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101화.
* * *
“실로 흥미로운 계획이군요. 하지만... 으음, 아무래도 문제의 여지가 생길 거 같네요.”
사장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부드러운 거절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가 있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유나 씨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계신 것 같으시군요?”
“가장 큰 문제는 같은 사택에 사는 버튜버들과 그러지 않는 이들과의 소외감 아닐까요?
흔히 말하는 파벌끼리 갈라지는 일도 생길 것이구요.“
기숙사 또한 그랬다.
인원수가 적은 과면 몰라도, 상업과, 정치외교학과, 경제학과처럼 인원수가 많은 학과에서는 소속된 기숙사로 은근히 편이 갈리는 느낌도 있었으니 말이다.
뭐 그런 경우에는 외향적인 애들이 쓸데없는 소속감 부심으로 벌린 일들이 대다수기는 한데, 생활 대다수를 공유하게 되는 버튜버들과 그러지 못한 버튜버들간의 간극은 은근히 클 것이다.
“네, 저는 한국의 아이돌들처럼 동기들 전원이 함께 모여살면서 연을 다지는 식이 아니라면 그런 형태의 주거 방식은 피하고 싶네요.”
“그런데 한국 아이돌들이라고 다 함께 살면서 친하기 지내는 거 아니에요. 제가 업계 친구들에게 들었는데...”
당연히 한국 아이돌들이 전원 사이좋게 와와 거리면서 지내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같이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크고, 사는 스타일이 다른 개성 강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살면서 친하게 지낼 거라는 건 큰 착각이다.
나는 사장님이 지닌 편견을 깨기 위해서 입을 열려다 말았다.
저 남자의 눈에 또 눈물이 맺힌다.
진짜 예민한 때의 여성보다 감수성 예민하구나 당신...
본의 아니게 사장의 꿈(망상)을 하나 깨트린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뭐... 그렇기는 해도 유나의 계획이 나쁘지는 않아요. 다만 기존의 거대한 기숙하나 멘션 대신에 조금 다른 규모로 바꾼다면 괜찮을 거 같아요.”
보다못한 코이즈미 언니가 말을 받았다.
“일단 소속감이 들지 못하게 너무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거주하면 아무래도 부담이 되니까... 주로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 중심으로 해보는 게 어떨까요?”
“맞다. 사장님의 버튜버들 면접 이야기 듣다보면 진짜 식빵 껍데기로 배 채우고 빚내서 컴퓨터 사서 방송한 버튜버들이 있잖아요.”
“맞아맞아. 유나야 너는 알고 있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의 초창기에는 말이야...”
그 말을 시작으로 언니는 회사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선라이즈의 시작과 함께하는 버튜버, 우미와 함께 버츄얼 아이돌에 도전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버츄얼 아이돌 프로젝트
3D 아바타를 통해서 노래를 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녹화 방식 대신에 생방송을 진행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용했다.
그렇게 실시간 소통을 하는 3D 아바타는 곧 버츄얼 유튜버가 되었고, 이게 회사의 시작이 되었다.
당시에는 버츄얼 유튜버가 유튜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작았다.
경제, 기술 신문 분야에서 짤막하게 다섯 줄 정도의 기사가 실리는게 다일 정도로 대중의 인식은 물론 오타쿠들에게도 낯선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회사에 버츄얼 유튜버를 들이는 일 또한 지난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사장님은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면서 해변가에 진주를 찾듯이 지금의 버튜버들을 모았다고 하는데 그 과정을 들어보니 정말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았다.
도쿄를 동경하던 시골 소녀가 꿈을 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빈곤한 지원으로 도쿄에 싸구려 1인실에 지낸 이야기
멀쩡하게 직장에 다니다가 병을 얻게 되어서 죽을 뻔할 시기에 회사에 잘려서 정말 죽을 뻔 하다가 방송을 하게 되면서 삶을 되찾은 이야기
일 년 째 구독자수 100명을 유지해서 방송업을 떠날까 하던 찰나 사장이 들어와서 직접 스카우트를 해간 이야기
등등, 듣고 있자니 내 눈가가 시큰해질 정도로 신파가 많았다.
아무튼 우리의 사장은 그런 그녀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녀들의 힘든 환경을 개선해주고자 거대한 회사를 차리고 투자도 받고 방송도 성공시키고 기획사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격한 면접을 보기 시작한 4기생부터면 모를까, 0기생부터 3기생에 달하는 선배 라인들은 정말로 ‘겨우’살아가고 있을 정도로 생활이 힘든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가 잘 나가는 버튜버고 이제는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라고 하면 하나같이 방송에 일가견이 있는 숙련된 방송인들이 있는 집단이지만 방송에서의 프로와 제대로 성실하게 생활을 가지는 건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언니의 빌드업 지금 그거죠? 방송에서라면 모를까, 실생활에서는 온갖 문제점이 많은 버튜버들의 생활 습관을 지도하라는 그거죠! 그, 그러니까 제가 일종의 생활 매니저...?”
“응, 그녀들의 메이드가 되어줘 유나야.”
우와 뻔뻔해!
“사실은... 저희 회사에서는 유리아, 즉 쿠로가와 나에씨의 정신적인 건강과 육체적인 건강을 몹시나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생활 습관은 물론, 전문가들은 초창기의 유리아의 방송에서 자살의 징조를 발견할 정도로 세간에 비관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할 정도로...”
사장의 말을 들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그 언니가... 자살을?
“물론 퍼센테이지로 따지자면 5%도 안되는 그런 지표입니다만, 아무튼 그런 비관적인 쿠로가와 나에씨를 바꾸신 게 바로 유나 씨의 대단함이죠. 특히 건강 지표의 개선이나 방송에 보이는 정신 상태를 보면 많은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회사를 대신해서 쿠로가외 씨의 인생을 밝게 가꾸어 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사장님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아무리 우리 회사가 젊은 회사고 신 분야이기는 하지만 그 위계질서의 딱딱함이 사회 전반적으로 펼쳐진 회사에서 사장이 사원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내가 몸 둘 바 모르겠다는 몸짓을 이해한 사장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 그래도 모두의 메이드라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저도 바쁜 몸이에요. 회사 공식 유튜브 운영에 메이드 라의 운영, 그리고 나에 언니의 매니저 일과 저 스스로의 매니징도...”
“아니지, 회사의 일만 처리하면 되는거고 유나는 일단 공식적으로 데뷔를 한 버튜버가 아니니까 개인으로 떨어지는 광고는 없을 거 아니야? 회사에서 일정량 정해주는 숙제 방송만 진행하면 되니까...”
“언니, 애초에 저 이 회사에 들어올때는 나에 언니 생활지도 개선과 매니저 역할이 다 였어요.”
“그래서 얼마 필요한데?”
“네?”
“너 이번에 우리 버튜버들이 맡은 광고 회사 목록 다 못 봤지?”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은 코이즈미 언니는 노트북을 키더니 한 문서를 열었다.
회사에 광고가 들어온 여러 기업들의 제안서였는데... 유명한 기업들의 로고가 밤하늘의 별처럼 가득했다.
아니... 이 회사들이 전부 다?
“GB쪽 데이터 보면 더 놀라 자빠질걸? 지금은 회사 차원에서 투자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자본을 제외하고는 버튜버들 모델 비용과 음원 이용료, 서버비만 제외하면 이렇단다.”
그렇게 말하는 언니는 나에게 재무지표를 띄워주었다.
아니 근데 이런거 내가 봐도 되?
하는 생각과는 별개로 엑셀 파일에 적혀있는 아름다운 단위의 숫자를 본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우리 회사가 이렇게... 매출이 좋다고?
“저기... 언니?”
“필요하다면 유나의 일을 도와줄 매니저도 한 명 채용할 수 있을 정도니까 걱정하지 마.”
“저...저기 언니? 그래도 전 거절을...”
“그래서 사택 개념과는 별개로, 유나의 재계약은 이런 형태인데...”
떨린 눈으로 계약서에 쓰여있는 숫자를 읽은 나는 똑바로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금액이야, 아니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금액이 적힌 계약서를 볼 수 있던가!?
“거, 거절...”
“아, 상여금은 일 년간 2회씩, 특별히 최고 배율로.”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금액이었다.
나는 코이즈미 언니의 손을 잡았다.
까짓거 한번 에바에 한 번 타보죠. 하는 모습으로 나는 결연하게 악수했다.
살짝 어색한 웃음을 터트리는 사장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서 나와 언니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들을 하나하나 정해나갔다.
일단 다른 건 다 몰라도, 새로 살게 될 멘션은 조그만 규모의 멘션이 될거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집을 구매할 정도로 저축하지 못한 사원들과, 아직 수입이 불안정해서 신용 등급이 낮아서 대출을 할 수 없는 불안불안한 초년생들을 모아서 사택 복지 개념으로 한 곳에 방을 잡을거라고 한다.
기존에도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가 제각각이고, 특히 방송 회선이 열악한 환경에 있는 버튜버들이 많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한 버튜버들에게 지원을 받는 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는 한다.
계약 조절과 사택 마련이 완료되는 시기는 내년 1월 신정 휴가 이후라고 한다.
즉 이사도 그때쯤이라고 하니 미리 부동산에 연락을 하는 게 좋다, 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버튜버들이 단체로 모여 사는 멘션 계획은 대규모가 아닌 소규모의 형태로 진행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 언니와 함께 사는 조건으로 방을 잡겠다는 코이즈미 언니의 당부를 듣고 안심하고 언니의 방을 나왔다.
이제 정들었던 사이타마의 저택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이 기쁜 소식을 들려주기 위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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