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102화.
* * *
“저, 정말 그 기획이 통과 되었다구요?”
“응, 구체적으로는 사회 초년생들의 구제 대책이라고 하지. 확실히 갓 독립을 시작한 버튜버들에게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 조금 더 필요하니까.”
“우와... 언니의 손길이면 그야말로 최고의 복지네요.”
오늘의 저녁 식사는 한국식 생선 스튜, 즉 매운탕이었다.
추운 겨울철 일본에서는 생각 의외로 싼 가격으로 대구를 구매할 수 있었다.
일본식으로 나베를 도전해보려고 하다가, 한국 음식에 지대한 관심과 이해를 보이고 있는 미우는 한국식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매운 것을 잘 먹게 된 미우는 땡초가 들어가서 칼칼하게 매운맛이 나는 대구 매운탕을 시원하게 한 그릇 비우고 그렇게 말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나는 요리에 재능이 있나 봐.”
“그거 진짜 대단한 재능이에요. 전 아무리 해도 언니처럼 맛있게 못하겠던데.”
“고등학생이 요리는 무슨...이거 다 조미료 빨이야.”
“어... 국물 종류인데도요?”
“응, 그거 다 다시다 우러낸 감칠맛이야.”
“집에서 떨어져서 힘들게 매일매일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미소녀 여고생에 대한 사랑이나 정성은요!?”
“무슨 소리니, 요리는 감칠맛과 조미료, 그리고 노동력이 지배하는게 다란다.”
미우는 세상이 무너진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요리에 그런... 그런 요소들이 쓰인다고 생각한걸까?
이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애는 애구나 싶다.
“아무튼 입실하게 되는 버튜버들은 총 네 팀에서 여섯 팀 사이라고 해.”
“저에게도 기회가 있을까요?”
“응? 미우네 집 잘 살지 않니? 굳이 왜 독립해서 오려고 그러니?”
부모와 자식간에 사이가 안 좋은 가정이면 모를까, 굳이 왜 독립을 하려 할까?
“저 제1지망 대학교가 언니가 말한 위치에 있거든요.”
“그, 그러니?”
“네, 언니와 같은 대학교에 다닐거에요!”
“그래봤자 나는 휴학생인데.”
사실 내 학생 비자는 죽은 지 오래다.
대신에 따끈따끈한 비즈니스 비자로 들어와서 그렇지...
유학생 유나가 아닌 직장인 유나가 된 나는 작년 이맘때쯤만 하더라도 학과생들과 함께 연말 파티를 했지만 이제는 스케줄을 짜거나 재무지표를 들여다보는 게 더욱 익숙했다.
“후후 그럼 제가 언니 선배가 되는건가요? 미우 선배님이 되는거죠.”
“...그러고 보니 그렇네.”
“자, 어서 저를 미우 선배라고 불러보세...”
“미우 선배, 애초에 선라이즈 입사 시기로 보면 미우 선배는 선배님이 맞아요.”
“꺄아악~ 유나 언니가 선배래~~”
“그러면서 은근슬쩍 몸 더듬지 마.”
“헤헤헤.”
어느새 슬쩍 다가온 미우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요 건방진 여고생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동생 취급하는 식으로 맞먹으려고 든다.
기가차서 정말... 장유유서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도다.
“아, 맞다 그리고 그 사택 입사는 사장님께서 읽어보고 결정하시는거야. 하고 싶다고 해주는 거 아닐 걸?”
“윽...”
“아무래도 정말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버튜버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버튜버들 끼리 케미? 라고 해야하나 그런것도 다 고려하신다고 한다네.”
“언니는 그 사택에 입주하게 되시면... 나에 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도와주실건가요?”
“응, 그게 계약 사항이야. 정확하게는 나에 언니에게 했던것처럼은 무리지.
아무래도 나는 매니저였기 때문에 그 정도 사생활 터치가 가능했지만 자세한 것은 그 담당 버튜버들의 매니저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월권은 하기 싫어. 애초에 그래서도 안 되고.”
주로 해야할 일은 방송 지각을 막는 일이기도 하고, 일 주일에 지정된 횟수만큼 가사 교육을 시킨다거나 사회인으로서 알아가야할 지식들을 가르치는 역할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일반적인 사회인이라면 신입 연수 교육때 이것저것 배우게 되는데 아무래도 우리 회사는 신생 회사다보니 그런 근본 있는(?) 교육 시스템보다는 방송에 치중된 교육을 받게 된다.
때문에 업무에 필요한 지식은 알고 있지만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지식이 많이 결여된다고 한다.
‘근데 그런 지식은 대게 부모님들에게 배우지 않나요? 아니면 저처럼 유학생 카페 뒤져가면서 알아본다거나 텔레비전의 주부 프로그램을 보면 충분히 배우지 않아요?’
‘우리 오타쿠들은... 자기 보고 싶은 거 밖에 잘 안 알아봐. 어린 애들이 티비만 키면 애니메이션을 찾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코이즈미 언니와 나눈 대화를 들려준 미우는 찔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윽, 저도 대학교에 가서 신나게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밤에는 버튜버로 활동하는 이중 생활을 꿈꿨는데... 그런 면은 생각 안해봤네요.”
“뭐 그런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고, 애초에 일정 규모의 대학교라면 생활 지원과가 있으니까 법률적인 문제가 아닌 생활면의 문제는 학교 생활 지원사 직원분과 대화를 하면 알 수 있어.”
“와...”
“생각보다 이 사회는 따뜻하단다.”
“그래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용기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
그러고보니 버튜버들은 의외로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방송에서는 여포지만 현실에서는 소심한 사람들을 방구석 여포라고 하던가
아무튼 간에 미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이 사실을 나에 언니에게도 문자로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다른 버튜버들을 걱정하던 언니지만 그래도 같이 산다는 말에 기뻐하는 문자 폭탄을 보내왔기 때문에 나는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헤헤 그럼 내년부터 우리는 같이 사는거야?」
「지금도 같이 살고 있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원래 세 명이서 사는 집이잖아 여기」
「그렇...죠?」
「유나와 단 둘이서 살게된다니.... 너무 좋아. 사랑해.」
그렇게 말한 언니는 나에게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잔뜩 보냈다.
「그나저나 연습은 어때요?」
「힘들지만 괜찮아. 그래도 연습 후 흐트러진 언니의 모습은 보여줄 수 없으니까 당분간 일할 때는 접근 금지.」
「네, 일 하실 때만 말이죠?」
새삼스럽게 언니가 어른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연습생 시절에는 퇴사하고 싶다와 코치를 죽이고 싶다는 파괴적인 생각밖에 안한 거 같은데... 언니는 스테이지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운지 늘 기쁘게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언니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을 하던 나는 그냥 심심풀이로 내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평범하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구도의 사진에
가슴골이 조금 보이는 살짝 집안에서만 입을 수 있는 패션으로 말이다.
오늘은 나도 방송이 있기 때문에 언니를 보러가질 못하니 내 모습이나 보여주자는 의미로 말이다.
「te2312sh12is1ok5u3na434ma」
「あああああああああああ」
「どはsfひあおgfwjなぎわgfjんまkl;?」
그리고 언니는 망가진 듯 망가진 언어로 문자를 보내왔다.
보나마나 얼굴을 붉히고 당황했겠지
휴대폰도 떨어트렸으려나?
저번 사건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조금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나는 의도적으로 언니를 놀릴 목적으로 그런 사진을 보냈다.
「유」
「유나야」
「야한건안된다고생각해세상에유나야인터넷상으로그런불건전하고야한모습을보이면어떻게하자는」
「언니 좋은 밤 되세요. 전 이만 방송 준비하러 가볼게요.」
나 대한민국 게이머 김유나
당하고만은 못 산다.
회사에서 나를 거칠게 다룬 사실을 잊지 않는 나는 언니에게 복수할 소심한 의도로 일부러 대범한 사진을 보냈다.
후후 언니 아직 저를 이기려면 멀었다구요.
나는 언니의 당황한 모습을 떠오르면서 휴대폰을 내려놓고 방송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장비를 끼고, 방송 멘트를 생각하면서 이따끔 떠오르는 언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쿡쿡거리면서 말이다.
***
“세상에 쿠로가와 씨 괜찮으세요?”
추운 겨울날임에도 마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쿠로가와 나에가 갑자기 코피를 터트리자 깜짝 놀란 하나카와 마미가 달려나와서 그녀를 걱정했다.
피에 물든 손으로 휴대폰을 황급히 가리듯 감쌌다.
“괘, 괜찮아요. 그, 그냥 갑자기 피가 나와서.”
“연습...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고마웠어요.”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혹시 병원은...”
“아, 아니에요!! 절대로! 절대로 괜찮아요 진짜에요!”
“아 넵.”
여태껏 저렇게 달아오른 쿠로가와의 모습을 본 적 없는 마미는 뒤통수를 긁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지는 모르겠지만, 병색으로 인해서 코피는 아닌 모양인지, 쿠로가와의 얼굴이 건강하다는 것을 본 마미는 안심했다.
최근 들어서 부쩍이나 체력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면서 방송중 가끔 졸 정도로 체력적으로 무리를 하는 쿠로가와였기 때문에 마미는 늘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보기보다는 정말로 건강한 모양인지 그녀는 작은 체구의 일본인이 으레 가지는 병약함을 가지지 않는 모양인지 정말 열성적으로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형과도 같던 여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감정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는 쿠로가와의 변화를 지켜본 하나카와 마미는, 그녀에게 변화를 가져다 준 자신의 후배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