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75화.
* * *
“유나라면 당연히 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5차 성배 전쟁의 라이더겠지?”
가슴골을 보이는 디자인에, 마니악한 안대와 절그럭 거리는 사슬이 출렁거렸다.
“아니지, 유나씨의 본질이 뭐야? 메이드, 그것도 메이드 라 아니야? 그런 같은 라의 느낌이 나는 렘이지”
그나마 이쪽은 피부 노출이 적다.
그런데 이 매니악한 사슬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지
“바, 바이올렛 에버가든…”
마미 선배가 수줍게 말하면서 나에게 아름다운 줄무늬 원피스와 아름다운 자켓을 들어올렸다.
세 작품 다 알고 있는 작품인 나는 한 옷을 고르려고 했으나…
"아니야! 유나의 커다란 가슴을 봐! 저 가슴을 살리지 않는 건 모독이라고!”
언니 그거 성희롱이에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나에 언니
“아니지, 메이드라고 하면 그에 어울리는 메이드 코스프레를 해야한다고!”
캐릭터 고증, 컨셉 고증을 위해서 프릴이 달리고 짧은 스커트의 제복을 흔들거리는 타마
“유나는… 그냥 예쁜데….”
그리고 어른 모습의 캐릭터라면 자신의 취향대로 옷을 고르는 마미 선배
수 십벌의 옷들이 흔들거렸고, 내가 입고 싶었던 옷은 조금 심플했다.
그도 그럴게…
“여러분들, 저희들 아이들이 놀러오는 거 알고 있죠? 센시티브한거 금지에요.”
어린 아이들이 우리들의 집에 장난을 하러 온다.
그렇기에 그녀들을 위해서 우리들은 건전한 옷차림의 분장을 해야 했다.
내 반론은 실로 타당했다.
하지만 나에 언니는 그 말을 노렸다는 듯 반박했다.
“우리가 누구야 버튜버 아냐? 우리가 애들 맞이한 코스프레 그대로 방송을 하면 누군가가 짐작을 하지 않겠어?
그러면 우리들은 악질 팬에게 시달리겠지? 도망치려고어설픈 변명 하지 마 유나!”
완벽하게 반박당했다.
나에 언니에게 무참히 깨지다니그 데미지가 두 배다.
결국 오랜 토의 끝에 내 옷은
낮 타임에는 메이드 복
밤 타임에는 … 어휴, 말도 말자.
“그건 그렇고 음식은 어떻게 할거야?”
마미 선배가 물었다.
확실히 그녀 또한 음식을 나와 같이 준비하는 입장에서… 신경이 쓰이나 보다.
“제가 메인을 맡을게요. 고기를 굽거나 스파게티를 만드는 건 맡겨만 주세요.”
“혹시 괜찮다면 제빵은 내가 해도 될…까?”
“안 될게 뭐 있나요.”
“대, 대신 장식 좀 도와줘… 나 그런거 잘 못한단 말이야.”
방송 관련 분야가 아니라면 묘하게 쭈그려 드는 마미 선배는 역시 타마의 동생이다.
“우리도 도울래!”
“맞어맞어, 이런 건 같이 준비해야 재미있다고.”
나에 언니와 타마도 끼어들었다.
항상 동생들이 하던 음식을 먹기만하던 그녀들이 도와준다니...
마치 집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모두가 힘을 합치는 모습이 마치 가족 같지 않는가?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 이러니깐 가족 같네요.”
“그러게...”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
실상은 가족같은 회사 동료, 평생 직장동료... 뭐 그런 느낌이지만
그래도 유학을 온 외국인이건, 독립을 한 학생이건, 부모의 폭력을 피해서 도망친 자매건
대도시에서 한 지붕 아래 소속감을 느끼는 이 뭉클한 감각은 모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할로윈때 신나게 놀아봐요!”
“오우!”
그 날 열린 할로윈 대책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
“파릇파릇한 고3 받아라!”
10월 30일 밤
학원에 마치고 온 미우를 그대로 도쿄의 집에 데려온 내가 문을 열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선라이즈 4기생 클레스타인의 사케이 미우입니다!”
마미 선배도, 타마도 처음 보게 되는 미우가 그렇게 인사를 했다.
“어서와, 공부 하느라 바쁜데 놀자고 불러서 미안해.”
물론 인사를 받아준 것은 마미 선배였다.
아싸인 타마는 아직도 미우 같은 인싸가 버거운 듯, 자기보다 한참 작은 나에 언니 뒤에 숨어서 안녕 이라고 조그맣게 속삭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에게서 들어서 타마의 방송 성격이 현실 그대로라고 들은 미우는 상냥하게 미소지으면서 두 자매에게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타고난 인싸인 미우와
비록 인싸는 아니지만 사회 경험이 풍부한 마미 선배는 타마와 적절히 이어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앞치마를 매고 내일 구울 고기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거야?”
“아무래도 할로윈이다 보니 조금 특별한 요리들을 하고 싶어졌으니까요. 이렇게 미리 형태를 잡아두면 구울 때 많이 망가지지 않을 거 같아서요.”
“신기해!”
고기의 힘줄을 잘라내고 잘게 다진 후 붉은 파프리카, 고춧가루, 후추, 다진 양파 등을 넣으면서 모양을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본 그대로 사람의 손이나 발을 잘라서 구운 듯한 음식을 하려다가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귀여운 생쥐의 데프로메 한 느낌이 드는 귀여운 모양으로 굽기로 결정했다.
구운 햄버그에 당근으로 귀를 장식하고 닭발로 손톱을, 열매로 눈을 장식하면 그럴싸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소세지는?”
“작게 사각형을 잘라내고 구우면 손가락 모양이 된데요.”
“이 작은 호박들은?”
“내일 낮에 잭 오 랜턴을 다같이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요?”
“좋아!”
다음 날 생일 파티를 챙기는 어린 아이처럼
언니는 내 옆에서 본격적인 파티 준비를 하는 것을 구경했다.
냉장고를 열어서 마미 선배가 준비한 로얄 아이스, 퐁 당(fondant:설탕 시럽을 끓인 후 젤라틴과 섞어서 만든 설탕 반죽),색소 스프레이 등을 보고 감탄을 하거나
한창 휴지중인 반죽들을 가볍게 건드리면서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을 구경했다.
“언니 신기해요?”
“응, 빵과 과자는 많이 먹어봤는데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은 나도 처음 보니 말이야.”
“평소에는 아무래도 음... 많이 귀찮죠.”
그도 그럴게 반죽도 만들고
적정한 온도에 관리를 하고
‘제빵과 제과는 화학이다’라는 말이 유명할 정도로 엄격하게 모든 절차를 섬세하게 관리를 해야했다.
5그램의 설탕이나 밀가루를 더 넣어서 망쳤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게 아닌 만큼
제빵과 제과는 정말 많은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나도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다.
이걸 하나하나 관리하는 마미 선배가 대단한거지.
“우, 우리 매니저들은 다들 대단하구나.”
“사실 저희들 눈에는 방송을 하는 버튜버들이 더 대단해 보이지만 말이죠.”
하지만 호텔 급이나 그것으로 먹고 사는 대단한 장인이라면 모를까
아마추어들의 눈에는 아무래도 신경만 쓰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제빵과 제과에 비해서
타고난 인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방송들이 더욱 대단해 보였다.
“아, 아니야 별 거 아닌 걸.”
“그럼 서로가 때려야 땔 수 없는 사이라고 해두자고요.”
준비를 끝낸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어둔 내가 그렇게 말했다.
언니가 따라 준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우리들은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서 미우의 할로윈 분장 옷들을 고르느라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타마는 용기를 내서 다양한 옷들을 미우에게 가져다 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마미 선배는 가발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언니들~ 저 예쁘죠!”
역시 오타쿠는 공부 할 때가 아닌 덕질을 할 때 빛나는가
미우와 함께 생활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이렇게 해맑게 웃어 보인적이 없었기에 나 또한 마음이 푸근해졌다.
“응, 정말 예뻐.”
“기왕이면 나에 언니랑 자매 캐릭터 코스프레 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그, 그래?”
“네, 나에 언니는 제 소중한 언니인걸요!”
“자, 잠깐 미우야!”
미우는 나에 언니를 꼭 껴안았다.
어쩐지 사람이 고팠던 모양인지, 안 그래도 애교가 많은 미우가 더 활기차졌다.
“선배도 거기 가만히 있지 마요. 후배의 포응을 받아주세요!”
“꺄...꺄악!”
그리고 연쇄 포옹마가 된 미우는 처음 본 타마도 껴안았다.
생전 자신을 안아주는 누군가가 없었던 타마는 그런 미우를 떨쳐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녀의 품에 안겼다.
“자, 잠깐, 누가 얘한테 술 먹였어?”
그녀의 품 안에서 버둥거리던 타마가 외쳤다.
그러고 보니 할로윈에 마실 칵테일을 준비하느라 꺼내둔 진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비어있었다.
아이고 맙소사
“후헤헤헤 타마 선배님 은근히 가슴 크시네요? 부럽다아아...”
“저,저저저저 저기 미우 후배님? 미우 후배님?”
“언니 소원 이루었네, 평소에 후배에게 존경을 받고 싶었다면서.”
“이, 이건 존경이 아니라 성희롱이잖아 꺄아아악! 저기 미우 후배님 정신차려!”
가위바위보 관계처럼 아싸는 절대로 인싸를 이기지 못한다.
그렇게 굳건히 믿고 있는 타마는 텐션 오른 미우의 술이 깰 때 까지 미우의 인형 비스무리한 존재가 되어서 바둥거렸다.
소심해서 밀어내지도 못한 채 바둥거리는 자신의 언니를 돕기는커녕 휴대폰을 꺼내서 시집 다 갔네 언니, 라고 말하면서
흑역사 사진을 찍는 마미 선배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방송 썸네일이나 마저 완성하러 가세요 언니는, 여기는 제가 수습할게요.”
“으, 응...”
언니를 올려 보낸 나는 이 혼란의 장소 속에서 파티 준비를 계속했다.
정말이지, 전날부터 심심할 틈 없는 공간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