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130화.
* * *
침대
침대는 과학이다.
양질의 메트리스는 인간의 수면 피로도를 크게 떨어트려주고, 좋은 침대는 방 안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것 만으로도 굉장한 심적인 안정감을 준다.
일본에서 살다보면 그 뿐만 아니다.
내진 설계로 인해 한국과 달리 온돌을 놓기 어려우며, 차갑고 건조한 일본의 냉기는 바닥에서부터 올라온다.
때문에 바닥에 두터운 요를 깔지 않으면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냉기로 고생하게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에고고고.”
“이구구구.”
바닥에 이불을 세 개 깔고 잤다고는 하나, 차가운 겨울 바닥의 냉기가 몸에 파고드는 것을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나에 언니와 나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은 채 일어난 다음 허리를 두들겼다.
“침대 오늘 꼭 사자.”
“네, 그리고 커피 포트도 꼭 사죠.”
짐을 풀고 정리하고, 상자를 바깥에 두는 것으로 오후의 일과가 삭제되었다.
심지어 어제는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일본의 가게가 쉰다는 1월1일이었기 때문에 어딘가에 나가서 쇼핑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무튼 오늘은 둘 다 밤에 방송이 있고, 적당한 가구들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아직까지 낯설게 느껴지는 복도를 걸어 나가면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물어보았다.
“언니, 새 집은 어때요?”
“만족스러워.
아직 우리들만 들어온 까닭에 조용한 복도를 또각또각 걸어나가면서 우리들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헤에하는 표정으로 새 집 건물의 이모저모를 살펴 본 언니의 표정이 무언가 들떠보였다.
“언니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일이라기 보다는... 가구를 사러 가는 건 처음이니까...”
아...
하긴 오늘 살 물건들은 하나같이 비싸고 부피가 크고 중요한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침대, 책상, 가구, 책장, 서랍장 등 휑한 집을 가득 채울 물건을 사러가야 했다.
“그리고 이러니까...”
“이러니까...”
“신... 아니야.”
차 안에 앉아서 목도리를 들어올려 얼굴을 가린 언니를 본 나는 살짝 언니의 말이 신경쓰였지만 이내 관심을 그만 두었다.
신... 뭐일까?
신난다?
언니가 삼킨 말이 뭘까, 생각을 하고있자니 어느 덧 대형 백화점에 도착했다.
아직 치우지 못한 신년의 장식들로 화사한 색감을 자랑하는 백화점에 들어선 우리들은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일단은...침대부터다.
여러 코너를 둘러 본 결과, 언니와 나는 살짝 의견이 갈리게 되었다.
그도 그럴게...
“저희 집 높이는 충분 하다니까요? 2층 침대면 큰 방에 두고 잘 쓸 수 있잖아요.”
“싫어싫어싫어, 무조건 큰 침대야. 퀸 사이즈 침대에 눕고 싶어!”
언니가 나에게 운동할 때가 아닌 시기에 ‘싫다’라고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언니의 강한 의사 표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층 침대를 고집했다.
그도 그럴게...
낭만이 있잖아! 거기다가 침대 아래에는 수납공간이, 그리고 충전 포트를 꼽을 수 있는 기능성이 충만한 침대였다.
가격도 적당하고, 두 사람이 쓰기 편한 침대였기 때문에 나는 이층 침대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하지만 평소라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나에 언니가 이번에는 유독 고집을 부렸다.
“큰 침대! 푹신한 침대! 편안한 침대!”
언니가 이렇게까지 침대에 진심이었구나.
일년 가까이 살았지만 처음 알게 된 모습에 나는 살짝 놀랐다.
하지만... 이층침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세련된 현대식 직선적인 구조, 편안함을 안겨주는 검은 색깔 디자인, 튼튼한 철제 방식에 지진이나도 멀쩡해 보이는 안정적인 설계 구조!
미래식 게임에서나 볼법한 근사한 이층침대를 난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이층 침대!”
“큰 침대!”
신년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실랑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게 보였다.
살짝 부끄러웠으나, 얼굴에 철판을 낀 나는 단단하게 마음속의 가드를 울렸다.
당연히 이 광경에서 곤란해 하는 것은 직원분이셨다.
“그, 그 고객님들... 아무래도...”
“직원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히 다기능이 내재되어있고 안락한 이층침대죠?”
“커다랗고 푹신푹신한 침대! 최고급 메트리스와 우아한 이불!”
언니와 나의 시선을 받으신 직원분이 서비스용 미소를 얼굴에 간신히 유지한 채 카탈로그를 가리켰다.
다시금 퀸사이즈 침대의 가격표를 확인한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언니, 역시 이층침대가 훨씬 싸고 좋다니까요? 그쵸 직원분?”
“그치만 고객님,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프랑스베드 사의 퀸사이즈 침대는 분명히 가격면에서 부담스러운 것이 있긴 하지만...”
인근의 책상에서 서둘러 카탈로그를 가져온 직원분이 설명을 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프랑스베드 사에서는 코로나임에도 결혼을 하는 신혼부부들을 위한 지원 패키지로, 자사의 침대를 구매하게 되면 저희 백화점과 연계되는 모든 신혼 살림 관련된 패키지를 싸게 지원받으실 수 있습니다.”
“...네?”
“무, 물론 신혼부부들을 위한거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이런 침대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신혼부부들이잖아요? 그, 그러니까 이 침대를 구매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두 카탈로그가 적용되는데...”
살짝 붉어진 얼굴로 카탈로그를 건내받은 나는 쭉 리스트를 훑었다.
브랜드에 따라서는 무려 75%의 할인율까지 적용이 되고, 꽤나 다양한 브랜드들이 이름을 자리하고 있었다.
가구는 물론이고 생활가전과 가전제품의 다양한 브랜드와 할인폭을 읽어본 나는 책상에 앉아서 계산기를 두들겼다.
이층 침대의 값과 프랑스베드 사의 퀸사이즈 침대를 비교해본 결과...
이걸 놓친다는 것은 최애캐의 한정가챠를 안 돌리는 것과 같았다.
무조건 이득이었다.
“언니!”
“으, 응!?”
“이 커다란 침대의 색깔은 어떤 게 좋으세요? 저는 베이지 시트가 좋아요.”
안 그래도 휑한 집에 여러 가구를 들여 놓아야 해서 몇 개는 포기했는데 침대에 딸린 할인 혜택은 고이 접어둔 마음에 다시 불씨를 지펴 올렸다.
갑작스럽게 변한 나의 태도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언니는, 내가 그 커다란 침대를 산다고 하자 이내 해맑게 미소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 최고!”
이윽고 침대의 결제가 끝나자 나에게 달려온 언니는 내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해주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를 뒤로하고, 나는 볼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려고 하며 쇼핑을 이어나갔다.
***
잠시 후
집에 돌아온 나와 언니는 우리를 뒤따라 들어온 백화점의 직원분들과 설치기사님과 함께 가구를 세팅했다.
여자 둘이서 사는 집 치고는 괜찮게 보였는지 직원 분들은 나가는 그 순간까지 친절하게 가구를 이래저래 옮겨주셨다.
책상과 인터넷 설비까지 모두 점검이 끝나고 나서야, 우리는 저녁 여덟 시가 되어야 겨우 방금 도착한 침대에 누워서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단언하건데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침대인 만큼 푹신푹신한 이 메트리스는 자본의 힘을 잘 이어받은 듯 내 허리를 편안하게 받쳐주었다.
내 옆에 누워서 나를 바라보는 나에 언니와 함께 우리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힘들다아...”
“그래도 새 집 꾸미기 재미있었어.”
“언니도 즐기셔서 다행이네요.”
하루 종일 쇼핑하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하루 종일 가구를 이래저래 옮겼다.
커튼을 구매하거나 벽걸이나 옷걸이 등을 구매하는 등 추가적인 지출은 아직 필요하지만, 그래도 얼추 풀옵션에 가까운 집이 완비되었다.
고마워요, 프랑스베드 사, 덕분에 싸게 집을 꾸몄어요!
“배고프다아...”
“피자 배달 예상 시간이 30분 남았으니 조금 참아봐요.”
아무리 나라고 해도 오늘은 도저히 요리를 할 힘이 나지 않아서 저녁은 피자로 때우기로 결정했다.
그나저나 오늘 밤에는 방송을 해야 하는데... 힘이 나질 않았다.
“근데 유나야, 오늘 우리 얼마 쓴 거야?”
“잠시만요...”
나는 휴대폰을 켜서 오늘 지출 내역을 쭉 훑어보았다.
첫 살림살이, 그것도 대부분을 신제품 구매하는 방식
듣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지출이었는데 그 금액의 40% 가까이를 디스카운트 받았으니...
그래도 지출액은... 여섯 자리 수와 일곱 자리 수를 오가는 금액이었다.
그 금액을 본 나는 갑자기 방송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다.
내 휴대폰을 바라본 언니도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으응... 이런거 다 하나하나 구매하는 거 생각 의외로 비싼거였구나.”
“그래도 저희 용케 빚은 내지 않았네요. 솔직히 말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그래?”
“네, 원래대로라면 이런 새로운 집... 그러니까 새 살림을 차리는 건 대게 은행에서 빚을 내는 방식이거든요.”
“유나가 신용 카드가 있어서 다행이야...”
“하하하...”
구매의 대부분은 결제 시 할인혜택이 큰 신용카드로 이루어졌다.
우습게도 일본인인 언니는 신용카드가 없었는데, 아직까지 버튜버라는 직업, 아니 유튜버라는 직업이 보수적인 일본 신용등급 위원회에서는 낯선 직업인 모양이다.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신용카드를 발급 받는 게 상당히 까다로웠는데, 일본인인 언니의 신용점수보다 명문 대학 유학생인 내 신용점수가 더 높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이미 두 차례 신용 카드 신청에 실패를 먹은 언니 대신에 구매를 대신 한 나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통장을 관리하게 되었다.
“우리 유나 대단해 대단해.”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언니의 손길은 참 다정했다.
한참을 언니의 손길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제 이 침대에서 같이 자는 건가?
자, 잠깐만... 겨울이라면 모를까, 여름에서 잘때에는 난 상당히 옷을 벗고 자는 편인데...?
거기다가, 난 혼자 있으면 가끔씩 속옷 차림으로도 돌아다니는 데?
그, 그런 모습을 언니가 본단 말이야?
“왜 그러니 유나야?”
“저, 저기 언니...”
“으응?”
하지만 언니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에이, 언니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나를 그렇고 그런 눈으로 바라보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굳이 말하자면 연애의 ABC의 D에 가까웠다.
갑작스럽게 이렇게 내 무방비한 일상을 공개하는 순간이 찾아온 거였어!?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래도 언니의 순수한 눈빛과 아기와도 같은 볼살을 보고 있자니 언니가 나를 그렇게 야릇한 시선으로는 보지 않을 것 같았다.
“아, 아니에요.”
“헤헤.”
순진하게 웃는 언니의 모습을 본 나는 살짝 이상야릇한 생각을 떠올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내 볼을 가볍게 두들겨주었다.
이상하고 복잡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번뇌의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초인종이 울리고 우리는 첫 살림을 완비한 기념으로 피자를 먹으면서 자축했다.
하지만 피자를 먹고 있는 와중에도 무언가 복잡미묘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내 심리 상태는 방송을 키는 그 순간까지 이어졌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별 일 없겠지?
나는 반사적으로 어제 신사에서 산 부적을 차고 있는 목걸이를 꼭 쥐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