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75화 (75/307)

〈 75화 〉 74화.

* * *

“유나야 엉엉, 유나야 이것 좀 봐.”

전혀 슬프지 않은 얼굴로 우는 소리를 내는 나에 언니가 내 품에 폴짝 안기면서 말했다.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마미 선배님 댁의 소파에 앉아서

그녀는 나에게 인쇄된 종이를 내밀었다.

“어디보자... 선라이즈에서 놀리기 좋은 버튜버 탑 5위?”

‘타격감 좋은’이라는 단어에 줄 두 개가 그어져있는 건 내 착시인가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놀릴 때 반응이 재미있는 사람들의 리스트가 나열되어 있었다.

먼저 1위

최근 데뷔한 5기생 중 사자를 컨셉으로 한 ‘루미에’

데뷔한 지 100일도 안 되어서 구독자 25만명을 달성한 버튜버 계의 신예다.

어린 체형에 짜증을 유발하는 버릇없는 태도

스스로를 천재라고 말하는 오만함

발성법이 궁금한 웃음 소리

5기생들 중에서 우두머리 격 포지션을 자처하는 당당함

선배들에게 가차없이 엿을 먹이려고 하면서도

선을 절대 넘지 않는 장난꾸러기

그런 주제에 시청자들이 자신을 놀리는 채팅은 깨알같이 캐치해서 스스로가 망가지는 모습을 찰지게 연기하는 그녀는 선라이즈 최고의 웃음 유발자였다.

그녀가 1위를 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을 보았다.

2위 또한 예상하던 인물이다.

바로 타마

둥글둥글 이름(타마는 일본어로 공을 의미한다)에 걸맞게

낮은 자존심과 아싸라는 점

선배인데도 상냥함을 넘어선 착한 매력

게임을 할 때 지는 것 빼고는 화도 잘 안 내는(안 낸다기 보다는 못 내는 거지만)멘탈

바보같이 보이는 통통한 볼살에 커다란 눈

반박거리가 없을 때 늘 내는 ‘크읏’같은 귀여운 소리

고대 전통의 원조 샌드백은 나다, 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듯한 타마는 놀리면 귀여운 반응을 보인다.

3위는 동남아시아 쪽 버튜버인데 나는 잘 몰라서 넘어갔다.

미안해, 언젠가는 꼭 챙겨볼게...

4위는 4기생의 엘프인 아카이로 카린

사실 그녀는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대화가 끊어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그녀의 재능이 방송에서도 잘 드러났다.

언제 자신의 캐릭터가 망가져도 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그 걸걸한 섹드립은

같은 여성이 아니라 닳고 닳은 50대 아저씨가 그 안에 들어가있는 것 마냥 남녀노소 모두가 얼굴을 붉히게 하는 진짜 변태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를 놀리는 이유는 반응도 반응이지만

특히 섹드립을 담은 내용을 보내도 역으로 후원자들에게 섹드립을 되돌려 주거나

‘너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돼’ 하는 식으로 강하게 매도해주기 때문에

그 맛에 길들여진 M들이 그녀에게 일부러 시비(?)를 건다고 한다.

그녀의 매콤한 반응에 빠진 이들 덕분에, 시청자 수도 많고 충성자도 높은 방송인이 그녀다.

마지막 5위는

쿠로시로 유리아

즉 나에언니다.

당연했다.

이렇게 귀여운 사람을 안 놀리고 어떻게 버텨?

비록 쿠로가와 나에는 이제 얕볼 수 없는 소형견 같은 아가씨가 되었지만

쿠로시로 유리아는 정말 놀리기 좋은 캐릭터다.

세상사에 서툰 공주님 캐릭터

커다란 얼굴과 귀여운 볼따구를 가진 귀여운 디자인에

빈유라고 놀리면 찰지게 반응하는 10가지 리액션

게임에도 서툴러서 ‘허접’이라고 놀리면 흥분해서 달려들지만 역으로 당해주고

가끔씩 리미터를 넘기면 얀데레 모드로 들어가서 집착 해주는 센스와

멘탈 터진 척 연기를 하면서 위로를 바라는 모드 등

놀리면서 가장 다양한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캐릭터가 바로 유리아다.

“내 카리스마가! 내 카리스마가!! 유나 고개 끄덕이지 마, 말라고!”

“아 언니, 솔직히 유리아에게 카리스마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강조하지 마, 강조하지 말라고!”

정말 언니는 유리아에게 위엄과 카리스마가 남아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걸까?

방송 캐릭터에 대한 자기 객관화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줄 알았던 사람인데...

마미 선배도 쓴 미소를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린다.

거 봐요 언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니까요 언니?

타마는 본인의 캐릭터가 놀림 받는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예 대놓고 폭소 하면서 바닥을 뒹군다.

나에 언니는 그런 타마의 허벅지를 간질이면서 역습을 시도하지만 역으로 간지럼을 당하고 만다.

저 모습 어디에서 카리스마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삐친 듯 볼을 잔뜩 부풀이는 언니를 뒤로한 채

타마는 코스프레 옷을 섬세하게 정비하고

마미 선배는 가발을 다듬고

나는 파티 플랜을 짜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두가 분장을 한 다음에 어울려준다 이거죠?”

“응, 우리 주위에 유치원이 있는데 협조 공문 비스무리한 걸 받았어. 아이들이 문을 두들기면서 트릭 오어 트리트~ 하면 장난을 받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네.”

“과연, 이런 어른들의 사정이 있어서 만화 같은데서 그런 장난이 가능했던거군요.”

“물론이지, 옛날이라면 모를까, 요즘에는 이렇게 미리 조사를 해두어야 부모의 마음도 편하다고.”

“의외네요? 약간 마미 선배라면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 내가 이렇게 생겼다고 해도, 애들이 날 싫어하는 거 아니거든? 나도 애들 싫어하지 않고.”

새빨간 머리를 가리키면서 마미 선배가 그렇게 반박했다.

평소에는 예민한 모습을 자주 보여서 애들을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정말 의외다.

“너, 그렇게 보는거 실례인거 알지?”

“네, 미안해요.”

“쓰다듬지 마! 나는 네 선배라고!”

“네네, 선배님.”

“푸웁, 마미를 아이 다루듯이 하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언니!!”

세상 우습게 보는 자신의 언니에게 반격을 당한 마미 선배도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나에 언니는 그런 마미 선배가 귀엽게 보였는지 준비하던 작은 초콜렛을 하나 까서 물려주었다.

오몰오몰 거리는게, 역시 선배라기 보다는 그냥 미우 또래의 후배같다.

“그나저나 비싼 과자들 많이 샀네요.”

“... 저 초등학생 같은 언니가 이거 사자, 저거 사자 해서 그런거잖아.”

“그치만 마미야, 외국 초콜렛은 정말 맛있는 걸. 네가 지금 먹고 있는 것도 스위스 산 초콜렛이야.”

“그래도 그렇지...!”

“자자, 어차피 파티 예산은 모두가 균등하게 나누어서 냈으니까 그냥 즐기기만 해요, 제 회계 실력 믿으시죠?”

“유나에게만 어려운거 맡겨서 미안해.”

“아뇨 나에 언니, 전 이런거 제가 직접 안 하면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분장할 옷을 정리하면서, 이웃집 아이들을 위한 과자 바구니를 준비한다.

할로윈 방송 계획을 잡으면서 세트 리스트를 점검하거나, 방송 화면의 준비를 위해 새로운 대기방을 만든다.

영수증을 보면서 예산을 정리하면서 다음 계획을 위한 가용 예산들을 점검하고

집을 꾸밀 장식들을 마련하거나 마당에 둘 소품들을 창고에서 꺼낸다.

우리 네 사람은 모두 할로윈 파티를 위해 제각기 방식으로 열심히 준비를 했다.

“정말 기대된다, 그렇지?”

“네. 그렇네요.”

과자의 요정이 된 언니는 다시 나의 품에 앉아서 자신이 먹던 막대 사탕을 나에게 물려주었다.

이제 이 정도 애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나는 마지막 계산을 끝내고 펜을 내려두었다.

“이거, 저희 예산이 좀 많이 남는데요?”

“응?”

“그도 그럴게, 과자 값이 생각 보다 많이 나오긴 했는데 마미 선배의 코스트코 카드 때문에 제 예상보다 더 싸게 구매 했어요.”

코스트코

모두가 애용하는 그 세계적인 마트는 당연히 일본에도 진출해 있었는데

나와 나에 언니가 사는 사이타마에는 없어서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미 선배가 우아하게 카드를 꺼내면서 차 시동을 걸라고 하다니...

선배는 역시 멋졌다.

“의외는 내가 더 의외야, 자동차를 가진 유나라면 코스트코 정도는 당연히 갈 줄 알았는데.”

“정말이지 사이타마에는 없어서 까먹고 있었어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사를 오지 그래? 도쿄 교외에도 괜찮은 주택들이 많아.”

“으으, 정말 생활 이모저모를 둘러봐도 도쿄가 정말 매력적이긴 하네요.”

“이제 유나는 가난한 학생이 아니니까. 좋은 집에 살면 살수록 삶의 만족도가 크게 올라가니까 집은 정말 좋은 데 구하는거 추천할게.”

언젠가 마미 선배와 타마의 풍족한 생활에 대해서 물어본 적 있는데

세상사를 잘 모르던 그녀들은 받는 월급은 저축하고, 계약 조건 중에 선라이즈의 주식을 일정 주를 받았다고 하는데

상장 전에 회사에 들어온 그녀들은...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도쿄에 근사한 저택을 가진 선배의 은근한 제안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집이라...

사회인의 완성을 의미하는 자기 명의로 된 주택

나날이 쌓여져 가는 월급 통장과 눈만 감았다 뜨면 올라가는 회사의 주식들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 집을 구매하는 건 그렇게 먼 목표가 된 게 아니다.

듣자하니 고졸이 아닌 대학 재학생의 신분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대출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선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부동산 광고들이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언니의 생각은 어떠할까

순진한 얼굴로 호박 무늬 종이 상자에 사탕을 담는 언니를 보면서 내 상념은 깊어져 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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