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85화 (85/307)

〈 85화 〉 84화.

* * *

“.....라고요!! 엉엉엉!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빌어먹을 가치코이(버튜버에게 진심으로 연애 감정을 느끼는 팬들)충들 전부 다 죽여버리고 싶어요! 루미에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아이돌이라고요 제에엔자아앙!”

첫 방송이 끝난 이후 쇼핑 후 이어진 식사, 하지만 술에 관심이 많은 유메미씨가 시킨 달짝지근한 와인을 모두가 한 잔씩 건배한 것이 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인기몰이 중인 버튜버 루미에의 샤야 카기씨는 술이 지나치게 약했다.

약한 도수의 와인 한 잔 걸치면서 리미트가 풀린 그녀는 왜 단 한번도 술 방송을 진행하지 않았는지 잘 보여주었다.

술이 강한 유메미씨와 그런 유메미씨보다 술이 강한 나는 서로 짓궂은 시선을 교환한 뒤 그녀에게 술을 마시게 했다.

데뷔 한지 석 달을 향해 달려가는 버튜버 후배는 아무래도 속에 쌓인 것이 많았는지 거침없이 방송인들만 할 수 있는 푸념을 했다.

“썸네일은 맨날 이상하게 만들어지고, 매니저는 맨날 일거리 물어오고, 회사에서는 알아보기 힘든 데이터 맨날 던져주고, 악질 시청자들은 하지 말라는 것들만 하고, 같이 콜라보 하고 싶었던 게임회사에는 광고가 오질 않고, 엉엉엉.”

“너무 빡센 매니저를 두는 것도 피곤한 편이야 카기쨩, 내 매니저는 맨날 운동하라고 잔소리 하고 야채 먹으라고 말하고 심지어 청즙 세트를 내 카드로 긁어서 집으로 배송시킨다니까? 툭만하면 방송에서 섹드립좀 줄이라고 하고, 다른 버튜버들에게 손 뻗지 말라고 잔소리한다고.”

저런, 에이비씨 꽤나 힘들게 일을 하는구나.

그리고 몇 번 유튜브의 심의에 걸려서 방송이 내려진 전적이 있는 유메미씨의 방송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매니저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애초에 여자 다 꼬시는 사람은 여기 있는데.”

“어... 저요?”

“그래 이 음탕방자한 서큐버스 메이드야!”

“그냥 친하게 지내는 친구 사이인데요.”

“또! 또! 또! 나왔다! 무지성 헤테로 인싸 햇살 여캐가 무자각으로 동성애에 진심인 여자들의 마음을 후리고 다니면서 한다는 그 말!!”

도대체 뭐라고 하는건가

술에 취한 유메미씨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오타쿠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 또한 연거푸 술을 마셔서 그런지, 발음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먼저 취한 샤야씨와 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그녀들만의 방송인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방구석 아싸놈들이 어! 맨날 동인지에서 보던 이상한 말들과 작가의 표현만 말할 줄 알지, 여자 경험 없는 아다들이! 강한 척 음란한 말 지껄이는거 보면 열이 받는다고!”

“맞아요! 자기네들도 게임 잘 못하면서 맨날 제 게임 방송 보고 뭐라고 훈수 둔다니까요! 정말 망할 자식들이에요! 잘난 거 없으면서 도네이션 쏜다고 무슨 말이라도 해도 되는 줄 아나봐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정신이 아득히 날라가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유메미씨 취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평소 이미지와 달리 사람에게 막 들러붙지 않는다. 그러니까 평소에 나만 보면 손을 뻗쳐오는 것은 그녀 나름대로의 친근한 장난이란 말인가?

“아아아악!”

그런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은밀한 손길로 내 엉덩이를 만지는 그녀의 손을 꽉 잡은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결정했다.

“여어어 아가씨이이 손이 매운데?”

싸구려 멜로 드라마에 나올법한 취객의 대사를 그대로 읊조리는 유메미씨를 부축하고, 흐에에에엥 하면서 울기 시작한 카기씨를 등에 업은 나는 친절한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내 차에 두 사람을 실었다.

오늘 미우는 간만에 본가에 들러서 쉬고 온다고 했으니... 잠시 고민을 마친 나는 그녀들을 태우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자꾸만 취한 손길로 나를 더듬으려는 유메미를 뒷자석에 던져 넣은 나는 운전을 하면서 틈틈이 오늘 방송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소문의 메이드 드디어 등장? 선라이즈의 공식 계정의 새로운 주인 메이드 라

­만능의 메이드 답게도 정식 방송 진행에도 매끄러운 그녀, 나모의 마지막 ‘희망’

­메이드의 팬덤, ‘메이드의 도구들’이 진심으로 말한다, 제발 공식 방송에서의 도네이션을 열어달라

최근 버튜버들의 행보가 조회수가 나온다고 판단한 게임 통신 업계와 오타쿠 통신 업계들은 버튜버들의 소식을 인터넷 뉴스 기사로 만들었다.

평소라면 다양한 이름이 올랐을 그 코너를 차지한 내 이름을 본 나는 어깨가 올라갔다.

다행히도 내 첫 데뷔와 동시에 진행된 생방송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먹혔나 보다.

나를 여기까지 지도해준 마미 선배, 나에게 방송에 대해서 세세하게 알려주던 나에 언니, 버튜버들의 세세한 정보를 알려준 타마, 그리고 기회를 준 코이즈미 선배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내 서투를 수 있는 방송에 잘 호응해준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나는 절로 미소지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들이 적극적으로 평소의 망가지는 이미지 연출을 가감없이 해준 덕분에 높은 텐션이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그녀들을 어떻게 싸구려 호텔에 재울 수 있겠는가

나름 은혜를 갚기 위해서 나는 그녀들을 사이타마의 쉐어 하우스로 데려갔다.

**

샤야 카기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어린 여자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대학도 졸업하고 나름 괜찮은 인터넷 보안 업계에 들어간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2기생의 다비의 유쾌한 방송을 보다가 4기생의 엘프 카린의 방송을 보고 진심으로 버튜버에 빠져들었고, 홀린 듯이 회사에 지원을 하고 수 백명의 지원자를 뚫고 발탁되었다.

다른 동기생들에 비해서 낮은 덕력과, 코딩을 하던 사람 아니랄까봐 게임에 대해서는 해박했지만 그 실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 그녀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고, 회사 생활로 다져진 소통 능력을 적극 발휘해서 빠르게 선배들과 합동 방송을 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 왕성한 활동력과 방송에 대한 욕구를 인정한 다른 동기들은 그녀를 5기생의 대장이라고 부르면서 존중해주었고, 그 후에 그녀는 승승장구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항상 진심으로 방송에 임하고 버튜버의 일에 진심으로 매달리는 그런 사람이 바로 샤야 카기였고, 방금 낯선 공간에서 일어난 그녀는 술을 마시고 부린 자신의 추태를 모두 기억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내가 무슨 짓을!”

“어머나, 아침 비명치고는 활기차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어제 같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신 여성이 걸어 들어온다.

방금 샤워를 마친 듯 물기가 느껴지는 머리를 말아 올리면서, 가벼운 차림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은 사람의 눈을 이끄는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이, 이래서 남자들이 예쁜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구나.’

몽롱한 정신이 달아날 정도로 예쁜 여성이 자신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커피를 내려준다.

위이이잉 하는 캡슐 머신이 내리는 커피를 들고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을 말 없이 5분간 지켜본 샤야는 향긋한 커피 냄새를 맡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했다.

“저기 그... 유나씨? 어제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니요, 저야 말로 샤야씨의 반응이 귀여워서 술을 마시는 것을 말리지 않았네요.”

“그, 그래도...”

“괜찮아요. 술에 취한 회사 동료를 집에 재우는 것에 인색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한국인의 정이랄까.”

‘그게 아니라 술이 막 깬 회사 동료 앞에 무방비한 샤워 직후의 차림을 보이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서로 이름도 나누었고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셨는데 친구라고 생각되는데요. 저도 편하게 카기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이름 나누고 일도 같이 해보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 친구가 되는건가?

이 사람의 세계는 그렇게 이루어지는건가?

그렇다면 맨살을 보이는 것도 친구의 영역인거야?

혼란스러운 정보가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그녀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눈앞의 이 이상한 미녀와 친해져서 손해 볼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 유메미 언니는요?”

“그 사람을 여기에 재우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모를 것 같아서 그냥 제 방에 재웠어요.”

“가, 감사합니다.”

여인의 탈을 뒤집어 쓴 유메미의 저속한 손길을 아는 카기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조용히 미소지으며 인사를 받은 그녀는 자신이 마신 커피잔을 치우면서 일어났다.

흘러내리는 옷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몸을 보지 않으려 노력을 하는 카기는 일이 있는 척 휴대폰을 뒤적였다.

“그러고보니 카기 씨는 아침은 빵을 드세요? 밥을 드세요?”

“저, 저는 아침은 빵을 먹는 주의라...”

“좋아요. 그럼 잠시만 누워 계세요. 아, 세수를 하고 싶으면 세면대의 푸른 병으로 씻으시면 되요. 손님 용 일회용 칫솔 꺼내두었으니 식사를 하신 후 양치하시면 되어요.”

“네에... 섬세한 배려 감사합니다.”

“뭘요, 친구사이에.”

이게 친구 사이에 일어날 일이란 말인가?

다소 당황한 유나의 말에 신경을 쓴 그녀는 세수를 마치고 차마 지우지 못한 얼굴의 화장을 지어냈다.

‘아, 설마 자는 사이에 화장도 지워주셨을 줄은.’

화장을 한 채로 자게 되면 피부에 나쁘다. 그래서 항상 여성들은 외출에서 돌아온 후 클렌징으로 화장을 지우지만... 어제 골아떨어진 그녀는 그러질 못했는데 아마 자는 사이에 자신의 화장을 닦아주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섬세한 배려였다.

그녀에게 반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납득이 갔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능력 있는 미녀를 싫어할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기에.

띵­동

그녀가 얼굴을 닦을 무렵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띵­동

하지만 유나는 무언가 바쁜 모양인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띵­동 띵­동

연거푸 울리는 초인종이 신경 쓰인 카기는 문을 열어주었다.

아침에 타인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우유 배달부나 회람판, 아니면 신문 회사의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네, 기다리셨어요.”

“어라? 당신 누구에요?”

집 주인 대신에 문을 연 카기는 자신을 수상하게 바라보는 금발의 여고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의심 가득한 눈이 자신의 몸을 훑는 것을 느낀 카기는 서늘한 겨울 아침의 바람보다 차가운 한기를 느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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