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91화.
* * *
만약 일본에 가족이 놀러온다면 어디로 데려갈까?
조금 더 질문을 구체적으로 하면 쇼핑을 하게 되면 어디로 가면 좋을까?
나에게 놀러오는 가족은 반 쯤 의절한 어머니와 업무로 바쁜 아버지가 아닌, 남동생이다.
중국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프로게이머로 활약하고, 1군 선수이자 정글러인 내 남동생이랑은 사이가 나쁜 편이 아니다.
그 녀석은 내가 아이돌 활동을 할 때 유일하게 지지해준 아군이었고, 나 또한 그 녀석의 프로게이머 활동을 지지해줬으니까.
거기다가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 고등학교에서 잘나가는 명문 팀의 프로게이머 1군 선수의 누나라는 위세는 꽤나 큰 편이라 편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나는 이에 보답하고자 나는 그 녀석을 나에 언니에게 대하는 애정의 1%정도를 담아서 사람으로 만들었다.
체지방률을 감소시키기 이전까지 튀김을 금지했고 탄수화물 섭취도 엄격하게 제한하고, 그 빌어먹을 후드 패션을 없애 버리고, 머리 스타일링을 하는 법, 피부를 관리하는 법, 운동량을 확인하는 법 등등
아이돌 지망생이었던 나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아름다워지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남자 아이돌 연습생들의 관리법 또한 배운 적 있기 때문에 녀석을 강제로 사람으로 만들었다.
누구나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뚱뚱한 비만 남성에서 제법 스스로를 가꿀 줄 아는 남자로 만드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들어갔다.
서문이 길었는데, 아무튼 이런 삶을 거친 내 남동생은 중국에서 제대로 된 오타쿠가 되었고, 그럼에도 자기 관리를 할 줄 아는 인싸와 오타쿠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경제력이 갖춰진 20대 남성이다.
이런 남동생을 데리고 갈만한 장소는 정해져 있다. 인싸의 쇼핑과 오타쿠의 쇼핑을 동시에 충족시켜줄 만한 장소는 긴자, 시부야, 신주쿠 그리고 이케부쿠로다.
“그래서 답은 이케부쿠로라구요?”
“응. 긴자는 너무 점잖은 동네고, 시부야는 쇼핑보다는 관광, 신주쿠도 취향을 넓힌 쇼핑이 가능하지만... 교통이 너무 지옥이고. 남는건 이케부쿠로지.”
사이타마와 인접한 구, 이케부쿠로는 3대 부도심 중 한 번화가이다. 사실 신주쿠와 시부야에 비해서는 알려진 것이 덜 하지만, 왠만하면 있을 건 다 있는데다가 학원가이기도 한 탓에 다른 구에 비해서 저녁 분위기도 점잖은 편이다.
그곳으로 도착한 우리는 백화점에 차를 주차하고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쇼핑의 테마는 다름 아닌 나다. 정확하게는 메이드 라의 첫 공식 방송 출연과 더불어서 첫 인터넷 생방송을 무사히 마친 나를 위해서 그녀들이 선물을 해준다는 것, 무엇을 어느 가게에서 선물할 지는 전부 그녀들의 자유이고 나는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거절 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단체 쇼핑에 나를 위한 쇼핑이라니, 그 사실을 듣고 어찌나 가슴이 뛰었던지 운전하는 내내 심장이 콩딱콩딱 거렸다.
쇼핑은 사람의 가치기준을 알 수 있다.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촉감을 좋아하는지, 어떤 의상을 좋아하는지 어떤 기준점을 좋아하는지 전부 다 제각각이다. 그런 쇼핑에서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공유하며, 몰랐던 지식이나 기준점을 공유함으로서 서로와 더 친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마법 같은 취미다.
평소라면 내가 이래저래 이끌고 다니면서 쇼핑을 리드하는 입장이지만, 이 번 만큼은 그녀들에게 전부 맡겼다. 그렇게 우리는 이케부쿠로의 도부 백화점부터 쇼핑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다름 아닌 식기 코너다. 여러 브랜드의 식기가 놓여져 있었는데, 여기에 오자고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에 언니였다.
“요즘 우리 집에 사람들 많이 찾아오잖아...”
“아...”
“그런데 유나는 항상 네 명이서 먹을때는 가장 낡고 작은 그릇을 쓰잖아. 나는 그게 싫어.”
“언니...”
역시 나를 이렇게 챙겨 주는 것은 나에 언니밖에 없다.
작은 그릇을 쓰는 만큼 좀 더 자주 먹긴 하는데... 그래도 역시 위화감이 든단 말이지.
“으음, 확실히 유나 언니네 집은 자꾸만 놀러오고 싶단 말이죠.”
“음식도 잘해, 마실 것도 많아, 방송 환경도 좋아, 주인도 예뻐.”
“그리고...”
벽에 걸린 예쁜 꽃나무가 그려진 접시를 들어올렸다.
앞 접시와 밥 공기, 국 그릇과 커다란 접시로 이루어진 예쁜 가족 용 식기 코너다.
30% 할인이 들어가도 10 만엔이 넘어가는 게, 제법 값이 나가는 세트다.
“아, 앞으로도 유나하고 나하고는 같이 살...거니까... 이, 이정도는 구매해도 되...지않겠어?”
그 말을 하기가 부끄러운 듯 나에 언니는 접시로 얼굴을 살짝 가리면서,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우리들은 물론, 매장 내의 모든 직원들이 언니를 바라보았다.
느지막하게 말하는 언니의 ‘같이 살래?’ 발언은, 너무나도 요망했다.
나는 왜 만화적 연출에서 극상스러운 남자 주인공이 야시시한 순간에 코피를 흘리는 지 알 것 같았다.
심박수가 크게 늘어나며 심장소리가 콩딱콩딱 뛰는 게 들렸다.
나뿐만 아니라 나에 언니와 친한 미우도 크게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에 언니와 다음에도 함께 살게 될 건데 이정도야 뭐...
나는 기쁘게 그 선물을 받았다.
그런 나에 언니의 쇼핑 이후로, 알게 모르게 쇼핑은 살짝 낯부끄러운 성질의 것이 되어갔다.
그나마 나온김에 전원 다 같은 모양의 단체 티셔츠를 사자는 마미 선배의 제안이 점잖을 정도로, 반지를 주장하는 미우나 의미를 알지 모를 굉장히 야한 속옷을 사주려는 츠유의 선물을 보건데 아무래도 처음의 목적은 어디간지도 모른 채, 결혼 적령기의 여인에게 선물하기 상당히 애매한 물건들을 골라주었다.
“나 놀리기인가...”
“뭐래 멍청아.”
우리는 잠시 헤어졌다.
본래의 목적인 나에게 선물사주기를 모두 달성한 그녀들은 이케부쿠로에서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포켓몬 센터가 있는 선샤인 시티로 잠시 떠나고, 마미 선배와 나는 그 옆의 백화점인 파르코 백화점에 들러서 잠시 음반을 둘러본 후 카페에 앉아 있었다.
“그치만 반지나 속옷이나 식기세트라니... 여성에게 선물하기엔 조금 그런 거 아니에요?”
“하긴 반지는 좀 나도 그래... 사케이씨 은근히 발랑 까져서는 반지를 선물하려 하다니, 아까 쿠로가와씨 얼굴 봤어야 해 너.”
“요즘 미우가 저에게 장난치는게 심해진 거 같아요.”
“무섭다. 후배야, 난 네가 진짜 무섭다. 그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얼굴 하지 마.”
그치만 진짜 모르겠는걸
설마 나를 무슨 신붓감으로 여기는 것도 아니고, 다들 나에게 그런 선물을 하다니 이상하지 않아? 특히 츠유가 고른 그... 굉장히 야시시한 옷은 무슨 트위터에 가끔 보는 야한 그림들에 입힐법만한 외설적인 디자인이라 그걸 떠오른 나는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내 모습을 보며 절레절레 머리를 흔든 그녀는 마시던 음료를 턱, 하고 내려놓고는 일어났다.
“슬슬 우리도 선샤인 시티로 합류하자, 오늘 오후에는 분수 쇼를 한다고 했어.”
“오...”
“그러고보니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처음인가? 하긴, 그 동안에는 이런 이벤트들을 하지 않았지.”
나도 말로만 들어본 선샤인 시티의 분수 쇼는 도심 내에서 즐길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볼거리였다.
화려한 조명과 이 백개에 달하는 분수 구멍과 제법 비싼 수압 조절 장치, 그리고 3D 음향 시스템과 공연장에서 쓰이는 조명 시스템을 통해서 가끔씩 계절을 표현한 테마의 분수 쇼를 하는게 명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특정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과 콜라보를 해서 홍보 이벤트 겸 음악과 분수대 뒤의 스크린에서 비춰주는 영상으로 광고도 한다고 한다.
이번 공연의 테마는 다름 아닌 버튜버의 합작이라고 했나? 드디어 우리 회사도 이런 양지에서 광고를 할 만큼 진출을 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카페에 나왔다.
“아...”
“다녀 오세요.”
“너, 말 안해도 어떻게 알아?”
그런 나의 말 때문일까?
마미 선배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미 선배가 항상 아이스커피 마시고 나면 화장실 가는 거 몇 번 주의 깊게 보면 알 수 있거든요.”
아니 애초에 이 말은 당신이 둘 째 날에 나에게 알려준 정보잖아!
아이스커피 대신에 따뜻한 커피를 달라고, 자기는 아이스커피 마시면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된다고 말이야!
“으으, 나에게 상냥하게 굴지마 이 바람둥이.”
“선배 오늘 술 마셨어요?”
“시끄러 멍청아.”
그렇게 티격태격거리면서 나는 마미 선배에게서 그녀가 산 음반들을 받고는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그런 나의 뒤를 툭툭 건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설마 그녀들이 그새를 못 참고 우리를 찾으러 온 것인가?
“어... 누나 안녕?”
그리고 전혀 의외의 사람이 날 찾아왔다.
180의 키에 세련되게 정돈된 머리, 섬세하게 관리된 피부에 드는 윤기와 씨익 웃으면서 드러나는 건치는 확실히 사내다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야 너 코 세웠네? 평생 성형 안 할거라면서.”
“....아니 누나는 보자마자 그 말이야?”
핏이 드러나는 패션에서 짐작 가능한 몸매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프로게이머 답지 않는 다부진 체격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인스타그램에 일본에 잠시 들어왔다고 했던가?
“여 월드 클래스 패배자.”
이번 년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쉽에서 결승에서 패배한 동생놈은 아무래도 엄격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쇄국을 뚫고 입국한 모양이다.
“시끄러워 오타쿠 누나.”
서로에게 엿을 먹이는 말을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누나와 동생은 서로를 껴안았다.
극상스럽기 그지없는 부모 밑에 자란 두 어린이들은, 이제 서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당당한 성인이 되었기에 우리들은 말 없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아...”
그리고 마미 선배 입장에서는 낯선 남자를 껴안은 나를 보고 졸도할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벽을 짚고 드라마틱하게 주저앉았다.
세상이 무너진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아무래도 많은 설명을 해야할것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