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89화.
* * *
새롭게 단장한 선라이즈의 공식 유튜브 채널은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을 보는 오타쿠들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기존에는 회사의 홍보를 소속 내 버튜버들에게 숙제를 내리듯 일을 시키거나, 가끔 등장하는 스태프 부의 집사나 메이드들이 목소리만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하지만 전자는 방송 일정이 바쁜 버튜버들에게는 부담이, 후자는 버튜얼 유튜버를 표방하는 기업이 아무리 스태프들 이라고는 해도 그림만 세워두고 진행하는 속칭 ‘듀라한’방송은 회사의 이념에 어울리지 않았기에 위화감이 컸다.
때문에 인기 캐릭터, 메이드 라의 버츄얼 3D 아바타의 등장과 더불어 첫 온라인 방송, 2345기생의 버튜버들을 교류시키는 ‘선라이즈 제1교류회’방송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그녀의 방송 실력은 커뮤니티에 화제가 되었다.
사장의 마지막 희망
청초와 절제의 화신
폭주하는 버튜버들의 억제기
남성 팬 보다 여성 팬들을 더 많이 가진 백합의 여왕
등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그녀의 첫 단독 방송 또한 훌륭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여러 합동 방송에는 나온 적 있지만, 단 한번도 단독으로 진행한 적 없는 메이드 라의 음악 홍보 방송은 단 두 곡만 불렀음에도 사람들이 열광을 했다.
오죽했으면 뒤따른 코모레비가 자신의 오리지널 곡을 자신보다 잘 불렀다는 불평을 했겠는가?
그게 의례적으로 하는 겸손한 발언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발화자가 다름 아닌 버튜버들 중에서도 노래를 잘 부르는 코모레비다. 때문에 메이드 라의 노래 실력은 다시 화제에 올랐다.
그런데 방송 종료할 때 쿵하던 소리는 뭐야?
그러고보니 방송 종료할 때 코모레비가 엄청 놀란 소리를 내었지
뭔가 엎어지는 소리가 났는데
그러게, 방종 멘트가 나오기 전에 갑자기 바뀌었지?
무슨 일이 일어 났나?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하는 방종 멘트 대신에 무언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방송이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알고보면 완벽해보이는 이 메이드가 사실은 덤벙쟁이?
그런 소문이 인터넷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다.
내가 무어라 말했더라?
노래를 부르고 난 이후에는 정말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 이성의 끈이 날라가려는 것을, 방송 진행의 사명감으로 붙잡는다.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내 육체가 아니게 된 기분
다행스럽게도 내 무의식은 훌륭한 기능을 하는 모양인지, 코모레비의 장난도 잘 받아주면서 화기애애하게 방송을 진행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 코모레비의 2주년 라이브 콘서트, 부디 기대를 해 주세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릿속으로 ‘드디어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럼 저는 가볼… 에!?”
어라? 하는 생각과 함께 시야가 낮아진다.
이 기분 느낀 적 있는데… 라고 생각한 나는 이내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러니까 이건, 극한의 긴장 상태 때문인가?
아니면 어릴 적 포기했던 꿈의 끝자락을 다시 잡았기 때문일까?
나의 노래에 응원을 해준 사람들 덕분인가?
나만 바라보고 방송을 봐 준 얼굴도 모를 사람들의 환호 때문일까?
나는… 내 꿈을 이룬건가?
언제인가 마음이 상한 일이 있어서 집에서 혼자 술을 진탕 마시고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때보다 더 한 어지러움과 혼미함이 나를 닥쳐왔다.
방송해야하는데..
아, 방송은 끝났는가?
그런데… 도쿄에 있어야할 나에 언니가 왜 여기에 있지?
언니가 왜 내 손을 붙잡고 울고있지?
이거 꿈인가?
“꿈이 아니야 유나야.”
가끔 언니가 요괴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마치 내 마음을 읽는것처럼 말을 한다.
“언니는 꿈도 아니고 요괴도 아니야.”
거 봐요 언니, 언니 정말 요괴 같다니까?
나는 언니의 눈물이 참으로 짜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흘리는 언니의 입술이 그렇게 느껴졌으니까.
포도향기와 월하향이 섞인 기분 좋은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무방비 된 여성에게 함부로 키스하다니, 언니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다.
그렇기에 사랑스럽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냥 언니의 온기가 너무나도 좋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너무나도 좋아서 그냥 나는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그 경계에서, 나는 내 꿈을 찾아온 요정을 꼭 껴안고 그 작은 입술을 마음껏 훔쳤다.
그녀의 온기와 따스한 마음이 내 공허한 마음을 채워준다.
그렇구나,
나는 사실 외로운 사람이었어, 이국에서 혼자 살아가는 내 마음은 멍들어 있었던 것이었어
나에 언니
쿠로가와 나에 언니
언제나 밝게 빛나던 내 삶에 찾아온 어두운 사람
사람은 언제나 빛날 수 없다는 걸, 이렇게 어두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준 사람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 라는 내 상식을 부순 사람
그 터무니없는 사람은 내 상식을 뒤틀고 파괴했다.
사람이란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언제나 빛을 발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빛나고 싶은 순간에만 빛이 나면 되는구나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나는 변하게 되었다.
아아
나는 그녀의 구원자같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고독을, 나의 아픔을 그 존재만으로도 치유해준다.
사람을 의존하는 건 나쁘다.
사람은 홀로 자존해야하고 홀로 서야한다.
하지만
하지만…
가끔 이렇게 등을 기대고 이렇게 온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홀로 자존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완성되지 못한다.
가끔은 책임을 내려 놓고 살아도 된다고, 그녀가 말해주는 거 같았다.
내가 돌봐야할 버튜얼 유튜버가 나를 돌봐주다니, 이제 누가 매니저고 누가 아이돌인지 모르겠다.
그냥 나에게 찾아온 이 작은 요정을 놓아주고 싶지 않다.
갸냘프게 저항하는 그 바둥거리는 팔을 누른 채 나는 그녀를 소중한 보석처럼 껴안은 채로 다시 의식을 놓아주었다.
***
니아라는 이명이 익숙해졌지만, 고약한 후배 덕분에 마미라는 제 이름을 수 십번 불리게 된 하나카와 마미는 자신의 집인데도 열쇠를 두고 온 쿠로가와 나에를 열어주었다.
평소에는 멍청한 자신의 언니와는 다르게… 냉막한 감정을 잃어버린 인형같은 사람이다.
다만, 이 사람은 유나와 함께 있게 되면 인형이 아니라 요정이 된다.
자신의 연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 작고 예쁜 요정에 떠오를 불안감을 읽은 마미는 식은땀이 자신의 등을 적시는게 느꼈다.
그도 그럴게 방금 방송을 하던 도중 유나 후배가 긴장감을 못버티고 쓰러졌기 때문에, 내심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 코모레비와 함께 침대에 옮기긴 했는데… 그녀는 일단 불안해하는 시청자들을 달래기 위해서 깜짝 방송을 열어서 토크쇼를 하고 있다.
“유, 유나는…”
떨리는 목소리에 느낀 불안감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그 얼굴을 본 그녀는 2층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 그… 유나 씨 방으로 짐작되는 방에다가 옮겨두었어요. 그냥 긴장과 피로로 인한…”
그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다리를 빨리 움직이면서 그녀는 2층으로 갔다.
원래대로라면 도쿄에 있는 자기의 집에 있어여할 그녀가 어째서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걸까?
그녀가 방송의 피로감을 이기지 못해서 쓰러졌다는 말을 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것이지?
그런 의문이 절로 들었다.
멍하니 코모레비의 방송을 보던 마미는 결국 2층의 두 사람에 대한 신경을 껐다.
워낙 자기 앞가림을 잘 하는 자신의 후배와, 원체 알 수 없는 쿠로가와에 대한 신경을 써 봤자, 결국 자기들끼리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데 자기가 거기에 무슨 신경을 더하겠는가
애초에 부부싸움... 아니 연인 싸움은 칼로 물베기 아니던가?
차라리 갑작스럽게 방송을 종료해서 불안해하는 시청자들을 달래는 코모레비의 저녁 식사를 신경쓰는게 좋을 것이다.
다행히도 자신에게 요리를 알려주는 유나의 집답게, 그녀의 집에는 훌륭한 식재료들이 많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 온 4기생의 사케이 미우와 함께 마미는 저녁을 준비하고 방송을 막 마친 코모레비와 함께 저녁을 먹고 세 사람은 오순도순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었다.
“흐아아암…”
익숙치 않는 환경 탓 때문인가
예정에도 없던 외박 때문인가
불편한 자세로 자신과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츠유와 미우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일어난 그녀는 평소에 일곱 시에 일어나는 자신이 여덟 시가 되도록 일어난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어제의 일이 신경쓰인 그녀는 만약의 사태를 걱정해서 결국 2층으로 올라가서 방문을 빼꼼 열어보았다.
자고 있는 유나와 그녀의 위에서 다정한 연인처럼 자고 있는 쿠로가와 나에를 본 마미는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역시 유나 후배를 걱정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행복하게 자고 있는 두 사람의 미소와 다정한 자세를 본 마미는 예술인의 본능으로 찰칵, 하고 사진을 찍고 문을 닫고 나왔다.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방금 본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에 영감을 받은 그녀는 작곡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역시 오타쿠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영원한 창작의 근원이다.
소설가, 만화가, 작곡가 그 모두에게 전해져오는 만고의 진리를 떠올린 그녀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맺혀있었다.
이번 곡의 테마는 그래, 사랑의 힘으로 위기에 빠진 연인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작은 소녀의 심정을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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