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81화 (81/307)

〈 81화 〉 80화.

* * *

“와 눈이 내린다.”

날이 추워진 11월 중순

아침상을 차리던 나는 미우의 기쁨에 찬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11월에 눈이 내리는게 좀 이르긴해도...

이게 드문가?

“평범하게 내리는 눈 아니야?”

“아뇨 언니! 사이타마에 눈이에요! 무려 이 11월달에!!”

“으음, 확실히 이상기후라서 최근에 조금 춥다고 느껴지긴 했는데... 그게 그리 신기해?”

“아마 40년 만에 내리는 눈일걸요?”

“그...그래?”

이제 일본의 모습이라고 하면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애니메이션, 그것도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일상 애니메이션이 떠오른다.

대충 8화~10화 쯤에는 다들 눈이 내리고 거기서 쌉싸름한 사랑 에피소드가 나오거나

아니면 달달해 이빨이 녹을 것 같은 첫 눈 데이트가 시작되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언니, 만화하고 현실하고 같아요?

도쿄에 눈은 정말로 잘 안내린다고요!“

“그, 그래.”

그러고보니 작년에도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확실히 한국에 비해서 따뜻한 기후인 일본이기 때문에 그게 드물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역시 애니메이션 그거 다 날조야.

“아 맞다 언니 이 김밥에는 김치 안들어갔어요?”

“으응? 볶아둔 김치가 없어서 그만.”

김밥에 들어가는 김치는 볶은 김치여야만 도시락을 열었을 때 물이 세지 않는다.

아무리 한번 싼 김밥에 계란물을 입혀서 한번 더 구워서 재료가 빠져나가는 일이 드물지만

냄새만큼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따끔 도시락으로 싸는 김밥에 김치를 볶아둔다.

“쩝 아쉽다, 이제 언니 김치도 맛있게 느껴져서요.”

“후흐, 그거 고맙네. 비록 내가 담군게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집 김치가 조금 매워서 나에 언니는 힘들어했거든.”

미우 또한 여타 다른 일본인과 다를 바 없이 매운 것을 크게 못 먹는 편이였지만

내가 이것 저것 먹인 결과 신라면에 김치 정도는 소화할 수 있는 일본인이 되었다.

흑흑 장하구나 미우, 언니는 아직도 라면 먹을 때 우유를 찾는데.

“언니 도시락이 약간 뭐라고 해야할까, 일반 일본식하고 조금 다르다보니 아무래도 한국인이 아니냐고 물어오더라구요.”

“풉, 그럼 네 나이 도시락에 캬라밴(キャラ?; 캐릭터 모양의 도시락)이라도 원하는거야?”

“아, 아뇨. 그건 너무 언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애초에 그... 언니가 싸주는 든든한 도시락을 먹다 보니 다른 애들 도시락이나 식단을 보면 좀...”

“원래 공부는 밥심이야 밥심, 알겠어? 적절한 탄수화물이 공급 되어야 뇌에도 당분이 흘러간다고. 초콜렛이나 사탕은 흡수율이 낮아.”

“으으, 그 밥심이라는 말도 이제 이해가 가요.”

그래도 첫 눈이고 날씨가 추워진 나는 냉장고에서 저번에 해장으로 끓여둔 국을 꺼냈다.

“앗, 카메수프다!”

“역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역국은 똑같구나.”

“어, 언니 죄송한데 저 조개는 별로라...”

“응? 아니야 여기에는 조개가 아니라 톤지루처럼 볶은 고기에 참기름을 두른 후 미역을 넣은거야. 한 번 맛볼래?”

목욕탕에 들어가는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한 숟갈 뜨는 미우는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생선살이나 조개로 끓이는 미역국과 다르게 국거리용 소고기로 끓인 미역국은 맛있지

그것도 냉장고에서 조금 묵은 녀석은 더더욱 풍미가 진하다.

“진짜 언니 요리도 잘해 운동도 잘해 노래도 잘 불러 게임도 잘해, 언니를 데려가는 사람은 분명히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일거에요.”

“풉, 그게 뭐니. 아무튼 이 보온병은 전자레인지에 들어가면 안 되니까 도시락 뚜껑에 따른 후 뎁혀 먹으렴.”

“넴!”

활기찬 미우의 대답을 보니 나도 힘이 난다.

이게 바로 젊은 여고생의 파릇파릇함이란 말인가...

이젠 나도 모르게 기분나쁜 오타쿠스러운 생각이 든다.

스스로가 아저씨가 된 이 이상한 기분...

도시락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한 미우를 기다리면서 나는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둘이서 사는 이 저택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청소는 금방 끝난다.

잠시 거실에 청소기를 돌리고 있자니 준비를 마친 미우가 내 가방을 들었다.

“언니 가요.”

“그래~”

차의 시동을 걸고 미리 히터를 틀어둔다.

차에 타기 전 미우와 함께 쓰레기를 분리수거 한 다음 자리에 앉는다.

나는 출발 준비를 하고 미우는 공부용으로 쓰이기도 하는 아이패드를 꺼내서 자동차와 연결

네비게이터가 놓이는 자리에 패드를 고정시킨 후 유튜브 채널을 틀었다.

“오늘은 아사 쿠온이구나.”

“요즘 아사다비는 특집 구간이라서 당분간 아사쿠온이에요.”

당연히 우리들은 아침 뉴스가 아닌 아침 방송을 본다.

아사다비는 2기생의 다비가 해주는 아침 뉴스 콘텐츠

아사쿠온은 3기생의 쿠온이라는 활기찬 늑대 인간 컨셉의 버튜버가 하는 아침 방송이다.

뉴스라기보다는 라디오 같은 느낌으로 간밤에 일어났던 뉴스와 버튜버들의 사연을

익명으로 처리해서 퀴즈를 내는데 맞히면 쏠쏠한 상품을 제공하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와 다름없는 방송이다.

“네 다음으로는 최근 들어서 활동이 적어진 공식 계정에 대한 이야기가 수더분한데요.

역시 집사 A씨가 바빠지게 되면서 전과 달리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하는데요.

이에 더불어 메이드 라­씨의 계정 또한 전보다는 공식 정보를 쓰는 횟수가 줄어들어서 방치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 오늘 아침의 취재 대상은... 무려 귀하신 집사 A씨!“

응?

코이즈미 언니가 나온다고?

“선라이즈의 여러분 안녕하세요? 집사 A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즐거운 버튜버 덕질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선라이즈의 스태프 대표가 이 자리를 빌어서 인사드립니다.”

언니 특유의 차분한 말이 방송에 나온다.

미우 또한 놀란 듯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똑같이 집사복을 입은 여성의 그림을 걸어둔 그녀는 해명을 시작했다.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선라이즈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서 많은 인원들을 채용 한 결과, 생각보다 회사가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회사 공식 계정을 맡아주면서 홍보를 계속 할 SNS 담당자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는데요,

그도 그럴게 전 버튜버들과 어울리면서 편향되지 않는 시선으로 회사의 얼굴을 맡아주실 분이 생각보다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아, 확실히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니까 어려울 수 밖에 없겠군요.

그래도 그 동안에는 집사 A씨께서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네, 평소에는 제가 그렇게 해왔지만 아무래도 저는 회사의 살림쪽에 조금 더 치우치게 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힘들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선라이즈의 공식 채널과 공식 트위터 계정을 맡아주실 분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인수인계 중이기 때문에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라이즈를 대표하는 분이라... 역시 이나리 선배인가요?”

“아닙니다. 물론 이나리씨나 우미같은 회사의 유명 버튜버들도 있지만

그녀들은 자기만의 방송에만 집중해야하는 방송인, 회사의 일을 떠넘길 수는 없는 입장이죠.”

“그렇게 된다면... 확실히 남는 대상이 한 분 계시군요.”

“네, 쿠온씨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습니다.”

그녀들의 대화에 채팅창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설마

­에이 ㅋㅋ

­하지만 집사와 같이 일하면서 이런 일을 해줄 쩔어주는 캐릭터가 있잖아.

­드디어 데뷔를 하나?

­데뷔라기보다는 드디어 나타나는 셈이지, 여러 멤버들 방송에 자주 드러났잖아.

­솔직히 내가 보는 버튜버들 방에는 나오지 않아서 조금 그러긴 한데...

­근데 워낙 발이 넓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다 보니까

나에 대한 평가를 알 수 있는 채팅들이 빠르게 올라간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알고 있지 않듯이 답답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상이 누군지 모르는 누군가가 채팅을 올렸다.

­그래서 그게 누군데 씹덕들아!

­메이드

­메이드라

그 후에는 메이드의 프릴이 연상되는 아이콘들이 도배를 했다.

채팅창을 바라보던 미우가 물었다.

“언니 데뷔해?”

“아니.”

“그럼 이건 뭔데.”

“그냥 내가 선라이즈의 계정을 가지게 되었어.”

“언니!!”

어느새 도착한 학원 앞

내 손을 붙잡은 미우가 말했다.

“클레스타인 채널 홍보 잘 부탁드립니다.”

“응, 공용채널이야 청탁은 받지 않을거야.”

어림도 없다.

그리고 하게 된다면 유리아 채널이 먼저지

**

“여어 우리들의 희망!”

“제발 그 오글거리는 칭호로 부르지 말아주세요. 오타쿠 언니.”

“뭐 어때, 아사쿠온 봤어?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던데.”

“뭐래요. 어차피 누가 맡던 좋아해줄 사람이잖아요.”

“에이, 유나도 좋으면서 튕기기는.”

유난히 높아진 텐션의 코이즈미 언니가 나에게 까불거리면서 다가왔다.

직장 상사를 때릴 수도 없고, 아침부터 거나하게 정보를 흘리면서 운을 띄운 언니가 얄밉다.

하루 전에 말이라도 해 주지...

“그래서 데뷔를 앞 둔 소감이 어떻게 되니?”

“데뷔 아니라니까요. 그냥 공식 계정 주인이 바뀌는 정도잖아요.”

“데뷔나 다름 없지! 이제 유나 이름으로 된 메이드 채널 개설도!”

“개인 채널 개설은 안 할거에요.”

나는 딱 잘라서 말했다.

내가 맡는 이 채널은 내 이름이 걸린 회사의 이름이 걸린 채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채널의 주인이 아니라 회사의 대변인 비슷한 입장이 되는 역할이기에

나는 이 계정을 맡는걸 수락했고

당연히 나에게 쏟아지는 도네이션 채팅 또한 있을 수 없다.

“유나 너무 쓸데없는 데 엄격해.”

“저라도 중심을 지켜야지요.”

“흐응, 언니는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말?”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닌데요.”

그렇게 말한 나는 가방에서 며칠 간 작업한 서류를 꺼내었다.

거기에는 회사 소속의 버튜버들의 유명한 밈과 커뮤니티에서 확립된 캐릭터 컨셉이 세세히 쓰여져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준비한 그 자료의 페이지는 A4 120 페이지 분량의 글

그것을 본 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요?”

도망가려는 언니의 손을 붙잡고 나는 그렇게 말했다.

게임을 하면 이겨야했고

공부를 하면 시험을 잘 쳐야한다.

그런 내가 방송을 맡으면 어떻게 될까

그 대답은 저 120장의 레포트에 담겨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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