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53화.
* * *
만약 버츄얼 유튜버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라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라는 반응을 크게 보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세계 각국에 있던 오타쿠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선라이즈의 성장세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GB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고작 20일
에오스, 셀레네, 클라티에, 엘리아는 많게는 50%, 적게는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합계 72만을
그리고 데뷔 1주일 시점으로 30만을 기록한 마나는 60만이라는 정신 나간 숫자의 구독자를 보유하게 되면서 유튜브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한 번쯤 주목하는 존재가 되었다.
“WAH”
이제는 나에 언니의 전용석이 되어버린 내 무릎 위에 앉아서
내가 보고 있는 자료들을 번역하는 걸 실시간으로 본 나에 언니가 솔직하게 감탄했다.
영어를 잘하는 언니는 아니지만
그동안 지속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 방송 외에도, 본인이 노력해서 영어를 쓰려고 노력을 해서 흔히 말하는 ‘영어 코인’을 제대로 탄 언니는 외국의 시청자들이 많다는 걸 피부로는 느끼고 있어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숫자로 보는 건 처음이기에 자신도 감탄을 했다.
“이래서 나고가 영어 공부를 강조했구나.”
“어, 사장님이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뭐 해, 동료 중에서 나고 말 잘 듣는 애는 셋 정도인걸?”
즉 오늘도 꿈이 부서져서 산산이 조각난 자신의 꿈을 붙잡고 우는 사장의 밈은 과장이 아닌 진짜란 거군.
기존의 일본 멤버들의 방송 하이라이트를 주로 따던 키리누커들이 글로벌 멤버 발표 이후로 글로벌 멤버 위주로 채널 운영 방안을 돌린 이유를 분석하는 흥미로운 자료를 언니에게 가볍게 요약해준 나는 외출 준비를 했다.
“유나 힘내.”
“응, 고마워요. 언니.”
이번 달 초
나는 과중한 업무를 버티지 못해서 쓰러졌다.
건강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거기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납득했다.
유학생이
그것도 복수전공으로 다른 학생보다 학업이 많은 내가
학업과 회사업무, 그리고 취미 활동이자 업무 연장인 버튜버 덕질을 셋 다 함께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중간고사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쌓이기 시작하는 과제와 리포트를 계산해본 결과, 현시점에서 셋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학업을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유학을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내 꿈을 간접적으로 이루어 줄 수 있는 길이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유학길에 올랐다.
아이돌을 꿈꾸던 나는 그 꿈이 꺾이자
다른 아이들처럼 다시 도전하는 대신에
조금이라도 아이돌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면서 살아가고자 생각한 내가
다양한 길을 알아본 결과가 스포츠 과학에 있다고 생각한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왔지만…
이제는 아니게 되었다.
나는 나를 마중하러 나온 나에 언니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나의 소중함은 티비 속 화려한 무대가 아닌
이 작고 여린 사람이 더욱 소중했다.
아이돌
만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빛나는 인생
그것은 나의 인생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한 욕망이었으나
이제는 아니게 된 빛나는 길
이제 나에게 있어서
세계적인 아이돌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아 가며 화려한 조명 속에 사는 것보다
오늘도 방송 준비를 생각하면서 남에게 말 못 할 고뇌를 하고있는 그녀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는 게 더 소중했다.
설령 지금 당장 아이돌이 된다 한들
아이돌보다 이제는 그녀들이 더 소중한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이 길로 접어들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내 오랜 과거의 꿈과 결별을 하기 위해 밖을 나섰다.
그리고..
“엉엉 유나야 미안해.”
학교의 휴학을 담당하는 수학(? )교사에게서 휴학을 허가받은 나는 예민한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마중한 거는 야근으로 피폐해진 얼굴을 한 코이즈미 언니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사과했다.
“우와, 아무리 둘만 있어도 그렇지 언니 그렇게 태도를 돌변해도 되요?”
“유나잖니.”
“아앙? 절 우습게 보는 겁니까?”
“그 되도지 않는 우리 회사의 버튜버 흉내는 그만두고, 서류나 줘.”
나에 대한 사죄를 20초 만에 털어버린 언니를 보니 기가 찼다.
그래도 일은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얌전히 내가 가져온 서류들을 건넸다.
“어디 보자, 여권에 재류 카드와 기존 비자에… 오케이 완벽해. 나머지는 회사에서 준비해줄게.”
“사장 좀 닦달해서 좀 제대로 된 인가를 받으라고 해요. 아니 어떻게 회사 소속의 인기 버튜버가 신용 카드 하나 못 만들어요? 저희 회사 그렇게 신용이 없어요?”
“그건 나고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야.”
그래도 다행스럽게 내 비자 문제는 해결이 될 것 같다.
하기사, 이제는 어지간한 일본 프로덕션 급으로 성장한 회사인데 그 정도는 해주겠지, 애초에 우리 회사에는 취업 비자로 건너온 댄스 트레이너 진아씨가 있어서 큰 걱정은 안 했다.
“사장님 의외로 허술하네요.”
“그래도 비전은 확실하고 투자하는 방향이 옳아서 결국 당장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게 다 이득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인복도 흘러넘치는 사람이긴 하니까 봐주는 거지.”
“아 역시 우리 회사의 진정한 아이돌.”
“나도 나고의 순수함과 청초에 이끌려서 광기의 버튜버들이 우리 회사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해. 청초 보존의 법칙인 거지 그래.”
“그리고 나고의 희망이었던 두 사람이 제 손에 타락돼서 슬퍼하겠군요.”
아이돌을 꿈꾸며 인기가 적어도 열심히 노력하던 츠유의 코모레비
조용한 방송 스타일에 새벽에만 진행되는 방송을 하던 나에의 유리아
둘 다 ‘청초 라인’이라는 막 나가지 않는 스타일의
성적 코드가 담기지 않고 엉뚱함은 있어도 그게 상식선에 있는 그런 차분한 느낌의 방송을 하던 그녀들이었으나…
“숲속 비치는 햇살이 되고 싶다는 이름 그대로의 희망을 담던 코모레비는 모든 게임에서 폭력을 지향하는 사이코패스가 되었고 마왕성의 공주님 그 자체였던 유리아는 집착이 흘러넘치는 얀데레 멘헤라 캐릭터가 되었으니 말이야.”
“우와.”
둘 다 내가 입사 이후 두 배 이상의 성장을 보여준 버튜버들이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런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보지 말아줄래?”
“그래도 그녀들을 제어하기 위해서 클라티에씨가 들어왔잖아요.”
크툴루 신앙에 나오는 신앙의 대상들이 사람들을 광기에 이르게 한다라는 컨셉을 완전히 부정하듯
이 세상의 모든 청초함을 끌어 담은 클라티에는GB서버 말고도 일본 서버에도 유명해졌다.
“그래도 언니 말대로 이제는 더 무리하게 주목도를 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방송을 지향할 필요가 없어지긴 했어요. 이제 우리 회사가 1위잖아요?”
“근데… 약간 매운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이랄까, 아니면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광기를 주체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이미 늦은 거 같아.”
“하하.”
그래도 엄밀히 말해서 선라이즈의 진짜 광기는 ‘시스터 사하트’다.
구닥다리 같던 진짜 여고생이 버튜버 방송을 한다는, 여고생이라는 캐릭터 성 하나만 밀고 가면서 틀에 박힌 10년 전 오타쿠 업계의 여고생만 연기하던 그녀가
코로나로 고향길이 끊기고 외국에 고립된 이후 광기를 선보여서 큰 인기를 끈 전례가 있기 때문에 나는 죄가 없다.
아무튼 나는 죄가 없다.
“그 죄가 없다는 순진한 얼굴 하지 말아줄래?”
“언니도 알잖아요, 결국 늘어나는 구독자 숫자와 커지는 광고 수입, 미디어에 언급되는 우리 회사 이름과 올라가는 주식 차트가…”
“그마아안! 그만! 더 이상 나고의 꿈을…”
그래도 언니는 나고의 친우인 이유로 창립 멤버를 지키고 싶은지 변호를 했다.
그게 짠해 보였다.
현실을 볼 줄 아는 언니도 그래도 청초만큼은 지키고 싶구나…
“그래서 이제는 뭘 할 거야? 정식 매니저가 된 유나 씨.”
“그러게요? 일단 유리아 언니를 포함해서 4기생들 전부들 집합시켜서…”
“오?”
“휴가를 보내야죠. 지금 페이즈대로 방송을 진행하다가는 큰일 나요. 방송 과몰입으로 과한 스케줄을 진행하다가 지친 2기생들 보면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선라이즈를 이끌어 나간 인원들은 모두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중에서도 스타라고 불릴만한 회사를 대표하는 100만 구독자 이상의 골드 버튼 소유자들은 특별했다.
0기생이자 회사의 설립 이유가 된 아이돌 ‘타케이 우미’
1기생이자 사기적인 목소리와 뛰어난 게임 실력, 그리고 뛰어난 예능감을 가진 최초의 골드 버튼을 소유한 게이밍 여우‘코쿠하쿠 이나리’
그리고
유튜브에서 정지당한 이력이 있는 강한 섹드립과 강철 멘탈, 듣기만 해도 혼이 나갈 것 같은 연금술사 ‘다비’
선라이즈의 노래의 정점, 성악과 랩을 소화하면서도 상식인 포지션과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는 파라오 ‘아그니’
전생이 성우를 의심받는 다양한 연기폭, 잡아먹힐 듯한 ASMR 방송과 장난을 잘 받아주는 활발한 마녀 ‘미야’
누구보다도 상냥하면서도 말장난과 술을 좋아하고 세상에 밝은 현명한 드래곤 ‘시르카’
전설의 2기생은 모두가 100만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선라이즈의 황금시대를 연 버튜버들이다.
대외 인지도를 압도적으로 넓히는 것에 성공했으며
그녀들의 성공을 계기로 선라이즈는 더욱더 회사의 규모를 성장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그녀들 모두가 방송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들이고,
그리고 그만큼 스트레스에 대해서 자각을 하지 못해서 심각한 건강 위기가 찾아왔다.
그 결과 한 명은 입원 후 수술한 경험과 다른 한 명은 성대 결절을 경고받을 정도로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매니저들은 자기의 담당 버튜버들의 건강을 파악해야 할 의무가 생겼으며
그들의 재량하에 버튜버들의 방송 송출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와 일이 겹친 ‘성덕’들의 과한 일정을 막는 제어 타워가 되었다.
“어째 방송 금지가 벌처럼 쓰이는 기분인데.”
사실상 방송 = 일이지만
방송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그녀들에게 있어서 방송 = 취미활동이기 때문에
방송을 금지하는 것은 취미생활을 금지하는 것과 동시에 일을 금지하는 기묘한 형태가 되어버린 작금의 사태다.
“팬들을 진심으로 아끼려면 자신의 몸부터 소중하게 해야죠. 그건 프로의 기본이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할 계획은 바로.”
나는 며칠 전부터 준비한 기획서를 꺼냈다.
“오, 이런 오타쿠적인 기획을 하다니 정말 유나는 우리 업계 사람이 다 되었구나.”
“나에 언니 다루면서 깨달았어요. 결국, 이 버튜버 하는 사람들은 쓴맛을 아무리 본 사람들이라도 다들 애 같은 사람들이라서… 이런 식으로 교육 해야 한다는 걸 말이죠.”
[친목 도모를 위한 여행 겸 합동 방송 계획서]
“딴 거 몰라도 나에 언니 포함한 4기생 동기들이 망가지는 건 두고 볼 수 없어요. 방송 중독자들을 방에서 끌어내고 휴식 좀 주러 가죠.”
“4기생 매니저들에게 연락을 넣을게. 걱정하지 마. 그런데 유나는…?”
“휴학서를 낸 대학생은 한 달간 무적이에요.”
“좋아.”
코이즈미 언니와 나는 수상한 표정을 지으며 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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