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93화 (93/307)

〈 93화 〉 92화.

* * *

12월이니까 넉넉잡아서 올해를 기준으로 1년

작년 겨울 학기에 터진 코로나로 귀국길 봉쇄되었으니 1년

그리고 내가 고3때 동생은 한창 한국 프로팀에 숙소에 먹고 살았으니 1년

솔직히 한국에 있을 때 몇 번 만나긴 했지만, 서로 성인이 되고 나서 만난적은 처음이다.

그러니까, 그리움 상으로 3년만에 서로를 마주한 나와 동생은…

가족만이 느낄 수 있던 그런 감정의 교류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이쪽이 내 매니저 업계 선배님이신 마미 선배님.”

“하나카와 마미입니다.”

그리고 오해를 풀고, 낯선 남자가 아닌 남동생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해서 유창한 한국어 대화를 들려준 다음에야 경계를 푼 마미 선배가 인사했다.

“김세호입니다.”

그리고 오타쿠 답게 간단한 일본어가 가능한 동생이 인사했다.

저거저거, 누가 봐도 처음으로 일본인에게 일본어 말하고 좋아하는 오타쿠의 티가 난다.

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

나는 그녀석의 등을 한 대 치면서 말했다.

“성은 김이고 이름이 세호. 중국에서 게임하면서 돈 벌고 있는 사람이야.”

“… 방송인이 아니라 프로게이머에요.”

“아, 프로게이머요 그… 이스포츠?”

“네!”

그래도 웃는 얼굴 만큼은 누나인 내가 인정할 정도로 꽤 봐줄만하다.

그런데 마미 선배 설마 얼굴 붉히시는건가? 풉, 이 녀석에게?

“그런데 일본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비자 대부분이 막히지 않았던가?”

“아, 그래도 비즈니스 비자는 살아있어, 물론 그게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본에 최근 인지도가 올라가기 시작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이스포츠 팀에 연락을 받아서 이벤트성으로 등장한 모양이다.

물론 전 세계의 롤 유저중에서 30명 안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는 이 녀석이 일본의 팀에서 선수로 활동할 리는 없고, 아무래도 팬 미팅 비슷하게 준우승한 팀의 멤버로서 어드바이스 비슷한것을 하고 가는 그런 활동인 것 같다.

그래도 유학생의 발길마저 막을 정도로 입국이 제한된 요즘 시기에 일본에 들어오다니, 역시 보통은아니다.

이 이야기를 마미 선배에게 들려주자 그녀가 두 눈을 동그랗게뜨면서 물었다.

“에, 세호군이 그렇게 유명…해요?”

“어, 응? 인지도로 치면…”

대충 게임의 인구수와 인지도, 대회 상금같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 그런 게임이 왜 일본에는…?”

“PC 플랫폼 기반에 PvP, 컴퓨터 스펙을 가리지는 않지만 인터넷 회선의 안정성.”

“아.”

“그리고 게임의 분위기가 조금…”

세호가 거들었다.

일본어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회화의 30~50%는 알아먹을 수 있는지 간간이 부족한 설명을 하는 것을 보며 역시 오타쿠는 대단하다 싶었다.

유학을 준비했던 당시의 나보다 일본어를 잘하지 않는가?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모이기로 약속한 이케부쿠로의 선샤인 시티에 위치한 분수 광장에 도착했다. 1층보다는 3층에서 구경하기 좋다고 해서 세호 녀석과 티격대면서 장난을 치고 있자니 맞은편에서 나머지 일행들이 보였다.

거대한 피카츄 인형을 안고 있는 나에 언니

주인공의 모자를 쓰고 있는 미우

원피스에 나오는 밀짚 모자와 나루토의 닌자 서클렛을 착용한 츠유

이 세사람은 나를 보며 다가오다가 내 옆에 선 남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래도 내 남동생은 내 지인들에게 역귀 비슷한 존재인 모양이다.

“누, 누나 친구분들 왜들…이래?”

좋은 게임 실력과 준수(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것 같은)한 외모를 가진 녀석은 여성들에게 경계보다는 선망을 받던 녀석인데, 내 지인들이 동생을 보고 적개심을 품거나 경계하는것을 연이어 목격하자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몰라.”

그리고 이 사태를 인지한 마미 선배의 적극적인 설득 덕분에, 이 낯선 남자는 내 남자 친구(세호의 표정이 썩었다)같은 존재도 아니고, 애인(나는 헛구역질 하는 시늉을 했다)은 더더욱 아닌 흔한 혈육이라고 하니 그제야 경계를 푼 그녀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일본어는 서툴지만 일본어와 서툰 외국인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이 많은 그녀들은 능숙하게 나를 소재 삼아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 나에 언니와 미우의 목소리를 구분한 세호는 그 날의 이야기를 하면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깐, 그러고보니 이 녀석… 대충 내가 무슨 일을 하고 그녀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알고 있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매니저의 혈육과 방송인이 만나는 건바람직하지 못하다.

사태를 인지한 나는 그때서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바보같은 실수였다! 아무리 친하다 한들, 그래도 공적인 자리에 사적인 혈육을 우연히 만났다 한들 소개를 시키다니!

행복함에 취해 있어져서 풀어진 긴장끈을 다시 당기면서, 나는 녀석에게 한국어로 말했다.

“야야야, 누나는 쇼핑 중이니까 이만 들어가, 그리고 이 분들은 내… 회사 동료… 가 아닌 내 이웃! 가족! 그런 사람들이니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아니야!”

“어, 응? 어어! 알았어, 이만 실례 해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도 선샤인 시티의 오타쿠 매장에서 무언가를 산다고 했던가?

그래도 경우가 있는 녀석이라 그런지, 유리아의 목소리와 클레의 목소리를 알고 있는 그는 아는 티를 내지 않고 신사답게 물러났다.

아무래도 스토킹에 시달리고 악성 사생팬들에게 시달려 본 경험이 있는 남동생은 공과 사의 분리가 나보다 철저한 모양이다.

예의상 녀석을 열 걸음 정도 녀석을 따라다니면서 소소하게 하다 못한 인사를 나누었다.

그래도 녀석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고, 세계 무대에서의 패배 트라우마는 씻어 보낸 모양인지, 얼른 오타쿠 매장을 순회해보러 간다는 녀석의 등을 한대 찰싹 때려준 나는 그녀들에게 돌아갔다.

“아 얘들아 미안해, 갑자기 내 남동생이 나타나서 그만…”

하지만 무언가 분위기기 이상했다.

방금 전 까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어디가고, 다 잡은 고기를 놓친 것처럼 아쉬워하는 낚시꾼같은 짙은 후회감이 가득한 어조로 그녀들이 중얼거렸다.

“아, 유나의 어린 시절 모습들을 더 알고 싶었는데…”

“유나 언니의 어린 모습 사진… 후후후”

“언니의 흑역사…흐히히.”

어쩌면 세호는 공과 사를 구분해서 깔끔히 물러간게 아니라

그녀들을 피해서 도망친 게 아닐까?

그에게서 무언가를 더 알아내지 못해서 아쉽다는 듯이 입을 다시는 그녀들의 모습은 아이돌 보다는 스토커에 가까웠다.

나, 괜찮은거 맞지?

내가 다가가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녀들이 선샤인 시티에서 방문한 포켓몬 센터의 가게나 , 점프와 콜라보한 가게에서 파는 상품과 그곳에서 본 코스프레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나 진짜 괜찮은 거 맞지?

***

김세호는 자타공인 유명인이다.

그게 게이머들에게 한정된 유명세지만 최근 들어서는 게임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몇 건의 PC업체 광고나 에너지 드링크를 찍은 이후, 준수한 외모에 깔끔한 매너, 그리고 세계 대회 준우승의 경력과 몇 번의 중국 내부 리그의 우승 경력을 지닌 그의 인기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인기 투표 상위 3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좋았다.

그래서 중국이나 한국일 경우 알게 모르게 그를 따라다니는 카메라들이나 사생팬들을 신경쓰며 외출을 하던 그였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가 잘 알려지지 않는 일본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를 따라다닐만한 기자들은 일본에 들어오지 못했고, 일본에서는 아직 리그 오브 레전드는 몇 차례 세계의 무대를 두들겼지만 아직까지 본선에 올라올 정도로 크게 성장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번 방문 목적도 일본에 있는 롤 팬들을 위해서 일본 공식 단체의 초청을 받아 깜짝 방문한 것 아니었는가?

물론 방문 둘 째 날, 쇼핑몰에서 자신의 친누나를 발견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누나 정말 많이 바뀌었다.”

해외에서 혼자 지내다 보면서 늘게 된 혼잣말로 그는 중얼거렸다.

이전이라면 항상 완벽함을 추구하던 누나였다.

같이 있으면 실수를 하면 안 될것 같은 압박감을 주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었다.

가볍게 친해질 수는 있어도 진지하게 친해지기는 어려운 사람

스스로의 관리에 엄격하고 취미 생활 조차 자신의 꿈을 위해 바꾼 사람 아니던가?

그런 누나가 코로나 이후 선라이즈에 입사하고 오타쿠가 되었다니,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예전보다 가벼운 화장과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제 누나의 화장을 몇 번 보아온 그는 평소 쇼핑에 나가는 그녀의 화장이 피부의 톤 하나하나 까지 맞춘 공들인 30분 화장이 아닌, 나가기 전 가볍게 하는 5분 화장이라는 것을 구분했다.

그 인싸 괴물 누나가 무려 번화가 단체 쇼핑에 가벼운 화장이라니?

심지어 복장도 명품이 아닌 아는 사람들은 알아본다는 선라이즈의 공식 로고가 박힌 티셔츠 아닌가?

이전이라면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장 놀란것은 누나가 어깨에 힘을 빼고 편하게 말하는 또래의 여성 친구들이었다.

누나가 진심으로 같은 여성인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 또한 처음보았다.

아름다운 그 외모 만큼이나 적도 많은 누나였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누구 하나와 사귀지도 않고, 모두가 두루두루 어울리는 친구라고 강조하는 누나 특유의 인간 관리법은 어찌 보면 누나에게 진심을 가진 사람들을 항상 상처입혔다.

그런 그녀 앞에서 질투를 숨기지 못한 여자들은 많았고, 누나는 자신에게 도를 넘는 행동을 한 사람들을 가볍게 넘겨가지 않았다.

때문에 누나는 적으로 두기에는 무섭고, 친해지면 좋긴 한데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기에눈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런 누나는 학교가 바뀔때마다 항상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언젠가 진짜 자신의 모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진짜 ‘친구’들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래도 그토록 바래왔던 진짜 친구들을 사귄 모양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부담없이 서로에게 다가가고, 감정적으로 교분을 나누어도 인간 관계에 흔들림이 없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을 말이다.

“근데… 그거 누나의 일방적인 생각 아닌가?”

어째서 누나의 친구들에게서 사생팬들에게 느껴지던 진득한 사랑이 느껴졌지?

누나의 친구들이 누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단순히 마음을 터놓는 친구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웠다.

특히 피카츄 인형을 안고 있던 조그만 여동생같던 그 사람

자신을 1년 넘게 따라다니는 사생팬이 떠오를 정도로 진지하게 보였다. 조만간 사고를 하나 내더라도 이상함이 없는 그런 사람이다.

다른 두 여자들도 알게 모르게 누나를 친구라고 표현하기에는 꽤나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그 작은 여자 만큼은 진심이 느껴졌다.

누나 괜찮은걸까? 그런 생각이 잠시 지나쳐갈 정도로 말이다.

“뭐… 알아서 잘 하겠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는 고개를 털고 장바구니에 한정판 블루레이를 쓸어담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게 자기 누나 걱정이다.

사막에 떨어져도 여왕이 될 자기 누나다.

그것 보다는 애니메이션이나 보면서 다다음 날 있을 미팅에 어떤 일본어를 말해야 할 지 고민하는 게 더 바람직했다.

그렇게 프로게이머 김세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그토록 바래왔던 일본의 오타쿠 성지 순례를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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