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55화.
* * *
4기생의 연령대는 상당히 편차가 있었는데
중학생인 천사 미카엘의 호시무라 마이유부터
고등학생 성녀 클레의 사케이 미우
작년에 고등학생이었던 용사 에이아의 유우키 아오이
스물셋으로 보이지 않는 공주 유리아의 쿠로가와 나에
그리고
“흐음, 숙녀의 나이를 읽으려 들다니 유나 씨는 꽤 무례한 사람이군요. 그럼 그 대가로 유나 씨의 은밀한…아얏”
“하아…”
툭만하면 사고치려하는 유메미씨
그것에 고개를 흔드는에이비씨의 조합에 적응하는 데는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
유메미씨는 예쁜 얼굴을 가진 미인인데
정작 하는 행동이 40대의 아저씨와 다를 바가 없다.
웃긴 건 방송 카메라가 켜져도 저 태도가 일관성 있게 유지된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진정한 캐릭터와 자신이 일치시킨 그녀에 대해서 난 솔직하게 감탄했다.
그리고 워낙 얼굴이 예뻐서 그런지 저런 미녀가 나에게 추근거리는 건
솔직히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
“그래서 가슴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엘프적인 초감각에 의하면 유나 씨의 컵 사이즈는…”
“제발 여기서 주책 부리지 말고 동기들 사이에 끼어주세요.”
“하, 하지만 저기 가버리면 나, 너무 늙는 티 나는걸.”
“하아, 그래도 쿠로가와씨보다 한 두 살 더 많은 편이지 않아요? 아무튼 저기로 꺼져요. 제발.”
만담을 주고받는 콩트 같은 대화는
유메미씨의 헛소리에 화가 난 에이비씨가 그녀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거로 마무리되었다.
“하아, 저희 엘프가 죄송합니다. 정말로.”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싫지는 않았어요. 그냥 그 뭐랄까?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미녀가 기분 나쁠 정도로 주책맞게 치근덕거린다.
마치 40년 굴러먹은 아저씨가 미녀의 몸에 들어가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동 하나하나가 얄밉다.
차라리 무례함이 선을 넘으면 제대로 화를 내겠는데, 그러면서도 선은 기가 막히게 넘지 않는 게 또 기가 막혀서 대화를 하다 보면 자꾸만 말려든다.
그래도 워낙 입담이 좋은 데다가
무엇보다도 누가 보더라도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니까
마냥 미워할 수도 없다.
“에휴, 한숨만 느네요.”
“하하하.”
그래도 폭주하는 유메미씨와 상식인 포지션의 에이비씨의 티키타카는 보기 좋았다.
그녀들의 일상은 코미디 예능일 것이라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내 감정을 알아차렸을까
에이비씨도 찌푸린 얼굴을 풀고 결국 어깨를 으쓱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렇게 미워만 할 사람은 아니죠.”
“정말 태생이 타고난 예능인이네요.”
“방송인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칭찬이죠.”
실제로도 그녀가 버튜버들의 그룹에 끼자 분위기가 더욱 달아오른다.
딱 봐도 사람 만나고 사귀는 걸 좋아하는 유우키
그런 유우키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같이 어깨동무하고 노래하는 호시무라
물병을 술병처럼 손에 쥐면서 취한 척 동기들과 스킨쉽을 하려는 (옆에서 한숨 소리가 또 들렸다) 유메미
그런 정신 나간 흐름 속에서 방송용 메모장을 켜서 무언가를 기록하면서도
폭주하는 유메미를 말리는 미우
그리고
나에 언니 또한 그 흐름을 적극적으로 즐겼다.
언니는 그녀들 사이에서 웃고, 옆자리 미우가 방해받지 않게 손뼉을 치며 그녀들의 노래에 흥을 더하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유메미씨에게 응징… 잠깐, 저건 좀 아프겠는데
반년간의 나의 PT 끝에 상당한 근력을 기른 언니의 몸짓은 이전과는 다르게 제법 손이 매워졌다.
저 가녀린 몸에 나왔을 거라고 생각 못 한 강한 악력에 놀란 유메미씨가 진짜로 우는 건지 가짜로 우는 건지 알지 못할 흐느낌을 하자 모두들 빵터지며 폭소했다.
매니저들 또한 흥미로운지 그녀들의 반응을 보며 즐거워했다.
나 또한 그녀들이 얼굴이 노출되면 곤란한 직종이 아니라면 손 카메라로 그녀들의 브이로그를 찍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쿠로가와 씨, 정말로 달라졌네요.”
에이비씨가 팔짱을 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죠?”
“네, 예전에는 저렇게 웃지도, 움직이지도 않으셨어요. 마치 예쁘게 빚어둔 인형처럼, 멍하니 앉으면서 가만히 미소만 지으셨죠.”
“아…”
“그래서 유우키조차도 다가가는 게 힘들어했어요.”
“아아, 그랬죠.”
옆자리에 앉은 이시카와 씨가 맞장구쳤다.
“그때는 뭐라고 해야 할까,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일단은 상냥하긴 한데, 그게 무언가 참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 유메미도 장난을 안 쳤어요. 아 그때 유메미는 좀… 나사가 조여져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하하하…”
보고 있기만 해도 웃긴 유메미씨마저도 나에 언니에게 다가가지 못했다니,
도대체 그 당시 나에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몇 번 물어본 적이 있지만, 언니는 대답하기를 꺼려서 그 이후로는 잘 묻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알아본 바로는 언니가 미우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건 첫 만남 이후 없었다고 하니
예전 언니는 내 생각 이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었구나, 하고 짐작한다.
“그래서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쿠로가와씨는 조금 유명했죠. 매니저분이 두 분이 맡으셨다가 그만두실 정도로 소통이 어려워서요.”
“어, 언니가 그렇게 까다로운 분이셨어요?”
내가 본 언니의 첫인상은 상처 입은 고양이 그 자체였는데
그런 언니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고?
저렇게 귀여운 사람이?
“그래서 유나 씨가 특별하다는 거예요. 저래 보여도 저분 선라이즈에서 가장 까다로우신 분이셨고요.”
“그래도 전 매니저 경력이 있으신 유능한 에이비 씨가 쿠로가와씨를 맡아주실 줄 알았어요.”
“이시카와 씨도 참, 절 그렇게 칭찬해도 나오는 거 없어요.”
“아 그래도 말이죠, 그 당시에는 유우키가…
그래도 내 입사 동기…는 아니고 선배들인 두 매니저에이비씨와 이시카와 씨를 통해서 초창기 언니의 4기생들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었다.
가령 나와 비슷하게 덕질을 하나도 모르던 유우키씨가 데뷔를 했을 때에는 악플에 시달렸다거나
신인 주제에 선배들 모시는 기획을 자주 열어서 선배들의 인기에 편승하려고 욕을 먹은 미우가 사무소에서 울었다던가
늦잠을 길게 자버려서 방송에 한 시간 지각을 해서 트위터를 뜨겁게 달군 호시무라의 전설로 남는 사죄 방송이라거나
지나친 섹드립과 공공장소에서 틀 수 없는 소리를 낸 유메미씨의 유튜브 채널의 수익화가 해제되고 정지당한 사례 등…
언니를 통해서 버튜버를 알게 되고 매니저가 되어서 이 업계에 대해서 공부를 했지만
키리누키 방송이나 트위터의 카더라 통신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정보들을 선배들을 통해서 듣게 되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에 언니는요?”
“아, 쿠로가와씨는 음…”
“그, 그게 말이죠…”
언니는…
아싸 밈으로 유행을 해서 괴롭히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유리아는 아가야 아가는 지켜줘야 해… 라는 느낌으로 어그로가 덜 끌린 편이라고 했다.
그만큼 주목도도 낮았고 워낙 불규칙적인 방송 시간대로 인해서
아는 사람들만 찾는 그런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콜라보 방송이 적어서 직접 찾지 않는 이상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버튜버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못한 세월이 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만큼 사건이 적은 케이스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몇 번 강한 비난이 가득한 도네이션 채팅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방송을 읽다가 세상 서럽게 울면서 끈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언니의 팬들이 그런 어그로꾼을 적극적으로 쳐낸다고 한다.
‘지켜주고 싶은 아싸 마계 공주님’
‘그래도 가끔 건방져서 괴롭히고 싶은 마계 공주님’
이었다고 한다.
“와… 언니가요?”
언니와 지내본 나는 언니가 은근히 한 성깔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녀가 게임을 하다가 막혀서 키보드를 치는 건, 진심이라는 건 난 알고 있다.
그래도 워낙 본인이 키보드만 때면 사람이 소심해지고 약해지는
요즘 언어로는 방구석 여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람이 언니라서
마냥 평범하게 지켜줘야 해~ 같은 밈이 안 붙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그런 유리아씨의 캐릭터를 변화시킨 유나 씨, 즉 ‘메이드 라’에 대해서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예시가 되고 있어요.”
“아, 물론 저는 유나 씨처럼 그렇게 방송에 간접 출연을 해서 캐릭터 성을 보일 생각은 없지만요.”
“아 그건 저도 그래요.”
그 후에는 나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아무래도 두 선배가 나를 일방적으로 칭찬하다 보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하긴 내가 좀 대단하긴 했지!
“그래서 데뷔는 언제 해요?”
“저 유우키만 허락해주면 매니저 겸업해 드릴 수 있는데.”
“게임 콜라보는 유우키와 하고 토크 콜라보는 유메미랑 하는 게 어때요? 아무래도 큰 인기…”
“데뷔 안 해요!!”
누가 매니저들 아니랄까 봐
은근슬쩍 영입하려고 든다.
하지만 나는 데뷔를 안 할 거야.
절대로
그런 내 반응이 우스웠는지
두 선배들은 악질적으로 나에게 영업을 걸기 시작했다.
실력파 게임 방송으로 가자
아니다 저번의 요리 방송처럼 오타쿠들이 환장하는 치유계 마마 캐릭터로 가자
목소리 낮은 허스키함을 살려서 여자들 꼬시는 ASMR 방송으로 가자
이렇게 된 거 실력파 게임방송에 여성 버튜버들을 꼬셔서 메이드의 하렘 유니버스를 만들어 보자
그렇게 사람들을 모은 다음에 하숙 게스트로 버튜버들을 꼬신 다음 맛있는 요리 먹이고 토크쇼를 하는 현실 예능 식으로 진행해보자 등등
듣고만 있자면 나에게도 방송인의 길이 열리는 듯한 두 사람의 속삭임은
마치 에덴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이려는 악마의 속삭임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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