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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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튜버를 열심히 보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는 1월1일로 향하는 밤에도 뜨겁게 불타올랐다.
올해 들어서 크게 성장한 선라이즈는 작년과 비교할 수 없게 많아진 방송인들 덕분에 신년 볼거리가 풍부했는데, 그 중 새해를 기념하는 순간에도 모인 4만5천명의 시청자들은 이나리, 마녀, 아그니, 에이아가 게스트로 출연하고 메이드 라가 진행하는 공식 방송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러 화젯거리가 나오면서 버튜버들의 올해 다짐이나 작년에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신년을 보내는 방식 등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얻게 되어서 많은 팬들이 키리누키를 땄지만 가장 압도적인 것은 [막장 드라마 연기]였다.
어찌보면 예능 프로그램의 벌칙 게임처럼 보이는 랜덤 토크 테마를 정해서 거기에 따른 대화를 하는 형식인데, 이나리가 뽑은 [막장 드라마 연기]는 단언하건데 난이도가 극상에 가까운 어려운 주제였다. 하지만 그녀는 선라이즈의 전설답게 재치 있는 막장 드라마 연기로 사회자인 메이드 라를 당당히 골리려고 들었다.
의외인 것은 메이드의 대응이었다.
난데 없이 아이를 배었다고 말하는 꽤나 파격적인 발언에도 흔들리지 않고, 거기에 어울리듯 차갑고 나쁜 쓰레기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으로 그녀의 장난을 튕겨내었다.
이나리 또한 이에 굴하지 않고 유혹하는 몸짓을 하며 메이드의 철벽 수비를 벗겨내려고 했고, 밀어내는 메이드의 연기와 당기려는 듯한 이나리의 연기는 말 그대로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 그 자체였다.
이 일련의 연기는 곧장 키리누키로 만들어지고, 유명한 막장 드라마의 배경 음악이 삽입되거나, 실제 연기에 메이드와 이나리의 얼굴이 합성된 영상이 새해 아침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윽시 이나리님ㅋㅋ 이런 돌발 예능에도 곧 잘 연기하시네
근데 그거 받아주는 메이드도 보통아니다.....
마녀님 웃는거 봐 역히 드라마 애청자ㅋㅋ
그나저나 뜬금없이 아이를 임신했다니... 이거... 메이드 여우 각이냐?
여우가 너무 요오오오오망해
중간에 낀 에이아 뭐냐 ㅋㅋ용사님 포스 어디갔어? 부장님 다 되었네
그리고 버튜버에 관련된 태그를 올리는 트위터나 픽시브에는 양복을 입은 이나리와 메이드가 뜨겁게 서로를 바라보면서 ‘사실 사랑했었어. 내가 미안해’ 라거나 ‘우리의 행복한 2세는...’ 따위의 그림 연성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새해부터 뜨거운 커플링 논란에 휩싸이게 된 유나는 커뮤니티의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졸린 눈을 비비며 자그마치 새벽 두 시 반 까지 이어진 신년 방송을 마치고 새해를 보기 위해 자신의 동거인인 나에를 깨우는 것으로 자신의 첫 날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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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일어나요~”
나도 잠을 조금만 자서 그런지 목소리에 졸린 기운이 가득했다.
졸림 가득한 내 목소리를 들은 나에 언니도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어제 토시코시 소바를 먹으면서 결정한, 올해 첫 해는 인근의 다나시(?無) 신사에서 해맞이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밤샘에 가까운 방송을 하거나 게임을 해서 떠오르는 첫 해를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즉흥적으로 한 생각이었는데, 노곤한 몸과 자꾸만 감기는 두 눈이 무거워서 그런지 그 결정을 잠시 후회했다.
“으응 유나야...”
이게 사람인가 고양이인가
하품하는 고양이를 기른다면 나에 언니와 비슷하겠지?
속옷이 보이는 흐트러진 잠옷 사이로 사람을 홀리듯 나른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 나는 내면에서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을 억누르고 언니를 일으켜 세웠다.
마치 고양이를 집듯이 언니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일으킨 나는 외출 준비를 채근했다.
“으애애앵.”
“귀여운 척 하셔도 소용 없어요. 올해야 말로 꼭 떠오르는 새 해를 보기로 했잖아요?”
한국과 다르게 일본의 해돋이는 한국보다 40분에서 한 시간 더 빠르다.
그렇다는 말은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는 더더욱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거고...
나는 새벽 다섯 시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면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외출 준비를 갖춘 다음, 언니의 외출을 도왔다.
그렇게 밤을 지샌것과 다름 없는 두 방송인은 그래도 새해인데... 하는 생각으로 행여나 주위 건물이나 풍경으로 위치를 알 수 없게 조심하면서 어두운 하늘을 찍어서 트위터에 투고를 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현재 마왕성의 두 사람은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을 했습니다. 이 글을 이 시간에 보고 있는 여러분도 새해 찬 공기에지지 않고 무사히 해돋이를 보러 갑시다! (」ロ)」]
추워서 그런지 자꾸만 굳어가는 손에 입김을 불어일으키며, 언니를 차 안에 태운 나는 시동을 걸었다.
“우웅, 고생이 많아 유나야...”
“다 언니를 위해서인걸요? 저는 괜찮아요. 선라이즈의 체력 괴물 유나!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시시껄렁한 소리를 주고 받으며, 나는 네비게이션에 신사의 위치를, 언니는 태연하게 차내 블루투스를 통해서 새해기념 밤샘 방송을 하는 선라이즈의 버튜버의 방송을 켰다.
새해임에도 열정적으로 임하는 방송인들의 근성을 본받으며 우리는 새해부터 열심히 방송을 하는 5기생 후배의 새해 기념 ‘사자의 당근 먹기 방송’을 보면서 신사로 나아갔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제법 거대하고 오래된 편인 다나시 신사에는 해돋이를 하러 온 시민들이 많았다. 나는 처음에 무슨 해돋이를 신사에서하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한국이 아닌 일본은 산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고, 적당히 언덕이 있는 곳에서 편하게 해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산을 오를 걱정 없이, 이전의 불꽃놀이 축제처럼 아침에 노점을 연 사람들이 갓 만든 타코야끼를 오물오물 먹으면서 부산스러운 새해의 기분을 누렸다.
지역자치 위원회인지, 아니면 이 신사의 주인인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단상위에 올라가 여러분 새해를 기다리시는 여러분~ 으로 시작하는 신년 인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올해의 첫 해가 동터 오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오어 하면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사방에서는 일본어로 새해가 밝은 것을 축하합니다 하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렸다.
한국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조금 더 본격적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일본 사람들 사이에 선 나는 이런 풍경이 낯설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사방을 돌아보면서 신기하다는 듯 두리번거리는 나에 언니를 바라보았다.
그런 언니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나온 어린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로는 언니의 외모를 다 가릴 수 없는지, 그 어린 소녀는 ‘엄마 저기봐 요정이 있어’ 하는 동심 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밤샘에 가까운 수면 부족현상과 추위로 인해서 언니의 외모가 고작 10%만 발휘되는 지금에도 꼬마의 눈에는 충분히 아름다워 보이는지 언니는 어린아이의 솔직한 칭찬에 얼굴을 붉혔다.
“새해 복 많이 받으렴.”
용기를 낸 언니는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그 소녀의 이마에 쪽 하고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녀의 어머니를 보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낯선 사람에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지금
언니와 나는 새해를 맞이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축하를 나누었다.
이윽고 폭죽이 시작되고, 코로나를 이겨냅시다! 하는 힘찬 문구와 함께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아침부터 고생을 한 노점상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추운 지 따뜻한 타코야끼나 야끼소바를 찾는 사람들부터,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부모님들은 초콜렛 무스를 바른 바나나나 설탕이 뚝뚝 떨어지는 탕후루, 그리고 어린아이의 입에도 잘 어울리는 몹시 작은 사과로 만든 링고아메를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아저씨들 사이에 서서 따스한 아마자케(??:쌀 누룩으로 만든 일본의 단술)를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으, 달다.”
“유나는 신년 아침부터 술이야?”
“그치만... 이런 거 꼭 해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언니도 어때요?”
“난 유나같은 주정뱅이가 아니라 괜찮아.”
으윽
묘하게 내가 술 마시는걸 경계하는 언니의 모습이 귀여웠다.
너 또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거지? 하는듯한 언니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살짝 외면한 나는 언니의 손을 잡은 채 일본의 신사라면 빠질 수 없는 오미쿠지의 행렬에 참가했다.
“오미쿠지 행렬 엄청 길구나...”
“아, 여기에는 오미쿠지 바로 옆에 신년 부적이 있네요. 우리도 한 번 해봐요 언니.”
기다리는 동안 마땅히 할 게 없는 우리들은 하나의 이어폰을 둘이 나누어 낀 채 버튜버들의 신년 방송을 기다리면서 행렬을 기다렸다.
장장 십 분간의 대기 끝에 우리들은 오미쿠지를 뽑게 되었고, 그 결과는.
“얏호. 길(?)이다 길! 언니는요?”
“언니는 대길(大?).”
의기양양하게 대길이라 쓰여진 한자를 들이내미는 언니의 볼을 살짝 꼬집은 나는 바로 그 옆에서 신년 부적을 파는 가게의 행렬에 들어섰다.
차례를 기다리길 잠시, 무녀복을 입으신 단아한 할머님이 우리들에게 뽑은 오미쿠지를 보여주게 한 다음, 어떤 부적을 구매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오미쿠지에 적힌 특이한 무늬에는 뽑은 사람들의 길운을 점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호호호, 복이 많은 참한 아가씨들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무녀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적은 여러 개 사면 효과가 중첩되나요?”
무슨 부적을 게임 아이템 취급하는 나를 살짝 괴짜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무녀 할머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상술적으로는 그렇게 대답해드리고 싶지만... 무속인으로서는 하나의 부적에 큰 행운이 깃들기 때문에 하나만 구매하시는 걸 추천드릴게요.”
신기하듯 여러 부적들을 둘러보는 나에 언니를 귀여운 딸을 바라보듯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은 할머니는 언니에게 연애운의 부적을 안겨주었다.
“사랑을 손에 잡으시려고 하는군요. 하지만 작은 아가씨의 연인은 타고난 별의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꼭 붙잡으셔야 해요.”
세상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바로 점을 때려 주는건가?
“할머니, 저는요?”
“워낙 별의 사랑을 타고난 아가씨에게는... 건강운 혹은 재물운을 추천드릴게요.”
재물운이라면 모를까, 건강운이라니?
나는 내 타고난 건강을 믿고 있기 때문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저, 이렇게 건강한데요?”
“으음... 하지만 아가씨에게는 체력적으로 무언가 시달릴 조짐이 보이는걸요?”
체력적으로 시달릴 일이라...
그렇다면 역시 선라이즈의 일인가?
올해에도 엄청 바쁘게 움직일 모양인가 보구나...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건강운 대신에 재물운이 담긴 부적을 구매했다.
아무래도 개같이 구를거라면 돈이라도 많이 땡겨야지
아암, 젊었을 때 팍팍 벌어야 불안정한 유튜버의 은퇴 이후의 삶도 고민할 수 있는거야.
이참에 일본에서 카페를 내는것도 어떨까?
유나의 한국식 카페, 그러니까 설빙같은 한국식 빙수를 팔아도 인기가 좋을 거 같은데...
“오호호호, 돈 굴러가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네요. 아가씨들, 괜찮다면 이후에 우리 신사에서 진행되는 시시마이를 보고 가시는 게 어때요?
전통적으로 우리 신사의 부적을 구매하시고 시시마이를 본 이들은 부적의 효과를 잘 누리는 편이랍니다.”
“시시마이가 뭔가요?”
“아, 그건 일본 전통의 사자춤 같은 거야.”
그러고보니 어느 애니메이션인가 만화에서 본 기억이 난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뒷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부산스러운 신년 아침의 신사를 구경하던 우리들은 무녀님의 추천대로 사자의 춤을 보았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자탈을 뒤집어 쓴 무용수들의 힘찬 공연과 함께 우리들은 주위 사람들의 장단에 맞추어 박수를 치면서 구경을 했다.
말 그대로 알찬 일본 관광을 즐긴 나는 언니의 손을 잡은채 차 안으로 들어왔다.
서로의 품 속에서는 부적을 꼭 쥔 채, 우리들은 안전벨트를 매었다.
“참 즐거웠어요. 그렇죠?”
“응. 유나랑 함께하니까 더 재미있는 거 같아.”
흠흠, 이른바 성공적인 데이트라는 거군
나는 기쁜 마음으로 차의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차는 출발했지만, 자꾸만 멈추는 도로 위에서 할짓이 없던 나는 신년 계획을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내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묘하게 휴대폰을 바라보는 언니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무슨 언니의 동영상에 악성 댓글이라도 달린 것일까?
“언니, 괜찮아요?
하지만 언니는 내 바램과 달리 전혀 괜찮지 않다는 듯,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면서 날카롭게 말했다.
“유나야... 이거... 뭐야?”
언니가 보여준 휴대폰에는 나와 이나리가 막장 드라마를 연기하는 키리누키 영상이 올려져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간밤에 그런 연기를 했었지...
근데 언니에게 어떻게 말하지?
나는 방어하듯 운전대에 몸을 바싹 붙였다.
등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언니의 강렬한 시선을 애써 회피하며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언니에게 설명하려면 꽤 긴 과정이 필요한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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