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133화.
* * *
사람의 분위기는 옷과 장신구, 화장같은 꾸밈의 정도에 따라 크게 바뀐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카가씨는 확실히 천변만화로 바뀌는 사람이었다.
방금전에 만난 카가씨는 혼혈 미녀였다면
지금의 카가씨는 그냥 슬리퍼를 질질 끌고 돌아다니는 동네 언니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두 그릇 째 카레라이스의 바닥을 비우고 있었다.
“세상에 세상에, 유나씨 도대체 정체가 뭐에요?”
“제가 꽁으로 요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 알겠죠?”
양질의 고기와 부족한 감칠맛을 더해줄 조미료를 넣고 강한 카레향으로 덮어두었다.
아주 민감한 혀를 가지지않는 이상 호감을 표할 그 맛에 중독된 그녀는 아쉬운 듯 그릇을 바라보았다.
“한 그릇 더 하실래요?”
“아, 아뇨. 괜찮아요.”
그러는 와중에도 카레가 담긴 냄비를 바라보는 게 심상치 않았다.
휴지로 입 주위를 닦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물었다.
“방송은 어떠셨어요? 이사 오신 후 처음 하는 방송이실텐데, 윗층에는 인터넷이 어떻게 깔려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앗, 설마 유나씨 제 방송을 안 보신건가요?”
나와 성향이 비슷한 카가씨는 은근슬쩍 놀리려는 태도로 나를 추긍했다.
그녀의 익살스러운 말에 나는 부엌에 틀어둔 언니의 방송을 가리켰다.
“제 최애는 유리아 언니입니다. 동시시청은 꿈 깨요.”
“으윽, 오타쿠의 정론에 반박할 수 없겠군요.”
연극을 하듯 심장을 부여잡으며 식탁 위에 드라마틱하게 쓰러지는 그녀는 천상 방송인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웃이 살고있다니, 그녀의 뒤통수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풉,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이후에는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던 카가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례 많이 졌습니다. 그럼 돌아가볼게요.”
아마 차후에도 방송이 있겠지
막 업계로 돌아온 전설은 몹시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엉거주춤 일어나서 신발을 신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아, 하고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후 부엌으로 돌아갔다.
빈 그릇에 카레를 담고, 굴러다니는 봉지에 아까 장을 봐올 때 산 귤을 담았다.
카가씨는 살짝 감동을 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머쓱해진 나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귤은 이따 밤에 출출하실 때 까 드시고요, 카레는 물리지 않는다면 냉장고에 넣어두신 후 아침에 데워 드세요.”
“고마워요. 정말.”
과장된 그녀 특유의 방송 텐션의 연기가 아닌, 진심이 담긴 감사의 인사를 올린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올라가기가 무섭게 언니의 방송 종료 때 트는 음악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의 방문이 열리더니 살짝 지친 기색의 언니가 나왔다.
“유나야아아.”
“언니 고생하셨어요.”
쫄래쫄래 강아지처럼 다가온 언니는 내 품에 안겼다.
막 학교에 돌아온 어린 아이를 쓰다듬듯이 언니를 쓰다듬고 있자 언니는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양새가 어찌나 강아지 같던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척 하고 들어올린 언니의 매서운 눈을 보기 전 까지 말이다.
“유나야.”
묘하게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
굳어진 나는 군인처럼 ‘넵’하고 대답했다.
“왜… 카레 냄새 사이에 여자 냄새가 나는거야?”
…
아니 화장도 안 하고 온 카가씨의 냄새를 어떻게 맡은거야?
나는 당황함을 숨기지 못한 채 허둥지둥 팔을 휘적휘적거리면서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평범하게 이사를 방금 마친 이웃이 휴대폰이 고장나서 밥을 먹고 올라갔다.
그 변명에 언니는 의심의 눈빛을 감추지 않는 채 말했다.
“주문음식은 휴대폰이 아니더라도 컴퓨터로 주문이 가능하잖아? 그런 걸 모를 리가 없을텐데?”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까먹은신 거 아닐까요?”
“유나는 왜 그 여자 편을 드는거야? 유나가 새 집에서 나를 위해 끓인 새 카레를 가장 먼저 먹어치운 그 여자에게?”
아
삐진 포인트가 그거였구나…
언니가 좋아하는 내 요리 중에서 당당하게 베스트3안에 들어간다는 카레
그것도 이사를 한 다음 첫 카레를 맛본게 나나 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는 게 언니의 삐침 포인트였다.
이해 못할 건 아니었고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음식에 대한 묘한 집착을 가지는 언니가 귀여워 보이던 나는 언니가 지은 무서운 표정이 아이의 토라진 얼굴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철렁했던 내 심정이 다시 가라앉게 되어서
“너어, 그렇게 쓰다듬는 다고 내가 봐줄 거 같아?”
사실 말이 되지 않았다.
내가 한 요리를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는 내 마음에 달렸으니까.
하지만 감정상으로는 아니겠지.
그만큼 언니는 내가 하는 요리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으니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겠지?
화난 포인트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있는 이상, 감정으로 풀면 된다.
“네.”
“유나… 너…!”
언니를 쓰다듬고 쓰다듬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듯 두들겨주고
애정을 담아서 언니를 껴안았다.
나에게 있어서 언니가 이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말 없이 표현해준 나는 언니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다.
“언니, 카레 식겠어요. 밥을 먹죠.”
“응.”
살짝 긴장된 관계는 향긋하고 매콤한 카레로 풀 수 있었다.
매운지 내가 따라둔 우유를 가끔씩 마시면서 혀를 달래며 매운 카레를 맛있게 먹어치운 언니에게 설거지를 하는 요령을 오늘도 전수해준 다음 우리는 만복감이 가져다주는 행복함을 온몸으로 누리면서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킨 다음 자연스럽게 유튜브와 연결, 거실의 마우스로 버튜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고 화제에 오른 인물은 역시 미즈나시 오르페였다.
입원 생활동안 채우지 못했던 방송 욕구를 발산하려는 듯 그녀는 대놓고 심야 내구방송, 즉 장기 방송을 선언했고 그녀의 재치있는 입담으로 들려주는 병원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무려 삼만 명이나 그녀의 방에 찾아갔다.
특정한 콘텐츠를 진행하는 게 아닌 복귀 방송에 이정도 되는 인원이 찾아오는 것은 드물었기에 그녀는 여실히 건재함을 드러내었고, 근래 들어서 늘어난 선라이즈 팬들이 호기심에 그녀의 방송에 찾아가고 구독 버튼을 눌렀다.
아무튼 언니 또한 자신의 방송이 끝난 후 그녀의 시청자들이 오르페의 방송에 찾아간 것을 알았기에 언니도 오르페의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65인치의 커다란 텔레비전의 화면에 나온 그녀는 특유의 외국인 억양이 섞인 말로 재치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오디오의 공백 없으면서도 사람들을 궁금하게 하면서도 막히는 데 없이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화법
직접 찍어올린 사진과 그림일기처럼 그린 일과를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흥미 포인트를 제공하는 그녀만의 토크 쇼는 확실히 재미있었다.
몇 편에 나누어서 시작된 그녀의 근황 방송은 최근의 이사에게 까지 이어졌고 나는 그녀의 다음 화제가 나에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때문에 나는 새롭게 이사를 마쳤습니다. 예~ 짝짝짝!]
무사히 이사를 마치고 새로운 건물인 사택으로 들어왔다는 말에 시청자들은 제법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게 인터넷으로 진행하는 개인 방송인들이 모여 산다는 말은 버튜버 업계는 물론이고 방송인들로서도 꽤나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튼 그녀의 이야기는 당연히 자신에게 친절을 배풀어준 ‘메이드 라’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었다. 그 사이에 방송거리를 준비한 듯 공식 홈페이지의 내 프로필을 올린 그녀는 이전의 선라이즈 내부에서 떠돌던 소문을 종합하면서 나에 대해서 칭찬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미인에 친절하고 요리도 잘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진짜일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죠~]
그녀의 낯뜨거운 칭찬에 나도 솔직하게 얼굴이 붉어질 무렵, 언니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말했다.
“그 대단하고 예쁜 메이드는 나랑 같이 살지롱~”
초등학생이 약올리는듯한 그 어조에 나는 터져나오려는 헛기침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제가 방송하기 전에 식사를 준비하지 못해서 내려갔는데 말이죠, 그녀가 해준 매콤한 카레가 너무나도 맛있어서 정말로 놀랐어요. 가정의 냄비에서 나올법만한 요리가 아닌 정도였다니까요? 역시 선라이즈의 최고 메이드라는게 이런 존재라는 게…]
“나는 매일 유나가 해주는 요리를 먹지롱~”
[얼마나 친절한지,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제가 내일 먹을 아침거리까지 걱정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냉장고에는 카레와 귤이 있답니다. 허리가 아파서 나가지 못할 뻔 했는데…]
“우리 유나가 착하기는 하지.”
방송에 추임새를 넣듯 언니는 계속해서 오르페의 말에 추임새를 넣으면서 그 대단하고 예쁜 메이드와 함께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내었다.
우리집 정수기에는 얼음 나온다! 하는 듯한 그 언니의 동심 가득한, 다르게 표현하자면 유치찬란한 말에 나는 웃음을 참느라 숨을 헐떡이며 새해의 첫 주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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