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50화.
* * *
입원 3일 차
내 기억이 왜 3일 차부터 있냐면, 내가 기절하고 일어났더니 2일이 지나있었다고 한다.
압수당했던 휴대폰이나 다른 전자기기들은 모두 돌려받았지만…
‘언제 유나가 죽을지도 모른데’
‘언제 유나가 회사 나갈지도 모른데’
라는 소문이 와전된 모양인지, 바쁜 스케줄의 그녀들이 시간을 쪼개면서 나를 간호해주고 있다.
우습게도, 나에게 죄책감을 느낀 건지 회사 측도 거의 최고급 수준의 병실을 대여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코로나로 부족한 줄 알았던 병원 1인실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다.
그리고 건강하기라면 둘째가면 서러운 이 튼튼한 한국인 유학생의 병실 라이프는…
“심심해…”
그렇다.
심심하다.
그것도 몹시
일생을 스스로 관리한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살아가던 나다.
그런 내가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라?
일을 위해서 리서치도 하지 마라?
무언가 글을 쓰거나 읽거나 공부를 멈추니 세상에 뒤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절로절로 흔드셨지만…
하지만
심심한 걸 어떻게 해
돈도 많겠다.
게이밍 노트북이라도 사서 게임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할 무렵
미우가 찾아왔다.
방금 하교를 한 모양인지, 여고생다운 교복을 입고 나에게 찾아왔다.
“유나 안니 안녕하세요~!”
무려 한국어로 된 인사다.
요즘 들어서 한국어도 공부 중이라고 하던데, 그녀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졌다.
“미우쨩도 안녕~ 와줘서 고마워.”
“유나 안니 유나 안니!”
“안니가 아니라 ‘언니’야 ‘언니’”
“안니!”
“언니!”
“아언니!”
예전의 유리아의 애플 방송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녀는 감이 좋은지 안니 안니 아언니 아온니 이러면서 점점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후우, 한국어는 어렵네요.”
“아무래도 발음 구조상으로 다른 나라에 없는 발음을 하려면 어렵지… 중국어를 봐봐, 성조에 따라서 달라지는 말과 의미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난 중국어는 포기했다.
그거 골치 아파.
“역시 외국어는 어렵네요. 어휴…”
“한국인인 내가 이런 말 하는 거 이상할지도 모르는데, 시청자 중에서는 영어권 시청자들이 많으니 굳이 투자한다면 영어가 좋지 않을까…?”
코로나 이후로 단절된 국가 간의 외교와
시중일관 험악해져 가는 양국 간의 감정적인 문제는 껄끄러운 주제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에 살고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냥 일본 국민들이 워낙 정치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서
일본 정부의 트롤 행위와 한국의 이해할 수 없는 외교활동으로 이상해져 간 모양인데…
아무튼 나는 미우가 캐릭터성을 해칠 수 있는 국가 간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피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미우는 애기야 애기 미우는 극우와 혐한론자와 국뽕주의자들에게 피해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쳇, 그런 거 아니라고요. 언니도 알잖아요? 방송이 안정되고 외향적인 캐릭터성을 확보한 버튜버들에게는 따로 영어 교육도 시킨다구요.”
“뭐어… 기초적인 영어기는 해도, 아니 애초에 일본 애들이 지나치게 영어 교육을 신경 안 쓴다니까?”
토익 900점이 한국에서는 ‘오 좀 영어를 하네? 근데 950 이상 혹은 만점이 아니잖아?’ 정도라면
일본에서 토익 900점은 무슨 준 외국인 취급이니 뭐니, 엄청 성실한 사람의 상징 비스무리한게 된다.
“아니, 언니 언니 한국 애들이 이상해요!! 야자? 그게 뭔가요? 정말로 언니도 고등학생 때 저녁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 했다고요?”
“응, 나는 중학생 때 연습생이었어서 따라잡느라 고생 좀 더 하긴 했어도… 음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랬지.”
내가 나온 사립 명문고는 빡세기 그지없었다.
웃음이 가득한 학교생활?
물론 빡빡한 학교생활 속에서 재미를 찾는 친구들이 많긴 했어도
나는 연필 깎는 소리, 샤프심이 부서지는 소리,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를 들으면서 꼬박꼬박 공부를 한 성실한 학생이었다.
당연히 10시까지 학교에 틀어박혀서 매일같이 공부하고
때로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해야 하고, 때로는 새벽 1시까지 학원에 다녔다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미우였지만…
실제로 그랬던 걸 어쩌겠는가
“우와 으아, 이상해요. 괴물들.”
“음… 일본 학생들의 파릇파릇한 학창 생활을 보니까 반박을 못 하겠다. 다들 미우처럼 밝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했으면 좋았겠는데…”
나도 그렇고 말이다.
미우를 볼 때마다 이상한 감정이 든다.
마치 내가 가지지 못했던, 밝고 생기 넘치는 저 모습이 나의 눈에는 너무나도 해맑게 보였다.
“쳇, ㅇㅇ대학교에 들어간 언니가 그렇게 말하면 기만인 거 알아요? 안 그래도 방송과 공부 병행하는 거 힘든데…”
“그러면 한국어 공부는 그만둬. 미우가 GB의 코토나시 아사히처럼 언어 괴물이 아닌 이상 힘들 거야.”
“그 사람 그거 맞죠? 그냥 애니 한 편 보고 일본 문화에 빠져서 워킹 홀리데이 1년만에 일본어 마스터한 그 이상한 사람.”
“본인 말로는 책 읽는 거 싫어서 만화책과 일하면서 대화하면서 배웠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저런 언어 괴물이 아닌 이상 센터 시험(한국의 수능)공부와 영어 공부, 방송을 병행하는 거 힘들어.”
“한국어는 포기 못 해요. 애초에 제가 한국어를 배우는 건 그 목적을 위해서 배우는 게 아니에요.”
뭐
미우도 약간 자기를 몰아세우면서 정진하는 타입인가?
생각보다 기특하잖아 이 여고생
마구마구 쓰다듬어줘야겠다.
“어휴, 고집쟁이… 내가 가끔씩 한국어 공부 봐줄게.”
사실 그런 것보다는 최근 일본의 인터넷을 지배하기 시작한 사랑의 불XX을 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되는데 말이지
“언니 정말이죠? 물리기 없다?”
살짝 물든 금발 머리
이전에는 어색하던 개나리 빛 금발이었다면 나를 따라 한 건지
골든 블론드 헤어로 염색을 해서 그런지, 훨씬 더 예뻐진 미우가 볼을 살짝 붉히면서 나의 손을 잡았다.
얘 이제 보니 매니큐어 색도 바꿨네
저번에 봤던 패티 색도 바꿨으려나?
전에는 파릇파릇하던 여고생이라면 지금은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는 미우는 볼 때마다 예뻐지는 거 같다.
“언니?”
“아, 응.”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미우를 보며 나도 마주 미소지었다.
정말이지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는 것 같은 나에 언니와 다른 매력이 있는 그녀였다.
“언니 지금 당장 원하는 게 뭐에요?”
내가 사줄게요.라고 말하는 듯 지갑을 꺼내는 미우였다.
어린 게 건방지게 어른 앞에서 돈 자랑을 하네?
“나? 기가바이트 어로스.”
30만엔 상당의 게이밍 노트북이다.
“이, 이걸요?”
미우가 당황하면서 나에게 휴대폰을 보여준다.
그 사이 시세가 올랐는지 40만 엔의 천장에 닿는 노트북이었다.
“무, 물론 언니가 원하신다면 저 미우는.”
“으이구 농담이야 농담. 이런 거 언니 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거든. 그냥 게임이 하고 싶다는 거야.”
“아! 역시 언니는 게이머군요!”
“내 게임 실력을 보고도 모르겠니?”
“평소에는 자주 안 하시잖아요. 뭐랄까, 비즈니스적인?”
“진짜로 즐길 때는 음… 아무래도 동생과 할 때?”
협곡에서 일정 수준의 랭크 이상에서는 듀오를 금지하기 전까지 동생과 정말 즐겁게 한 기억이 난다.
승패를 떠나서, 일반적인 남매 사이와 달리 조금 특별했던 우리들은 서로의 상처를 한 번씩 돌봐주고
내가 녀석의 프로게이머 생활을 지지한 이후, 그 녀석이 제 알아서 나에게 복종해주고 밤 9시에 콜라 사 오라는 심부름도 군말 안 하고 해주는 착한 녀석이 되었다.
다행히도 게이밍 유전자는 나에게도 잘 왔는지, 그 녀석처럼 프로게이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발치에 가는 실력을 갖춘 나는 동생과 자주 게임을 한 편이다.
내 이야기를 듣던 미우는 부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부러워요. 전 외동이라 형제자매 아무도 없는걸요.”
“대신 그 만큼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지내왔잖아? 게다가 버튜버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가족들을 찾은 기분이라면서 좋아했잖아?”
“그래도 진짜 피가 이어진 사람들 보면 부러워요. 아 맞다, 저번에 통화를 한 적 있는데 정말 언니 동생이 그… 프로게이머에요? 막 에이펙스에 나오는 그런 사람들처럼?”
“응, 지금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어, 아 지금은 잠시 쉬는 시즌이려나?”
삐리릭 삐리리릭
호랑이도 제가 말하면 온다더니
동생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카톡으로 내 근황을 이야기한 게 원인인 거 같다.
“앗, 자리 비울게요.”
“아냐, 뭐 동생이랑 그렇게 사적인 대화를 할 거 같지도 않고, 미우라면 남도 아닌걸.”
“어, 언니?”
미우가 당황해한다.
저러니 진짜 귀엽네
그런 미우를 보며 난 전화를 받았다.
“야 밥 먹었냐?”
한국인들끼리의 인사
‘밥 먹었냐’를 시작으로 나는 그와 이야기를 했다.
주로 나에 대한 걱정을 해줬고
나는 녀석에게 ‘야 너도 건강 관리 잘못하면 훅 간다, 너 관리 똑바로 하고 있는 거 맞지?’를 돌려주었다.
아무튼 떨어진 만큼이나 서로를 챙겨주는 두 국제 남매간의 대화를 끝나고 나니…
“어, 언니 갑자기 왜 그렇게 귀엽게 말하세요?”
“응?”
“자꾸 말끝 마다냐냐 붙이잖아요! 언니도 고양이 메이드가 되는 건가요?”
밥 먹었냐
잘 지냈냐
게임 잘하고 있냐
냐냐냐
냐냐냐냐냐냐
생각해보니 한국의 어미에 ‘냐’가 붙는 건 평범했지?
이게 일본인에게는 이렇게 보이는가?
생각해보니 한국의 어미에 ‘냐’가 붙는건 평범했지?
이게 일본인에게는 이렇게 보이는가?
“어, 한국에서는 그냥 평범하게 ‘냐’로 말하는게 흔한데…”
“풉, 그럼 배나온 40대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도 냐냐 거려요?”
“아, 그렇긴 한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 거북스럽네.”
마치 눈 깜빡임이는 동작에 신경 쓰이기 시작한거처럼
갑자기 평범한 한국어가 불편하게 들린다.
큰일이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한국어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보이는 미우와의 대화는 저녁이 되어 그녀가 집으로 갈 때 까지 지속되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병원 생활에서는 사람을 만나면서 떠드는게 제일 행복하다.
그리고
일본의 병원밥은
끔찍하게 맛이 없다!
나는 매콥짭짤한 김치와 한국 라면이 절실하게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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