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122화.
* * *
만약 오타쿠들의 파티에 한국인 감성을 섞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재미난 의문을 들었다면 지금의 파티를 보게 하는게 맞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축제를 좋아한다. 그런데 의외로 파티에 대해서는 조금 보수적이다.
물론 내가 만난 친구들이 좀 소심하게 노는 것 같긴 한데… 이렇게 미국 드라마에서 볼법한 먹을거리와 마실거리가 가득한 파티는 잘 없다고 한다.
왜 먹을것에 진심이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 진심으로 음식들을 준비했다.
식욕을 돋구는 다양한 맛의 샐러드
파티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돼지고기 바베큐 구이는 강렬한 향의 럽을 발라두어서 침을 고이게 하는 마늘 페이스트와 후추향이 강렬하게 풍겼다.
와인에 절여둔 닭고기는 퍽퍽한 닭가슴살조차 부드럽게 삼켜질 정도로 훌륭하게 연육되었고, 닭 안에 넣어둔 감자와 샬롯(조그마한 서양식 양파)는 고기의 육즙을 듬뿍 머금어서 풍미가 뛰어났다.
해감한 조개에 마늘과 올리브유, 페페론치노를 넣어 볶은 후 화이트 와인을 넣어서 졸인 봉골레 요리는 고기로 무거워진 입을 매콤하게 덥힐 수 있었다.
아침부터 구운 빵과 보온 접시에 담아둔 파스타를 자유롭게 덜어먹으면서, 두 가지의 고기와 해물요리를 각자 즐기는 버튜버들은 몹시나도 행복하게 보였다.
빵을 만들고 남은 반죽을 넓게 핀 다음 즉석으로 구운 얇은 피자 또한 인기가 좋았다. 늘어나는 치즈를 당기는 자신의 여동생, 츠무기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츠유를 보며 나는 안심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두 자매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먹던 접시를 내려두고 나에게 다가왔다.
“어때, 음식은 입에 맞아?”
“네, 언니 정말로 맛있어요.”
“세, 세상에 이렇게 담백한 피자라니… 이렇게 맛있는 피자는 처음이에요.”
들고있는 피자를 번쩍 들어올리면서 눈을 빛내는 츠무기의 볼에 묻은 토마토 양념 소스를 닦아 준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유, 유나 언니가 파티를 다 준비하신건가요?”
“응? 빵은 저기 있는 이로하 언니가 구운거고, 파스타는 저기 있는 나에 언니가 도와준거야. 집 장식은 여기에 없는 마미 언니가 해준거고… 이런 파티는 혼자서는 못하지.”
“굉장해요…!”
“솔직하게 기뻐해주니 고맙네.”
그녀의 찬사에 아침부터 고생한 노고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유일하게 어린 아이라 그런지 그녀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신기한 듯 내 주위에 있는 술병들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에게 술은 금지에요.”
“아…!”
“아마 이런 술병을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할거에요. 우리 집안에서는 술을 별로 안 마시거든요.”
츠유 또한 신기하다는 얼굴로 영어로 적힌 술병을 들어올렸다.
커피맛이 나는 알코올, 깔루아였다.
달달하고 알코올 향이 강렬하지 않아, 우유와 타 마시면 커피우유와 다를 바 없이 달콤한 술이었다.
나는 츠무기에게는 파인애플 주스와 오렌지 주스 레몬 주스가 들어간 칵테일을, 츠유에게는 심플하게 깔루아에 우유를 탄 깔루아 밀크를 쥐어주었다.
예쁜 색상의 술을 바라보던 두 자매는 다정하게 건배를 하고 술을 들이켰다.
츠무기는 새콤달콤하면서도 입 안에서 폭발하듯 퍼지는 상큼한 과일 향기에, 츠유는 쓰디 쓴 술이 아니라 무슨 커피 우유처럼 달콤하게 들어가는 깔루아 밀크에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어때, 맛있지?”
“도, 도대체 유나 언니는 못하는게 뭔가요?”
“글쎄, 츠무기 양처럼 귀여운 여동생 두기?”
“아니 언니!”
알콜을 마셔서 그런지 슬슬 더워지는 공기 때문인지 얼굴을 붉힌 츠유가 기가 차다는 듯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츠무기는 얼굴을 붉히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가가…감사합니다.”
“나는 남동생 한 놈 뿐이라 이런 여동생 참 부럽네, 언니를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려고 하는 장한 여동생이라… 츠유는 참 좋은 여동생을 두었구나.”
“흠흠, 츠무기가 확실히 저에겐 과분한 여동생이긴 하죠.”
“하아와아아아.”
츠유와 눈을 마주친 나는 그렇게 츠무기 칭찬을 이어나갔다.
정말이지 코피를 흘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굴이 붉어지는 츠무기의 모습은 확실히 감정표현에 닳디닳은 오타쿠들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아, 이래서 여자 중학생을 청초하게 그리는 그림들이 많구나…
그렇게 나도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쉐이커를 들고 술을 만들었다.
다양한 술을 적절히 배분해서 롱 아일랜드 티를 만든 나는 시원하게 들이키려고 잔에 손을 뻗었다.
“유나는 방송 종료까지 술 금지야.”
그리고 그 술은 나에 언니에게 금지당했다.
묘하게 삐치고 토라진 얼굴로 나와 츠무기, 츠유를 번갈아보던 나에 언니는 시계를 가리켰다. 누구의 말이라고 내가 감히 거역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기합 가득 들어간 목소리로 ‘넵’이라고 대답했다.
술병을 놓아둔 부엌에서 술 대신에 냉침해둔 밀크티를 한 잔 따라서 입가심을 하며 거실로 걸어간 나는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일본어를 잘하는 코토나시와 말리아가 짐짓 일본어를 모르는 척 이로하에게 서툰 일본어 흉내로 장난을 치는 모습이 잠시 눈에 들어왔다. 아암, 역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이로하 놀리기지.
그와중에도 선배의 위엄을 세우려고 노력을 하는 이로하가 안쓰러웠다.
“ I、?、タマです!あなたたちの??Desu!”
대충 해석하자면 나, 타마입니다. 당신들의 선배에욧! 이다.
“Wow Tama Snpai sugoii desu!”
“You are so Kawaii Kawaii!”
그런 이로하의 자존심을 살리는 듯 두 사람은 대단해 굉장해 귀여워를 연발했다.
그 말에 호응하듯 콧대가 높아진 이로하가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Yes, I am Kawaii!”
내 눈엔 아무리봐도 갓 외국어를 배운 귀여운 이로하를 어린 아이 취급하는 듯한 두 사람이었지만, 이로하는 다르게 생각하는지 콧대와 더불어서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간 모양이다.
코토나시와 말리아는 둘 다 귀여운 동물을 바라보는 듯한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두 사람, 오늘 방송에 출연할거야?”
“아, 유나 매니저님! 음성으로나마 출연하기로 했어요.”
“방송 스케줄은 할로윈처럼 메이드 라와 함께하는 음악 방송인가요?”
아직도 나를 유나 매니저라 부르는 코토나시와 말리아가 그렇게 물었다.
두 사람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에 벙찐 표정이 된 이로하가 말을 더듬거렸다.
“두, 두… 두 사람?”
“코토나시는 일본인 혼혈이라 어머니에게 일본어를 잘 배웠고 말리아는 피나는 노력으로 일본어를 빠르게 터득했어.”
“그, 그런…”
“타마 선배님 정말로 귀여웠어요.”
“아니지, 이럴 땐 미안해요~ 라고 사과하는 게 먼저아닐까?”
“쳇, 말리아도 즐겼으면서.”
이제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알 수 있게 된 나는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뾰루퉁한 이로하의 볼을 쿡쿡 찌른 나는 거실에 놓여진 방송용 컴퓨터를 키고 방송세팅을 준비했다.
그래도 장난을 치면서 어느 정도 친해진 듯 이로하는 척 봐도 외국인처럼 생긴 두 사람이 유창하게 일본어를 하자 부담없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뭐야,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못거는 거 아니었어? 의외로 세 사람은 부담없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늘상 보던 방송 프로그램의 준비가 끝나자 나는 주위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크리스마스 방송 슬슬 시작할건데 누구부터 스타트 끊을래?”
“맞다, 그러고보니 저희 GB 1기생들이 따로 준비한 선물이 있는데…”
가방속을 뒤적이던 코토나시가 USB를 척, 하고 꺼내들었다.
귀여운 아기 상어가 그려진 그 USB를 본 내가 물었다.
“뭐가 들어있어? 신작 게임?”
“아뇨, 저희의 보물인 마나의 노래가 들어간 USB에요. 듀엣 파트에서 한 파트만 불렀다고해요.”
마나의 노래라고 하면 선라이즈 내부에서도 유명하다.
유창하고 맑고 귀여운 목소리
듣는 이를 미소짓게하는 특유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말 그대로 현대판의 전략무기급이었다. 선라이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현 버튜버 업계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마나의 노래.
그 마성의 단어에 이끌린 버튜버들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런 마나랑…”
“듀엣을?”
나에 언니도 욕심이 나는지 얼굴을 들이내밀었다.
이로하도 무심코 중얼거리면서 홀린 눈으로 상어가 그려진 USB를 바라보았다.
“네, 그리고 클라티에가 그린 홈파티 일러스트가 있어요. 이따가 방송에 같이 송출해주세요.”
전생이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 클라티에의 일러스트라
아마 오늘의 방송은 GB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분량을 뽑을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파일은 각자의 이메일로 보낼 게, 2층에서 한 번 연습하고 내려와!”
“그동안 방송의 진행은 특별 게스트로 집주인인 이로하와 코토나시, 말리아부터 스타트 끊을게!”
“이로하는 첫 노래 방송 이후에는 올라가서 연습 한 번 하고 와, 그 동안 토크쇼로 때울게.”
“어차피 할로윈같은 노래 방송은 무리야, 대신 잔잔한 크리스마스 라디오 같은 느낌으로 토크와 노래 방송을 섞는 위주로 변경할게!”
빠르게 지시를 내린 나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내 아바타를 로딩하면서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들 좋은 크리스마스입니다. 다들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계신가요?”
방송 시작하기도 전에 7천명의 대기자를 바라 본 나는 자연스럽게 만족스러운 미소가 나왔다.
“여러분,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역시 파티죠? 아아, 벌써 유리아님이 올리신 크리스마스 파티 사진을 보셨군요? 네네, 그렇습니다. 사실 타마님의 저택에서 저희들은 즐거운 파티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전원 여성이므로 안심해 주십시오.”
잠시 채팅창의 반응을 읽은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예고한 대로 평범한 크리스마스 방송을 하려고 합니다. 네 어떤 방송이냐구요? 역시 여러 게스트들을 모신 다음 진행하는 평범한 메이드의 방송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장소가 장소인 만큼, 오늘의 방송 진행 MC는 저와 더불어서…”
“콘 타마냥~ 크리스마스 파티의 집주인, 파티의 주인장 타마님 등장이오~”
“네, 이렇게 타마님과 더불어서 방송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주님이 태어나신 성스러운 날
방송인인 우리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방송을 시작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방송이 될 것이다.
외국에서 보내온 귀중한 방송 선물과 더불어, GB의 두 사람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나는 준비를 해두었던 방송용 이미지 파일, 그러니까 ‘오늘의 특별 게스트’의 실루엣에 에오스와 셀레네를 올려두었다.
“… 그래서 여기, 오늘은 아주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이 타마님의 저택에 찾아왔는데 말이지. 짜잔~”
타마의 말에 맞추어서 나는 화면을 바꿨다.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가득찼으나, 이내 두 사람을 알아 본 시청자들이 열렬한 느낌표로 반겨주었다
???
누구임?
잠깐ㅋㅋ 쟤들은ㅋㅋ!!
어어? GB와 콜라보라고??
잠깐, 걔들은 외국에 있어서 코로나 때문에 못 오는 거 아니었어?
GB라면 그 영어 쓰는 애들??
에오스와 셀레네라면 유명한 커플이잖아!! 여신 커플!!
두 사람 심지어 일본어도 초 고수라고!!
“네, 그렇습니다. 아주아주 먼 이국의 땅에서 크리스마스 방송의 특별 출현으로 직접 찾아오셨죠.”
“Humhum~ Hello~ 에오스에요. 오늘 잘 부탁드려요.”
“Worh! 셀레네입니다. 이국의 여러분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개성 넘치는 두 사람의 인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방송이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