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7화.
* * *
물론 나는 잠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게, 항상 커피를 연하게 마셔도 카페인이 잘 받는 나는 열 한시 넘어서 커피를 마신 시점에서 이미 자는 것을 포기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체력이 워낙 빵빵한 나는 아이들을 재우는 어머니처럼, 그녀들이 픽 픽 쓰러진 걸 보며 담요를 덮어주었다.
나에 언니는 이번에 이로하(타마씨의 본명)가 정말로 마음에 든 듯 그녀를 꼭 껴안고 자고 있었고 이로하 또한 언니를 꼭 껴안고 잤다.
실제로도 동년대의 여성 친구를 처음 사귀는 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이로하 또한 회사 동료 중에서 같은 나이대의 여성과 마음을 터놓다 못해 친구가 된 사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마음을 터놓는 깊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보호자인 동생(나는 친동생은 아니지만) 둘은 졸린 와중에도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특히 마미 선배는 아예 눈물을 글썽였다.
“평생 아싸 찐따로 혼자 살다가 죽을 거 같은 언니가 드디어 친구를 사귀게 되다니…”
“…”
나도 동생에게 꽤나 솔직하게 흉을 보기는 해도
마미 선배는 무언가 그 이상의 딜을 꽂아 넣는 것이 하나하나 묵직하다.
“후아아암… 커, 커피…”
“안 돼요, 이미 새벽 다섯 시 반인데 마미 선배 그냥 잠시 잠드시는 게 어때요?”
“그, 그럴까…?”
“네, 잠시 쪽잠이라도 주무세요. 제가 깨워 드릴게요.”
“그… 그러엄… 여덟 시 반에는… 깨워줘요…유나 후배…”
커피를 마시려는 그녀를 제지하고, 그녀가 눕기 편하게 거실의 소파를 드르륵 밀었다.
일본 주택임에도 온돌을 보유한 최신 주택인 덕분에 가을 임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자도 괜찮을 정도의 방열을 보유한 선배의 집은 마치 겨울의 모닥불처럼 아늑했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졸다 쓰러진 그녀를 눕힌 후 나는 이렇게 된 이상 귀여운 GB멤버들의 방송을 보려고 했다.
“어머나.”
하지만 일어나려던 나의 손을 마미 선배가 잡았다.
딱 미우만한 크기의 그녀다.
본인 말로는 스물 한 살이라고 주장하는 데,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처럼 보인 그녀였다.
내 주위에는 왜 이렇게도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여성들이, 이게 일본 여자애들의 특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를 떠나서 외양만으로는… 내가 아줌마처럼 보이지 않을까 잠시 고민도 했다.
물론 이 말을 했다가 아까 눈총을 사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 회사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면 나는 항상 보호자 내지는 엄마 비스무리한 포지션을 가지게 된다.
지금도 내 손을 잡은 마미 선배가 나를 잡아당겨서 어쩔 수 없이 옆에 마주 누워주었다.
작곡가도 예술인인지, 아니면 강하게 보이고 싶은지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예쁘게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눈매가 날카롭다는 게 스트레스인지 항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덤덤하게 밝힌 그녀의 감은 눈은 확실히 고양이 상의 미녀였다.
물론 그런 고양이 상의 미녀같다는 내 비유를 그녀가 전면 부정했지만…
아무튼 마미 선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중학생 때부터 인기 있던 작곡가인 그녀는 일찍 사회를 경험한 사람이다.
사기도 당해보고, 입사 초기에도 언니의 인맥으로 들어왔다던가, 어린 나이로 인해서 무시도 당해보는 등 사연이 많은 여자였다.
그래서 두 언니들이 자고 난 이후부터는 술이라도 한 잔 한 듯 마미 선배는 나에게 한탄을 늘어놓았고
나는 그녀의 한탄을 들어주면서 달래주었다.
그런 까닭에 나에게서 위안감을 느껴서 그런지 아까처럼 다가가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편하게 친구처럼 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친구끼리는 이런 것들도 했던가?”
마치 무언가를 찾듯이 두 팔을 뻗어온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나는
그녀가 나를 안게 했다.
마치 어머니의 품을 찾는 아기처럼 그녀는 꼬물꼬물 몸을 움직여서(귀여워서 비명을 지를 뻔 했다)나를 안았다.
귀여운 아기같은 선배였다.
어린 나이에 일찍 사회를 경험한 탓에 강한척 보이려는 대견스러운 선배인만큼 사람의 품이 그리웠겠지,
저런 성격 상으로는 사회 관계는 완만하게는 해도 친하게 지낼 사람을 찾기는 또 드물었으니까
나에 언니와 친하게 지내는 자신의 언니를 보면서 부러워 한 눈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그녀의 다소 격한 잠투정을 받아주었다.
나는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조작해서 귀엽고 차분한 매력이 넘치는 마나의 게임 실황을 보면서 밤을 세웠고…
“저, 저기 유,유,유나님?”
몸부림이 심한지 처음에는 내 품에 안겨있다가
어느 새 내 무릎을 배게 삼아서 누운 그녀가 졸린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얼마나 당황한지 저도 모르게 후배님이 아닌 ‘님’을 붙이다니…
“아, 선배님~”
“그, 그그!! 아 선배님 할 때가 아니잖아요 이게 무,무,무무무슨!”
“선배님 당황하신 건 알겠는데 언니들이 자고 있다고요. 소리는 지르지 말아봐요.”
방에서 가져온 같은 이불을 자매처럼 덮고 자는 나에 언니와 이로하씨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자고있는 걸 본 마미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따질거면 밤새도록 제 가슴과 무릎을 주무르신 선배님인데 무,무무무슨 같은 반응은 제가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아… 아…. 아!!”
뭐 성적인 의도가 담긴 애무도 아니었고
애초에 근육을 만지게 하기 위해서 동성의 손길이 내 몸에 닿는 게 익숙한 나였지만
버튜버들처럼 놀리는 반응이 확실 한 마미 선배를 놀리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채,채,책임을… 내가…”
“풉, 선배님 반응이 왜 그러세요? 장난이에요 장난.”
“아으으윽… 정말 유나 후배에게는 못 당하겠어.”
“그치만 놀리는 반응이 귀여운 걸요 선배.”
아닌게 아니라
처음에는 약간 에이비 선배 같은 차갑고 냉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언니의 방송에 진심으로 몰입하며 박수치면서 웃는 그녀를 보고 그렇게 냉막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방송을 보는 틈틈이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스케줄과 광고 회사를 조사하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일하는 선배였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좋아졌다.
“하아, 한국인들은 모두 너처럼 장난기 심해? 정말이지 못 당하겠어.”
“설마요. 그냥 저는 유나니까, 유니크하니까 그러려니 해요.”
“우와 방금 그거 정말 재미없는 개그였어.”
“너무하다 정말.”
“그래서 토요일 아침이신데 일정은 있으세요? 여덟 시 반에 깨워 달라고 하신 거 보면 뭔가가 있을건데… 어라 선배님? 앞치마는 왜…”
“요리는 특기가 아니지만 그래도 손님이 집에 왔는데…”
허어
어린애가 내 앞에서 주방에 서려고 하다니
장유유서라고, 어른과 젊은 사람 사이에는 차례가 있거늘
아무리 초대받는 손님이라고는 해도 여고생같은 선배가 칼을 쥐는 걸 보지 못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근에 전직 쉐프의 비결을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빠르게 흡수하면서 자신감이 넘친 나는 그녀의 앞치마를 벗겼다.
“뭐, 너!? 뭐!?”
“뭐, 장난친 만큼 사죄 해 드릴게요. 후배가 아침 대접정도는 하게 해 주세요. 이래보여도 저, 메이드랍니다?”
“어…응.”
나의 윙크에 넘어간 탓일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마미 선배는 아무리 봐도 닳고 닳은 매니저나 작곡가라기 보다는…
“여자애 손 처음 잡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애.”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냉장고를 열어 볼까나~”
“너,너너 제대로 말해!! 방금 뭐라고 했어!”
“아, 선배 언니분들 께요!”
“아오, 씨!”
“아, 선배 그래도 주방에 뭐가 뭐 있는지만 알려주세요.”
“어으, 다른 사람들도 너의 이런 모습을 알아야하는데.”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그녀는 냉장고에 들어간 식재료와 보유한 조미료, 그리고 식기와 조리도구를 대충 알려주었다.
그래도 나름 살림을 한 듯 그녀는 왠만한 거 갖출거 다 갖춘 훌륭한 주방을 보유하고 있었다.
“평소에 요리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가 보네요?”
나는 찬장에서 마법의 조미료인 치킨 스톡과 굴소스를 꺼내면서 말헀다.
SNS의 예쁜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에는 나오지 않는 감칠맛의 정수인 두 조미료는 요리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 아무래도 이로하 언니는… 워낙 생활이 글러먹은 사람이라 툭만하면 우버 이츠니, 데마에칸이니, 편의점 도시락으로만 식사를 떼우려고 하잖아.”
일본의 배달의 민족, 요기요같은 외부 음식과 편의점 도시락이라…
그걸로는 균형잡힌 식사가 어렵지.
나는 나에 언니의 사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밖을 안 나가, 운동도 안해, 그래서 사람이 날씬해 보여도 포동포동해, 저러다가 내가 멀리 출장을 가게라도 되면? 작업을 하느라 스튜디오에 머무르게 된다면?”
“아…”
“그래서 내가 있을 때 만큼은 어떻게든 언니에게 밥을 먹이고 싶었어.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했고…”
정말이지
나와 나에 언니 같은 사이가 아닌가?
“선배 혹시 괜찮으시다면…”
“응?”
“저희…”
촤르르륵
열을 받은 후리이팬에 기름과 양파가 들어가면서 맛잇는 소리를 내었다.
“…어?어?”
“꽤나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요? 저는 차가 있어서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하, 하긴 언니들도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러면 괜찮으신거죠?”
“나, 나야 괜찮은데… 근데 유나 너는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거야?”
비지니스 상의 관계는 능숙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서툰 그녀가 그렇게 물었다.
글쎄, 왜 일까?
“글쎄요, 이래보여도 누나 되는 사람이다 보니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응원해주고 싶거든요. 제 능력이 닿는 한에서는 말이죠.”
나의 눈은 손에 반창고를 붙인 마미 선배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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