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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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옷을 고르면서 이야기를 하는 방송이 있고난 직후
버튜버들에 관련된 덕질을 하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한 글이 올라왔다.
[우리들의 오시들의 옷 취향에 대해서 Araboza (스압 주의)]
안녕 버생들아
요즘들어서 선라이즈 공식 계정에서 다양한 방송 하는 거 알지?
정확하게는 본래 올리던 애니메이션인 선라그라, 가끔씩 집사님이 나와서 소개하는 회사 대형 이벤트 영상과 메이드 라가 주로 하는 생방송 이렇게 구분해도 될 듯.
너희들도 알다시피 요즘 메이드 라님께서 주최하시는 방송 기획 하나하나가 좀 대단해.
세대간 초월 토크쇼도 재미있었는데 진짜 재미는 방금 있었던 패션 방송인 듯
너희들도 알다시피 버튜버들이 오프라인 토크를 하는 경우는 드물잖아.
가끔씩 그녀들이 일상 토크를 하면서 이런 저런옷을 샀다거나 좋아한다는 걸 통해서 대충 아 우리 오시는 이렇게 차려입겠구나 하면서 상상하잖아?
그런데 옷을 전문적으로 이야기 하는 건 어제가 처음 이었을거야.
근데 어제 방송이 조금 전문적인 용어들이 많이 나와서 의류업계에 일하는 나도 당황함;;
아마 메이드는 최소 의류업계 일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패션에 엄청 관심 많은 듯ㅋㅋ
옷이 어떻고 핏이 어떻고 소재가 어떻고 하는거 모르는 사람들은 어려웠잖아
그래서 내가 심플하게 세 줄 요약 해줌
1) 다비의 패션 스타일
어른 느낌 나는 가죽 소재로 된 옷들 좋아함
에반게리온의 미사토 누님이나 원신의 진처럼 좀 딱딱한 분들이 입을법한 이미지라 보면 됨ㅇㅇ
아마 체구 작은 다비가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서 이런 옷들 좋아하게 되는 거 같은데 본인에게도 어울린다고 하니 얼른 금손 분들은 짝 달라붙는 가죽 바지 입고 껌 씹는 다비 그려주세요.
결론 : 다비 그 요망한 꼬맹이가 그런 패션 좋아한다는 게 너무 비도덕적이라고 ㅋㅋ 아 물론 좋다는 의미임
2) 에이아의 패션 스타일
패션 보다는 편안하게 입는 거 좋아하는 듯
머리 짧은 보이시한 캐릭터라면 다 들어맞을 듯, 나는 프로듀서라 그런지 키쿠치 마코토나 미타케 란같은 애들이 떠오르더라
선라이즈에서 가장 여성들에게 인기 많은 인싸답게 좀 멋진 형님 느낌의 본인과 어울리는 하렘 용사님 다운 패션이니까 얼른 인싸 용사가 메이드 꼬시는 그림 그려주세요.
결론 : 에이아가 고르는 옷들은 몸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픽해도 손해가 아님ㅋㅋ물론 나는 아니고ㅜㅜ
3)이나리 패션 스타일
패션을 위해서라면 불편함을 감내하는 스타일
귀엽고 여성스러운 소녀감성의 패션이라 앞서 말한 에이아의 스타일과 정반대임, 섹시한 스타일의 옷부터 귀여운 핑크한 느낌의 옷 모두 어울리는 패션을 고르는데 솔직히 다 좋았음
평소에는 얌전히 후배들 도와주던 이나리가 왜 이 콘텐츠에 진심이었는지, 정말로 집에 옷으로 가득 찬 방이 있다고 말 할 정도로 프로였음.
결론 : 대장님은 대장님이다. 메이드도 인정한 선라이즈 최고의 멋쟁이 다운 끝판왕의 이나리.
4)미카엘의 패션 스타일
미카엘은 귀엽다.
미카엘이 고르는 옷은 다 재미있었다.
미카엘은...
결론 : 메이드와 함께 쇼핑가면서 얼른 옷 고르는 눈 생겼으면 좋겠음 ㅎㅎ 다큐멘터리로 안찍어주려나...]
아ㅋㅋㅋ미카엘 진짜 뭐냐고
그치만 우리 천사님은 인간계의 패션은 모르는 걸...
그래도 오늘 좀 재미있었음, 예전에 4기생들이 했던 온천 실황 떠오를 정도로 아슬아슬 하게 본인들 취향 다 밝혀줘서 좋았어
본인 여자인데 스샷 다 떠놨다. 이제 이대로 사입고 나가면 나도 도쿄의 패션퀸
응 무리야 안 돼
“여어, 메이드 씨 뭐해요?”
고작 30분 전에 끝난 방송을 이렇게 정성들여서 요약한 글을 보는 나의 머리에 수건이 덮어졌다.
“어라, 이나리 님?”
“이나리 님은 무슨, 그냥 편하게 이나리라고 불러줘~”
나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백발의 여인이 귀엽게 윙크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선라이즈의 전설 이나리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와 뛰어난 게임 실력, 그리고 타고난 연기력으로 성우 지망생이라고 말해도 믿을만한 캐릭터 연기력으로 선라이즈의 암흑기를 돌파해낸 전설적인 여인
나도 버튜버를 모르던 시절 하얀 여우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면서 버튜버를 알린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같은 회사에 있는 이상 그녀를 만날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업계전설을 만난 소감은
“헤헹, 성실하구나? 벌써 방송 반응을 챙겨보고.”
“아, 네 아무래도 매니저다 보니까...”
“흐으응, 아직까지 매니저다 이거야?”
참으로 요망한 여우같은 사람이었다.
하얀 눈썹이 익살스럽게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캐려는 듯 나를 수상하게 바라보는 그 두 눈동자에는 나를 골리려는 의지가 충만했다.
그러면서도 초면에 장난을 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불쾌하지 않으니, 왜 사람들이 그녀의 장난에 기분좋게 당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저는 여기에 쿠로가와 나에 언니의 매니저로 들어온거거든요!”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몰래 카메라에 당했는데도 바로 감정을 다잡고 MC를 진행하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
“에이, 교수님의 깜짝 쪽지시험에 비하면 이 정도야...”
“유나는 내가 인정하는 방송인의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옳지 옳지.”
이나리 씨는 뜬금없이 나를 쓰다듬었다.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말 그대로 여우같은 여인이다.
“여어, 유나씨 이제 슬슬... 앗, 죄송합니다.”
대기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에이아의 유우키 아오이씨가 문을 닫고 나가려고 하는 것을 내가 뛰쳐나가서 막았다.
무언가 오해를 한 것 같다.
“저기, 유우키씨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저저저는 유나씨의 하렘에 들어갈 생각 없으니 일단 이 팔을 놓고 이야기 해주실래요?”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냥 이나리씨가 절 쓰다듬는거라고요!”
“저리가요 이 무지성 백합 하렘 마귀!”
...
상처받았다 솔직히!
아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
그냥 방금은 이나리 선배가 방송 경력 짧은 후배를 위로하는 그런 감각 아니었어?
억울하다 솔직히.
나는 억울한 시선으로 이나리 씨를 살펴보았다.
장난스럽게 한 쪽 눈을 감고 혀를 내민다.
그러니까 이것도... 그녀의 장난인 셈이었다.
“유,나,씨,장,난,치,기,좋,네,요,”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렇게 한 음절씩 말했다.
까마득한 방송 선배가 나에게 이렇게 편하게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해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어색하게 이나리 씨에게 미소로 답한 뒤, 오해를 한 유우키를 최선을 다해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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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이나리 선배님의 장난이었군요.”
“그러니까요. 애초에 단순히 머리 쓰다듬는 것 가지고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다니, 뭔가 유우키 씨답지 않네요.”
“에? 저 답지 않다니요?”
“뭔가 좀 더 차분하고 터무니 없는 일에 태클을 자주 거는 그런 정상인 느낌이 나실 줄 알았거든요.”
유우키 아오이씨는 선라이즈 입사 후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시작한 평범한 여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타쿠 특유의 손만 잡아도 연애를 하니 마니 하는 그런 과장스러움이 없다고 했는데
지금도 나를 피하듯 의자를 슬쩍 옮기는 걸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저기, 저희 버튜버 내에서 유나 씨 소문에 대해서 모르시나 본데.”
“네?”
“... 그냥 말 안할게요. 그냥 인과응보라고 생각하세요.”
마치 변태 앞에서 자신의 순결을 지키려는 듯한 방어적인 동작으로 몸을 가리는 것을 본 나는 기가 찼다.
아니 왜, 내가 뭐 어때서?
“아무튼 유나 씨 이제 슬슬 돌아가실 시간인데 그 전에 유나 씨 데려오라는 부탁을 받았거든요. 잠시 시간 좀 내어주실래요?”
“네? 누가요?”
“누구긴요, 유나 씨는 나에 언니의 매니저시잖아요? 나에 언니가 유나 씨 보고 싶다고 얼른 데려오래요.”
어 언니가?
나를 일부러 피하고 있던 거 아니였어?
서둘러서 옷을 갈아 입은 나는 유우키 씨를 재촉했다.
손을 잡는 것 까지는 바라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나를 무슨 독극물 취급하듯 조심스럽게 대하는 게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나에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댄스 연습실 바로 옆에 있는 휴게실이었다.
이전에 2기생들의 연습을 돕고, 내가 무대를 두려워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 그 옆에 있는 휴게실은 몇 번의 보수 공사를 하더니 탈의실만 달랑 있는 공간에서, 간단한 샤워실도 딸린 훌륭한 공간이 되었다.
나는 무려 3일만에 샤워를 하고 나온 나에 언니를 볼 수 있었다.
“나에 언니!”
“유나!”
아직 바디 워시의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 좋은 체취가 나는 언니를 나는 꼭 안아주었다.
그러고보니 언니와 이렇게 떨어진 적은 없었다.
도쿄와 사이타마에 별거(?)하고 있는 생활이긴 하지만 매일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었으니까, 사흘 만에 만난 언니 또한 내가 너무나도 반가운지 나를 강하게 껴안았다.
으응, 언니 팔 근육이 붙었구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 언니가 내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나도 언니의 볼에 가볍게 뽀뽀를 돌려주었다.
누군가가 우우 하는 듯 한 야유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유나 왜 이렇게 날 피했어?”
“에? 언니가 절 피하신 거 아니었어요?”
“무슨 소리야? 내가 유나 없이 살 수 있을 거 같아?”
“네?”
일에 대한 문자도 가볍게 흘려보내고, 나에게는 방송에만 당분간 집중하라는 식으로 말해서 나는 당연히... 언니가 나를 피하는 줄 알았다.
최근에 방송과 연습을 병행하고 있는 언니를 돕기 위해 회사에 오려는 나를 적극적으로 말리기에 그런 생각은 더더욱 굳어졌다.
언니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나를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근무 시간에만 보지 말자고 했지, 퇴근하고 나서는 보지 말자고 하지 않았잖아?”
“어?”
“설마, 내가 유나를 피한다고 생각... 한거야?”
아까의 미소가 눈녹듯 사라지고 얼굴에는 이내 슬픔이 가득했다.
큰일이다.
언니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지면서 내 정신도 어두워진다.
언니는 한 번 삐치면 특유의 우울모드에 들어가서 굉장히 달래기 어려워지는 사람이 되는데
어쩌지?
“아,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 한 게 아니라...”
평소라면 자책 모드로 빠져드는 언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듯 눈을 치켜뜨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누군가를 향한 적개심을 품은 어조로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왜 퇴근하고 나서 단 한 번도 날 찾아오지 않았어? 혹시 또... 다른 ‘친구’ 가 생긴거야? 누구야? 미카엘? 미우? 이나리?”
목소리에 살기가 뚝뚝 떨어진다.
귀여운 목소리로 서슬 퍼런 어조로 말하니까 한겨울인데도 소름이 돋는다.
“유나 또 누구랑 어울리느라 나를 신경 쓰지 못해준 거야?”
처음 일본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해 본 입국 심사장 이후로 말문이 막힌다.
어쩌지?
나는 도움을 구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유메미씨나 유우키는 흥미롭다는 듯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들의 매니저들은 어색하게 날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유나, 똑바로 앉고 내 눈을 바라보고 대답해."
오늘의 언니는 확실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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