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82화 (82/307)

〈 82화 〉 81화.

* * *

“으으윽 속이 쓰려요.”

선라이즈의 본사에는 이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사장이 쓸데없이 비싸게 주고 산 빌딩은 이제 제 구색을 다하기 시작하면서

스튜디오, 모델링 개발실, 트레이닝 실 등등 다른 엔터티인먼트 회사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회사에 홍보를 하러 온 다른 회사의 직원들

물품을 옮기기 위해서 카트에 짐을 끌고 다니는 직원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직원들

모델링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망쳤다가 부하에게 잡혀온 개발실 직원들

음치인 버튜버를 교육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도망친 보컬 트레이너를 잡아온 직원들

등등 다양한 직원들이 오가고 있는 회사의 입구에 선 소녀는 혼잣말을 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 모자를 눌러 쓴 연예인 패션의 소녀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움츠려드는 자신을 깨달았다.

방송에서는 최고의 신인 어쩌고는 하지만, 자신은 방구석 여포였지 현실에서는 더 없이 초라한 사람이었다는걸 뼈저리게 느끼면서 몹시 어색한 시선으로 들어왔다.

1층의 출입구에 직원 카드를... 잠깐만 이게 어디 갔지?

“어, 어라?”

“꼬마 아가씨 죄송하지만, 저희 회사는 아무나 출입 시켜드릴 수 없어요.”

무섭게 생긴 경비 업체의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

나, 또 멍청한 실수를 저지른거야?

“앗, 저, 저 그, 그게 아니에요. 그...!”

“미안하지만 회사 견학은 평일에 불가능합니다. 다른 직원분들이 들어가게 나와주세요.”

“앗, 그.. 그게 그게 아니라 저...”

매니저

매니저의 번호가 뭐였더라

방송의 위기 상황에서 떠오르던 재치가 여기에서는 멈춰버린다.

“샤야 카기씨?”

“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인근의 카페에서 음료를 잔뜩 사온듯한 음료를 들고 있는 여성이 자신을 보고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침에 보던 패션 잡지의 모델을 평범한 여자로 만들어버리는 듯한 압도적인 외모를 소유한 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장을 덕지덕지 바른 못생긴 여자들과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를 바라보는 이는 자신 뿐만 아니라 무섭게 생긴 경비실의 직원 또한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유, 유나님?”

“샤야 카기씨는 아직 회사에 익숙하지 않아서 직원 카드를 가져오지 않는 모양이네요.

오늘 촬영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녀는 제가 보증...“

“아, 아닙니다! 제 쪽에서 너무 그녀를 압박 준 거 같아서 미안합니다. 호,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대신 들어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타츠카야씨 저보다 약하잖아요.”

그녀 앞에서 힘 자랑하다가 팔씨름에서 진 적 있는 그는 고개를 숙였다.

“샤야씨? 들어가죠.”

“아, 넵!”

저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꼭 쥐고 말았다.

회사에는 몇 번 찾아왔지만 아직 길을 헤매는 자신과는 다르게 그녀는 능숙하게 회사 내부를 걸어다녔다.

“제 3 촬영실은 5층에 있어요. 비교적 신설된 스튜디오라 아직 다른 스튜디오보다 설비가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공간 하나만큼은 넓기 때문에 불편함은 없을거에요.”

“네... 네에...”

“매니저님에게 연락 받았어요. 샤야씨는 은근히 덤벙대는 성격이라서 혹시 회사 입구 앞에서 발 둥둥 굴리고 있으면 대신 좀 픽업 해달라고.”

“아...”

“소문의 루미에씨는 생각보다 귀엽네요.”

“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 미녀는 정체가 누구지?

회사에 들어오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봤지만 이런 느낌이 나는 미녀는 난생 처음이다.

안 그래도 쪼그라든 심장이 더 쪼그라게 만드는 숨길 수 없는 인싸 미인의 아우라에 짓눌린 루미에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녀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대기실은 여기에요. 여기서 다른 분들이 계시니까 먼저 인사 올리고 계세요.”

그렇게 말한 유나라는 이름의 여인은 자신에게 소지품을 건내고 문을 열어주고 떠났다.

대기실의 문이 열리자 오늘 만나기로 한 버튜버 선배들이 그녀를 마중해주었다.

“루미에쨩 어서와~”

해맑게 웃는 강아지 인상의 아카리 선배

“킁킁, 미소녀의 냄새가 난다.”

첫 방송 때부터 서로에게 엿을 먹이는 엘프 카린 선배

“여어, 반가워! 생각 보다 작은 꼬마 애네?”

2기생 중에서 가장 정상인으로 소문이 난 파라오 아그니 선배 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특히 스케줄이 바쁘기로 소문 난 2기생 중에서 한 달이라는 휴가 방송을 가지고 저번 주 복귀한 아그니 선배와 가장 방송 시간이 길기로 소문난 3기생의 아카리 선배를 실제로 보게 될 거라고 상상못한 루미에는 긴장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오! 가오가오! 선라이즈 5기생의 사자 담당 루미에입니다!”

그런 선배들에게 방송용 인사를 올린 루미에, 샤야 카기는 비로소 안심하고 방송을 하는 분위기에 탄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그건 뭐야?”

“네?”

“손에 들린 그거.”

어느 새 자신의 손에는 아까의 그 아름다운 여자가 들고 있었던 스타*스의 커피가 들려있었다.

“오오, 역시 화제의 신입! 선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늘 같구나!”

“기분 나빠요 카린 선배 떨어져요 좀!!”

얼굴은 예쁘지만 음흉한 표정을 짓는 카린이 다가와서 자신을 껴안는다.

책상에 놓인 따뜻한 음료들을 열어 본 다른 버튜버 선배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보자 자신도 겨우 안심하고 좋아하는 녹차 라떼를 입에 물었다.

“여러분 안녕~!”

문이 다시 열리더니 아까의 그 사람이 나온다.

그 사이에 옷을 갈아입고 온 듯, 정장에서 편한 셔츠 차림과 청바지를 입은 캐쥬얼한 모습과 머리를 예쁘게 말아 올린 그 사람의 손에는 꽤 묵직해 보이는 종이가 들려있었다.

“유나씨!”

상냥하지만 낯가림이 심하기로 유명한 아카리 선배가 부담없이 얼굴을 들이댄다.

아카리 선배를 쓰다듬으면서 같이 안기려 드는 카린 선배를 정확하게 밀어낸다.

아그니씨는 다가가지 못하고 선망의 시선으로 저 여성을 바라보는데

대관절 저 여성은 누구란 말인가?

무서울 정도로 반해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뽐내는 여자가 이번엔 자신에게 미소 지었다.

큰일이다.

저 미소를 바라보았다가는 저 하렘의 일원이 될 것 같아서 눈을 피했다.

“안녕하세요. 메이드 라인 유나라고 합니다. 메이드라고 불러주세요.”

“아,아아아,안녕하세요.”

소문의 메이드가 그녀인가

선라이즈 매니저와 선배들로부터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4기생의 카린 선배는 엘프라는 자신의 캐릭터에 어울리게 굉장한 미인이다.

그런데 그런 카린 선배도 자신은 못생기게 보이게 하는 미인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메이드다.

그리고 요리면 요리, 게임이면 게임, 돌보기라면 돌보기, 노래라면 노래, 패션이라면 패션

그야말로 완전체 여성에 가까운 소문의 매니저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메이드라고 한다...

과연 그 소문에 걸맞는 인재였다.

도대체 저런 사람이 왜 일개 매니저에 머무르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든다.

“자 여러분 기획은 다 받아보셨죠?”

“메이드짱의 첫 데뷔인데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워 왔습니다!”

“그렇다면 3페이지의 다섯 번 째 문단의 마지막 문장.”

“ 그렇기 때문에 다음 코너로 넘어가기 위한 질문으로는...”

“으엑 기분 나빠.”

“어째서!! 카린의 정성을 알아봐 줘!”

말 그대로 토씨 하나 안빠트리고 외워온 카린 선배와 그런 카린 선배를 매도하는 메이드씨였다.

과, 과연...

저 폭주 기관차같은 선배의 목줄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루미에씨? 아니면 샤야씨라고 불러드릴까요?”

카린 선배를 밀어낸 메이드씨가 이쪽을 바라보자 긴장한 루미에는 침을 두 번 삼키고 나서야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 회의에 들어온 이상 루미에라고 불러주세요.”

“네, 루미에씨, 너무 긴장하지 말아주세요.”

‘그게 아니라 당신 같은 사람이 눈앞에 있으면 아싸들은 자연스럽게 위축되는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랐지만 별 수 없다.

저래보여도 저 사람은 자신이 들어오기 전부터 방송에서 존재감을 알린, 어찌 보면 3D 캐릭터만 어제 공개 되었을 뿐이지 자신보다 훨­씬 선배니까.

그리고 소문이 맞다면...

‘전설의 GB의 숨은 실세.’

자신들이 데뷔한 다음 달 만에 전원이 50만을 넘겨버린 괴물들을 이끄는 GB의 두뇌라고 불리는 한국인이 배후에 있다고 한다.

듣자하니 분석의 전문가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방송계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통찰안을 지녔다고 해야할까?

만화에서 볼법한 역광이 비치는 안경을 쓰고 ‘다 계획대로군요 우후후’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야말로 선라이즈의 숨은 실세

집사 A와 메이드 라­ 두 사람이 순박한 사장 나모를 배후에서 조작한다는 운영진 음모론을 굳게 믿는 루미에는 결코 저 여자를 얕보지 않았다.

‘긴장이 풀려버리면...’

순식간에 반해버린다.

그러고보니 같이 합동 방송을 진행한 적 있는 코모레비 선배가 해 준 조언이 있다.

‘저 사람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헤테로 여성의 무자각 페로몬에 홀리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이미 여러 선배들을 자신의 매력으로 함락시킨 무서운 사람이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돼!

훗날 되돌아보면 부끄러움에 이불을 하늘로 찰 그런 생각이었지만

회사에 들어오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진지한 루미에는 굳은 표정으로 회의에 들어갔다.

자신의 첫 공식 채널 데뷔 촬영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말이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