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1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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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도쿄 올림픽의 해가 떠오른 2020년의 버튜버판의 가장 큰 소식은 다름아닌 병으로 인해 일년 가까이 휴식을 취한 2기생의 버튜버 미즈나시 오르페의 복귀 소식이었다.
병원에서도 꾸준히 라디오 토크나 디스코드 음성 채널로 자신의 근황을 소소하게 전하던 그녀는 본격적으로 새해의 첫 주가 지나기가 무섭게 복귀 소식을 밝히고 등장하였다.
그녀의 복귀 방송에 모인 인원만 실시간으로 무려 3만5천명
역대 최고 동시시청자를 기록한 그녀는 특유의 신나는 텐션과 함께 방송에 등장, 그 존재감을 뽐냈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트위터에서는 #오르페님 복귀 #다시일어난 드래곤 같은 해시태그가 유행에 타서 실시간 토픽 순위 1위를 가지게 되었고,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그녀의 팬아트를 그리거나 다시 올리는 일로 일요일 밤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군대를 다녀온 남자 아이돌이 신 앨범과 함께 등장한 것과 같은 기세에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놀랐다.
내가 입사하고 활동하기 이전에 휴식기에 들어간 그녀는 자그마치 9개월간의 투병생활 끝에 완벽하게 병을 치유하고 돌아왔는데, 그녀의 행보를 담은 많은 키리누키 영상을 보고 엄청난 파급력을 지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큰 감명을 안겨준 대단한 버튜버는…
“에고고고.”
새롭게 이사한 맨션의 작디만한 엘레베이터 앞에 엎어져 있었다.
갓 지은 새 건물 답게 깔끔한 메트리스가 깔려 있어서 크게 다친건 아니었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살다가 성인 여성이 엘레베이터 앞에 대자로 엎어져 있는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괜찮으세요?”
“에고고고 고마워요. 아직 허리가 다 낫질 않아서…”
바닥에 나뒹구는 지팡이를 잡고, 쓰러진 그녀를 일으켜 세운 나는 소문의 버튜버를 바라보았다.
예쁘게 염색한 주황색 머리카락에 인상깊은 레드 브릿지를 넣어서 화려한 머리색의 여성의 얼굴은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는 듯 살짝 찌푸린 얼굴이다.
어릴 적 아이돌을 꿈꾸며 대한민국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다녀서 눈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나도 다시한번 아름다움의 가치를 돌이켜 보게 하는듯한 이국적인 외모였다.
건장한 체격과 발육을 가지는 서양인의 체구와 단아하고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동양의 아름다움이 섞인 미녀는 찌푸린 얼굴조차도 예쁘다라는 말이 무심코 나올정도로 아름다웠다.
흔히들 말하는 아름다움의 정점이 모인다는 혼혈2세의 미인은 이내 찌푸린 얼굴을 펴고는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젯밤에 들었던 그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양인의 성대와 일본인의 어조로 말하는 혼혈 미인이면서도 130만 구독자를 보유한 버튜버의 인사는 순간 내가 스튜디오로 돌아왔는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숙했다.
“아니에요. 이웃인데 이 정도야 뭐.”
“에고고 잠시만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떨어진 핸드백을 주워서 그 안을 뒤적거리더니 케이스에서 커다란 안경을 꺼냈다. 무식할 정도로 두터운 테에 커다란 눈알을 가진 안경을 쓰자 그녀의 강렬한 인상이 죽었다.
“제가 눈이 나빠서요. 넘어지면서 렌즈가 나갔나보네요.”
“아…”
“첫 만남이 이래서 미안하네요. 선라이즈의 같은 분이시죠? 저는 선라이즈 2기생의 미즈나시 오르페를 맡고 있는 사토 마카라고 합니다.”
“미안하실게 있나요? 저는 선라이즈 4기생의 쿠로시로 유리아를 맡고 있는 쿠로가와 나에의 매니저인 김유나라고 합니다.”
“앗, 소문의 메이드씨구나! 역시 소문 그대로 아름답네요!”
역시 언니의 매니저 보다는 메이드인가… 그런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토씨도 참 아름다우시네요.”
그렇게 우리들은 인사를 나누며 첫 만남을 가졌다.
같은 회사의 동료라고는 하나 나는 그녀가 휴식기에 들어온 사람이었고 그녀 또한 방송으로 나를 봤을 뿐 서로의 접점은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사이에는 살짝 어색함이 감돌…
“저저 어제 방송 봤어요. 세상에, 어떻게 퇴원을 하시고도 그렇게 재치있게 방송을 하실 수 있어요? 정말 대단해요.”
리가 없었다.
무려 미즈나시 오르페다.
맡은 역할이 드래곤이지만 존재감이 드래곤이기때문에 ‘진룡’으로 불리는 인물을 처음 본ㄴ 나는 두 눈을 빛냈다.
세상에 세상에, 항상 버튜버의 모델은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아마 그녀는 굳이 버튜버가 아니더라도 이미 외모만으로도 100만 구독자를 보유할만한 미인이었다.
“어머나 고마워요! 저저 소문 많이 들었어요. 제 매니저가 항상 유나씨 이야기를 하면서 병원에서 심심하지 않게 이야기를 해주는데, 글쎄요. 제 동기들이 가끔씩 유나씨와 메이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게 있죠?”
그리고 그녀 또한 나의 텐션에 맞춰주듯 내 손을 맞잡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 후 우리는 서로 꽂힌듯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추운 바깥이라면 모를까, 바람이 차단되는 그 공간에서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입원 생활중 가장 끔찍했던 최악의 죽순볶음에 대한 비판론을 다 들어갈 무렵, 로비의 시계바늘을 힐끔거리던 그녀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오늘 깜짝 돌입 방송이었지 참!”
“앗, 누구의 방송에 나오시나요? 마녀님? 아그니?”
“땡! 다비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올라가볼게요!”
그렇게 나와 미즈나시 오르페, 그러니까 사토 카가씨의 만님은 그렇게 끝났다.
***
“흐응, 그래서 아이스크림이 다 녹았다 이거야?”
“어, 언니 미안.”
“아니야, 애초에 유나가 장을 보면서 까먹지 않아서 난 고마운걸.”
언니가 부탁한 아이스크림, 그러니까 떡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달토끼떡은 추운 겨울이라고는 하나 따스한 실내에 오랫동안 수다를 떤 덕분에 반쯤 죽이 되었다.
그래도 별다른 불평 없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떡을 오몰오몰 거리는 나에 언니는 자신의 새로운 버츄얼 모델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방송 대기 화면에서 자신의 새로운 의상, 그러니까 일본의 정월하면 떠오르는 유카타를 입은 유리아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한 언니는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오늘 저녁은 뭐야?”
“요거트에 재운 양고기를 볶아서 만든 카레랍니다.”
“… 나 정말 유나에게 요리 비용같은거 청구 안해도 괜찮은거야?”
언니가 미안하다는 듯 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전이라면 내 가사노동을 밥 먹는 아기새처럼 받았더라면 요즘 들어서는 청소기로 청소하려한다거나(청소기는 양말을 빨아먹고 막혀서 분해 해야했다) 세탁기를 돌리려고 한다거나(울 세제를 너무 많이 넣어서 맨물 세탁을 세 번이나 해야했다) 설거지를 하려는 식으로(세제가 다 닦이지 않아서 내가 다시 씻었다) 가사일을 도우려고 했다.
이제는 같이 살게 되었으니 가사일은 나누자, 라는 언니의 주장에 나는 두손두발 들어 환영하는 대신에 언니의 서툴다 못해 파멸적인 가사 교육을 하게 되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다시 소심한 모드로 돌아간 언니는 이따끔 나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자주 지었다.
그 마음씨가 얼마나 고운지, 나는 속에서 벅차오르는 뿌듯한 미소를 숨기지 않고 언니를 가차없이 쓰다듬었다.
“오구오구, 언니 괜찮아요. 저는 언니가 양파 피망 당근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해요.”
“으으으, 아기 취급이야?”
건강을 되찾으며 자신감이 올라왔는지 제법 내 앞에서 강한척을 하려는 언니가 귀여운 나는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요, 아기 취급 아닌데요~”
“거짓말 하지 마.”
“그 증거로 오늘 카레는 아주아주 맵게 할거에요. 아기가 아니라면 먹을 수 있겠죠?”
카레만큼은 단 카레가 좋아! 라는 언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 어른이라면 매운 카레지 암. 나는 이제 먹을 수 있어! 라고 살짝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나는 언니가 귀여워서 미칠것 같았다.
아무튼 그 후로 ‘오늘의 카레는 매울까요? 안매울까요?’ 라고 노래부르듯 언니를 놀리자, 언니는 살짝 토라진 얼굴로 방송을 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언니와 달리 당분간 방송 일정이 적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요리에 들어갔다.
시간은 저녁 다섯 시 반
언니가 방송을 마치면 일곱시니 얼추 지금 카레를 준비하면 약불에 잘 달인 카레가 완성될 예정이었다.
주방에 고정시켜둔 태블랫 피씨로 언니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관람하며 요리를 마친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밖을 나갔다.
거기에는 운동복, 그러니까 저지라고 부르는 편안한 운동복을 입고 온 미인이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나씨!”
“어라, 무슨일이세요?”
“저… 저!”
살짝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말하던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아까 엘레베이터 앞에 넘어진 것으로 휴대폰이 박살났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요기요, 배달의 민족같은 데마에칸이나 우버 이츠를 주문하지 못하게 된 그녀는 자연스럽게 외식을 해야했다.
하지만 방송 일정이 사이사이 잡혀있어서 나가기도 뭐한 지금, 배달도 불가능한 그녀는 내가 아까 엘레베이터 앞에 든 장바구니를 보고 찾아왔다고 한다.
나는 흔쾌히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에게 있어서 카가씨는 내 인생에 간만에 나의 텐션에 따라올 수 있는 활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업계 대선배나 같은 회사 동료 이전에 내 이웃으로서 도울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밥을 굶는다니, 안부 인사 대신에 밥 먹었냐라고 묻는 한국인의 피가 이웃이 쫄쫄 굶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두 시간 전에 처음 본 이웃을 집에 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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