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80화 (80/307)

〈 80화 〉 79화.

* * *

“어디보자…”

나는 어릴 적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한 이후

외장식 이동 디스크­USB­를 잃어버린 이후로 온라인에 내 모든 작업물을 저장했다.

그 와중에 예전에 사용하던 컴퓨터에 담긴 모든 내 파일을 저장한 기억을 떠올렸다.

파일의 미로를 파고 들어간 결과, 내가 발견한 것은…

[유나의 예능 분석 노트]

한국의 아이돌은 어느 정도 인지도를 올리게 되면 예능에 출연하게 된다.

데뷔가 거의 확실시되던 나는 수업 의외에도 예능을 공부하는 수업에도 들어가서 전문적으로

예능에서 아이돌이 취해야 할 포지션들이나 MC들에게 반응하는 법들을 기록했는데

이게 재밌어서 나는 꽤 심도있게 공부를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때에는 중학생 시절이었지만… 회사에서 전해주는 회사의 기밀 자료들을 저작권, 지식권이 없던 당시의 나는 그대로 저장을 해두었다.

그것들은 모두 유나의 예능 분석 노트에 기록이 되어있었고

오랜만에 그 파일들을 열어본 나는…

과거의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역시 나는 대단해, 완벽해!

이름 모를 소속사의 방송 분석가의 분석글은 미디어에 종사하는 이라면 한 번씩은 보기 원할 정도로 뛰어났다.

아이돌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하는가

MC는 어떤식으로 질문을 해오는가

방송의 텐션은 어떻게 알아차리는가

무대 위의 캐릭터성을 어떻게 일상생활에도 보여줄 것인가

등등

세계 최고의 아이돌을 육성한 회사답게도

고작 중학생에게 내어주기에는 지나치게 어렵고 좋은 정보가 그 노트에 몽땅 저장되어 있었다.

비록 아이돌이 아니지만 버츄얼 아이돌들의 MC를 맡게 된 나는 미친듯이 그 글에 빠져들었다.

***

따악

집중을 하고 있는 내 눈앞에서 손가락이 튕겨졌다.

놀란 나는 소파 뒤로 넘어가버렸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나에 언니는 쿡쿡 웃었다.

“어, 언니?”

“내가 그렇게 애타게 부르고 있는데 무시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나에 언니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손에는 가벼운 샌드위치를 들고 있었다.

내가 입원을 했었을 당시에 비슷한 모양의 샌드위치였다.

그러고보니 점심시간이던가?

시계를 올려보니 벌써 오후 네 시다.

“열 한 시부터 쭉­같은 자세로 앉아서 한국어로 된 글을 보고 있더라고.”

오랜지 쥬스가 따라진 컵을 내려놓으면서 언니는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쳤다.

“유나가 공부할 때 집중하는 거 있는데 그 롤이라는 게임 할 때 보다 더 집중해보여서 깨우기 싫었는데.”

내가 옆자리에 앉자 언니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왠 손수건이지?

그런 의문을 해결할 새도 없이 그녀의 작은 몸이 나에게 안기듯이 다가와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눈물…?”

“응, 나의 매니저가 계속 울고 있는데 신경을 안 쓰려고해도 안 쓸수가 있나

어디 컨디션이 나빠? 당분간 휴가 좀 갈래?”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본다.

나도 내 얼굴을 만지면서 흐르던 눈물을 만져보았다.

“아…”

“저, 정말 괜찮은거 맞지?”

눈 앞의 자료와 언니, 그리고 내 손가락에 묻은 나의 눈물을 바라본 나는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의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

서러워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다

이것은 기쁨의 눈물이다.

환희의 눈물이다.

“꺄아악!? 유, 유나야?”

작은 밤의 요정같은 그 사람을 나는 껴안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당장 이 터질듯한 마음을 안고 있다간 앓아 죽을것 같았기에

그래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미디어에 나와서 아이돌처럼 빛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그런 꿈이

하지만 포기했었지

나에 언니를 만나기 전에, 그녀에게 춤을 보여주기 전 까지

나에게 무대는, 방송이라는 공간은 내면의 아픔을 자극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학생 시절의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버츄얼 아바타를 입는 모습이지만

대중에게 내 모습을 드러낸다.

목소리와 그림 판떼기만 등장했던 과거가 아닌

가상의 모습으로나마 내 표정과 감정을 드러내면서 타인에게 나의 모습을 보인다.

나는 미디어에 출연한다.

백 만명 이상이 보는공간에

내 예명을 걸고

“저, 저기 유나야 숨막혀…”

“언니 미안해요. 잠시만, 잠시만 이렇게 있어주세요.”

콩닥거리는 언니의 가슴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분석글을 읽으면서 나는 미디어에 출연하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개성 넘치는 그녀들의 입담을 받아내면서도

대화에 어울리지 못하는 그녀들에게 용기를 주면서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그것은 비록 찬란한 별이 아니었지만

그 별을 받아서 빛나는, 그 주위를 도는 작은 별이 되기를 소망했던 나에게

그 꿈을 이루게 된 셈이니까.

“우, 우리 이런 거는… 다른 사람이 사는 집에서 하기에는 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마미 선배는 오늘 음악 작업 하고 오느라 늦게 온데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나에게 안겨주세요 언니

착한 언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내 품에 안겨서 나의 감정을 받아주었다.

그녀 덕분이다.

그녀 덕분에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모습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시기에

내 꿈을 이루게 된 셈이니까.

그녀의 모습이 지금은 나에게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나는 타오르는 마음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나보다도 한참은 작은 여성이다.

말 그대로 요정같은 사람

내가 인생을 일부나마 바친 사람

그녀는 그 동안 보인 능글맞던 모습이 거짓인것 마냥

부끄러움과 어쩔 줄 몰라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모습에는 공포라는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나에 언니를… 평소보다 조금 다른 감정을 담아서 불렀다.

“나에 언니.”

“유, 유나야…”

“저는…”

소파 위에 쓰러진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마치 수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처럼

대지위에 포근히 내려앉는 별처럼 말이다.

“야!!! 이것들아!!! 애가 보고 있는데 무슨 짓거리야!!!”

머리 뒤통수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진다.

그 충격에 나는 언니를 깔아 뭉개는 대신 필사적으로 소파의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뒤통수의 충격과 등의 충격을 차마 흡수하지 못한 나에게 자신의 머리카락만큼 붉어진 얼굴로

종이 무더미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영문을 모르는 타마의 눈을 가리고 있는 마미선배가 보였다.

“애? 내가 더 언니인데?”

“시끄러워요 언니!! 이 음란마귀가 신성한 제 집에서 하는 꼴을 보세요!!”

“우리 이 저택 공동 명의가 아니야?”

마미 선배는 권총을 빼드는 능숙한 카우보이처럼 순식간에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서 타마에게 물려주었다.

영문도 모른 채 사탕을 쪽쪽 빠는 자신의 언니를 바라보지도 않는 채

사나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 이집에서 외설스러운 행위는 금지야 금지!!”

집주인이 그렇게 소리친다.

캥긴게 있는 나와, 분위기에 휩쓸린 나에 언니가 그녀 앞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네””

나를 지배했던 마법처럼 느껴진 그 감정이 가라앉고 나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내 얼굴은 벽에 걸린 크리스마스 장식보다 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나는 차마 내 옆에 앉아있는 언니를 바라보지 못하고

언니의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듯한 언니의 작고 예쁜 손을 꼭 쥐었다.

***

“그래서 언니가 늦게 온 이유에요?”

“미안해…”

“아니에요, 저도 이렇게 걷는 거 싫어하지 않아요!

비록 처음 걸어보는 길이라 길 좀 헤매긴 했고!

언니가 오지 않아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긴 헀지만 저는! 괜찮아요!”

“다, 다음엔 꼭 미리 연락 할게.”

그리고 나는 늦게 집에 돌아왔다.

그런 나를 마중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삐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뻔뻔스러운 어조로 괜찮다고 말하는 미우였다.

캥기는게 있는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으으, 그래도 돌봐주기로 약속을 한 몸인데

아무 말도 없이 방치를 하다니

그런 내 조심스러운 시선을 알아차렸을까

미우는 풉­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 무릎에 머리를 기대었다.

“언니 농담이에요.

언니가 제 어머니도 아니고, 바쁜거 아닌 언니가 늦는다고 제가 진짜로 화를 낼 리 없잖아요?

어디 다른 여자 만나서 데이트 하고 온 거 아니라면 제가 언니에게 화낼 이유도 없고.”

그렇다면 다른 여자 만나서 데이트 하고 온다면 화를 낸다는건가

알 수 없는 꼬맹이다 정말

“그리고 제가 평소에 언니에게 받는 케어만 하더라도 제 어머니보다 더 좋은걸요

솔직히 학원에 맨날 도시락 싸오는 애는 저 밖에 없다고요.

슬슬 학원애 다니는 애들 주변 식당 음식에 질려갈 때, 도시락 먹는 애들 부러워하는거 다 알아요?”

“그렇구나…”

나로서는 잠이 짧은데다가 요리 하는게 좋아서 그러는 거지만

확실히 다른 아이들에겐 다르게 보이겠구나

“언니에게 받은 이 사랑 어떻게 갚아야할 지 모르겠어요.”

“학생답게 시험 잘 치고, 좋은 대학 들어가.”

“정말 어머니처럼 말하네요. 저 입양할래요?”

“혹시 술 마셨니?”

“아니거든요!”

그 후로는 미우의 일방적인 이야기가 쏟아졌다.

학원의 강사가 어떻다더니, 맨날 자기에게 말을 거는 남자애가 어떻다느니 등

무능한 정부 때문에 흐지부지 된 학교 친구 송년회도 그렇고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이런걸 해보고 싶다니 저런걸 해보고 싶다니 둥

하루에 일어난 일을 보고하는 애교 많은 딸처럼

미우는 자기가 하고싶은 많은 말들을 나에게 쏟아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차분히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정말로 나에 언니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걸까

다시 떠올리기도 부끄러웠던 그 충동적인 감정을 속에 품은 채

나는 미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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