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25화 (125/307)

〈 125화 〉 124화.

* * *

잠시 시간을 되돌려서 크리스마스 방송이 끝날 무렵…

방송을 잘 알지 못하는 츠무기마저도 달아오를 정도로 그녀들의 방송 텐션은 정말로 높았다.

그도 그럴게 맛있는 음식과 친한 친구들, 그리고 적당한 알코올과 크리스마스 특유의 캐롤 분위기는 사람들을 달아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방송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그녀들은 여러 곡을 부르면서 금방 긴장을 풀고 분위기를 고조시킨다음 처음 만난 사이라도 아무렇지 않기 어깨 동무를 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춤을 출 정도로 마음을 놓게 되었다.

거기다가 방송이 끝난 후 랜덤 게임으로 서로가 준비한 선물들을 안겨주는 시간, 공개되는 다양한 선물들로 인해서 그녀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기쁨을 나누게 되었고, 이 모든 일정이 끝나는 밤 무렵에는 처음 본 사이인 타마와 말리아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코모레비와 코토나시, 나에와 츠무기 네 사람이 카드 게임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유나는 그녀들 사이를 오가면서 흐뭇하게 바라보거나, 야식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혼자서 술을 홀짝였다.

“아, 유나…매니저님? 선배님?”

“어라라 말리아쨩~”

눈이 쌓인 바깥을 바라보며 잠시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테라스에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 말리아 클라크가 들어왔다. 눈이 마주친 말리아가 먼저 인사를 받았고 살짝 술이 오른 유나가 기분 좋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처음에는 매니저와 버튜버 지망생, 이윽고 심사의원 겸 통역가와 버튜버 지망생,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일본 생활 선배와 후배의 사이 겸 동거인… 마지막에는 매니저와 버튜버의 사이가 된 두 사람은 코로나 시대에 일본에 살아가는 외국인들로서 말 못할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왠 사탕?”

“아… 사실 제가 호주에 있었을 때에는 담배를 피웠는데, 일본에 와서는 도통 그럴 여유가 없더라구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데…”

“그래도 입이 심심한 습관은 어쩔 수 없었나봐?”

“네, 본격적으로 버튜버 활동을 하는데 담배같은 나쁜 습관은 없애야하니깐요.”

자신의 일에 매진하기 위해 금연마저 한다라

그 프로 정신에 감복한 유나는 알콜의 힘을 빌려서 솔직하게 그 마음을 표현했다.

“참… 복잡미묘하네요.”

“으응? 왜?”

“어머니도 절 쓰다듬지 못했거든요. 워낙 제가 키가 커서…”

“아하하하, 내가 좀 동양인치곤 크기는 하지.”

말리아는 처음에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유나의 손길을 기분좋게 받아주었다. 생각해보면 사이타마에서 살 무렵, 헤어 드라이어를 잘 못쓰는 말리아의 머리손질을 유나가 해주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두 사람은 말없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네, 탈모 조심하고.”

“… 조심할게요. 정말로요.”

“그래, 샴푸는 머리를 알칼리성으로 만드니까 꼭 린스를 써서…”

“정말 어머니 같은 분이시네요.”

“우웅, 먼 이국 땅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말리아쨩을 위해서 쪽!”

말리아는 무어라 저항할 틈 없이 유나의 기습적인 뽀뽀를 받았다.

정말 술이 들어가면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하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코토나시를 떠올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아니, 도대체 그 망할 여자의 얼굴이 왜 지금 떠오른단 말인가!?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말리아는 입을 뻐금뻐금거렸다.

“다알링~ 마이 다알링~?”

“저, 저저, 저는 도망칠게요. 저 어디갔다고 말하지 마세요.”

유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말리아는 금새 테라스에서 벗어났다.

자신을 찾는 코토나시의 목소리를 피해 그녀는 익숙하지 않는 저택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자리를 뜸과 동시에 코토나시가 들어왔다.

“앗, 유나 언니! 제 달링 못봤어요?”

“달링이라니…”

그러고보니 코토나시가 자신과 말리아의 관계를 오해해서 불꽃 놀이 축제때 재미난 일이 일어났던것을 기억하는 유나는 짓궂게 웃었다.

“아직도 일방적인 고백 관계에요?”

“그, 그건 아니거든요! 요즘은 제 사랑의 표현도 잘 받아준다구요!”

“우리들은 그것을 행복 회로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그으으!!”

발끈하는 코토나시를 보고 웃음을 터트린 유나는 코토나시의 손에 들린 술잔을 가리켰다.

“무슨 술이에요?”

“그… 제가 레시피를 보고 만든 칵테일이에요.”

“시음해드려요?”

“싫거든요! 제 달링을 위해 제가 특별 제조한 술이에요. 일명 사랑의 묘약!”

“… 여기에 미성년자 와 있는거 알죠?”

“아, 츠무기 말이죠! 그 코모레비 선배의 방송에 가끔씩 음성으로만 나오는 여동생, 정말로 귀여웠어요!”

츠무기의 귀엽고 파릇파릇한 중학생 특유만의 반응은 닳고닳은 오타쿠들 사이에서도 신선한 날것 그 자체였다.

그녀의 존재 덕분에 평소라면 거칠게 욕설을 하며 토크를 하는 말리아나, 성적인 토크를 즐겨하는 코토나시도 성희롱 다분한 발언을 피하고 얌전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언니가 유명한 버튜버기는 해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그렇게 친숙하지 않는 듯, 자기와 비슷한 나이라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쿠로가와 나에와 마리오 카트나 스매쉬 브라더스 등 가족용 닌텐도 게임을 즐기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츠무기의 존재는 선을 불쑥 넘을 것 같은 오타쿠들을 억제해주는 소중한 브레이크였다.

그렇게 츠무기의 이야기를 나누던 코토나시가 술에 취한 탓인지 ‘사랑의 묘약’이라고 부른 술을 그대로 두고 돌아갔다. 알코올이 부족해서 조금 입이 심심한 유나는 그 술을 들이켰고,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다양하게 들어간 리큐르가 섞이지 않고 제각각 향을 주장하는 그 음료는 여러 술을 특정한 맛에 배합한 칵테일이라기 보다는… 실패한 요리 초보가 만든 요리에 가까웠다. 사랑의 묘약 보다는 호감도를 박살내는 그 술 맛에 유나는 독한 럼의 알코올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즐기기 위한 술이 아니라 한국의 폭탄주처럼 취하기 위한 술이었다.

“유나!”

테라스 앞 테이블에 주저앉은 유나를 향해 이로하가 다가왔다.

이 집의 주인이자 오늘 파티의 공식적인 주인은 아침부터 유지하려고 하는 높은 자세의 카리스마는 어딘가에 버려둔 듯, 울먹이는 얼굴로 다가왔다.

쿠로가와 나에보다 조금 성숙한 편이긴 하지만 마른 체형에 애기 볼살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그녀는 그 귀여운 볼을 부풀리면서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츠무기가 너무 마리오 카트를 잘해!”

츠무기와 더불어 유이하게 이 파티장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이로하는 술을 몸에 들이키지는 않아도 술에 몸이 들어간 듯 헤롱헤롱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듣자하니 자기가 없는 사이에 설거지를 놓고 마리오 카트 대회가 일어났다고 한다.

“왜 나는 안 불렀어?”

“유나는 열심히 음식도 준비하고, 방송도 진행해주고, 기록도 해주었잖아. 바쁜 유나가 혼자만의 쉬는 쉬간을 보내는데 우리가 그럴 수 있겠어?”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이로하의 말에 유나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 유쾌한 직장 동료들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자신을 설레게한다는 기분 좋은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유나는 이로하의 불평을 들어주었다.

평소에도 게임에 대한 욕구가 강한 이로하는 어지간한 게임을 하면 죄다 이겨야 적성이 풀렸고, 방송인들에게 있어서 마리오 카트는 그렇게 낯선 게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코모레비는 마리오 카트 고인물이야.”

“에?”

“길막기, 에어 이동 방해하기, 드리프트 밀치기, 거북이 등딱지 심리전걸기 죄다 고수인걸?”

그리고 코모레비, 즉 츠유의 여동생인 츠무기 또한 마리오 카트의 고수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중학생에게 패배해서 씩씩 거리는 이로하는 그 말을 듣고 겨우 납득을 했다. 그래 만약 상대방이 이 장르에 대한 고인물이라면… 확실히 그럴 만 했다.

이로하가 분한 마음을 삭히는 것을 본 유나가 물었다.

“재미있게 놀고 있는 거 보니 나도 기분이 좋네.”

“어… 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어울리는 거, 재미있지?”

이로하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유나의 그윽한 눈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이 여자가 술에 취해서 무슨 말을 하는 건가­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로하는 유나가 재차 대답을 강요하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보니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적은 처음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욕하는 것처럼 느꼈던 이로하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고,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기 위해서 방 안에 박혀서 직접 얼굴을 볼 일이 없는 인터넷 환경으로 사람들과 소통했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불쑥 찾아온 쿠로가와 나에와 유나의 존재는… 실로 새로웠다.

“크리스마스 파티…”

이로하는 중얼거리듯 그 말을 내뱉었다.

그래, 크리스마스 파티

미디어에서는 모두가 정상처럼 즐긴다는 그 크리스마스 파티는 이로하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창작물 속 유희였다.

낯선 사람과 만나고 인사하고, 크리스마스라는 축제의 이름 아래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즐기는것은 실로 낯선 것이었다.

“그래, 우리 모두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파티.”

“응, 재미있어.”

이로하의 미소와 힘찬 대답을 들은 유나는 미소지었다.

순수하게 자신의 변화에 기쁨의 미소를 짓는 동갑 ‘친구’의 환한 미소가 부담스러운 듯, 이로하는 얼굴을 붉히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만 들어가볼게. 잘 쉬어!”

“나도 이제 슬슬 추워서 돌아갈거야. 따뜻한 국물 요리나 준비할까 싶기도 하고… 아마 낮에 굽다 만 빵들을 푹 찍어먹을만한 스튜가 좋아보이는데.”

“스, 스튜도 가능해?”

“응, 화이트크림 소스와 치킨 스톡이 있다면.”

“당근은?”

“왕창 넣을건데~”

자신이 싫어하는 야채인 당근을 왕창 넣겠다는 유나의 짓궂은 말에 분노한 이로하는 가녀린 팔을 들어올라 유나의 옆구리에 주먹질을 날렸다.

물론 고된 몸의 단련으로 근육이 잘 갖춰진 유나에게 있어서 이로하의 주먹질은 강아지의 발길질보다 못한 나약한 것이었기 때문에 유나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방 안으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방송이 끝난 직후, 드디어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나는 온갖 술을 마시다가 잠시 창고에 넣어 둔 술을 가지러 갔다가 테라스에서 혼자서 홀짝였다.

하지만 그런 나를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듯, 말리아와 코토나시, 이로하가 다가와서 살갑게 굴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열시 반이 넘었다. 본래라면 저녁 방송 마치고 나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나에 언니와 친하게 지내게 된 츠무기와 코모레비 셋이서 게임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숙박 계획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구워둔 고기를 긁어 모아서 냄비 안으로 집어넣고, 화이트 루를 만든 다음 스튜를 끓이기 시작했다.

카드게임, 닌텐도 게임, 보드 게임 등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버튜버들이 어슬렁거리는 짐승처럼 식탁 앞으로 모여드는 게 참 재미있었다.

내 옆에 선 이로하는 빵을 덥히거나 식기를 씻어서 다시 준비하는 둥 준비를 했고, 나에 언니는 커뮤니티를 관리하고 있는 코모레비와 함께 오늘 찍은 사진에 보정을 더해주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뒷정리의 일부는 외국인 두 사람이 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두 사람은 일본의 분리수거에 잘 맞게 쓰레기를 잘 분리해주었다. 이래서 사람이 자취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밤의 허전함을 달래줄 스튜가 완성되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가 들어간 새하얀 스튜는 보는 것 만으로도 겨울 날에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거실의 텔레비전에 틀어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는 유튜브 음악 소리와 함께 우리들은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마지막 건배를 나누었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하루종일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해도 전혀 질리지 않는 그 말로, 크리스마스의 마지막 밤을 덥혀주는 든든한 크림 스튜와 아침에 직접 구운 빵을 찍어먹으면서 다양한 과일 주스로 마무리를 지었다.

먹고 마시고 노는것에도 피곤함을 느낄 정도로 이어진 이 일정에 가장 먼저 쓰러진것은 츠무기였다. 그런 츠무기를 재우겠다며 손님방으로 올라간 코모레비는 자러가기 전에 모두에게 인사와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다.

이로하, 정확하게는 타마와 콜라보를 진행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방송각을 만드려는 코토나시와 말리아는 아직 식지 않는 크림 스튜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어설프게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면서, 두 사람과 즐겁게 대화하기 시작한 이로하에게는 외톨이의 모습을 전혀 읽어낼 수 없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튼 거실에서 과자 봉투와 빈 페트병을 마저 치우고 있자니,츠유와 츠무기에게 방 안내를 해주고 돌아온 나에 언니가 ‘크리스마스 용 모닥불 8시간 버전’을 틀어둔 내 옆에 앉아서 같이 술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유나 오늘 고생 많았어.”

“언니도 오늘 제가 벌인 일 커뮤니티에 올리고 잘 관리하시느라 고생했어요.”

“아니야, 유나가 준비한 음식들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데.”

“그럼 모두의 고생이라고 하죠. 이로하도 마음 고생 엄청 많이 했을걸요.”

서로 이로하를 바라보며 그녀의 덕담을 나눈 우리들은 약속을 한 듯 가져온 잔을 부딪혔다. 부드러운 건배 소리가 장작이 타는 소리와 건너편에 들려오는 캐롤 소리와 함께 울려퍼졌다.

“코코아네요?”

“응, 유나는 술?”

“네, 베일리스라고 초콜렛 크림 알코올이라고 보면 되요.”

마치 어른들을 위한 코코아죠. 라는 말을 삼킨 나는 말없이 술을 한 바퀴 돌리고는 마셨다. 서로 달콤한 초코 향을 나누고 가까이 마주보아서 그럴까? 아니면 거실에 장식처럼 틀어둔 모닥불에서 정말로 열기가 느껴져서 그럴까? 우리 두 사람은 달콤한 향기를 나누면서 얼굴을 붉혔다.

알게 된 세월은 일 년도 되지 않지만, 살게 된 세월의 밀도는 내 짧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강렬하게 각인시킨 나에 언니.

처음에는 상처받은 고양이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완전 일본 동화속에 나오는 요괴와도 같은 요망한 언니였다.

때로는 어린 요정처럼, 때로는 난폭한 여왕처럼 참으로 제멋대로 구는 언니는 언니를 제법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도 함부로 언니를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렇게 날 바라보니 유나야?”

“… 언니, 맞다. 저거 겨우살이 장식인거 알아요?”

내 유치한 말돌리기에 ‘알지만 다 당해줄게’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언니는 겨우살이 장식을 바라보았다. 언니의 검은 빛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던 나는 계속 들이킨 알코올 덕분에 무너져 내린 이성을 붙잡으려고 아무말이나 내뱉었다.

“크리스마스에서 겨우살이 아래에서 키스를 나눈 남녀는 사랑이 이루어진데요.”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무심코 내 입을 막았다.

아니 크리스마스 날에 이런 말을 술 마시고 한다는건 마치… 내가 키스를 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언니는 내가 평소에 으레 짓던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응, 남녀사이?”

“뭐…뭐… 같은 성별이라도 겨우살이가 축복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 잘 새겨들으렴.”

그렇게 말한 나에 언니는 코코아 향이 가득한 알콜냄새를 풍기면서 그 작은 입술을 나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잠깐 언니 이거 코코아가 아니라!”

내가 마시던 베일리스잖아! 그것도 아무것도 안 탄 원액인데!? 17도짜리 술이 아무리 달다고 하나 그것을 발칵발칵 한 컵 들이킨 언니는 지금! 웁우웁

내가 마시던 똑같은 술향기가 언니 특유의 체향이 입혀진 체 내 입을 거칠게 정복했다. 부엌에서 회의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나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입 안으로 삼켰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 지, 언니는 이제는 약하다고 할 수 없는 팔로 자꾸 멀어져가는 나를 붙잡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언니가 내 위에서 나를 찍어누르듯 강하게 압박하는 구도가 완성되었다.

“어… 언니!?”

“유나야 그거 아니?”

알콜, 크리스마스 파티, 키스, 따뜻한 방의 열기, 그리고 이상야릇한 감정선으로 달아오른 나에 언니가 그 어떤 요정보다 야해보였다. 자신의 입술로 내 입술을 다시 감미하듯 한바퀴 입을 다신 언니가 말했다.

“어떤 신화에서는 겨우살이는 만인의 사랑을 받던 신을 죽였다고 하더라고, 이를 신살의 창 미스틸테인이라고 부르던데.”

“…네!?”

“그게 왜 그런건지 알거 같아.”

마치 정복자처럼 느껴지는 북유럽의 야만스러운 바이킹처럼 언니는 자신만만 얼굴로 그렇게 선언했다.

나는 그 정복의 대상자가 된 가련한 백성마냥 소파에서 그녀를 밀치고 일어났다.

“자… 잠깐 언니? 여기는!”

나는 겁먹은 어린 동물처럼 다급히 언니의 압박을 벗어났다.

내 인생에 있어서 당황스러운 선택지를 마주한 나는 타는듯한 갈증을 느끼고는 거실로 달려가 누군가 따라 둔 물을 마셨다.

“자, 잠깐 유나 매니저님 그거!”

말리아가 다급한 어조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액체를 다 마시고 나서야… 그게 물이 아닌 보드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 평소라면 한 입 마시고 바로 알아차릴 그 술을 발칵발칵 다 마시고 나서야 알게 되다니…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술로 인해 이성이 끊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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