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103화.
* * *
띵동~
미우가 휴식을 위해 본가로 잠시 돌아간 상황
간만에 나 홀로 사이타마의 저택에서 방송준비를 하던 나는 1층으로 내려가서 문을 열었다.
“언니 안녕~”
그곳에는 어엿한 60만 구독자를 달성한 코모레비가 해맑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저번에 한 번 내 집을 와본 적이 있는 그녀는 아무래도 내 집 주소를 저장한 모양인지 택시를 타고 내 저택으로 바로 온 모양이다.
“어, 츠유야 어서와.”
“잠시 실례할게요.”
한국의 영하의 기온에 비하면 일본의 겨울은 추워봤자 0도에 가까웠지만 내진 설계나 온돌이 없어서 훨씬 추운 일본의 겨울의 실내는 체감상 한국보다 더 춥다.
온도만 보고 ‘일본 추위 별 거 아니네’ 하다가 혼난 적이 있는 나는 뜨거운 물을 올리면서 물었다.
“츠유아 뭐 마실래?”
“언니 녹차 있어요?”
“으응, 잠시만...”
나는 가벼운 다과와 함께 따뜻한 녹차를 두 잔 타온 후 그녀를 마주보고 앉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건강하고 활기찬 츠유는 그날 따라 어두워 보였다.
해맑게 웃고 있지만 걱정이 있는 얼굴이라고 해야할까...
“언니 고마워요.”
차를 훅훅 불면서 조심스럽게 마시는 츠유를 잠시 바라보던 나도 차를 마시면서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말없이 단 화과자를 입에 머금고 따스한 녹차를 마시면서 긴장이 풀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언니... 저 어쩌면 좋죠?”
“무슨 일인데 그러니?”
“사실은....”
듣기로는 츠유의 부모님은 라멘집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꽤나 잘 나가는 가게라서 일본인 답지않게 점포를 조금 더 확장하려던 찰나 코로나가 찾아왔다.
빚을 내서 무리하게 확장을 할 무렵 찾아온 영업 정지로 인해서 말 그대로 집안의 가계가 폭상 망할 정도로 크나큰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우버이츠나 데마에칸 같은 배달업계에 확장을 했으나 다른 집과 다르게 걸쭉한 돼지기름을 녹여서 만든 면 요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게 평판이 오히려 떨어지고 말았다.
두 차례에 걸친 사업 확장 실패는 재정에 크나큰 부담이 되었고, 하루아침에 크나큰 빚을 지게 되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왠지 남일 같게 들리지 않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에 빚이 많으면 정신적으로 구석에 몰리기 쉽게 된다.
“그래서 지금 너무 고민이에요...”
“왜, 부모님이 버튜버를 그만두기라도 하래?”
“무슨 소리에요? 지금 제가 집에서 돈 제일 잘 버는데.”
그동안 성공에 목말라 있던 츠유는 정말로 일주일에 단 하루 쉴 정도로 바쁘게 방송일정을 잡고 있다. 댄스 트레이닝을 하건 앨범 수록을 하건 무슨 일이 있어도 밤에는 짧게 방송을 키거나 아니면 다른 버튜버의 콜라보에 등장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만큼 인지도도 높아지고 그녀 앞으로 보내지는 광고도 큼지막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확실히 수입이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
“문제는 제 여동생이에요.”
“아, 분명히 그 똑부러진 아이...”
“네, 지금 진지하게 육상부의 주전으로 뛰고 있는데...”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방송을 본가로 돌아가서 하게 되면 그녀도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전학을 가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본가가 어디인데 그래?”
한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지방 사람들이 많듯이
일본에서도 도쿄로 올라오는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가끔은 한두 시간 걸려서 학교에 통학을 하는 정도의...
“아오모리 현이요.”
...자동차로 여덟 시간 거리다.
본가가 꽤... 아니 엄청 멀리 있구나 츠유야.
서울과 부산거리를 두 배 거리는 통학이 아니라 전학이겠지.
“그래서... 제 여동생이 너무 안쓰러워요. 저 따라서 같이 도쿄에 올라오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
츠유는 아무래도 가계가 기울어진 것 때문에 여동생의 사정이 힘들어 진 걸 아까워 하는 것 같았다.
“하, 하다못해 제 앨범이라도... 좀 더 나중으로 예산을 잡았으면 되었는데...”
“아니야 그건...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 츠유야.”
아이돌을 꿈꾸던 츠유에게 있어서 첫 번째 앨범 발매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이번의 2주년 방송을 크게 성공시킨 그녀는 회사의 선배 아이돌인 우미와 더불어서 아이돌로 성공한 버튜버가 되었는데 당연히 그녀 또한 앨범에 대해서 큰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순종적이고 모자람을 강요하는 일본 아이돌 문화 덕택에 아이돌이 되지 못한 그녀가 버츄얼 아이돌로 성공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아무리 방송으로 피곤해도 앨범에 대한 생각과 노래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힘든 하루를 이겨낸다는 말을 방송에서 여러 번 말한 적 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앨범을 포기한다니?
“하지만... 제 동생은 제가 대책없이 아이돌이 되겠다고 도쿄에 올라올 때 같이 올라와서 많은 도움을 주었는 걸요. 이번에는 제가 그녀를 위해서...”
“그런데 그게 정말 네 동생이 원하는 일일까?”
“네?”
“생각해봐, 언니를 아껴서 중학생인 동생이 고등학생이었던 언니를 돕겠다고 도쿄로 올라 온 거잖아. 그만큼 너를 좋아하고 아끼고 너가 아이돌이 되는 길을 응원하고 있는데 너의 소중한 첫 앨범을 자신 때문에 포기한다고 하면 그녀가 과연 좋아해 줄까?”
“...”
아이돌에게 있어서, 아니 방송인에게 있어서 타이밍이라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제아무리 코모레비가 열심히 홍보를 하고 다니고 라이브를 훌륭히 소화한다고 하더라도, 음반이 없는 아이돌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노래 부르는 실력은 회사 내에서도 톱급인데 그런 그녀가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노래만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선라이즈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아이돌이라면 반드시 오리지널 앨범은 가지고 있어야한다.
차라리 정산 금액을 조금 덜 받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한다는 것이면 모를까... 지금 당장 돈이 부족하다고 앨범을 만드는 것을 멈추는 것은 크나큰 손해이다.
“요컨대 돈이 문제라는 거네.”
유튜버는 이게 문제였다.
한국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일본에서는 유튜버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안정을 받는 직업이 아니었고 유튜버같은 경우 회사의 신용카드 발급 또한 과정이 까다로웠다.
오죽하면 대학교를 안 나와서 서럽다는 말은 회사에서가 아니라 신용카드 신청에서 떨어졌을 때라고 말할 정도로 일본에서는 신용 카드 심사를 통과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고 하던가?
그것 말고도 집을 대출할 때도 신용 점수가 낮아서 고생을 한다고 했다.
“괜찮아요. 언니에게 돈을 빌리러 온 게 아니고.”
“아니야,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모아둔 돈이야.”
“네?”
“내가 이쪽 업계를 알아봤는데 아무리 잘나가던 100만 유튜버라도 몰락하는 거 삽시간이더라. 안티팬, 정신적인 건강 이슈, 치열해져가는 시장, 엄격하게 바뀌어가는 세율...”
그건 버츄얼 유튜버과 비교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일반 유튜버들과 비해서 조금 다른 시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좋은 폼을 유지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거기다가 유튜버 업계는 2010년도에 들어서야 크게 성장하는 사업 분야가 아닌가, 아무리 미래성이 있는 직업이라고는 해도 연예계처럼 오랜 세월동안 방송국에서 쌓아올린 가드레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몸이 건강할 때 무리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두는거지. 언젠가는 나하고 친하게 지내는 버튜버들이 한 번 휘청거릴 때, 그녀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니까.”
한 번 쓰러진 이후 건강관리에 들어간 나는 다짐했다.
그렇게 자기관리를 열심히 한 나도 쓰러지는게 이쪽 업무다.
물론 당시에는 학업도 병행하고 있었고 GB쪽의 커다란 프로젝트에 위압감을 느껴서 그런긴 했지만...
아무튼 한 번 쓰러진 이후 나는 그날 이후로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더욱 일에 빠져들었다.
몸과 정신이 건강할 때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츠유는 정말 조심스럽게 거절의 몸짓을 했다.
“언니가 그렇게 쓰러질정도로 고생해서 번 돈을...”
“말했잖아, 너희들의 행복은 내 행복이라고. 나보다 어린 동생을 돕는데 돈을 빌려주는 정도야 뭐.”
정말이었다.
버튜버들을 알기 이전의 나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그녀들 모두가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었다.
가족들이 힘들어 할 때 지갑을 여는 것 정도야...
과거 내 가족들이 돈으로 힘들어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이 정말로 간절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던 나는 드디어 남에게 배풀어 줄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 되었다.
여로모로 츠유에게는 내 과거의 모습을 자꾸 보게 된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녀에게 쓰디쓴 기억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언니...”
울먹거리기 시작한 츠유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타인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제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힘든 일이다.
오죽하면 보증을 서달라고 하는 것은 절교하자는 의미와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나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주고 웃음을 보내준 그녀의 도움을 거절할 수 없다.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았기에 나는 확고하게 다짐할 수 있었다.
“꿈을 포기하지 말자. 너도, 너의 동생도... 그리고 나도.”
나는 울기 시작한 츠유의 등을 방송을 시작하기 전 까지 다독여주었다.
열심히 사는 그녀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기를 빌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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