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71화.
* * *
“그러니까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고 게임도 잘하고 방송 아이디어도 괜찮게 내는 제가 왜 데뷔를 안 하냐고요?”
아티스트이면서도 매니저 마미 선배가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솔직히 내가 경험이 긴 작곡가는 아니고, 만나본 가수들이 많다고는 볼 수 없는데 유나처럼 훈련된 가수는 처음 봐.”
맛있어지는 샌드위치의 법칙
일단 잘 모르면 빵에 버터를 바르고 살짝 태우면서 치즈를 녹여라
의 가르침을 잘 소화해서 만든 양질의 샌드위치를 한 입 먹으면서 내가 대답했다.
“싫어서요.”
“유나라면 잘 나가는 버튜버들이 얼마나 버는지 모르는 바가 아닐텐데?”
안다.
굳이 30만을 넘긴 실버 버튼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일정 숫자의 팬을 보유한 버튜버들의 수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잘안다.
“으음, 확실히 돈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전 그냥 있는 저 그대로가 좋은데요? 그리고 제가 있는 그대로 행동하면 오타쿠들은 질식해버려요.”
숨막히는 인싸의 분위기에 질식된다.
라는 소감을 여러 번 듣고 나 또한 서브컬쳐에 깊게 몸 담게 되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이 그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겠지
그렇다고 나와 비슷한 유형인 용사, 에이아처럼 포용력이 좋은 사람도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는 나는 좋은 버튜버가 될 수 없다.
“으, 으음… 확실히 그렇긴 해.”
“선배, 제가 이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자기 관리 하고있는 지 알고 계시죠?”
“하, 하긴 유나 정도면 그냥 온라인으로 데뷔를 해도 되니까…”
“그리고 버튜버로 데뷔하면 팬들에게 책임감을 져야하잖아요. 저는 그냥 무책임하게 다른 버튜버들 덕질할래요.”
그렇게 말한 나는 초대형 유리아 인형을 껴안았다.
무려 삼십 만엔이나 들어간 커스텀 인형이다.
“쿠로가와 씨가 보면 좀 슬퍼하겠는데? ‘이렇게 귀여운 내가 옆에 있는데 왜 인형 따위를 껴안는거야’ 하면서 말이야.”
“언니는 언니 대로 좋고 유리아는 유리아 대로 좋은거죠 뭐.”
“으음, 확실히 나도 우리 언니 보면 이해가 되네.”
버튜버 타마는 귀엽기 그지없는 고양이지만
실제로는 복장이 뒤집혀지는 게으름의 화신이다.
“뭐, 그런거죠.”
나에 언니와의 별거(?)생활이 들어간 지 어언 3주차
나는 아침에 사이타마의 쉐어 하우스에서 미우를 깨우고 그녀의 아침밥과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준다.
미우를 학원 앞에 데려다 준 다음 바로 도쿄의 마미 선배, 타마, 나에 언니가 있는 저택으로 가서 일을 한다.
업무는 주로 방송에 관련된 일과 회의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미 선배가 나에게 명작 음악들을 들려주고 어째서 좋은 건지, 그 음악의 출처에 대해서 알려준다.
“으음, 역시 명작 타이틀은 대단하네요.”
“응, 음악에 껌뻑 죽는 오타쿠들은 이런 구성을 좋아하니까.”
특히 그녀는 나에게 게임에 쓰인 음악들을 공부하게 했다.
나 또한 음악에 대해 무지한 편은 아니지만… 서브컬쳐 매니아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여러 번 히트 친 선배의 과외는 세심했다.
그런 식으로 마미 선배에게 음악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나면 나는 요리나 청소, 세탁이나 가계부 작성 등 생활 요령을 알려 준다.
마미 선배는 분명히 대단한 사람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모든 재능이 음악 쪽에 가서 그런지 다른 쪽에는 부족한게 많다고 스스로 자책하며 노력을 하는데
솔직히 가사 일이라는건 다 정성이지
그렇게 재능이 요구받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으으, 난 무리야 무리.”
“그러면 그냥 몸에 때려박으세요. 그게 답이니까. 아니면 저랑 같이 운동…”
“그, 그건 더 싫어 차라리 청소를 더 하고 말래.”
“아쉬워라…”
“그냥 하루 만보 씩 걷는걸로 봐 줘.”
가사 일에 대한 체력이 부족하다고 한탄하는 선배와 하루 운동을 한 적 있는데
그 이후에는 도저히 나랑 같이 운동을 하려 하지 않는다.
운동이 얼마나 좋은건데…
“이 근육을 보세요. 제 코어 근육을 만져봐요 선배! 얘들이 알아서 칼로리 태우고 무한한 체력을 저에게 준다니까요!”
“제발 바보 근육 교관 캐릭터 같은 대사를 하지 말아줘.”
“쳇.”
“그나저나 요즘 너 자주 방송에 나가는 거 같다? 데뷔 안하려는 사람치고 수상한데?”
“음?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아무래도 제 목소리를 오랜만에 평가 받는게 기뻐서 그럴까…요?”
“너 분명히 보컬 트레이닝을 오랫동안 받은 흔적이 나는데 그 동안 왜 혼자 부른거야?”
“어… 그건 좀 사정이 있어요.”
“내가 들어볼 수 있을까?”
잠시 두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한다.
나의 중학생 시절, 연습생 시절… 그리고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춤을 췄을 때의 그 기억, 그리고 옷이 찢…
마지막 건 잊자.
이제와서 보니, 사실 별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과거에는 내 재능을 질투해서 죽은 그 아이가 떠올라서 무대 공포증 비슷한 게 생겼다고 진단을 받은 적 있는데…
아무래도 나아지게 된 걸…까?
잠시 고민하는 나는 선배에게 솔직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했다.
중학생 시절에 한국에서 아이돌을 지망했던 내 과거
내 재능을 시기해서 따돌림 받은 이야기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원망한다는 말을 하고 자살을 한 연습생 이야기
그 이후로 춤과 노래를 무의식적으로 피한 내 이야기 말이다.
“미, 미안해 너에게 그런 사정이 있을 줄…”
“아뇨, 뭐 저번에 2기생 선배들이랑 가상 스테이지에서 춤 춰보고 느꼈어요. 제가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거 말이죠.”
그렇게 말한 나는 드물게 오후부터 방송을 하고 있는 유리아의 채널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맑게 웃으면서 시청자들과 잡담을 하는 유리아 너머에 보이는 언니의 모습
“고마운 사람 덕분에요.”
“그래, 다행이구나.”
그 후로는 우리들은 크리스마스에 어떤 파티를 해야 좋을까 따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
“언니 나랑 노래방 가자.”
“응?”
“왜 나랑은 노래 안해 주냐구요.”
사이타마의 집에 돌아와 미우랑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에 그녀가 나에게 투정을 부렸다.
“치사해.”
“고3이면 공부나 하렴.”
“치사해 치사해.”
“그러면서 야채 골라 먹지마.”
골라 내던 당근을 집어서 그녀에게 갖다 대자 어쩔 수 없는 척 먹는다.
사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는 척 하지만
그녀가 나를 향해 불만을 표출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나는 내심 당황했다.
사실 미우만큼 말 잘듣는 학생도 드문 데 말이지…
이따끔 나에게 공부를 물어오는 걸 보면 착실하게 배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지금도 식사 시간에도 단어장에서 눈을 놓치 않는 그녀의 모습은 우등생 그 자체였다.
그래도 입이 댓발 나온 채로 깨작깨작 먹는 걸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센터 시험, 아니 입학 시험 다 치면 가줄 게.”
“싫어요. 미우는 싫어요. 당장이라도 가고 싶어요.”
잘 하지도 않는 3인칭으로 자신을 부르며 콧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애교를 부린다.
솔직히 말해서 귀엽다.
왜 그녀의 팬들이 많은 지 단번에 이해를 했다.
“참으라고 해도… 안 참을거지?”
사실 통학이 금지된 학생이 학원을 간다고 하고 노래방을 간다면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나 또한 학원을 다니는 학생이었기에 그 사실을 알고있었다.
“헤헤, 들켰다.”
“으음, 그래도 노래방은 별로인데…”
“그렇다면 간만에 본업으로 들어가서 온라인에서는 어때요?”
“응?”
“저도 나에 언니처럼 방송으로 듀오로 난입하고 싶다구요!! 세상에 어째서 난 이걸 떠올리지 않았을까!!”
과연
간만에 버튜버 클레로 돌아가서 나랑 같이 방송에 난입해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걸까
노래방에 가는 것 보다 이 편이 훨씬 건전하다고 느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얏호!”
왠지 미우의 설계에 당한 기분이 들지만
이런 식으로 일탈을 해 줘야 고3도 공부할 만 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그녀의 본업은 학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95만의 구독자를 가진 버튜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좋아, 그래도 둘이서 하는 거니까 연습을 하고 가자.”
“바라던 바에요! 언니랑 함께라면 무슨 곡이라도 괜찮아요!”
“내가 어떤 키를 잡아줄까? 클레의 목소리는 맑고 깔끔하긴 해도 고음은 아직 힘들지?”
안정적으로 고음을 내는 것은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선라이즈가 자회사의 버튜버들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시키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클레의 노래는 타고난 목소리가 좋아서 듣기 좋지, 냉정하게 말하자면 결코 기교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제 노래 실력은 아직 노래방 죽순이라서…헤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내가 남자 음을 낼게.”
“네?”
“내 목소리 알잖니? 여기서 좀 더 목소리를 낮게 하면…”
호흡을 고르고 목울대를 더 넓게 쓰는 기분으로 발성을 했다.
“커피 한 잔 주시오 아가씨.”
본래의 나는 여성치고 허스키한 음성의 저음을 내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남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건 간단했다.
오늘 아침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을 훌륭하게 재현을 한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저 반할 거 같아요.”
“헛소리 말고, 이렇게 되면 발라드 노래로 가야겠는 걸? 남자 여자 듀엣 곡으로 말이야.”
“저, 저는 절대로 좋아요!”
“좋아, 그러면 내 컴퓨터로 방송에 들어가자. 비상용으로 회사에서 쓰는 데이터가 있으니까 내 컴퓨터로도 방송하는 데 문제가 없을거야.”
우리들은 장난의 결과를 기다리는 악동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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