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99화 (99/307)

〈 99화 〉 98화.

* * *

“미안해요 나에 언니.”

유우키 아오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동기에게 공포감을 느꼈다.

원래 착한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 법이다.

“아니야 유나는 잘못한 게 없어.”

쿠로가와 나에를 만난 첫 인상은 마치 작은 인형과도 같이 존재감이 없던 소녀였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연상의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가?

자신의 여동생보다 어리고 마른 체형의 그 여성은 걷는 것조차 불안해보였고

어떻게 저런 가녀린 몸으로 방송이라는 힘든 일을 진행할까? 하는 동기에 대한 우려감을 절로 일게하는 불안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 그러면….”

“유나는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그랬던 그녀가 바뀌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오타쿠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동기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바뀌었다는 소문을 믿지 않았다.

마음속의 방문을 걸어 잠근 소녀처럼 얌전하게 방 안에만 지내던 소녀가 활발하고 능동적으로 바뀌었다는 말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바꾼 사람은 다름 아닌 소문의 한국인 매니저, 유나라고 한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한국의 아이돌 회사에서 사장님이 거액의 금액을 주고 데려온 사장의 마지막 희망이라 불리는 여인이라고 했다.

“미, 미안해요 언니…”

“아니야 유나는 잘못한 게 없다니까 그래도?”

그렇게 오타쿠들이 잔뜩 있는 회사에 들어온 자신과도 비슷한 입장의 그녀는 짧은 시간에 여러 전설을 써내려갔다. 어찌보면 낙하산에 가까운 입사 방식으로 들어왔지만 어린 나이에 천재적인 기획력과 진행력으로 제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대단한 업무능력 보다도 다른 소문이 버튜버들 사이에서 흘렀다. 사실 매니저 유나는 아무렇지 않게 회사 소속의 버튜버를 꼬시는 서큐버스라는 소문 말이다.

선라이즈 최고의 탕아, 유나에게 넘어간 버튜버만 해도 이미 열 명이 넘는다는 소문이 흘렀다. 오죽하면 이성애자인 사람들마저 강제로 반하게 해서 동성애자로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도는가?

“아,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럼 언니가 틀렸다는 거야?”

“네?”

“나는 유나가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하는데 유나는 자꾸 잘못 했다고 말하잖아. 그러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겠네?”

유우키는 무릎을 반 쯤 꿇으면서 자신의 버튜버에게 사과하고 있는 유나 매니저를 보았다.

큰 키에 잘 가꾼 몸매, 겨울임에도 촉촉해 보이는 피부, 몸 선이 드러나는 옷 사이로 보이는 튼튼한 근육들, 트러블 하나 없는 매끈한 얼굴, 한 듯 안한 것처럼 보이는 화장

타고난 외모를 본인의 노력으로 완벽하게 가꾸었다.

지닌 능력 또한 그 외모만큼이나 대단하여, 노래 게임 외국어 기획 멘탈 그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녀의 우상인 이나리조차 저 매니저의 방송 진행력을 칭찬했단 말인가?

방금 방송을 같이 찍은 그녀는 솔직하게 생각했다.

‘유나 씨가 뭐가 매니저란 말인가? 그냥 회사 소속 버튜버지’

그리고 그 대단한 매니저 겸 버튜버는 오 분 넘게 안절부절 자신의 버튜버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불륜이 적발난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심각한 장면이지만... 유우키와 다른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그, 그렇다면 언니 화 풀고 이제…”

“나 화 안 났다니까?”

유우키는 큰 키의 완벽해 보이는 우아한 여성 유나가 한참 작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쿠로가와에게 쩔쩔 매는 이 상황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처음에 쿠로가와가 ‘다른 친구 누구 만나?’ 라는 말에 자신도 섬뜩함을 느꼈지만 이내 그녀의 삐침이 유나에게 집중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정확하게는 웃음기를 머금으면서 유나를 추긍하는 쿠로가와의 얼굴은 바람난 애인을 따지고 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순진해 보이는 사람을 골리는 악동의 얼굴에 가까웠다.

‘근데 쿠로가와 씨… 화 난게 아니라 그냥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거 같은데?’

정말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유나는 알지 못했지만

쿠로가와 나에는 표정이 관리가 되질 않는 지 목소리로는 짐짓 화난 척 말을 하지만, 얼굴은 헤실헤실 웃는 게 아무래 봐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 그런 느낌이다.

만약 유나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만 했더라면 심각한 추궁이 아니라 무언가 소심해 보이는 유나를 놀리고 있는 짓궂은 연상의 장난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 평소의 유나라면 그녀는 금세 추궁하는 말에 섞인 웃음기를 읽어내고 따지고 들었겠지.

평소의 유나라면 말이다.

‘그러고보니 오늘 심리적으로 많이 당했지 유나 씨…’

장난의 달인 이나리의 눈에 들어온게 화근이다.

전날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몰래 카메라에 당한 즉시 방송에 끌려나와서 본의 아니게 일을 하게 된 유나였다.

생방송 진행 도중에도 다소 짓궂은 편인 다비와 이나리의 장난도 받아 내다보니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위축된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장난이라고는 중학생인 호시무라보다 못 치는 순진한 쿠로가와의 장난에도 넘어간 상태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짓궂은 장난처럼 보이긴 했지만 뭐 어떤가, 버튜버들을 유혹하고 다니는 저 서큐버스같은 여성은 조금 고삐가 채워져야 한다고 유우키는 생각했다.

***

한 참 삐친 나에 언니를 달래고 있는 나를 구원해 준 것은 춤을 연습하러 온 유메미씨의 매니저, 에이비 선배님이었다.

“자아 자아, 무슨 일인지 자세한 내막은 저도 모르지만 매니저와 아이돌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면 큰일 나요 큰일!”

우리의 촌극이 우습게 보였는지 다소 웃음기를 머금은 유메미씨의 매니저 에이비 선배가 다가와서 내 손과 나에 언니의 손을 맞잡게 했다.

“서로 섭섭한 거 있으면 깔끔하게 털고 풀어요. 어차피 오래 볼 사이인데 관계 틀어지면 그 사이에 낀 저희들도 좀 봐주세요. 유나 후배, 쿠로가와 씨.”

언니의 삐친 목소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언니의 말을 확대 해석해서 언니를 피하다니… 도대체 왜 그랬을까?

언니는 나를 배려해서 매니저 일도 안 시키고 나에게 방송 준비나 피드백같은 것에 열중하라고 본인이 귀찮은 일을 다 떠안았는데…

나는 그 사이에 게임이나 하고 미우랑 노닥거리기만 했으니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내가 평소에 언니를 조금 편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기는 한데, 그런 언니의 호의를 멋대로 이용하다니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이 짙게 들었다.

사실은 나 인간 쓰레기가 아니었을까?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유나, 네가 그랬지? 사람에게 할 말이 있으면 눈을 똑바로 마주하라고 말이야.”

확실히 처음의 겁 많던 언니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런데 이 말을 지금 나에게 이렇게 쓴다고?

“아 네? 네, 네. 제가 그랬죠.”

“내 눈 똑바로 봐.”

나는 그제야 겨우 언니의 눈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사흘 만에 똑바로 바라본 나에 언니는… 너무나도 달랐다.

사흘 만에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듯, 언니는 전에는 없던 당당한 태도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송에서만 이따끔 보이던 카리스마 넘치는, 자신감 넘치는 나에 언니는 밤의 요정이 아니라 밤의 여왕 같은 기세로 내 얼굴을 붙잡았다.

계속된 운동으로 건강을 되찾은 그녀는 거칠게 내 얼굴을 끌어당기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너무 급작스러웠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갑자기 애정 표현을 해서 당황한 나는 언니를 밀치려고 했으나 마음속의 죄책감이 그것을 말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에 언니와의 접촉이 그립기도 했다.

그렇게 진한 키스를 나눈 언니는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회, 회, 회사 내에서 여, 연애는 금지 사항이에요 쿠로가와 씨…”

“연애가 아니라 제 매니저에 대한 ‘훈육’이에요. 그렇게 봐주세요 에이비 매니저님.”

“…네에….”

훈육?

나 훈육당한거야?

마치 조련 당하는 강아지처럼?

아니 언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저기 언니? 이건 조금…”

“유나야.”

내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단호하게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내 말을 잘라낸 언니가 나를 다시 껴안았다.

“네?”

“보고 싶었어.”

내 반론을 듣지 않겠다는 듯

그 작은 체구로 나를 껴안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반사적으로 언니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멍하니 뒤를 바라보았다.

급작스러운 우리의 키스를 보고 충격에 빠진 유우키와 유메미씨의 얼굴 뒤로 문이 슬쩍 열리더니 고개를 문틈으로 빼꼼 집어넣은 채로 휴대폰을 들고 있는 이나리씨가 보였다.

잠깐 이것도 기획인거야? 깜짝낚시? 아니면 그냥 이나리씨가 몰래 사진을 찍은건가?

나는 이나리씨의 장난 속에 있는건가 아니면 현실속에 있는건가?

이게 그 닌자 만화에서 보던 무한...장난인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소주를 깡으로 두 병을 마신 것처럼 취기가 올라왔다.

아무튼 언니의 화가 풀린 것 같으니… 오늘의 일은 이걸로 된 거 아닐까?

언니는 방금 전의 키스로 화가 풀린 듯 편안한 숨으로 나를 껴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이거면... 된 거겠지?

정말 폭풍같은 하루였다.

매니저의 일과 방송인의 일, 두 가지를 한꺼번에 겪고 나니 정말로 지쳤다.

정말로

언니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리고 가기위해 니아 선배가 다시 모습을 보이기 전 까지 나와 언니는 그렇게 오랫동안 포옹을 하면서 못 나눴던 재회를 마무리 했다.

정확하게는 나를 껴안은 언니가 피곤한 듯 잠에 들면서 이 사태는 끝났다.

다시는 나에 언니를 화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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