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89화 (89/307)

〈 89화 〉 88화.

* * *

사람들이 버튜버를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너무나도 많은 대답이 떠오른다.

바깥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고 온 사람들은 재잘거리면서 평화로운 일상을 이야기하는 방송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바빠진 자신을 대신해서, 혹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이전처럼 즐겁게 게임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아카리 같은 버튜버가 게임에 도전하는 방송을 보면서 즐거운 추억을 떠올린다.

미카엘이나 아그니, 클레처럼 다양한 게임에 도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는 게임을 하면서 얻는 피로감을 느끼지않고, 즐겁게 떠드는 그녀들과 같이 몰입하면서 대리 만족감을 얻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서는 유리아나, 루미에처럼 답답한 진행을 하는 버튜버들을 놀리면서 그들의 실패를 즐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이나리나 에이아처럼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능으로 시원하게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을 보면서 만족감을 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연인처럼 속삭이는 마녀의 ASMR 방송을 통해서 자신의 귀에 속삭이는 버튜버들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다른 버튜버들과 즐겁게 게임을 하면서, 높은 텐션으로 끊임없이 야한 농담을 하는 카린이나 다비처럼 어릴적 친구들과 같이 생각 없이 놀았던 때를 회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사람들을 잘 끌어 모을 수 있는 마법같은 매력이 무엇이라 한다면 나는 그것이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회사의 직원들도 알아차린 바가 있다.

다름아닌 이제 160만 구독자를 돌파한, 버튜버 업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GB의 마나의 존재다.

물론 그녀의 매력은 귀엽고 시원한 목소리, 자신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소악마적인 모습에도 있지만 결국 그녀의 존재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게 된 무기는 감미로운 노래 방송이다.

단기간 안에 화제성을 노출하고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필을 하는 데 노래만큼 국경을 초월하는 무기가 없기 때문에, 좋은 노래 방송은 언제나 화제성을 끌어모은다.

노래를 유난히 잘부르는 마나와 셀레네의 빠른 성장 사례

그리고 그간 화제에 오르지 못한 코모레비가 단 한번 ‘사이코패스’의 밈으로 화제에 올랐을 때,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유입자 대부분을 구독자로 만든 사례

이러한 여러 사례들로 인해서 선라이즈 내부에서 ‘노래 실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져갔다. 그만큼 선라이즈에서는 성공 사례 분석이후, 보컬 트레이닝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노래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운영진 사이에서도 언급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메이드 라­의 첫 단독 노래 방송이 예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왜 긴장하고 그래요 유나 언니?”

노래 방송에 진심인 코모레비는 언제든지 음악을 부를 수 있게 외출용 마이크를 들고 다닌다.

내가 오늘 산 마이크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마이크들보다 월등히 좋은 이 마이크는 밖을 거닐면서 외부에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코모의 외유(外?)음악 방송’에 쓰인다.

마치 도시 속을 거니는 버스킹을 하는 음악가처럼, 코모레비는 사람이 없는 공터나 조그만 숲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외부의 잡음이 들어간 그녀의 음악 방송은 그녀의 상징이 될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 전설을 만든 마이크를 내 컴퓨터에 장착한 코모레비는 긴장한 내 얼굴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다.

“그도 그럴게… 이제는 내 실력에 대해서 진심이게 되잖아.”

“네?”

“난입 때 불렀던 방송이나, 할로윈의 4인 음악 방송때는 방송 장비가 좋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힌다. 그런 변명 거리가 생겼는데… 이 정도로 진심이게 되면 더 이상 물러설 구석이 없잖아.”

“아하, 좋은 장비를 갖추어서 더 이상 마음의 여유가 없는군요? 배수의 진? 실패를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런 건가요?”

이제부터는 어설픈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최상에 가까운 환경이 갖추어진 이상 변명을 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도 코모레비가 방송에 들어오기 전, 나는 두 곡을 완창해야했기 때문에 긴장을 했다.

벌써부터 수 천 명의 시청자들의 내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

긴장이 되면서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입 안이 바싹 마르면서 침을 삼키고 자꾸만 주의가 산만해진다. 스튜디오에서 느낀 긴장감과 다른 압박감이 엄습해온다.

그도 그럴것이...

“응. 이 채널은 내 개인 채널도 아닌 회사의 이름을 대표하는 채널인데, 여기를 맡은 내가 노래를 실수하면….어떻게 하지?”

무려 단독 생방송이다.

실수를 하게 되면 그대로 박제 당하는 그런 스테이지나 다름 없다.

“후후후, 언니 그런 거 걱정하지 마요. 음악 실수하면 그냥 레코딩을 날려버린 다음에 다시 도전하면 되요. 저희들은 공중파에 나오는 아이돌이 아니니까요.”

“그, 그래?”

“저도 여러번 음 삑사리 낸 방송들은 일부러 편집을 해서 올려요. 시청자들은 그 정도는 다 이해 한다구요.”

무려 노래 방송의 프로인 코모레비의 조언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조금 긴장이 풀렸다.

“뭐, 그렇긴 해도 최선은 실수를 하지 않는 거지만.”

잔망스럽게 윙크하는 코모레비를 보니 다시 긴장이 되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내 뒤에서 방송 준비를 갖추던 마미 선배가 나의 어깨를 붙잡고 두 눈을 마주치게 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붉은 머리같은 뜨거운 열정을 품은 두 눈이 나를 직시한다.

“유나야 걱정하지마. 넌 내가 고른 아이돌이야. 실수를 할 리 없어.”

“그거 아이마스 대사잖아요 선배님.”

“뭐, 진심이 8할 쯤은 담겨 있으니까, 예전에 ‘노래 괴도단’같은 텐션 가지고 방송을 진행하면 될거야.”

거대한 헤드셋을 낀 채로 익숙하게 음악 프로그램과 방송 프로그램을 동시에 켜고, 음의 품질을 고르는 마미 선배의 그 모습을 본 나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헤드셋을 낀 순간부터 장난기가 사라진 코모레비의 모습을 본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방송 송출 버튼을 눌렀다.

오늘의 방송은, 1월 20일 코모레비의 데뷔 2주년을 기념하는 라이브의 결정을 발표하게 되는 자리다.

진행은 이제 선라이즈의 공인 캐릭터가 된 메이드 라

버튜버들의 방송을 보조한다는 선라이즈 스태프를 대표하는 버츄얼 ‘메이드’로서 선라이즈의 큼직한 소식들을 전하는 역할을 맡게 된

11월에 창시된 선라이즈의 2주년을 맞아서 ‘출연’한 메이드다.

절대, 절대로 유나의 단독 데뷔가 아니다.

절대로

***

“안녕하세요 선라이즈의 햇살 여러분들, 사전에 공지한대로 이번 방송에서 중요한 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내가 생각한 나의 캐릭터, 메이드 라­의 톤은 차분한 저음이다.

이제는 수많은 버튜버들의 동영상의 합성 요소가 되어버린 좀비의 머리를 1초만에 헤드샷을 날리는 그 영상 이후로, 나에게는 소쇄한 메이드의 이미지가 붙게 되었다.

그렇기에 높은 텐션의 음 보다는 차분하게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부드럽고 선명한 발음으로 말을 하려는 어조가 어울린다 생각했다.

­눈나 나 죽어

­진짜... 나 살아있는 거 맞지? 메이드가 드디어 데뷔했어

­라짱!!라짱!!라짱!!

­제발제발제발제발 도네이션!! 도네이션을 열어요 내 돈을 가져가 가져가달라고 젠장!!! 아니면 하다못해 굳즈라도 내 놓던가!!

­내가 이 날만을 기다려왔어. 단독.단독이라니... 저 금발 메이드가 드디어 혼자 말을 할 수 있다니 엉엉엉

음이 올라가는 일 없이, 가능하면 뉴스의 아나운서처럼 차분한 톤으로 진행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가급적이면 감정을 배제하려고 한다.

진행자의 차분한 보이스가 들뜬 텐션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하지만, 오히려 높은 텐션을 유지하는 버튜버들 사이에서 낮은 음을 내면은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고음 파트만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들으면 귀가 피곤해지는 것처럼, 높은 텐션이 쭉 유지가 되면 시청자들도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가 발언을 실수하지 않는 이상, 내 차분한 어조가 버튜버들의 텐션을 떨어트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난 판단했다.

“아마 햇살 여러분들께서는 저희 선라이즈가 세워지기 이전 활동을 해 온 한 버튜버에 대해서 아실 것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저희 선라이즈에는 자신의 최애 아이돌들에게 빠져서 다른 아이돌들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다시 소개 드립니다.”

말을 잇기도 전에 코모레비를 상징하는 나뭇잎 이모티콘이 도배가 된다.

“네, 그렇습니다. 선라이즈의 역사 이전에 존재한 버츄얼 아이돌 유튜버의 오랜 선배인 코모레비가 드디어 활동 개시 2주년 기념으로 라이브 진행을 하게 됩니다.

진행 방식은…“

방송의 순서대로 나는 온라인 VR 콘서트의 참가 방법과 티켓 구매 방법

주의사항과 더불어서 무대 일정을 안내했다.

“그리고 다음 코너로는... 흠흠...”

그래도 긴장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표정이 굳어진다.

그 미묘한 기색을 알아차린 예민한 시청자들이 ‘설마!?’ ‘가나?’ ‘말로만 듣던?’ 따위의 채팅을 하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떨리는 내 손을 옆에 있던 코모레비가 잡아주었다.

숨을 들이켜신 나는 처음으로, 시청자가 3만 명이 모인 채팅방에서 코모레비의 첫 오리지널 곡, ‘흔들리는 나뭇잎을 비추는 햇살’을 불렀다.

그날 난 처음으로 모두에게 내 단독 노래 공연을 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