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01화 (101/307)

〈 101화 〉 100화.

* * *

내 옆방에는 버튜버인 나에 언니가 산다.

그리고 그 옆옆방에는 버튜버인 미우가 산다.

미우의 방은 지금 GB에서 잘 나가는 클라크가 살았으니 내 옆방 사람들은 모두 버튜버인 셈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위 아래에도 버튜버가 산다고?

“이거이거, 입꼬리 올라가는 거 봐라?”

마미 선배가 내 볼을 쿡쿡 찔렀다.

마미 선배는 내 볼을 찔렀지만 사실상 찔린건 내 양심이었다.

“아이돌이 프로듀서에게 고백 했는데 새로운 여자에게 눈 들이면 배드 엔딩인거 알지?”

“아니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작년 1학년 때 코로나 이전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기숙사에서 살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요.”

코로나가 오기 전 나는 1학년 시절을 기숙사에서 보냈다.

밤 마다 다들 모여서 술을 까고, 저녁을 먹고 나서 뜻 맞는 친구들끼리 족구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했다.

배구부와 농구부 애들이 나를 영입하려고 기싸움을 벌렸고, 야구부의 매니저 친구를 도와 치어리더 단기 체험도 해보았다.

매일마다 사건이 넘쳤고, 밤에는 다른 애들 방에 들어가서 같이 공부를 하거나 늘어지는 친구들을 붙잡아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일본어에 숙달되지 않았던 나는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일본어를 크게 증진시킬 수 있었고, 다른 취미활동을 지닌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

“우와…”

“정말 근사하죠?”

“진짜 인싸구나, 나는 무리야 무리 무리 절대 무리! 매일 마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논다니 그거 무슨 세계야? 두려워…”

선배는 질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기숙사에는 나처럼 사람 만나는 거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아?”

“으음 글쎄요? 다들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게 되어서 내성적인 친구들은 그 친구들끼리 같은 방에서 모여서 자기 할거 다 했어요.”

싫은 티를 내는 내성적인 친구들도 결국 밥을 먹기 위해서 식당으로 내려온다.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던 조용한 친구도 나중에는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목례를 할 정도로 안면을 튼 다음 서로가 좋아하는 음료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 다음에는 뭐 같이 운동을 하거나 여성들끼리 밤에 외출할 때 같이 간다는 식으로 접점을 늘려서 친구가 되는거고

“그래… 유나의 ‘친구’사이 정말 대단해… 두려워…무섭다…”

“그래도 모두와 친구사이가 될 수 있는거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보면은 알아서 모이게 되더라구요.”

“그래…”

“아무튼 신축 멘션들이라… 확실히 괜찮네요. 이런 집들에서 다 같이 모여서 사는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같은 대학의 다른 과 학생들끼리 모여도 재미있었는데

같은 회사의 다른 버튜버들끼리 모이면 재미있지 않을까?

오프라인 콜라보도 그렇고, 시청자들이 거슬리지 않게 방송에 난입을 해도 재미있을거고

그녀들의 일상 이야기가 곧 버튜버들의 일상 이야기가 되니 더 재미있게 봐주지 않을까?

“하하하, 쿠로가와 씨는 약간 둘 만의 오붓한 신혼집을 기대하는 거 같은데.”

“그럼 언니와 전 같은 집에서 살면 되겠죠.”

“뭐?”

“기숙사가 아닌 멘션이잖아요? 그럼 같은 집에서 살면 되지 않을까요?”

“…”

“이웃집 사람들이 다 버튜버라면 동거인이 버튜버인것도 이상한 거 아니잖아요? 아니 애초에 선배도 버튜버랑 같이 동거하고 있잖아요?”

“아니 이 미친것아! 타마는 피가 섞인 내 친언니라고!!”

아 맞다.

그랬지

마미 선배가 얼굴을 붉히면서 나에게 손에 잡히는 모든것들을 던지기 시작하자 나는 서둘러 밖으로 도망쳤다.

나에 언니의 멋진 고백, 마미 선배가 제안해준 버튜버 단체 멘션

이나리씨의 장난이 매섭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정말로 뜻 깊은 하루였다.

‘만약 언니와 내가 같은 집에 살게 되면 명패에는 내 이름을 먼저 써넣을까 언니 이름을 먼저 써넣을까?’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의 저택에는 주소지 밑에 이름을 기입하는 공간이 있다.

주로 세대주의 이름을 써넣게 되는데… 아무래도 이 경우 나에 언니의 성을 쓰는게 맞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생활비를 쓰는 통장은 어떻게 정리할까?

맞다. 주차장도 알아봐야 하는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차 안에서 음악을 흥얼거렸다.

***

“이게 그… 그거지? 유나의 하렘 유니버스.”

“…”

“폭력 반대!”

다음 날

쇠뿔도 단김에 빼란 말도 있지만 부동산에 관련된 일은 반 년 빨리 처리해도 늦지 않기 때문에 나는 간만에 코이즈미 언니를 찾아갔다.

평소에는 일에 치여 사는 워커홀릭 여성이지만 사실은 선라이즈의 첫 매니저이자 창립 맴버이고 관리 본부장같은 회사의 임원급 인사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헛소리를 하자 나도 모르게 욱해서 손이 올라갔다.

“하렘 유니버스라니 사람을 도대체 뭘로 보고.”

“그치만… 유리아부터 시작해서 코모레비 클레짱 아그니 카린 아카리 타마 모두 꼬시고있잖아…?”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서큐버스 속성의 메이드.”

진심으로 한국인 출신 회사원이 상사폭행으로 뉴스에 한 번 등장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내가 가져온 기획을 다시 한번 훑어 본 코이즈미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건은 내 안건을 벗어난 일이야. 사장하고 직접 면담해봐.”

“… 돈과 관련된 일은 언니 일 아닌가요?”

“글쎄, 이런 버튜버들이 엮인 이야기는 사장하고 이야기 하는게 좋을 걸?”

의외였다.

사장이 하는 일은 신인 멤버 뽑거나 아니면 투자 설명회가서 회사 어필하는 그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이런 굵직한 일도 직접 하는구나.

“정확하게는 일 벌린다음 자기가 좋아하는 거 관리하기를 좋아해.

회의때마다 기수간 차별 느껴지지 않게 돌아가면서 모델링 제작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아이돌 정신을 포기하지 않게 회사측에서도 지원을 잘 하자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

“오…”

“처음에는 일만 엄청 벌려서 진짜 나갈까 했는데, 그때 한 번 고생해서 회사 본사 이전이나 보컬, 댄스 양성 교육기관 협업, 3D 게임회사 모델러 영업 등을 다 하고 나니까 사람이 늘어나도 별 지장 없잖아?”

실제로 모델 개발이나 의상 지원, 신곡 지원같은 일은 현재 5기생을 포함한 40명 가량의 버튜버가 있어도 소외받는 느낌이 안 들도록 지원을 잘 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소한 문제라면 기술적 이슈로 서버 불안정이나 아바타 프로그래밍의 딜레이 현상인데 이건 뭐… 언젠가 기술과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그러니까 밑의 사람이 얼마나 고생을 하건 자기가 생각하는 건 무조건 해야하는데, 아마 이런 사택 관련된 일도 그 사람이 직접 하고 싶어할거야. 그러니까 네가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어보렴.”

“사, 사장과의 면담이라…”

먼젓번에 밀리아 클라크의 면접때 내가 통역을 겸해서 만난 적은 있었는데

그 때 이후로 얼마만이지?

언니는 사무실에 딸린 전화기로 번호를 눌러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보니 코이즈미 언니가 직접 사장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하기는 처음이구나

과연 어떤 말을 할까?

“야 나모 뭐하냐? 어? 야 그딴거 하지 말고 내려와.”

이게 사원이 사장을 부르는 전화인가?

언니를 처음 만날 때 우아한 비즈니스 우먼의 모습은 어디 간 채

학교에서 존경어와 겸양어 표현을 외우느라 고생하고 있는 학생들이 보면 피눈물을 흘릴만한 전화로 사장을 불렀다.

그렇게 나는 입사한지 어언 8개월 만에… 사장을 직접 면담할 수 있게 되었다.

언니의 사무실 방이 열리면서 한 남성이 걸어 들어왔다.

평범하게 마른 체격의 일본인이 인자해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재 일본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거대한 회사의 사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부드러운 사람이었는데, 워낙 젊어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장이라기 보다는 대학 선배 같았다.

실제로도 버튜버들은 그를 사장 취급 보다는 어쩌다가 회사에 가면 앉아있는 아저씨…정도로 보고있기 때문에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소속된 연예인들이 전원 다 버튜버인 우리 회사에서 유일하게 널리 알려진 얼굴이 바로 그였기 때문에 어찌보면 우리 회사에서 가장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 인기는 실로 대단해 나모는 아이돌이라고 외치는 서양인 팬들이 그의 과거사를 캐내어서 영상에 합성요소로 쓸 정도니…말 다한 셈이다.

“마츠시타 류토입니다.”

“김 유나입니다.”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유나씨가 우리 회사에 기여해주신 점, 사장으로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에요. 제가 회사에서 돈을 받고 여러 지원을 받는데 당연히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어야 하지요.”

그 말을 듣던 사장이 눈물을 살짝 보였다.

숨기지 못한 나의 당황함을 알아챈 코이즈미 언니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아… 이 사람 은근히 눈물이 많아.”

근데 내 말의 어디에서 눈물샘을 자극한단 말인가?

“으음… 오타쿠들이 많이 모인 회사에서 이런 정상적인 회화는 드물거든.”

눈물을 훔치는 사장과 변명하는 언니를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 회사 괜찮은 걸까?

아니 사장님이라면 여러 다른 회사 사람들 많이 만나면서 그런 이야기 많이 나눌 거 아니야?

아니 애초에 우리 회사 규모가 버튜버들 빼면 200명이 넘는 거대한 회사인데 왜 이런 정상적인 회화에 눈물을 흘리냐고?

“아무튼 제가 이번에 사장님에게 설명 드리고 싶은 것은…”

처음에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위대한 사업가를 생각했다가

우리 사장은 그냥 버튜버들 지켜보는 골방의 오타쿠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사택

그 사택을 단체 멘션으로 활용해서 버튜버들이 사는 특별한 공간을 회사 차원에서 지원해보자는 나의 계획을 설명을 들은 그는 눈물을 훔친 손으로 깍지를 끼면서 내 이야기에 빠져들어갔다.

그래 이사할 집

좀 더 넓고 좋은 곳으로, 회사의 지원에 힘입어서

기왕이면 근사한 이웃들이 가득한 집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뒤로 하며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열변을 토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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