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86화 (86/307)

〈 86화 〉 85화.

* * *

“언니 또 여자에요?”

“응, 이쪽은 5기생의 루미에를 연기하고 있는 샤야 카기, 그리고 이쪽은 4기생의 클레스타인의 사케이 미우.”

한창 아침을 준비하던 도중 미우를 맞이한 나는 두 사람을 인사 시켜 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두 사람이 같은 직장 동료 선후배 사이라는 것을 알고 반갑게 인사했다.

“서, 설마 클레 선배님이 진짜 고3이실줄은 몰랐네요.”

“...선라이즈의 언니들은 작은 언니들이 많네.”

두 사람은 솔직한 의견을 교환한 후 늘어진 내 티셔츠를 입고 내려온 유메미씨를 보았다.

뭐라해야할까

남의 집에 있음에도 자신의 집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연출하는 유메미씨는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고 허벅지를 벅벅 긁으면서 내려왔다.

이미 온천 여행으로 유메미씨의 실태를 잘 아는 미우는 유메미씨에 대해 뭐라 말하기 보다는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친구 맞죠?”

“응. 어제 같이 스튜디오에서 방송 진행하고 술 까지 마셨는걸?”

“나에 언니가... 알고 있어요?”

“어... 아...마...도?”

확실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뭐 솔직하게 말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

솔직히 내가 오해를 살 수 있는 남자 사람과 친구 사이 먹는 것도 아니고 같은 직장 동료에 같은 성별의 사람인데 그 정도야 뭐... 최근들어서 질투심이 강해진 나에 언니라면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긴한다.

“유나 언니의 그 무방비함! 어제 처음 만난 사이 앞에서 속살을 비치는 그 차림은 뭔가요!”

“아, 샤워하고 나서 아침 준비하느라. 원래 술 마신 다음날에 내가 국물 있는 요리 준비하는 거 알잖아.”

“그런 무방비함이! 큰일이라구요! 유메미씨같은 음흉한 사람이 같은 성별이라고 언니를 가만히 둘 것 같아요?”

“뭐 유메미씨가?”

확실히 나를 야릇한 시선으로 보기는 하는데...

고작 유메미씨 같은 사람이 나를 노린다니 참으로 미우는 세상 보는 눈이 없다.

“유메미씨, 잠시 일어나 보시겠어요?”

“어? 으,응.”

유나의 에이프런 차림이라니 이 아저씨는 이제 죽어도 좋아~ 같은 헛소리를 말하던 유메미씨가 일어나자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두 팔을 묶었다.

그리고 가볍게 밀치자 그녀는 벽으로 그대로 밀려났다.

“저,저저저저기 유나 씨? 유나 님?”

“이거 봐, 유메미씨처럼 근육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무슨 수로 나를 노린다고 그러니?

이런 말랑말랑한 사람은 한 손으로도 제압 가능하다고.“

그렇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를 이길 수 없다.

이래 보여도 병원 공인 ‘세상에서 제일 건강한 사람’급으로 완벽한 신체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나다.

그녀가 발버둥 치지만 내가 허벅지로 그녀를 지긋이 누르자 버둥거리는 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완전히 제압당한다.

“유,유유유나님 저, 저희 이런 진도는 너너너너무 너무 빨라요!!”

“무슨 소리에요? 그냥 유메미씨의 허접한 몸을 제가 한 손으로 증명하고 있는 데.”

유메미씨의 말랑말랑한 살결이 닿인다.

하도 평소에 하는 행동이 아저씨 그 자체라서 정감이 잘 안가서 그렇지 입만 다물고 옷만 잘 입으면 정말 학교 내에서도 보기 드문 미인이라서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은 꽤나 귀엽게 보였다.

“아무튼 정말 운동 좀 해요. 안 그러면 제가 링피트 들고 유메미 씨 집 찾아가버릴거에요.”

“거, 거부한다!”

“뭣 하면 에이비 매니저님에게 물어봐서 주소 알아보면 되죠. 운동 시킨다 하면 좋아 하실걸요?”

“그, 그건 직권남용이야!”

“인과응보입니다.”

그 후 망가진 유메미씨를 뒤로하고 나는 아침을 마저 준비했다.

싱싱한 연어 회에 이탈리아산 치즈를 먹기 좋은 사이즈로 썰은 후 아침 시장에서 사온 채소들을 한 입 크기로 썰은 후 놓는다. 후추와 올리브유 그리고 발사믹 식초로 맛을 살리고 살짝 싱거울 수 있는 방울 토마토에 소금간을 해서 짭조름하게 맛을 살린 카르파쵸와 닭 육수를 베이스로 끓여낸 브로콜리 수프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사온 빵을 차렸다.

어차피 샐러드는 먹고 남길 예정으로 많이 만들었으나 미우가 온 덕분에 적절한 4인 식탁이 완성 되었다.

“우,우와...”

“... 미우 선배님 혹시 매일 이런 요리 드시나요?”

“어... 응? 아니, 대신 술 마신 다음날에는 항상 유나 언니가 이렇게 든든하게 먹더라고. 안 그러면 하루종일 속이 쓰리다나 뭐라나? 술을 마시는 어른들이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언니가 혼자 술을 마신 다음날은 언제나 아침 식탁이 풍성해져서 난 좋아.”

식사를 하기 보다는 사진을 이쁜 각도로 찍으려는 유메미와 나를 우러러 보는 시선을 숨기지 않는 카기의 모습은 나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밥에 진심인 한국인 유학생의 식탁을 칭찬하다니, 역시 기분이 좋다.

“그...렇다면 유리아님은 항상...”

“그...그런 편이지? 나야 잠시 공부를 하는 동안에 여기 살고 있는 편이지만 나에 언니는... 가끔씩 먹는 외식 말고는 거의 다 유나 언니 손으로 만든 식사들을 하니까.”

“그... 그게 거짓이 아니었단 말이네요...”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유리아의 예쁜 식사들은 언제나 화젯거리였다.

특히 인스타그램처럼 예쁘고 여성스러운 라이프를 전시하고 싶어 하는 버튜버들은 자주 나에게 요리를 예쁘게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나는 딱히 예쁘게 요리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초기에 식사를 자주 피하려고 했던 나에 언니가 먹는 행위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니 갖추어진 장식 능력이지만...

그 덕분에 대충 샐러드를 만들어도 예쁘게 담는 법이라던가, 집 안에 예쁜 그릇들이나 식기들을 갖추어서 예전에 인스타그램을 할 때 보다 더욱 음식을 예쁘게 하게 되는 나였다.

아무튼 선망에 가득 찬 카기 씨와 유메미 씨의 시선을 받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진다.

뚜르르르

미우의 휴대폰이 울리지 빵을 먹다 만 그녀가 전화를 받으러 가더니 이내 사색이 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에 언니가... 지금 당장 영상 통화 하자는데요?”

나에 언니의 생활 패턴은 전과 달리 크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늦은 시간까지 방송을 하고 오후에 일어났다면, 지금은 어떻게든 오전에 일어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가 부족한 잠은 운동을 한 후 점심을 먹고 잠시 일을 하다가 낮잠을 취하는 형태로 바뀐 편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늦게 일어나는 편이다.

그런 언니가... 이른 아침은 아니라고 하지만 전화를...한다고?

여태껏 있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나는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미우의 휴대폰을 받았다.

**

“여자랑 함께 있네?”

졸지에 아침 식사 생방송을 하게 된 카기 씨와 유메미 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인사를 고개를 까딱이는 정도로 받은 나에 언니는 나를 노려보는 듯한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어, 어쩌다 보니 촬영 끝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다 보니 이렇게...”

“그치, 유나는 상냥하니까. 나 뿐만 아니라 수상할 정도로 다른 여자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니까... 나는 그래 알고 있었어. 그냥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은 거 있지.

첫 방송을 겪고 난 후의 이야기를 나에게 이야기 해줄 것을 기대하고 유나가 좋아하는 과자와 니아 매니저님에게 칵테일 만드는 법 까지 배우고 몰래 파티를 할 준비를 했는데...“

초기의 그 음울한 톤으로 스스로를 자책한다.

언니가 가끔 멘탈이 나갈 때 말하는 그... 자존감 낮아지는 목소리가 내 양심을 간질거린다.

어, 이상하다. 내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했던가?

하지만 자꾸만 자책하고 깜짝 파티를 준비하던 애인의 기대를 무참히 배신한 쓰레기가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언니의 자존감 낮은 모드의 화법은 내 마음을 무참히 난도질했다.

“그... 그게 말이죠. 어, 언니...”

“알아, 나 따위가 유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유나는 언제나 새로운 ‘친구’들을 찾아 헤매잖아?”

치, 친구가 어때서­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어제 MC도 훌륭하게 수행하고 방송인들 사이에 지내면서 입담이 늘었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언니의 이... 자존감 낮은 모드에서 나오는 자책하는 말투는 정말이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머리를 쥐어짠 끝에 카기씨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카... 카기씨와는 친구! 라기! 보다는 음! 그... 그래 맞다! 후, 후배에요 후배! 제가 선배! 카기씨가 후배!”

“마,마마마, 맞아요! 치, 친구라뇨 하하! 제가 어,어떻게 방송 선배인 유,유나님이랑 치...친구 하냐구요! 아,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나에 님? 아니 유리아님? 저, 저는 결단코 유나님을 그,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어요! 저,정말이에요!”

분위기를 빨리 읽는 것으로 소문난 사람답게, 카기씨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맞춰주었다.

정말이지 말을 더듬더듬 거리면서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데 그 연기가 일품이었다.

정말 카기 씨가 센스 있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카기 씨의 진심이 어리다 못해 처절한 말들을 들은 나에 언니는 언제 우울한 사람이었냐는 듯이 해맑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어깨에 손 떼 유나.”

“넵.”

“그리고 오늘은 일찍 출근하고, 집에서 잘 생각 하지 마.”

“네?”

“오늘은 야근이야, 여기에서.”

“아, 알겠어요...”

통화가 끝나자 유메미 씨와 카기 씨, 그리고 미우가 측은한 얼굴로 나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뭐 왜, 내가 뭐!

평소라면 툭 쏘듯 말할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에 언니

화, 화나지는 않아 보이니 괜찮겠지?

나는 애써 떠오르는 불안한 생각을 지우면서 빵을 삼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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