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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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럽게 불려나온 패션쇼의 진행은 간단했다.
주어진 테마에 맞게 해당 제시되는 사람들(사전에 찍어둔 선라이즈의 스태프들의 사진이라고 한다)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각자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준다.
단, 여기에 조건이 붙는데 책정 가능한 금액은 2만엔 이하, 거기에 검색이 가능한 사이트는 일본 아마존, 라쿠텐 (일본의 11번가), 그리고 유니클로 쇼핑 홈페이지 단 세군데다.
주어진 시간은 10분이고 이 안에서 어울리는 상의와 하의, 그리고 악세사리를 고르는게 포인트다.
그야말로 평소의 그 사람의 패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획이다.
팬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자신의 최애가 어떤 패션을 선호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 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면서 경쟁 심리를 부추기면서도 ‘패션에 정답이란 없다’라는 말처럼 객관적인 승리와 패배가 결정되지 않는 방식의 콘텐츠였다.
그야말로 신과 같은 기획!
방송을 기획했을 거라 예상되는 이나리씨의 대단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힘차게 첫 문장을 읽었다.
“대망의 첫 테마는 ‘겨울날 외출 패션’입니다. 어라, 이게 다인가요?”
“에, 그거 내가 고른 테마인데 어때?”
“으음, 개인적인 추가 의견을 제시하자면 외출의 거리를 지정해두시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요즘에는 라운지 웨어, 마일 웨어처럼 자신의 집으로부터 1마일 이내로 입는 옷과, 더 멀리 나가는 옷은 다른 패션을 잡아야 하니까요. 특히 겨울 날 외출 같은 경우에는 기온에 따라서 외투를 추가해야하니까요.”
그만큼 겨울의 패션은 까다롭다.
보온과 더불어서 패션을 챙겨야하고
이를 고려하다보면 소재까지 생각해야한다.
그만큼 다양한 아이템을 고를 수 있지만
그 매치업을 잘못하면 쇼핑에 실패하기 쉬운 아이템이 바로 겨울 옷들이다.
“으응, 다비는 추위를 잘 안타서 잘 몰랐네. 데헷.”
그리고 이렇게 개인마다 느끼는 추위의 역치가 다르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세세한 룰을 정해주었다.그 룰은 아래와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3정거장 이상 이동 하면서’
‘1시간 이상 시내를 돌아다닐 것’
‘날씨는 영상 5~10도’
‘외투 비용으로 5천엔을 추가’
기획에 참여한 버튜버들은 명확한 기준점이 생기고
시청자들에게도 갑자기 등장한, 어쩌면 낯설 수 있는 나의 존재감을 새겼다.
ㄷㄷ 도대체 저 메이드 누구임?
정리하는게 확실하네, 뭔가 진짜 프로같아 보여
아, 메이드 라에요. 기존의 집사님 대신해서 공식적으로 방송에서 MC맡기 시작한 버튜버에요.
아무튼 뭔가 프로같아 보여서 좋다.
이걸 보면서 설마 여기까지 이나리씨가 설계한건가? 하는 생각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얀 머리카락에 같이 염색된 듯한 그녀의 눈썹이 찡긋 움직이면서 윙크를 했다.
… 진짜 이나리씨는 전설이구나.
설마 여기까지 태클을 걸 것까지 예상한건가?
아무튼 나와 그녀가 시선교환을 하고 있을 무렵, 본격적으로 버튜버들은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겨울이다 이거지? 그것도 전철을 타고 다닌다라...”
“끄응, 메이드 씨 이상한데서 디테일 추가해서 어렵단 말이지.”
에이아와 다비가 그렇게 의견을 말하면서 신중하게 검색을 시작했다.
[여성 겨울 옷] [겨울 패션]에서 시작한 검색어는 [히트텍 내복] [폴라폴리스 옷] [모직 코] 등 전문적인 용어로 뻗쳐나갔다.
“후후, 겨울철이면 이거! 이거!”
“앗, 도라에몽 티셔츠다!”
그리고 한꺼번에 세 홈페이지의 사이트를 띄워두고, 여러 탭을 번갈아가면서 익숙하게 가격대와 브랜드를 골라가면서 쇼핑 카트에 담는 이나리와... 다소 걱정이 되는 미카엘의 음성을 뒤로하고 나는 가급적이면 비는 오디오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들끼리 혼잣말이 대화가 이어져서 내가 걱정하던 정적인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에, 다비는 약간 캐쥬얼 파?”
“응, 아무래도 활동적인 게 좋아서 평소보다 큰 사이즈를 선호해서 입어.”
“그런데도 치마?”
“응, 드로워즈+치마는 진리야!”
이런식으로 서로가 고르는 옷들을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옷을 고르는 와중에도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이는… 놀랍게도 미카엘이었다.
도라에몽 후드 티, 드래곤볼 도복, 나루토 서클릿을 쓸어담는 그녀는 패션보다는 돈이 생겨서 신난 어린 아이의 막무가내의 쇼핑에 가까웠다.
시청자들 또한 그녀를 말리지 않고 ‘솔직히 드래곤복 도복은 완전한 옷 보다는 살짝 찢겨진 전투 후 도복이 멋있지’ 라는 말로 그녀를 홀렸다.
아무튼 10분이 시간의 지나자, 나는 종을 울린다음 그녀들의 결과물을 방송의 메인 화면에 띄웠다.
“먼저 첫 번째 라운드의 결과를 발표합니다!”
모델이 된 여성은 아주 평균적인 일본 여성의 신장과 체형이었다.
비유하자면 코이즈미 언니처럼 살집이 살짝 있고, 키는 155~160사이의 신장의 여성이다.
그런 실제로도 길을 가다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에게 버튜버들이 어떤 옷을 골랐을까?
나는 가장 먼저 다비부터 물어보았다.
“먼저 다비씨부터 진행할게요, 과감한 노출의 숏 스커트와 롱 스타킹, 그다음으로는 하얀 셔츠와 검은 가죽 자켓인데요. 너무 춥지 않을까요?”
다비의 옷을 매치시켜보면 자연스럽게 연예계의 스타들이 떠오른다.
굳이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가죽 소재의 섬유를 적극 활용한 약간 걸크러쉬 느낌의 한국의 팝스타?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패션의 코드였다.
“문제없어요! 어차피 겨울에 가면 따뜻한 실내에 많이 머무르잖아요? 온풍이 나오는 온실에 들어가는데 너무 더운 패션을 해도 문제라구요.”
일리있는 말이다.
겨울에 입는 옷이라고는 해도 무조건 추운 환경에만 노출되는 것이 아니다.
실내와 실내를 이동하고 그 이동 수단을 자동차 등으로 외부 노출을 줄인다면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다.
그래, 이 테마가 ‘겨울에 입을 만한 옷’이라는 테마가 아니라면 말이다.
“아쉽게도 이번 테마는 외출입니다. 실내복으로는 적절할지 몰라도 너무노출이 커서 춥지 않을까 싶네요.”
다비의 당했다~ 라고 어필하는 몸짓과 표정을 뒤로하고 기대에 가득 찬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기다리던 에이아의 옷을 살펴보았다.
“검은 케이블 니트 가디건과 목까지 덮는 스웨터셔츠네요? 치마도 짙은 채도의 검은색을 맞춰서 전반적으로 어두워보이는데 하얀 스웨터셔츠가 돋보이네요. 여기에 외투는 두 종류네요?”
검은 상의와 치마인데 가디건 속의 하얀 셔츠가 눈길을 잡는다.
늘어나는 루즈핏이 아닌 체형에 딱 맞는 날씬한 라인을 강조하면서도 깔끔한 소재 마무리가 귀여운 인상을 남긴다.
강렬한 인상의 다비의 패션과는 다르게, 마치 애니메이션 속의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 아이가 입을만한 귀여운 옷이 떠올랐다.
“으음, 아무래도 엄청 추운날엔 엉덩이까지 가리는 긴 웜 코트, 적당히 추운 날에는 피코트로 갑갑함을 주기가 싫었어.”
“확실히 겨울철이라고 무조건 긴 옷만 입고 다니기에는 일본에서는 조금 부담스럽죠. 특히 겨울철 전철 안은 은근히 덥구요.”
툭만하면 영하로 치고들어가는 한국과는 달리
좀 더 적도선에 가까운 탓인지 그렇게 한파가 몰려오지 않는 일본의 도쿄는 영하를 찍는 날은 일년에 고작해야 열흘이 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는 전철로 이동한다면 오히려 밀폐된 공간에서 지하철에 달린 온풍기 덕분에 땀을 흘릴 정도로 더워진다.
그 경험을 겪은 적이 있는 나와 시청자는 에이아의 선택을 긍정했다.
“응! 그리고 코트는 전반적으로 기장만 맞추고 품은 넉넉한걸로 입었어. 이 옷만 입으면 모를까, 코트는 한 번 사면 다양한 옷들과도 함께 하잖아? 겨울 옷들의 부피가 나가니까 일부러 좀 큰 걸 골랐지.”
선라이즈 제일의 인싸 버튜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에이아의 옷 선택은 상당히 좋았다.
굳이 말하자면 도쿄 시내에서 볼법한 패션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것 치고는 꽤나 심플해보이는 검은색 계열의 패션인데, 그래도 모델의 체형에 어울리는 핏들을 골라서 그런지 촌스러워보이지는 않았다.
뭐라고 해야할까, 세미 정장에 가까운 그런 이미지를 주는 색감의 이유가 궁금했다.
“검은색이 강해보이잖아! 여성이라고 약해보이는 분홍색만 입는 건 아쉽다고 생각해.”
“그 말! 접수하도록 하죠!”
에이아의 말을 받은 것은 이나리였다.
하얀 귀를 쫑긋거리면서, 마치 주인공처럼 멋진 포즈로 시선을 끈 그녀는 자기가 고른 아이템을 보여주었다.
“하, 겨울이라고 소재 뚱뚱한 옷만 입고 다니기에는 아쉽단 말이죠! 여성의 진정한 매력이란 무엇이냐! 살짝 보일듯한 라인 노출과 그동안 가꾼 몸매의 어필, 그리고 상큼한 여성만 소화 가능한 색깔의 조화!”
오오
“그렇게 해서 이몸이 고른 옷이야 말로 겨울의 끝판왕! 핑크 코트! 무려 아마존 프리미엄 세일로 50% 한 가격이 1만4천엔! 이걸로 포인트를 잡고 들어간다!”
확실히 그녀가 고른 분홍빛 벨트 롱 코트는 그 하나만으로도 완벽한 패션 아이템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속에는 분홍을 받춰주는 연한 분홍빛의 롱 터틀넥 니트 가디건!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을 그대로 노출시켜준다! 목까지 덮는 따스한 코디로 보온은 완벽!”
“오오오.”
“밝고 선명한 색깔의 핑크로 시선을 잡았으면 아래는 심플하게 그레이 체크 플레어 스커트! 그야말로 완벽한 어시스트의 색깔이지! 소재는 당연히 양털로 골라서 부족한 보온을 채운다!”
“확실히 한 가지 색깔로 통일하면 눈이 아파보이죠.”
“마무리는 이것! 이번 유니클로의 신상! 마치 멀리서보면 명품처럼 보이는 체크무늬 목도리!”
굉장하다!
이게 바로 선라이즈의 대표되는 이의 옷 고르는 솜씨!?
확실히 여성만 소화 가능한 핏과 색감을 10분만에 고른 이나리의 센스는 탁월했다.
나 같은 체형의 여자에게는 별로지만, 뭐라고해야할까… 그래, 나에 언니가 이런 옷을 입는다면?
언니가 분홍분홍한 옷을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머플러 사이로 쏙 집어넣고 해맑게 웃는 얼굴을 상상하니… 1라운드의 승자는 이나리씨였다.
“저기, 저기 나는!?”
미안하다 미카엘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일본 여성이라고는 해도, 한 겨울철에 찢어진 드래곤볼 도복을 입고 다닐 정도는 아니야…
애초에 초 사이언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옷을 입고 돌아다닌단 말이야!
“평가가 필요할까요 미카엘님?”
“너어!”
모두가 빵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날 갑자기 시작된 방송은 세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일상적인 소재와 제각각의 패션 센스를 가진 4인의 버튜버들과 그 사이를 중재하는 적절한 중재자와 오디오가 허전하지 않는 재치발랄한 토크의 연속, 이 모든게 어우러져 선라이즈 공식의 최고 동시 시청자수 5만명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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