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27화 (127/307)

〈 127화 〉 126화.

* * *

크리스마스 파티 이후, 연말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어느 정도냐면, 평소에 자주 가던 식료품점에서 ‘내일은 쉽니다’라는 글을 보기 전 까지 연말이라는 자각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지금의 나는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춤과 노래에 한창인 언니를 회사에 데려다 두고, 나도 회사의 스튜디오에서 방송에 들어가거나 회의를 하는 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무 방송은, 집에 돌아와서도 해야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스케쥴로만 보면... 나는 퇴근 후에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가까이 되는 방송을 하면서 바쁘게 일정을 소화해냈다.

“요즘 유나 너무 바쁜 거 같아. 버튜버인 나보다 더 바쁜 매니저가 어디에 있어?”

이사를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슬슬 방을 정리하고 있는 내 방에 들어온 언니가 내 침대에 몸을 눕히면서 그렇게 투덜거렸다.

크리스마스 이후 바빠진 나와 달리, 언니는 비교적 널널한 편이었기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긴 언니는 벌써 이사 준비를 다 마치고, 몇 개의 택배는 벌써 보냈다고 했다.

“그러게요... 연말에 이렇게 바쁘다니...”

“작년에는 어떻게 보냈어?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기말 준비를 대충 마친 다음에...”

“다음에?”

잠시 눈을 감아 작년의 내 연말을 떠오른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나, 대학생이었지 참... 하면서 말이다.

당시에 나는 연말이 되는 시기에는…

“세기말 랭크 게임 돌렸죠. 결국 챌린저 유지에는 실패했지만.”

“아... 맞다, 유나는 그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 되게 좋아했었지.”

“네, 성취감이 굉장히 큰 게임이거든요.”

뭐 요즘에는 정글 가챠게임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일본에 오고 난 이후 핑이 80~100을 왔다갔다 하는 환경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중얼거리던 언니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남동생이 그 게임의 프로 게이머라고 했지?”

“네, 중국에서 세계급 선수로 활동중이에요.”

“흐흥, 그리고 유나는 내가 그 게임 하는걸 막으려고 들고?”

롤을 하는 나에 언니라니, 무슨 세기말적인 모습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유나가 그렇게까지 반대 하니까 하지는 않을게. 그런데...”

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언니가 내 책상위에 놓인 종이를 집어올리며 말했다.

연말 정산 레포트와 내 회의에 발표한 자료를 슥 읽던 언니가 미안한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 유나의 연말이 올해에는 바뀌게 되어서 미안하네, 어찌 보면 나 때문에 더 바빠진 거 아니야?”

아마 매니저 일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최근 들어서 회사 내에서 오가는 나와 언니에게 새로운 매니저들을 붙여서 따로따로 관리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아는 언니는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나는 언니와 떨어지기 싫어서 단칼에 거절을 했고, 서로 합의점을 찾아보자면서 일단 회사에 그렇게 말해두었다.

아무리 바빠도 언니의 매니저 일은 포기하기는 싫었다.

왠지 남에게 나의 것을 넘겨주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확실히 이전에 비해서 크게 바빠졌다.

“그래도 언니의 일은... 우리 둘 사이에만 두고 싶어요.”

“어머.”

나의 고백하듯 외치는 그 말에 언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그렇게 말했다.

이것은 어리광이라면 어리광이다.

하지만 내 일을 어느 정도 넘기는 것이면 모를까... 나에 언니의 일은 나와 언니만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차라리 나의 매니저를 구하면 모를까, 언니에 관한 것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 싫었다.

“장하다 우리 유나...”

나보다 한창 작은 언니가 까치발을 들고 나를 쓰다듬으려고 들었다.

허리를 살짝 숙여 머리를 내려준 나는 언니의 손길을 받으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했다.

회사의 일, 언니에 관한 일, 나의 방송 업무, 최근에 녹화를 시작한 언니의 목 건강, 마미 선배가 나에게 넘겨준 곡들에 대한 생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맞다 언니!”

“응, 왜그러니 유나야?”

“저희 이사가게 될 집... 그러고 보니 방음부스 설치해야하지 않을까요? 게임을 하면 소음도 나고, 노래도 부르게 되면 확실히 시끄러워 지는데 말이죠.”

“아...”

“아무리 우리의 이웃이 버튜버들이라고 해도 폐를 끼칠 수는 없죠.”

“그래… 이웃에게 폐를 끼친다라…푸훕.”

내 말을 따라하며 무언가를 생각한 언니는 갑자기 웃음을 풉, 하고 터트렸다.

이사를 위해 옷을 담아둔 상자위에 풀썩 올라탄 언니가 무언가를 떠올린 모양인지 눈을 반짝 빛내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우리의 첫 만남, 내가 부린 난동에서였지?”

올해 초,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집에 박힌 생활을 시작한 나는

옆방에서 들리는 언니의 샷건 소리에 잠이 깨서 따지기 위해서 옆방으로 찾아갔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따지고 보면… 옆방의 소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알게 되었네?”

“그러게요. 제 옆방에 버튜버가 살고 있을 줄이야, 정말 세상 사 신기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된 우리의 첫 만남 이야기를 떠올린 언니와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를 무서워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가 너무 인싸처럼 보여서 말을 걸기 부담스러워 했다던가

식은 요리를 멋지게 살리는 모습을 보며, 아­이사람을 신부삼고 싶다는 오타쿠적인 발상을 했다던가

나를 선라이즈에 완벽하게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코이즈미씨에게 연락을 넣어서 매니저 일을 제안하게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이런 추억들을 만들어 주었던 이 쉐어 하우스…도 올해가 마지막이네.”

오늘이 12월 30일인 것을 생각한다면, 정말로 마지막이었다.

두 사람 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지만 일짝 떠나는 셈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살짝 안타까운듯이 일층과 이층을 오고다니면서 추억을 새기듯 방을 둘러보았다.

전반적으로 깔끔한 일본식 일반 가정은 쉐어 하우스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기숙사보다 훨씬 좋았다.

다만 임대 하우스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장식을 막 꾸민다거나, 벽에 못을 박는 등 인테리어를 개선하지는 못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당시 대학생 2학년의 가난한 주머니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에 이 저택에 살았던지라 나는 아쉬운 마음이 조금 더 컸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의 12월 30일의 밤이 저물었다.

***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이삿짐 센터를 부르기에는 적은 짐인터라 나와 언니는 두 번 우체국을 오고 다니면서 의류와 남은 생필용품들을 미리 보냈다.

부동산에는 일찍 방을 뺀다고 말을 해두었고 이미 퇴거 계약서에도 사인을 했다.

그리고 청소 상태를 점검하러 온 부동산업자가 엄지를 척, 하고 돌아간 지금… 우리들은 꽤나 비게 된 집안에서 12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되었다.

“언니는 오늘 방송 몇 시에 있어요?”

“오늘은 평범하게 1월1일을 맞이하는 심야 방송이야.”

“저는 오전 1월1일에 새해 토크 방송이에요. 이나리와 마녀, 에이아와 아그니가 나오는 방송이죠.”

“으으, 나도 유나의 방송에 게스트로 등장하고 싶은데에…”

아쉽게도 나에 언니와 나는 같은 설정상 같은 마왕성 소속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공식 방송에는 같이 잡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개인 방송이 아니라 회사의 공식 정보를 발표하거나 회사에서 주최하는 예능 방송이나 기획 방송을 진행하는 일이 많아서, 내가 언니의 방송에 등장하는 일은 내가 주로 언니의 방에 들어가는 일 뿐이었다.

아무튼 아쉬워하는 언니를 토닥거린 나는 평범하게 문을 닫은 식료품점 대신에 인근의 약국에서 사온 우메슈(매실주)를 까서 한 잔 따랐다.

“…잠깐, 지금 술 마시는거야?”

“에이, 우메슈 한 잔 정도야 가벼운 음료죠.”

“그…그런가?”

언니의 잔에도 한 잔 따른 나는 잔을 들어올렸다.

엉겁결에 언니도 술이 담긴 잔을 들어올렸고, 우리들은 가볍게 건배를 했다.

“올해도 수고하셨습니다.”

“오, 올해도 수고하셨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송년회를 한다거나, 하는 느낌이지만 저희는 이사 때문에 바쁘잖아요?

이렇게 둘이서 간출하게 보내야죠.”

그래도 일본의 풍습에 따라 토시코시 소바(??しそば:해넘이 국수)는 준비를 해 두었다.

낡은 냄비에 달그락 거리면서 육수를 준비하고 있었고, 마지막 남은 기름과 밀가루를 쥐어 짜서 튀긴 새우 튀김과 야채 튀김은 준비가 다 되어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런 토시코시 소바는 지역이나 가정 풍습마다 먹는 시간대가 다르다고 했는데 언니는 어땠어요?”

“…몰라.”

“네?”

“우리 가족은… 이런 거 챙겨주지 않았거든.”

언니와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언니가 말해주지 않는 가정사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된 나는 말없이 빈 술잔에 술을 채웠다.

단숨에 비워낸 나와 달리, 잔에 가득 찬 술 안에 들어간 얼음을 빙글 거리면서 무언가 안좋은 생각을 하는 듯 어두운 표정을 짓는 언니의 얼굴을 본 나는 언니를 끌어안았다.

“그럼 우리끼리 정해봐요. 우리는 이제 방송인이고, 둘 만이서 보내는 새해 시간도 좋지만 아무래도 당분간은 방송에 집중을 해야하니… 더도말고 딱도말고 8시에 먹는게 어때요?”

“그…그래?”

“네, 어차피 1월1일을 맞이 하는 순간에는 시청자들과 함께 할거고, 수 천명 사람들 앞에서 소바 넘기는 소리를 방송에 내긴 조금 그렇잖아요?”

“으…응.”

“그러니까 유나와 나에 언니의 토시코시 소바는 앞으로도 오후 8시에요. 아시겠죠?”

“그렇다는 말은… 내년에도 12월 31일에 같이 해를 넘겨준다는 거야?”

“물론이죠.”

내 대답을 들은 언니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작게 흐느끼듯 들썩이는 언니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나는 내년에는 언니가 고작 이런 일로 상처받는 일 없이 평범하게 행복한 순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창밖을 보아 올해 마지막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 나는, 마음 속으로 굿바이 2019년을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내년에는 코로나가 끝나겠지?

그렇게 되면 내년에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언니와 다양한 장소를 쏘다닐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부디 내년에는 마스크 없이 밖에 외출하는 세상이 되기를 나는 기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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