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14화.
* * *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음악에 대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내 인생에 있어서 보컬 트레이닝은 아이돌 연습생인 시절의 이 년이 전부였고, 그중에서는 뛰어난 가수들을 배출해낸 대선배님에게 지도를 받아서 교육은 잘 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등학생과 대학생활을 하면서 춤과 함께 음악을 멀리 했던 내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를 줄이야.
스스로 부르고도 만족스러운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 완창을 들은 마미 선배와 이나리 씨는 박수를 치면서 무어라 말했다.
“저 어땠어요?”
“네에 여러분들 어떠셨나요?”
“에?”
그렇게 말한 마미 선배는 손가락을 가리켜서 방송 화면과 녹음실 구석에 놓여진 마이크를 번갈아 가리켰다.
방송을 진행중인 노트북에는 내가 한 말이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었고...
1만엔 이상 후원금액을 해야 보낼 수 있는 붉은 도네이션 채팅이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그 인과관계를 추측한 나는 얼굴이 굳었다.
“아하하하하! 여러분에게 메이드의 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네요!”
“이, 이이이 이나리씨?”
“오늘의 몰래 카메라! 메이드 라의 녹음 현장 급습 완료! 이로서 명실상부 선라이즈의 가수 라인에 합류한 메이드 라를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꺄아아아악!! 취소 해 취소!”
“이런이런 메이드 씨, 생방송은 취소할 수 없다구요!”
나의 비명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한결같이 ‘ㅋㅋㅋㅋ’하면서 웃는 채팅을 보내왔다.
자세히 읽지 않더라도 정신나간 텐션의 방송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미 선배는 안타깝다는 표정과 의미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나의 등을 두들겼다.
“저... 저... 그 노래가 전부 다...”
“네, 그렇습니다. 어떠신가요? 메이드의 노래를 반기는 이 함성소리가?”
채팅창의 소리없는 비명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광기라고 해야하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노래 연습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송출할 수 있어!!
“부, 부끄러운 솜씨를 선보이게 되...”
“무슨 소릿! 그 정도 성량과 음성이면 선라이즈에서도 손 꼽힌다고! 설마... 선배인 나를 기만할 셈이야?”
“윽, 그...그건 아닙니다만...”
“어쭈? 이제보니 우리 메이드 씨 완전 건방진 거 아니에요? 선배들이 그렇게 노력하면서 노래 부르고 연습을 하는데 우리 메이드는 어째서...!”
“네...네네네네!?”
“어째서 데뷔를 하시지 않는 거죠? 선라이즈의 방송이 장난이에요 네?”
“그, 그건 아닌데...요...”
“지금 당신의 주인인 유리아씨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지 알면서도 그래요? 저 사람 그렇게 보질 않았는데...”
폭풍처럼 쏟아지는 이나리의 갈굼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니 그녀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줄이야, 평소에 얌전하고 귀여운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운 법이라는 말이 정말인지... 나는 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그녀의 말에 네...네...하면서 대꾸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메이드도 성의를 보일거죠? 다른 버튜버 선배들이나 주인인 유리아님에게 걸맞게 말이죠. 여기 이 시청자들이 증인이 되어줄거에요. 메이드 라의 정식 데뷔 앨범의 현장을 말이죠.”
“네... 네!?”
“녹음 완료! 낙장 불입! 이제 정말로 음반 제작에 들어가도 별 말 하기 없기에요!”
나는 모든게 끝났다는 듯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이나리를 보면서 깨달았다.
당했다!
당했다!!
화난 척 연기하는 것도 장난이었던 것이였다 이 여우같은 여자는!!
녹음실 바깥의 마미 선배가 폭소를 하다 못해 땅바닥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아아!!
아아아!!!
나 또 당한거였어!?
핸드폰이 우웅 우웅 하고 울렸다.
무의식적으로 바라본 그 휴대폰 화면에는 나에 언니의 문자가 와있었다.
[어라 유나야?]
[음반 데뷔하니?]
[기왕 하는거 언니랑 같이 하자]
[솔직히 기뻐]
[이나리 씨에게 들었어... 유나가 나와 함께 데뷔를 해준다니...]
[응, 우리 같이 꿈을 이루자...!]
나에 언니에게도 알렸단 말이야?
그 사이에?
이건 외통수다.
공명의 함정이다.
이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정교한 노림수란 말인가,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 된 나는 입을 떡 벌린 멍청한 표정으로 이나리 씨를 바라보았다.
당당하게 승리의 V를 그리는 하얀 여우의 이나리는 오늘도 나를 가지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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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 유나 완전 유리 대포다. 평소에는 그렇게 버튜버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더니, 막상 자기가 당하는 거에 너무 약한 거 아니야?”
“그으으, 선배!!”
“어머나 무서워라. 이제 버튜얼 계의 새로운 우타이테(인터넷 가수)의 초신성 메이드 라에게 이런 시선을 받다니 너무 영광인걸?”
정작 자기는 그런 우타이테들의 존경하는 작곡가인 주제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너스레를 떠는 마미 선배가 미워보였다.
“첫 만남때부터 그렇게 선배님을 가지고 놀더니, 후후후, 자기가 당할 거는 생각하지 못했나 봐?”
“그... 그래도 이렇게 데뷔를 이렇게 할 줄은...”
“자아자아 두 사람 다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건배 합시다 건배!”
녹음실에 나온 이후
다리가 풀리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진 나는 운전을 할 기력도 없었다.
그런 나를 데리고 두 사람은 인근의 이자카야에 나를 데려와서 저녁 식사 겸 메이드 라의 데뷔를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시원한 프리미엄 몰츠 생맥주를 원 샷 때리고 나서야 기력이 돌아온 나는 그대로 식탁에 엎어졌다.
“내가... 내가 데뷔라니...”
“에이, 인터넷 상으로 노래를 부르는 거 싫어하는 거 아니잖아? 저번에 미우...그러니까 클레랑 같이 인터넷으로 노래를 요구하는 노래 괴도단을 결성한 주제에.”
“그...그래도 정식으로 데뷔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게다가 저는 아직 유튜브 계정도 없는 데...”
“그건 걱정하지 말라구, 이미 이 이나리님께서 만들어두셨다 이 말이야.”
“개인 정보 유출은!”
“헤헹, 코이즈미 총괄 매니저에게 부탁하니까 바로 만들어 주던데?”
“아아악!!”
저 유튜브 채널에는 무조건 음악 영상만 올릴거다.
그래, 버튜버 영상이 아닌 다른 음악 PV처럼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에 음악을 부르는 그런 장면만 넣을 것이다.
내 그런 다짐을 알아차렸는지 두 사람은 의미 모를 포식자의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퍼펙트한 유나의 이미지는 어디에 가고 이렇게 가련한 모습만 남았을 까...
두 사람의 인간관계가 어쩌다가 이렇게 꼬였는지 술기운에 대고 물어보아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공식 채널 담당자의 개인 노래 방송이라... 뭐 나빠보이지는 않네요.”
“그래그래, 어차피 회사 계정이 아닌 네 개인 계정으로 올리면 문제가 없잖아.”
“그...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뭐 어때? 사랑하는 언니를 따라 데뷔하는 것 쯤이야, 드문 일이 아니라고.”
“요즘 웹 소설에서도 아이돌을 돕기 위해 제 2의 신분으로 같이 데뷔를 하는 프로듀서의 이야기도 제법 잘 팔린다고.”
두 사람의 그럴싸한 대화를 듣고 있자니, 음악 앨범 발표는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언니와 같은 일을 하면서 조금 더 접점을 만들어갈 수 있는게 아닐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렇게 생각의 연결고리를 이어가자니 이나리 씨의 난데없는 생방송이 부담스러웠기는 해도...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았으니 말이다.
“저... 이대로 괜찮은 거겠...죠?”
“100만 버튜버인 이나리가 보증할게요. 유나의 음악 채널은 잘 나갈거고 메이드 라의 이미지는 더 좋아질거에요.”
“1천만 조회수의 작곡가인 내가 보증할게, 너의 음악적 재능은 결코 네 인생에 있어서 해가되질 않으니까 염려 말고 내 지도에 따라서 노래를 실컷 부르렴.”
두 업계의 선배들이 그렇게 말하니 점점 더 기분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서 설계에 당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수 없긴 했지만...그래도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결과론적으로는... 내 인생에 이득이니 말이다.
그래 차라리 돈 생각을 하자.
마침 내 팬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공식 채널도 생기고, 회사의 방송 때만 찾아오는 나의 팬들을 그곳에 둘 수 있으니 오히려 문제 없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캐릭터의 저작권과 이익 분배인데...
그래도 이게 나에게 있어서 플러스가 되면 플러스가 되겠지, 마이너스가 되는 건 아닐거다.
“차라리 사회인답게 돈으로 생각하는 게 더 좋겠네요. 젊고 생생할 때 돈을 왕창 땡겨 둔 다음에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해서 음악 수입으로 먹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하하하,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건 역시 유나답다. 과연 선라이즈의 돈귀신.”
“돈귀신이라뇨, 그냥 평범한 한국인 디폴트 값인데요?”
“유나 씨 무슨 프로그램이에요? 말 하는게 이상하네요.”
“아무튼 그렇다구요. 씨...”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아무래도 유나의 외모에 속아 넘어가서 쿨뷰티한 퍼펙트한 미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지 못해서 너무너무 안타깝네.”
“그러게요 니아 매니저님, 확실히 우리 유나 씨는... 찌르면 찌를수록 귀여운 반응들이 너무 많이 나오니 괴롭힐 맛이 나요.”
“으으! 이나리 씨!!”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라고 묻는 듯한 순진무구한 이나리씨의 싱그러운 미소를 보고 있자니 화난 마음도 가라앉았다.
저 여우의 미소는 너무 사기다.
온갖 짓궂은 장난을 해도 저 미소 한방이면 화가 싸악 풀리는게 느껴진다.
으으, 무언가 반박을 해서 대화의 우위를 점하고 싶은데...
알코올이 머리에 돌아가서 그런지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맞다, 이나리 씨 그거 아세요? 요즘 들어서 음악 트렌드가...”
“아 맞아요. 요즘 안그래도 나모가...”
얌전히 술을 마시는 나를 이제는 내버려 두겠다는 듯 두 사람은 인터넷 상의 음악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데뷔를 한 그 날, 나는 두 사람의 대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면서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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