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1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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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아 클라크
그녀는 호주의 시골이라 불리는 아웃백 지역에 위치한 농가에서 자란 걸걸한 호주 소녀다.
허스키한 보이스에 무뚝뚝한 말투, 다소 냉소적으로 표현을 자주하는 그녀를 차가운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부끄러움이 많은 평범한 소녀다.
그 성격이 잘 묻어나온 캐릭터, 셀레네는 전반적으로 폭주하는 멤버가 많은 GB에서 상식인 포지션의 클라티에와 더불어 대화가 산으로 빠지는 멤버들을 잡아주는 포지션을 가지면서 말썽꾸러기 멤버들을 뒤치다꺼리를 하는 가장의 포지션, 즉 ‘아빠’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현실의 자신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편한 캐릭터성을 잡기 위해서 초반에 고생을 많이 한 편이다.
그 고생 끝에 현재는 ‘인간계의 음악을 즐기면서도 인간의 문물에 서툴러하는 덤벙거리는 츤데레 섹시한 아빠 속성의 여신님’이라는 고유의 캐릭터를 정착하는데 성공, 책임감을 가지고 방송을 하면서도 시청자들의 짓궂은 장난에는 당황해하는 어벙한 모습을 보여서 은근히 ‘타격감 랭킹’에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거기에 내가 장착시킨 일본인 패치 때문일까? 그녀는 외국인이지만 일본의 고유문화와 맥락을 읽어야하는 대화를 잘 따라오면서도 일본어를 잘하는 GB멤버이기도 한 그녀의 방송은 GB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구독자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첫 면접관으로서 그리고 그녀의 일본 생활 정착을 도운 외국인으로서 그녀의 변화가 궁금했는데...
“유, 유나 언니 잘 지내셨어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외국인의 특징인 하얀 피부에 푸른 눈동자 금발을 가진 호주계 앵글로 색슨계열의 그녀를 백화점에 만난 나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첫 인상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이전이라면 뭐랄까, 여름철에 수수한 원피스만 입고 다니던 일본 일상계 애니메이션에 등장할법한 친절한 이웃이라면 지금은...
“마, 많이 바뀌었구나...”
큰 가슴이 스트레스라면서 항상 넉넉한 옷을 입던 그녀가 몸의 라인이 드러나는 셔츠를 입었는데 다름 아닌 본인이 직접 디자인 한 팬덤 티셔츠였다. 그녀를 상징하는 분홍에 가까운 붉은 색의 셔츠에는 본인의 캐릭터, 그러니까 셀레네가 그려져 있었는데 흔히 말하는 오타쿠 티셔츠였다.
바지도 헤진 바지였는데 패션으로 입는 찢어진 청바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천의 마모가 보이는 헤진 바지, 그나마 외투에 걸치는 옷은 얼핏보면 괜찮아 보이는 외투였으나... 저것은 그녀가 빠져있다던 중국의 모바일 게임의 파커다.
그리고 그녀와 비슷한 패션의 차림의 소녀, 코토나시 아사히 또한 어색하게 미소 지으면서 인사를 올렸다.
완벽하게 비슷한 두 사람의 패션은 누가 보더라도 오타쿠 커플룩이었다.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만큼의 그런 것 말이다...
이런 패션은 아키하바라에서나 볼 수 있는데 당당하게 신쥬쿠 내부에서 볼줄이야.
“유나 언니 시선 돌리지 말아주세요.”
“하하하, 세상에는 다양한 패션이 있는 법이지.”
“어설픈 선의에 가득찬 위로가 상처가 된다고요!! 그냥 솔직하게 망할 패션이라고 말해요!!”
“아니야 나는, 나는 선라이즈의 팬으로서 너희들의...”
정말로 울 것 같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 방송에만 열심히 지내면 자신들의 옷 상태가 말이 안되게 바뀌는건 당연한 거겠지.
외출을 줄이고 집에서만 지내다 보면 옷들이 맞지 않게 되고, 입던 옷들만 입으면 옷이 헤지게 되니 저런 안쓰러운 패션이 나오는 거겠지.
일단 외출을 해야 하긴 해서 옷을 걸쳐보니 입을만한 게 오타쿠 상품만 있게 되고... 결국 오타쿠 패션 중에서 점잖아 보이는 코스프레 용 옷을 입은 채로 여기에 온 거겠지...
“그런 사람을 분석하는 시선은 그만둬주세요 매니저님.”
“코토나시 양 저는 매니저가...”
“마츠시타 씨가 유나 매니저님은 죽어도 매니저랬어요!”
그거야 직무상으로는 난 마츠시타 GB프로젝트 일본 팀에 속한 팀장이긴 한데...
그거 나 GB쪽 업무 분담해서 일하다가 쓰러진 이후에는 그쪽 업무는 반쯤 손을 때고 있었는데...
“아무튼 매니저잖아요! 저희들 쇼핑 좀 도와주세요!”
“그러려고 온 거긴 한데...”
사실 그녀들의 패션은... 저 신기할 정도로 패션을 커버쳐주는 파커 자켓 때문인지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제멋대로 자란 머리만큼은 봐줄 수 없겠다.
“일단 옷부터... 아니다, 머리부터 손보러 가자.”
“네?”
“그런 거지같은 머리 모양으로는 예쁜 옷도 다 죽어버린다고. 아침이니까 시간은 많으니 머리부터 어떻게 해보자.”
어벙거리는 두 외국인 듀오의 손을 잡은 나는 늘 가던 단골집...은 아니지만 저번에 나에 언니의 머리를 세팅해준 과묵한 미용사가 있는 가게로 그녀들을 데려갔다. 연말이 다가오기는 해도 오전에 만난 덕분에 예약 없이 그녀들을 맡길 수 있었다.
“원하는 스타일이 있어?”
“어, 음 저는 그냥 커팅만 살짝...”
“무슨 소리야, 두 사람 풀세팅 세 시간 안에 가능할까요?”
미용사는 난감한 기색을 표하더니 네 개의 손가락을 올렸다.
“에? 저번에는 좀 더 빨리 했잖아요.”
“두 분 다 머리 상태가 엉망이라... 케어부터 해야해요... 그리고...”
전문가가 그렇게 말하는데 뭐 어쩌겠는가, 나는 두 사람에게 미용사분의 말을 번역해가면서 알려주었다. 전문가의 날카로운 팩트 폭격을 맞은 두 사람은 ‘안 그래도 탈모가 많은 편인 서양인 특유의 모발 상태인데 너무 관리를 안 해서 심각하다.’ 라는 말을 듣고나서 안색이 굳어졌다.
“뭐... 두 사람 다 방송을 열심히 하느라 그런 건 알고 있지만.”
“으으...”
“너희들은 다른 GB멤버들과 다르게 운 좋게 일본에 들어와 있잖아? 언젠가는 오프라인 합동 방송을 하게 되면 외출을 하게 되는데 너무 방송에만 집중한 거 아니야?”
“그, 그렇네요...”
“그러고보니 저번에 마츠시타도 그런 말 한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은 풀이 죽었는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고개를 숙였다.
마치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받는 철없는 딸처럼 보이지 않던가? 두 사람이 동시에 풀죽은 모습이 귀엽게 보인 나는 그녀들의 등을 가볍게 두들기면서 말했다.
“뭐, 두사람 합치면 구독자 수가 140만은 거뜬히 넘는 대단한 사람들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 그래도 두 사람 다 한꺼번에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한 사람은 나랑 같이 쇼핑 가자. 모자 쓰고 선글라스 끼면 그렇게 안 부끄러울거야.”
사실 그래도 부끄럽긴한데 어쩔 수 없다.
그녀들은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이건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건 오타쿠들이니 뭐... 오타쿠들과 돌아다니는 것 정도야 이정도는 감수해야지.
결국 잠시 후, 나는 원래 예정대로의 말리아와의 쇼핑 대신에 코토나시와 함께 옷을 고르러 다니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말리아의 모발 상태는 심각하게 나빠져 있었다고, 그런 그녀의 머리에 영양을 보급하고 두피 관리부터 시작한다 하니 네 시간은 걸릴 거라는 말을 들으니 어쩔 수 없었다.
먼젓번에 여름 불꽃 축제 때 나와 말리아 사이를 오해해서 눈물을 보이던 그녀는 아직도 나를 어려워하는지 쭈뼛거리는 태도로 나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왔다. 마치 어미 오리를 따라가는 새끼 오리같은 그녀의 손을 붙잡은 나는 그대로 인파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휴우, 역시 연말 연시라 그런지 사람들 붐비는건 작년하고 똑같네요.”
“저, 저기 유나 매니저님....”
“네?”
“소, 손좀... 저에게는 마음에 둔 여자가...”
“... 아 맞다 미안해요.”
그러고 보니 그녀는 진짜로 말리아를 좋아했지 참.
사랑에 빠진 소녀라 그런건가?
확실히 얼굴을 수줍게 붉히면서 고개를 숙인 그녀는 귀엽게 보이긴 했다.
뭐 그래도 나에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두 사람 진도는 어디까지 갔어요?”
“네? 네?”
“말 그대로 어디까지 갔냐구요.”
“아, 아직... 손잡기 까지 밖에...”
그 보수적인 말리아를 상대로 손잡기라니
벌써 절반은 온 기분이다.
“뭐에요. 정말로 잘 하고 있잖아요? 말리아씨는 은근히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렇지 그래도 한 번 친해지면 좀 빠르게 친해질거에요.”
“그, 그래요?”
“네, 정서가 일본인 쪽에 가까워서 부담감을 느낄 정도로 들이질지 않으면... 말이죠?”
“아....”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코토나시 씨를 보니 지뢰를 밟은 기분이 들었다.
설마... 방송에서 그러던거 컨셉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렇게 들이대는 거였어?
GB쪽에서 빠르게 만들어 진 밈이 바로 돌격하는 에오스와 철벽치는 셀레네의 다정다감한 꽁냥스러움이었는데... 현실에서도 그러고 있었구나.
“괘, 괜찮아요. 말리아는 적응력이 좋은 편이라... 익숙해지면 점점 거리감이 좁혀질거에요.”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무얼요~ 그냥 마츠시타씨에게만 들키지 말아요. 원칙적으로 회사 내 연애는 금지거든요.”
“연애... 연애, 제가 말리아와 연애라...”
행복한 상상을 하던 그녀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부끄러운 소녀 대신에 언제 어디에서나 당당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에오스가 된 그녀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연애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탓일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름다워지고 싶다’ 라는 장작에 불을 지핀 나는 활기찬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자, 그러면 옷부터 고르러 갈까요?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는 방송도 겸하는 거니까 너무 까다롭게 고르는 거 아니에요.”
“저 그러고 보니까 일본에 와서는 워킹 홀리데이니 뭐니 하면서 대충 했고 올해 들어서는 버튜버 덕질 때문에 제대로 와본적이 없네요. 유나씨만 믿고 따라가도 되는거 맞죠?”
“후후, 선라이즈 최고의 패션쇼를 진행하는 저 유나와 함께라면 코토나시씨도 말리아씨의 마음을 움켜쥘 아름다운 아가씨가 될 수 있어요.”
“좋아요. 리드해주세요 메이드님.”
“본부대로 하죠, 생명의 여신님.”
그런 담소를 주고받은 나는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코토나시씨와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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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과묵한 미용사에게 느릿느릿한 일본어로 자신의 머리에 대해 설명을 듣던 말리아 클라크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과했음을 인정했다.
그녀의 방송시간은 장기간 방송이라 불리는 내구 방송정도로 긴 편은 아니었지만 그 콘텐츠를 준비하는것에 있어서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편이기 때문에 6시간 방송을 위해서 6시간을 준비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타고난 재치와 말주변으로 시청자들을 요리조리 달래거나 놀리면서 진행하는 코토나시와는 다르게, 자신은 아직 훌륭한 방송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초반과 비교하면 오디오가 비는 일이 줄어들고 어떤 리액션을 취해야 과하지 않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 깨달은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의 방송 스타일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성공의 대가는... 거의 괴멸한 머리의 건강 상태라고 한다.
잘 씻지 않는다. 라기 보다는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 증세가 우려된다는 말을 미용사에게 들은 말리아는 얼굴을 굳힌 채 펴지 못했다.
“원래는 고객님에게는 펌을 추천해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모발의 상태가 얇고 두피가 상한 걸 보아하니... 가급적이면 펌을 하지 않는 내츄럴한 스타일로 갈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너무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은데, 두피 마사지는 아니더라도 머리에 영양제는 꾸준히 주셔야해요. 서양인 분들이 탈모가 더 많은 거 아시죠?”
호주에 있는 아버지의 텅 빈 정수리를 떠올린 말리아는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제아무리 방송에서는 죽음의 여신이다 뭐다 하지만 탈모는 해결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이다.
“혹시... 블랙 기업 같은 곳에서 일하시고 계신 분 아니겠죠? 부끄럽지만 일본에는 외국인들을 속여서 장사하는 나쁜 기업들이 많아요.”
“아,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랙 기업이라... 확실히 크리스마스에도 일을 시키는 걸 보니 블랙은 맞는 것 같지만...”
“...?”
“저는 제 일이 너무나도 좋은 걸요. 일을 준비하는 과정도, 일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도 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즐거워요. 그리고 저와 함께 고민하고 일을 같이 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저는 새로운 가족을 찾은 기분이 들어요.”
“그러시군요. 손님의 일이 잘 풀리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미용사는 말없이 말리아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일본의 미용실은 원래 이랬던가?
호주의 농가에서 자란 소녀는 낯선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정성들여 감겨주는 감각을 느끼면서 피곤함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방송으로 인한 수입이나 음원으로 인한 수입과는 별개로, 이맘때쯤이면 농번기에 할 일 없이 시내를 터벅터벅 돌아다녔던 것을 떠올린 말리아는 지금의 자신의 삶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최근 들어서 들리기 시작한 캐롤 노래들을 들으며, 알게 모르게 가족에 대한 향수를 느끼던 그녀는 마음의 병이 서서히 치유되는 것을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쇼핑을 나간 두 사람이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크리스마스
이번 크리스마스는 자신을 잘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 보낼 것이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그녀는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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