아서 아사히의 애교를 무덤덤하게 받아 주었다.
“어때요 맛있어요?”
“자, 아사히도 먹어봐요.”
“포, 포상 고맙슙니다!”
포상이라니…
뭐랄까 아사히의 진짜 오타쿠스러운 표현을 보면
자신의 어중간하게 오타쿠스러운 표현에 대해서 신물이 날 정도로 그녀는 제대로 된… ‘진짜’였다.
그래도 호들갑스러운 그녀의 표현은 동거 생활을 통해 아주 익숙해졌다.
“아사히.”
“웸(네)?”
“가라아게만 허락했지 제 손가락은 허락한 적 없는걸요.”
젓가락질에 익숙한 자신과는 달리
아직 젓가락질에 익숙하지 못한 자신의 룸메이트를 위해같이 먹을 때는 포크를 쓰는 편이지만…
아사히는 천연덕스럽게 가라아게를 먹는 척하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그야말로 구렁이가 담 넘듯이 스리슬쩍 아무렇지 않게 신체 접촉을 해온다.
이전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길 장난이지만
뭐랄까
존경하는 유나식 표현으로 ‘일본식 패치’가 된 자신은
그런 장난이 조금 부담스럽고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전이라면 인상을 찌푸리거나
‘그거 정말 무례한 행동이야.’라고 다그칠 그녀였지만
다가오는 데뷔 방송의 무게 탓일까
아니면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룸메이트의 장난과 애정표현에 익숙해진 탓일까
그녀는 힐난하는 대신에 손으로 아사히의 볼을 잡아당겼다.
“고약한 장난을 치는 요망한 에오스에겐 벌을 선사하겠어요.”
살짝 진심을 담아서 볼따구를 늘렸다.
에오스는 글로벌의 컨셉에 따른 그녀의 캐릭터 이름이다.
새벽의 신과 태양의 신 아래에서 태어난 여신
생명의 여신 에오스
하데스의 후손, 즉 명왕의 딸인 자신 셀레네와 대비되는 캐릭터다.
“에우으에웅”
살짝 진심을 담아서 잡아당긴 탓에 그녀가 울상을 짓지만 그래도 그게 좋은지 헤실거린다.
그게 더 기분 나빠진 나는 더 세게 당기는 거로 보복을 완료했다.
“에휴, 식사 시간인데도 방심을 못 하겠네요”
“헤헤, 포상 감사합니다.”
아픈 듯 볼을 만지작거리고 눈물을 보이면서도
기분 나쁘게 헤실거리는 게 꼴사납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상하게도 예전만큼의 불쾌감이 들지 않았다.
익숙해져서 그런가
슬슬 아사히 스타일의 애정 표현에 익숙해져 갔다.
“셀레네 씨의 음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설정상 하데스의 딸인 셀레네는 자신의 연인을 되찾기 위해 저승을 찾아온 음유시인 오르페우스의 음악에 빠져서
길 잃은 영혼들을 명계로 불러들이는 음악 활동에 흠뻑 빠진 여신이다.
한때 아이돌의 꿈을 꾸었고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나는 호주에서도 꾸준히 음악 관련 공부와 활동을 해왔고
그렇기에 작곡과 작사에 큰 관심이 있던 나는 과감하게 오리지널 곡을 데뷔 방송에 발표할 곡으로 작업을 했다.
의외로 적성에 맞았는지 곡은 빠르게 작업이 되고 운영진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오리지널 음악을 작사 작곡하는 버튜버는 여태껏 없었기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고, 작업은 현재 영상화와 믹싱만 남았다.
다행히도 음악 쪽에 발이 넓은 매니저 마츠시타가 열심히 힘 써준 덕분에
나는 오타쿠력으로 다진 그림 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스스로 영상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데뷔 때는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아니 있을 거예요”
“노노노 더 이상의 경어는 금지!”
“괜찮아요, 전 이편이 더 마음에 편해서.”
유나가 말하길
경어(??)라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적을 만들지 않는 가장 안전한 수단이다.
합의된 표현과 합의된 단어
그걸 통해서 소통하며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이미지를 준다면
적을 만들지 않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지친 말리아는 경어가 좋았다.
쓸데없는 적을 만들지 않을 수 있으니까.
더 이상 어설픈 인간관계로 상처받고 지치는건 싫다.
“부우, 거리감을 좁히지 못한 저의 패배네요.”
“그런 데서 열을 올리지 않아도 돼요. 에오스 씨의 준비야말로 어떻게 되어 가시나요?”
“으음, 파파가 마음에 드셨는지 괜찮은 이미지 자료를 보내주셨어요.”
“오.”
참고로 에오스를 담당한 일러스트레이터 독버섯은 업계에서 아주 평가가 좋은 캐릭터 디자이너다.
아직까지 선라이즈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적이 없지만…에오스의 컨셉 아트를 본 말리아는 한눈에 에오스의 디자인에 반했다.
아사히의 머리카락을 떠올리게 하는 정열적인 주황빛 머리카락
의학을 상징하는 땅에서 기어 나오는 두 마리의 뱀이 얽힌 지팡이
그리스 전통 예복 중 하나인 키톤(Chiton)을 과감하게 모에화 해서, 한쪽 어깨를 시원하게 드러내는 상의와 엉덩이만 살짝 가리는 미니스커트
그리고 구두 대신에 착용한 샌들과 장난기 넘치는 미소는 여신보다는 악동에 가까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질병에 우울해져 가는 이 시대에 생명을 더해줄 것만 같은 생동감
그런 이미지를 주는 게 에오스의 이미지였다.
그에 비해서 셀레네는 그녀의 철저한 안티테제라도 되는 듯 가슴 크기만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게 반대된다.
피를 머금은듯한 분홍빛 머리카락은 포니테일로 정리를 했고
명계의 모든 신들이 가진다는 죽음의 상징인 대낫
음악을 위해 하계에 자주 놀러 갔다는 설정을 따라서 해골이 그려진 이브닝드레스라는 현대적인 복장
활기차고 악동을 떠올리게 하는 미소와 대비되는 차갑게 굳은 표정
명랑한 생명의 여신과 반대되는 차가운 죽음의 여신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침착한 느낌의 셀레네가 싫은 건 아니지만… 취향 자체는 에오스의 외형이 더 좋다고 솔직하게 생각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아사히의 행동 하나하나가 에오스 그 자체처럼 통통 튀면서도 활력을 주는 밝은 사람이었기에
캐릭터와 버튜버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말리아는 아사히가 그렇게 싫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 역시 아름다운 캐릭터를 보면 빠져버리고 마는 오타쿠의 피가 짙게 흐르는 사람이니까.
“이거 보세요, 파파가 디자인 하나하나를 어디서 모티브를 따왔는지, 절 보고 어떤 이미지를 받았는지 잘 써주셨어요. 덕분에 첫 방송에서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졌어요.”
“역시 독버섯 선생님이시네, 자신의 딸들에게는 정말 잘 대해주셔.”
독버섯 선생은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서 납품하면 외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개인 계정에 딸들의 팬아트를 직접 그릴 정도로 애정표현을 잘해준다.
그리고 이번에 캐릭터 외주를 받은 세세한 작업 사항을 하나하나 저장을 해서 보내주다니…
아사히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자신의 데뷔 방송으로 쓸 모양이다.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해주면서 적당히 몰입감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풀어준다?
시작부터 독특한 컨셉의 세계관을 만드는 글로벌에서 잘 어울릴 것이다.
가령 에오스와 대비되는 셀레네의 이야기라거나
잠든 신들을 깨운 모험가 인간 ‘엘리아’
포세이돈의 후손으로 수영을 즐기고 노래로 뱃사람들과 놀아주는 ‘마나’
엘리아가 깨운 잊힌 신 ‘클라티에’
실제로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은
입담도 좋고, 다국어에 능한 아사히가 맡기로 회의를 통해 정했다.
“그럼 오늘 설거지 담당 잘 부탁할게요.”
“잘 자요. 내 사랑~ 좋은 꿈 꾸고!”
아사히와 짧은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의 파이팅 넘치는 인사를 받으며 방에 돌아온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사히의 깔끔한 발표 준비를 보니 압박을 받는 게 느꼈다.
짧은 대본은 분석에 따라서 많은 외국인들이 보는
영어>일본어>독일어 순서로 한다고 했던가?
언어에 대해서 비상한 재능을 가진 아사히였다.
역시 다들 비장의 데뷔 방송 무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걸까?
듣기로는 이번 GB의 면접들은 하나하나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는데, 다들 비장의 재능 한 두개쯤은 가지고 있는것 같다.
힘들게 뽑은 만큼 회사 측에서도 다양한 방면의 서포트를 한다.
그만큼 글로벌 쪽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기에 말리아는 긴장의 끈이 조여오는 걸 느꼈다.
앞으로 공식 데뷔 방송까지 10일
이미 홈페이지에 캐릭터 소개 페이지와 유튜브에 동영상이 올라갔다.
가볍게 도전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점점 더 치열해져만 가는 면접과
개인 데뷔와 다르게 이미 성공한 버튜버 선배들이 만들어준 선라이즈 프로덕션이라는 이름하에 우리들은 활동을 해야 한다.
개인 버튜버들이 자신의 방송에서 가끔씩 고뇌를 토로하는걸 본 적이 있는 나는
그게 얼마나 큰 메리트인지 점점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버튜버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선라이즈 프로덕션은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다.
최근에 데뷔한 5기생의 선배들이 무려 1200:1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경쟁을 치르고 뽑히고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무려 한 달 만에 각자 5만에서 10만의 구독자를 확보한 상태
다른 개인 버튜버들이 재능이 뛰어나도 적어도 일 년 가까이 활동해야 얻을 수 있는 구독자를 순식간에 얻은 셈이었다.
지금도 사무실에는 엄청난 채용 문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들은 서양의 구독자들을 노리는 영어권 버튜버로 데뷔하는 이들이다.
어찌 보면 서양에서 극 마이너한 취향인 버튜버의 인식을 바꿔나가는 개척자 같은 역할
그렇기에 더더욱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때문에 이 바닥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이 기숙사에 지내면 지낼수록 성공에 대한 막대한 부담이 느껴진다.
그래도 누군가가 ‘그래서 그만할래?’라고 물어주면
엿이나 처먹으라고 대답해줄 수 있다.
아직 도전하기 전에 포기하는 건 나답지 않다.
아웃백의 거친 모래 바람과 농부의 거친 입담속에도 자신을 꺾지 않고 억세게 자라온 자신에게 포기와 도망은 어울리지 않다.
게다가 이 낯선 땅에서 누구보다도 그녀의 가능성을 믿어준 은인이 있지 않은가?
그녀의 신뢰를 저버리기 싫었다.
자신이야말로 첫 번째 팬이라고 주장한 그녀가 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이미 데뷔한 버튜버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중압감에 굴하지 않고 다시 책상에 앉아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세상에 보이는 신곡의 동영상 편집을 이어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허리에 짧은 요통이 느껴져서 ‘통증이 느껴지면 바로바로 스트레칭해야 허리를 오래 써요’라고 말한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서 즉각적으로 일어나서 몸을 움직였다.
스트레칭을 하며 시계를 보니 자정이 지났다.
앞으로 공식 데뷔 방송까지 9일…
부담감과 기대감이 심장을 죄어온다.
그래도
나는자신 있게 미소 지으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다른 누군가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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