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52화.
* * *
선라이즈 프로덕션이 영어 문화권을 저격하기 위해서 기획한 GB 프로젝트
일명 글로벌 프로젝트가 발표되는 9월의 첫째 주에 5명의 인원이 소개를 시작하였다.
시작을 알린 것은 ‘생명의 여신 에오스’
첫 방송부터 영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한국어(!) 로 인사말을 시작한 그녀는 자신이 멀티링구얼, 즉 다중언어 구사자라는 것을 밝히고, 인간계의 신앙을 수확하겠다고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다.
어이어이 드디어 왔냐고!
믿고 있었다고 젠장!!
유리아의 영어 방송 때부터 믿고 있었다구요 ㅋㅋ 젠장!!
충성합니다 썬라이즈, 역시 태양이 되어주는구나 ㅜㅜ
그 방송을 시작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소소하게 버튜버를 덕질하던 수많은 오타쿠들이 몰려들었다.
그동안에 영어 문화권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버튜버들이 없던 것은 아니나,
이런 이들이 거대 자본의 힘과 기획을 등에 업은 대형 프로덕션에 소속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선라이즈가 처음이다.
때문에 8월 프로젝트 발표 때부터 데뷔만을 기다리던 많은 버튜버 오타쿠들은 가감 없이 구독버튼을눌렀고
한 시간 분량의 첫 데뷔 방송에 무려 10만이라는 구독자를 달성했다.
그다음으로는 첫 방송 때부터 오리지널 곡을 발표한 ‘명왕의 딸 셀레네’였다.
일본어와 영어가 섞인 빠른 비트의 팝송은 친숙하게 영미권 오타쿠들에게 파고들었고,
거친 영어 발음과 낮고 허스키한 멋진 목소리와 그에 대비되는 정중하고 청초한 언어 구사 능력으로 완벽한 갭모에를 완벽하게 연출한 그녀는
첫 방송에 15만 명의 구독자를 달성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A”
방송 설정 실수로, 세상에 ‘아’ 한 마디로 존재감을 알린 버튜버가 있었다.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잊힌 티탄족의 일원이라는 거창한 설정을 가진 그녀는 흉포한 설정과 대비되는 귀엽기 그지없는 15세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으며
은발과 푸른 머릿빛의 브릿지와 상어 모양의 꼬리를 가진 이 조그만 소녀는
수줍음 가득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고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들어도 예쁘고 귀여운 목소리로 노래를 선보였으며
방송이 닫을 때 20만 명의 숫자로, 당시 활동하는 어지간한 선배 버튜버들을 압도하는 성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이후에는 ‘잊힌 신앙’이라는 컨셉으로, 유이하게 그리스의 신화 설정이 아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크툴루 신앙이 모티브가 확실한 컨셉으로 데뷔한 ‘클라티에’는
첫 방송에 차분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는듯한 차분하고 조용하게 진행했다.
자기소개를 마친 그녀는 굉장히 빠른 손으로 매력적인 그림들을 완성해나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상으로 이런 신들을 깨우게 된 시간 여행자 모험가 엘리아는
영어권 구사자들이라면 누구라도 반할만한 완벽한 영국식 영어로 이목을 집중시킨 뒤
‘가슴’ ‘패티시’ ‘어린 소녀들을 좋아해’라는 식으로 변태 밈을 만드는 식으로 확실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데뷔한 다섯 명의 영미권 버튜버들은, 데뷔한 지 당일 10만을 시작으로 영어 문화권의 많은 팬을 흡수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레포트를 회사 내부의 온라인 회의에서 열띤 어조로 회의에 참여하는 GB 운영진 인원들은 모두가 높은 텐션을 유지했다.
“사실 이 정도는 예정된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이건 예정하지 못했네요.”
GB 쪽의 운영진이자 실질적으로 프로젝트 담당자인 아델 스미스 씨는 통계 자료를 다시 띄웠다.
붉게 칠해진 30만이라는 숫자.
‘마나’의 구독자 증가 추세다.
“역시 완성된 존재…”
“이전에 방송 이력도 있다고 하네요, 방송 진행하는 게 능숙해요. 스팸들은 적당히 걸러내면서 게임을 하면서도 분위기를 잡고 있네요.”
“재미있는 채팅은 빠르게 잡아내고 리액션 하는 게 대단해요.”
“서양권에서 자주 쓰이는 밈들도 잘 알고 있고 그걸 재미있게 활용하네요.”
마나의 능력과 생각보다 뜨거운 버튜버 팬들의 반응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우리들은 대표적인 밈들을 정리하면서
기획 방향이나 매니저들에게 전달사항을 전하면서 ‘우리 대박 나고 있어요. 좀 더 힘내봅시다. 으쌰으쌰’하는 즐거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역시 클라이에 쪽으로는 좀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이 많네요. 아무래도 차분한 보이스 톤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청초함이…”
“유럽권에서는 에오스 쪽으로 많이 갔네요. 목소리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긴 한데 독일어와 불어를 구사하는 건 그녀밖에 없으니…”
“셀레네와 엘리아가 그다음으로 성장세를 가지고 있네요.
셀레네는 영어를 구사하는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타쿠들에게 친숙한 일본인 느낌이 난다고 하고
엘리아는 에오스와 더불어서 조금 자극적인 쪽으로 방송 방향을 잡은 것 같군요.”
“그리고 팬들 중 대다수가 마나를 이중으로 구독하는 경우가 많고…”
“그녀의 노래가 매력적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마나 다음으로 구독자가 많은 셀레네 또한 자신의 오리지널 곡으로 관심을 크게 끌고 있는걸 보니… 음악은 역시 접근성이 좋은 콘텐츠군요.”
“그래도 역시 KAWAI 코드를 확실하게 가진 마나 쪽이 인기가 좋군요.”
“오타쿠들이 다 그렇죠. 뭐, 서양이나 동양이나 ‘카와이 모에’에 빠져드는 건 다 같은 모양인가 봅니다.”
“그래도 앞으로의 기획 의도를 보면 그녀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컨펌 하는 쪽으로, 어드바이스하는 쪽으로 굳혀봅시다. 아무래도 그녀들은 데뷔 전부터 열망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방송 진행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그런 방송…. 흐아아암. 실례했습니다.”
이런
회의를 하는 도중에 하품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마츠시타씨와 나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서양 문화권을 기준으로 회의가 열리는 새벽 4시는 자연스럽게 하품이 나온다.
그들은 안쓰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유나씨, 퇴원 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는데 벌써 무리를 하신다니…”
“그러다가 또 쓰러지면 큰일 나신다고요.”
“역시 카로시(과로사)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일본이군요…”
미국, 영국, 남미, 유럽권의 사람들에게서 그런 위로의 말을 듣다니
무언가 글로벌하게 동정심을 사는 기분이라 슬펐다.
“그래도 저 건강하다고 판정을 받았는데, 아니 애초에 새벽 4시에 하품이 나오는 건 정상적인 생체 반응인데요?”
“힘든 건 저희가 아니라 에오스와 셀레네죠. 하필이면 그 둘은 일본에 있어서 영미권 방송자들을 잡는 게 좀 힘들다 보니…”
마츠시타씨가 거들어주었다.
“그래서 고생을 하고 있다는 걸 둘이 안 모양인지 일주일 만에… 보세요, 벌써 커플 밈이 나왔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셀레네 씨가 에오스와 이웃이라고 말을 했던가요? 벌써 결혼을 했다니 뭐니 하는 Husband and Wife 밈이 나왔더군요.”
“활발하게 돌아다니면서 톡톡 튀는 에오스 엄마와 부끄러운 마음에 감정 표현을 못 하는 츤데레 셀레네 아빠의 이미지더군요.”
“2기생의 파라오와 용처럼 초기 때부터 커플링이 얽히면 확실히 ‘백합’을 선호하는 유저들이…”
그런 식으로 다시 분위기가 흘러가자, 이 회의의 끝을 맺으려는 듯 박수를 두 번 쳐서 이목을 집중시킨 아델 씨가 말을 했다.
“자자, 여러분 다들 진정합시다. 일단 재미있는 건 현재 일어난 일이 유나 씨가 제출한 레포트에 관측된 부분이 많더군요.
벌써 파생 밈에 대해서 방향성을 잡고,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에 대해서 예측을 한게 예언처럼 실행되고 있네요.
특히 구독자 중에서는 버튜버 팬뿐만 아니라 이번 일로 버튜버 팬들이 아니라 타 장르 유입들이 많을 것이라는 예측은 저도 상상을 못했는데 말이죠.”
확실히
오늘 보여준 자료 중에서는 기존에 ‘버튜버’에 관련된 번역 영상이나 관련된 키리누키 영상들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입문했다.
노래를 발표한 마나와 셀레네의 중심으로 말이다.
나는 레포트에 ‘영미권 커뮤니티에 퍼져있는 적극적인 영입 문화가 기존의 버튜버 시청자들 의외에도 다른 이들에게 흥미를 불러들일것이다’ 라고 기입을 했는데
실제로 버튜버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마나나 셀레네를 통해서 보기 시작한 사람들이 오 만 명을 넘어간다는 자료를 보고 나도 놀랐다.
거기에 에오스와 셀레네라는 생명과 죽음에 대한 커플링이거나,
차분한 분위기의 방송으로 고연령대의 시청자들이 집중할 거라는 클라티에의방송,
그리고 비슷하면서 다른 분위기를 가질 거라는 에오스와 엘리아에 대한 분석도 들어맞았다.
내가 쓰러지기 전에 완성한 리포트에 나온 대로 일이 흘러가자 사실 나도 놀랐다.
장막을 들추어서 미래를 엿본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일이 들어맞게 되지? 하면서 말이다.
이번 일을 통해서 내가 운영진에게 준 인상이 강했는지
처음에는 그들이 오타쿠이기 때문에 덕업일치를 위해서
대기업의 경영 이사, 변호사, 기획사 프로듀서라는 어마어마한 명함을 지닌 이들이
내가 말을 할 때면 말을 멈추고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준다.
이번 일을 통해서 내가 막연한 낙하산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한 나는 긴장이 풀리는것을 느꼈다.
“다들 우리들의 버튜버들이 열심히 방송을 진행해 준 것일 뿐이죠, 저는 그냥 찍었구요.”
“저런 유나 씨, 동양권에서는 몰라도 여기서는 일본인 특유의 겸손은 그렇게 좋은 태도가 아니에요. 아 미안해요, 한국인이셨죠, 실례했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대단함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자랑하셔도 됩니다. ‘이 기분 나쁜 오타쿠들아 내가 뭐랬어? 내 말이 맞지 !’하는식으로 말이죠.”
유창하게 말을 하던 아델 스미스 씨는 전직 대형 회사의 임원다운 말솜씨로 나를 칭찬했다.
“아무튼 이런 유나 씨의 예측대로… 버튜버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서 버튜버를 연기하는 그녀들이 방송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게 해서
편안하게 캐릭터 성을 연기하게 되도록 두자는 의견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일단, 이 의견대로 진행해보도록 하죠.”
그렇게 오늘의 아젠다인 ‘상상 이상으로 인기를 끌어모은 그녀들의 방송 기획에 어느 정도 운영진이 참여할 것인가? 는
버튜버 본인의 의사와 매니저들의 매니징 능력에 판단을 맡기고, 그녀들에게 다가오는 광고나 콜라보정도만 관여를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일본어로 ‘수고하셨습니다’를 한 이후 회의를 마쳤다.
그렇게 퇴원한 이후 처음으로 가진 회의가 완벽하게 끝이 나서 안심을 한 나는
‘유나야 무리하지 마ㅠㅠ’라고 적힌 휴대폰 메시지를 읽고 책 밑에 놓아둔 종이를 바라보았다.
[휴학 신청서]
오늘 가진 글로벌 화상 회의로 나는 결심했다.
지금 이 시기에 내가 제대로 일에 집중해야 지금까지도 자신의 방송을 둘러보면서 개선점을 찾느라 고생하는 그녀들을 좀 더 수월하게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출력만 하고 이름만 쓰고 비워둔 휴학 신청서의 빈칸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