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00화 (100/307)

〈 100화 〉 99화.

* * *

사람은 술에 마시지 않고도 취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왜냐면 지금 내 경험이 그렇다고 말해주고 있으니까

내 집에 놀러온 꼬맹이와 같이 롤을 하다가 지각하는 그녀를 도와주고자 회사로 갔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이나리의 계획이었고, 몰래 카메라였다.

깜짝 놀란 감정도 가시기 전, 나는 계획에도 없는 깜짝 방송에 등장해서 겨우겨우 생방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피곤한 하루가 마무리 될 찰나… 사흘만에 나에 언니를 보게 되었고 삐친 언니를 달래느라 말 그대로 혼신을 다했다.

그래도 키스 한 번으로 언니가 용서 해주었으니… 괜찮겠지?

“괜찮겠냐…”

“네?”

“아무튼 됐고, 입술 좀… 닦아… 같이있는 내가 부끄럽다 야.”

자고있는 나에 언니를 업고 있느라 손이 자유롭지 않는 나는 입술을 닦아주는 마미 선배의 손길을 얌전히 받았다.

나에 언니 만큼이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마미 선배의 얼굴은 몹시 피로에 절여있었다.

내가 공식 채널을 맡고 몇 건의 방송을 진행했던 나는 내 일에 바빠서 나에 언니의 매니저 일을 잘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성장하는 나에 언니의 채널과 같은 일을 진행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았고, 가끔은 영어로 된 메일도 날라오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본인 또한 자신의 언니인 버튜버 타마의 매니저 일도 진행하면서 틈틈이 작곡 활동도 하는 뮤지션이기도 하니… 정말 마미 선배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것이었다.

나는 그 점이 많이 찔렸다.

나에 언니 만큼이나 마미 선배를 부려 먹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미 선배의 피곤한 얼굴에 죄책감을 느꼈다.

“미안해요.”

“응? 어? 뭐가?”

“저 때문에 마미 선배님의 일이 늘어나서…”

“뭐? 푸하하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레베이터 앞에서 마미 선배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 미안미안, 아니 네가 뭐가 미안하다고 그래? 잘못이 있다면 너에게 매니저 달지 않고 버튜버로 데뷔시킨 회사의 잘못이지.”

“…네?”

“아무튼 조금 피곤하긴 한데 그렇게 못할 일도 아니야. 애초에 바쁘기는 회사가 근본없이 돌아가던 2년전이 더 지옥이었어.

코이즈미 언니는 아예 침낭을 회사에 두고 밤새도록 근무했었다니까.”

“와…”

아니 근데 이 회사가 그렇게 블랙이었다고?

화이트 기업에 가까운 조건으로 들어온 나는 잘 몰랐는데, 이전의 회사가 지옥이었다고 마미 선배가 말했다.

거의 창립멤버나 다름 없는 마미 선배는 투자를 받기 전 인원이 부족했던 과거는 말 그대로 열정만으로 돌아가는 지옥이었다는 이야기를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내 들려주었다.

열악한 서버 환경 덕분에 작업하던 모델링이 날라간 이야기

프로그램이 자꾸만 다운되어서 방송 진행을 멈춘 이야기

뜬금없는 신프로젝트 진행으로 인해서 가상 스튜디오의 모델링을 만드는 일에 불려나간 이야기

‘이딴게…회사?’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게 업무에 시달렸다고 했다.

매니저로 겸 아티스트로 입사한 자신이 어째서 웹사이트를 만드면서 졸지에 웹사이트 디자인 공부를 하게 되는 이야기는 듣는 나도 소름이 돋았다.

“자, 아무튼 오늘도 잘 부탁해 유나 후배님.”

“예예, 편안하게 모셔드릴게요.”

나에 언니를 조심스럽게 뒷좌석에 태우고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는 네비게이션 없이도 찾아갈 수 있는 마미 선배의 집으로 향하면서 선배는 그동안 있었던 나에 언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니가 변하게 된 이유, 그것은 즉

“라이브 준비를 엄청 빡세게 하면서 사람이 바뀌었다고요?”

“응, 전혀 그래보이지 않았지만… 쿠로가와 씨는 진지하게 연습을 임하고 있어.

오죽하면 같이 출연하는 우리 언니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재촉을 한다니까?”

“세상에…”

“정확하게는 버츄얼 아이돌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자신의 생애 첫 라이브인만큼 정말 진심으로 도전하고 있는거지.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내 언니도 쫓기듯이 열심히 하고있어.”

“… 확실히 두 사람 같은 스테이지에 서죠?”

“응, 타마면 모를까, 유리아에게는 솔로곡이 없으니 언니의 오리지널 곡 두 곡을 편곡해서 부르게 될 거야. 그래도 조만간 그녀의 오리지널 송이 만들어질걸?

그러면 이제 진짜 우리 회사의 자랑인 버츄얼 아이돌의 완성이지.”

“와아….”

자신의 오리지널 곡을 가지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빛나는 스테이지 아래에서 춤을춘다.

비록 그것이 현실의 라이브가 아닌 가상의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수 만명 앞에서 자신의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는 것은… 나의 꿈이었으니까

내가 포기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언니가 대단해보였다.

“정말 근사하네요. 언니가 저렇게 기합이 바짝 들어있는 이유도 알 거 같아요.”

“그래서 오늘 쿠로가와씨가 화난거지, 자신은 힘들어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준 매니저가 다른 여자들하고 놀아나느라 돌봐주러 오질 않으니까.”

“… 놀아난다니요! 저도 이건 업무인데요!”

“그래그래, 버츄얼 유튜버 유나 후배님. 이 선배님이 매니저 좀 알아봐줄까?

유나 취향의 여자로… 야! 운전 똑바로 해!”

“저! 버튜버! 아닌데요!”

“알았으니까 속도 좀 줄여!”

“이정도는 괜찮거든요!”

무슨 사람을 난봉꾼 취급을 하는것도 정도가 있지!

도대체 평범한 친구 사이나 파트너 사이를 왜 자꾸 연애 관계로 망상하느냐 말이야!

진짜 평생토록 연애 한 번 못해본 동정 오타쿠들도 아니고, 친한 친구끼리 접촉 좀 하는거 가지고 사귀네 마네 하다니!

자동차도 내 울분을 이해한듯 엔진음을 거칠게 내면서 도로를 질주했다.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화장도 눈을 위주로 해서 거친 이미지를 가진 마미 선배는 속도의 스릴에 약한 모양인지, 급회전과 급가속 구간에간간히 짧은 비명을 지르는 시간을 가졌다.

잠시 후

평소보다 10분 더 빨리 선배의 집에 도착한 나는 어지럽다고 하는 마미 선배의 말을 무시하고 뒷좌석에 있는 나에 언니를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평소에는 거의 매일같이 출근하던 마미 선배의 집은 마당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드문드문 보이는 것을 빼면 내 기억과 일치했다.

메이드의 버츄얼 아바타를 가지고 난 이후에는 스스로 바빠져서 도통 오지 않았지만 이 집은 여전히 나에게 있어서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아늑한 공간이었다.

어두워도 눈을 감고 걸어가도 될만큼 익숙한 길을 따라서 익숙한 동작으로 문을 열어 나에 언니를 조심스럽게 내려두었다.

“유나.”

“아, 언니 깨셨어요?”

“나… 싫어하는 거 아니지?”

회사 안에서 여왕처럼 나를 다루던 밤의 여왕 대신에

졸린 눈으로 꿈나라로 떠나려는 귀여운 밤의 요정이 그렇게 물었다.

피곤한 탓인지 졸린 탓인지

아니면 아까 회사 안에서 저지른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모양인지

언니의 굳은 얼굴에 서린 우려와 두려움이 느껴졌다.

마치 내가 언니를 떠나고 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래, 마치 첫 날의 그때처럼 겁에 질린 얼굴처럼 말이다.

언니의 바보스러운 우려를 읽은 나는 언니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제가 언니를 왜 싫어해요?”

이 여성은 내 마음을 움켜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왜 싫어 하겠는가, 나의 외로움을 없애준 사람을 내가 왜 미워하겠는가?

거기에 언니는 이제… 내가 한 때 목표로 삼았던 아이돌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저는 오히려 언니가… 그동안 저를 피해서 언니가 저를 미워하는 줄 알았어요.”

“… 일 할 때에만 오지 말라는 의미였어.”

“그런데 왜 제가 언니가 일하는 시간에 오면 안 되나요?”

사실 이것이 의문이었다.

평소에는 매니저 일을 하거나 회사 일을 하고 있는 내 방에 찾아와서 고양이처럼 다가와서는 내 시선을 끌던 그녀가 어째서 자신의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일을 할 때 같이 있어주지 않으면 묘하게 삐치는 언니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언니가 갑자기 일을 할 때에는 오지 말라고 하다니, 그 말 때문에 이번 사달이 나지 않았던가!

“유나에게 완벽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네?”

“춤과 노래, 타마와 함께 준비하는 토크 그 모든 걸… 유나에게 만큼은 완벽한 모습으로만 보여주고 싶었어.”

소파에 누운 언니는 팔을 들어서 내 얼굴을 만졌다.

“너에게 만큼은 내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어.

유튜버로서의 유리아가 아닌 버튜얼 아이돌로서의 유리아의 모습을 말이야.”

“뭐…라고요?”

“유나가 한 때 포기했던 아이돌의 꿈, 내가 대신 이루어내줄게.

유나가 그리던 그 모습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무대를 반드시 너에게 선보여줄게.”

언니는 싱긋 웃으면서 선언했다.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려줘, 나의 매니저님.”

그 말을 끝으로 정말로 피곤에 지친 듯 언니는 내 얼굴을 붙잡던 손을 내려두고 조용히 잠들었다.

그녀의 가늘고 긴 호흡을 멍하니 듣던 나를 향해 마미 선배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더운 수건을 던졌다.

“이것들아, 남의 집에서 연애 작작 하라고 했지.”

“선배… 이건 그…”

“참 내, 아이돌 길을 걸었다가 포기했던 매니저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아이돌이라고? 이게 로맨스 소설도 아니고 도대체 뭐야? 보는 내가 다 오글거린다.

아이고 이래서 애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냐 살겠어.”

아이돌의 꿈을 포기한 매니저에게 첫 데뷔를 앞둔 아이돌이 완벽을 다짐하는 구도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가슴이 따스해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매니저가 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가슴이 따스해지다 못해 녹아내려버린다.

완벽하게 포기했을 줄 알았던 빛나는 무대와 아이돌의 삶

체념하고 좌절했던 나의 꿈을 대신 이루어 내주겠다고 나에 언니가 선언했다.

그러니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줄테니까 기다려 달라는 나에 언니의 그 말을 내가 어찌 감히 거역할 수 있을까?

언니의 사랑은 풋내기 소녀의 어설픈 호감이 아니었다.

지고지순(?高??)

더할 수 없이 고결하고 더할 수 없이 순수한 사랑이었다.

호감을 표하는 것에도 어색함을 보이던 언니가 이제는 나의 꿈을 이루어주겠다고 고백했다.

그녀의 고백에 나는 기사님을 기다리는 공주님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참 내, 그런 이유 때문에 유나를 여기 못 부르게 한거였어? 쿠로가와 씨도 은근히 제멋대로 하는 기질이 강하다니까.”

“…”

“솔직히 말해서 집 주인으로서 불쾌해. 내가 왜 내 후배이자 만능 메이드인 유나를 여기에 못 부르는데? 아직 이 집 대출 금액도 다 상환 못했다고.”

그렇게 투덜거리던 마미 선배가 나를 향해 잡지 묶음을 던졌다.

온갖 주택 사진이 달려 있는 그 잡지는 집을 소개하고 동네를 소개하면서 실제 집 매물을 소개해주는 부동산 잡지였다.

“여기서 더 지내다간 집주인인 내가 복장 뒤집어질 거 같으니까 이제 좀 너희 둘이서 나가서 살어. 너희들도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잖아?

“네에…”

“근데 아무리 돈을 벌어도 사회 초년생인 너나 쿠로가와 씨는 좋은 집을 구하는 게 어려워 보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추천하는 건 이거하고 이거, 그리고 사장을 잘 구슬리면 사택 형태로 계약을 따낼 수 있어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집세는 훨씬 절약할 수 있으니까…”

마미 선배가 가르킨 주택의 형태

그것은 일반 평범한 가정집이 아닌 단체 멘션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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