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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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트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체크리스트를 점검했다.
술은 준비가 되어있는가? (초핵심)
>선배의 창고의 술을 바탕으로 자주 마시게 될 맥주나 진토닉 워터는 구매 완료, 미성년자들을 위한 다양한 과일 주스도 완비
음식은 준비가 되어있는가? (핵심)
>닭고기는 와인에 절여서 비린내를 빼둔 상태
>돼지고기에는 럽을 발라둔 상태, 둘은 오븐에 넣으면 끝
>저렴한 화이트 와인을 구해서 조개를 샀고 해감을 해둔 상태로 냉장고에 넣어두었음
>다양한 파스타 소스도 구비가 되어있으니, 당일 취향에 맞게 파스타를 볶아주면 된다.
방송 준비는?
>선배님 말씀으로는 광랜이 되는 우수한 환경이니 걱정 말고 다인 송출을 해도 된다고 함.
누구의 방송으로 진행할 건지는 아직 미정
벌써 음향 장비나 방송 장비는 거실에 가져다두었다고 함.
모두의 일정은?
>아침부터 파티 준비에 들어가는 사람은 나와 이로하
타마 언니는 12시부터 준비에 들어감
>먼저 오는 게스트는 말리아와 코토나시
>코모레비와 그녀의 여동생은 학교가 끝나는 오후 두 시에 출발한다고 함
>크리스마스 릴레이 의무 방송이 끝나는 5시 이후부터 파티 방송을 송출할 예정
방송 계획은?
>언니가 다 준비했다고 한다.
>말리아와 코토나시도 무언가를 준비한다고 했다.
쭉 읽어본 나는 크리스마스 파티날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요리하고 술 준비하고 요리하고 세팅하고 요리하고 방송하고 요리하고 노래부르고...
설거지하고...
이거... 아무리 봐도 메이드 그 자체인데...
뭐, 그래도 그녀들이 파티를 즐길 수 있다면 그날 하루 무리해도 되겠지
아무튼 계획은 완비되었다.
이제 남은 건... 음... 그동안 방송이나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거실에 앉아서 나 혼자서 고민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학원에서 돌아온 미우가 심술궂은 고양이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언니가 준비하는 거에요?”
“응.”
“부럽다 크리스마스 파티...”
“미우는 그날도 학원이야?”
“네... 그나저나 다른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라니, 이건 부럽네요.”
일본에 와서 놀란 점이 있다면 크리스마스의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공휴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뭔가 한국 감성으로는 무조건 휴일이어야 했는데... 붉은 공휴일이 아니라는 크리스마스라니, 사기당한 기분도 들었다.
“으음, 일본에서는 분위기만 내는건가... 역시 기독교 신자들의 비율이 낮은 나라의 비애라고 봐야지 뭐.”
“다른 사람들은 캐롤 들으면서 노는데 고3인 저는 학원에서 공부라니 으으...”
“공부가 끝난 다음에는?”
“어머니가 집에와서 쉬래요. 쩝, 그래도 연말연시는 가족과 보내야죠.”
“그렇구나...”
“그리고 1월 이후에는 어머니가 차로 데려다 주신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일본의 수능, 즉 센터시험은 1월 13일 이후 첫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에 시험을 친다.
그 말인 즉, 크리스마스 직후에는 본가로 돌아간다는 소리고,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거구나.”
“그동안 신세 굉장히 많이 졌습니다. 유나 언니.”
“아니야, 나도 친한 동생이 잘 되면 좋은 걸.”
“친한, 동생이군요...”
살짝 굳어지는 미우의 표정을 본 나는 표현을 바꿨다.
고3이 예민하다고 하더니... 확실히 그런 모양이었다.
“아니아니, 엄청 친한 ~ 친혈육같은~ 아니 내 빌어먹을 남동생 보다 더~ 친한 아주 사랑스러운 여동생이지~”
내 과장된 표현에 당황한 미우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래도 친한 동생이라는 정 떨어지는(?) 평범한 표현보다는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안겼다.
이렇게 나에게 들러붙는 미우도 얼마 안 있으면 헤어지는구나.
사실 원래 이게 정상이지만 말이야.
훌륭하신 아베 내신 각하 덕분에, 일본의 코로나 통계는 말도 안 되게 낮게 집계되었다.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고 QR 코드 및 카드 소비 내역으로 역학을 조사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그런 세련된 확진자 대처는 없었다.
한국의 특정 언론사에서는 일본의 J 방역이야말로 강압적인 K방역에 비교해서 우수하다고 연일 떠들어대고 있지만... 자주 들르던 빵집에 확진자가 방문한 이후, 누가 빵집에 들렀는지, 언제 들렀는지 파악을 할 수 없어서 동네에 코로나의 공포 소문이 돌았던 것을 기억 하는 나는 불안했다.
대체 그 빌어먹을 올림픽이 뭐라고 학생들의 학교를 빼앗는단 말인가... 통탄스러웠다.
내년에 개최하는 올림픽이 제대로 진행될지 정말 의심스러웠다.
“에휴...”
“언니도 제가 헤어지는게 아쉽죠?”
“응? 그거야 물론이지. 그것도 그런데... 그냥 코로나 대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뉴스에서는 굉장히 잘 대처하고 있다고 하지 않아요?”
일본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이거다.
일본의 국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고, 언론의 말을 잘 믿었다.
그거야 코로나 검사를 낮게 하니까 코로나 확진자 수가 낮게 잡히는거지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의 입장으로서 한국 일본 간의 정치가 어쩌구 하는 건 좀 그랬다.
특히 올해만 하더라도 노재팬 운동이 일어나면서 더더욱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았던가?
용케도 한국인인 내가 일본 회사에 잘 다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아니야, 정치 얘기는 좀 복잡해서.”
“언니! 저도 내년이면 어른이거든요! 성인식에 예쁜 후리소데 입고 가족들이랑 언니랑 같이 사진 찍을거에요!”
요컨대 자신은 어른이라 이런 건가?
어떻게 보면 나에 언니보다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미우가 볼을 부풀리면서 그렇게 말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고3들은 성년식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요컨대 잘나신 고3님께서 성인식같은 왁자지껄한 축제에 끼어도 되냐는 말이었다.
미우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뭐 어쩌겠나요? 잘난 저는 공부도 이제 잘하고, 입학시험 준비는 완료되어있고, 어차피 저는 굳이 말하자면 동경대 들어갈 학생이 아니라 그렇게 절실한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방송 소재를 따가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겠죠?”
나는 당당하게 말하는 미우의 모습에서 뭔가...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당하고 스스로 잘난 맛에 사는 듯한 나의 모습을 따라하는 미우의 모습은 확실히 나와 닮아있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 미우 같은 여성이 좀 더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도 되지.
안 그래도 선라이즈에는 묘하게 내향적이고 소심한 버튜버들이 많은데 그런 그녀들과 대비되는 당당하고 멋진 여성 클레, 얼마나 어울리는가!
“아이고 우리 미우 장하다 장해.”
“다 언니 덕분이죠.”
쓰다듬는 내 손길에 만족한다는 듯 미우가 더더욱 내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다 큰 고3이 대형견처럼 이렇게 안겨오다니... 참으로 귀엽게 보였다.
“히히 언니 향기 좋아.”
“나랑 같은 목욕제, 바디 워시, 바디 로션, 트리트먼트 사용하면서 얘는 무슨 소리를 한데?”
“그치만, 언니 특유의 향이 나거든요.”
“오호라, 한국인의 마늘 냄새?”
“아, 아니거든요? 무언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향이 난단 말이에요.”
“풉, 뭐야 그게.내가 무슨 페로몬이라도 뿌리고 다닌다는거야?”
“네에네에, 무슨 사람이 꽃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꾀어낼 수 있어요?”
“글세... 아이돌을 꿈꾸는 자에게 타인을 매료시키고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건 꽤 주요한 재능이거든.”
“언니가 지상파에 데뷔를 안해서 다행이에요.”
악담인지 덕담인지 모를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왜?”
“언니 같은 매력적인 여성이 대중에게 알려진다고 하니 소름끼쳐서요.”
“뭐, 그게 아이돌 아니야?”
“아뇨... 언니가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있어지는 게 싫다구요.”
메이드 라는 다르지만, 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영문모를 하는 미우의 이마를 가볍게 쳐준 후 나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될 미우와 헤어지게 되는게 아쉬운터라, 다 큰 학생에게 하기에 좀 민망하지만 그래도 얼굴에 철판을 깔면서 말했다.
“오늘 밤은 둘이서 파자마 파티 어때?”
“네?”
“단 둘이서, 그냥 잠옷 차림으로 이불 뒤집어 쓰고 히히덕덕 하다 자자고.”
웃었다가, 슬퍼했다가, 고민하다가, 이내 놀란 표정을 지은 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역시 마지막 밤은 파자마 파티지
방송도 없이 순수하게 새벽 감성에 의지해서 하는 수다야 말로 진정한 여성들간의 우정 아니겠어?
후닥닥 자신의 방에 이불을 가지러 올라간 미우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지었다.
부디 성인이 되는 내년의 미우에게 행복한 일이 가득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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