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135화.
* * *
샤야 카기씨는 확실히 쟁쟁한 선라이즈의 많은 버튜버들 중에서도 열심히 방송을 하는 사람이었다.
방송과 방송 사이에는 기획 회의나 개인적으로 채널에 올라는 동영상의 퀄러티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부족한 편집 기술을 배운다거나 아이돌 다운 데뷔를 위해서 춤과 노래를 연습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하루를 정말 충실하게 살아가는, 타마의 방송에 들어가서 유치하게 언쟁이나 벌리면서 장난을 치는 나보다는 훨씬 방송에 진심이고 열심히 하는 그런 존경스러운 후배였다.
그런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가 이례적으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곳을 방문한 것은 몹시 드문 일이었기에 나는 일단 그녀를 방안에 들였다.
아무래도 추운 날씨 노력하는 후배를 밖에 두는 것은 선배로서 할 노릇이 아니었으니까.
“그, 메이드... 아니 유나 선배...님? 감사합니다.”
이사를 자축하기 위해 산 홍차를 한 입 마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사택 내부를 한 번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사를 할 때 뭘 사야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도 해야했고...”
아하 그런이유였구나.
따스한 홍차로 긴장감이 풀린 그녀는 평소처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으응... 유나야 손님이야?”
방안이 벌컥 열리면서 흘러내리는 잠옷을 겨우 붙잡고 나온 나에 언니를 보기 전 까지 말이다.
“히끅.”
언니의 모습을 본 그녀는 언니의 무방비한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고 귀엽게 보였는지 그만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그녀의 두 눈동자에 일어난 동공지진, 귀신을 본 듯 창백하게 질려가는 얼굴 오들오들 떨기 시작한 반응은... 역시 언니에게 반한거겠지?
에이 설마 샤야가 언니에게 겁 먹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으응? 그러니까 루미에...”
“샤, 샤샤... 샤야 카기라고 합니닷!”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90도로 인사를 정중하게 했다.
그 예의바름에 감탄한 나에 언니는 나에게 그러하듯 샤야의 머리르 쓰다듬어주었다.
그 쓰다듬이 몹시나도 기쁜지 샤야씨는 기쁨에 겨운 몸짓으로 몸을 떨며 그 쓰다듬을 받았다.
후후, 역시 나에 언니의 카리스마 스탯이 올라갔구나.
샤야씨는 참 좋은 후배다.
“아무튼 어때요? 원한다면 다른 방도 둘러볼래요?”
그녀는 몹시 고민하는 얼굴을 지었다.
힐끔힐끔 졸린 듯 눈을 비비는 나에 언니를 바라본 그녀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 예쁜 언니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게 부담스러운가 보구나, 하고 말이다.
후후 역시 예의 바른 후배님이라니까
“으음, 그렇다면 다른 층의 방을 보러 가실래요?”
“그, 다른 방이라면...”
“어차피 1층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작은 정원이 딸려있어서 가격하고 방의 구조가 조금 달라요. 대신 2층부터는 같은 디자인이니까 괜찮을거에요.”
“그, 그렇다면 부탁드립니다.”
“그럼 언니 다녀올게요.”
“으응 그래...”
어제 밤 늦게까지 방송을 해서 그런지 아직도 졸려하는 언니를 내버려둔 채 나는 가볍게 가디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샤야는 쭈뼛거리면서 나를 조심스럽게 따라왔는데 무언가 송구스러워하는 기색이 보였다.
아아, 맞다.
샤야씨는 은근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가 심한 편이셨지.
방송에서는 사자같지만 현실에서는 겁을 먹은 토끼와 같은 그녀와 함께 나는 관리실에서 마스터키를 받은 다음 제법 전망이 보이는 3층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에게 방을 슥 둘러보게 시켰다.
그녀는 제법 황량한 실내를 보고 당황한 듯 말했다.
“그... 풀 옵션 계약이 아니네요?”
“네, 주방의 개수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가구를 새로 짜야해요.
아니면 기존의 저택에서 들고 오는 식이거든요.“
“아...”
사택 중에서는 일반 풀옵션 가구가 세팅된 방이 있고
우리 회사의 사택처럼 이렇게 가구를 스스로 준비해야하는 타입이 있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나나 나에 언니에게는 장점으로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샤야 후배에게는 단점으로 느껴졌는지 집 안을 둘러보는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일단 기분 전환을 위해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이사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 함께 가볍게 동네를 둘러보았다.
있을 거 다 있는 시설, 은행 편의점 레스토랑 꽤나 커다란 상점가, 등등 거주하면서 있으면 편한 것들이 한 군데 모여있는 듯한 이 동네에 그녀는 제법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전에 나에 언니와 들린 적이 있는 우동 가게에 들어갔다.
일본 가게에 달아두는 천, 노렌을 젖히자 냄새만 맡고 침을 삼키면 육수를 마시는듯한 진한 국물 냄새가 났다.
“어머나, 한국인 아가씨 또 왔어요?”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저씨도 안녕하세요~”
가볍게 인사를 나눈 나는 쭈뼛거리는 샤야를 데리고 자리에 앉혔다.
좁은 가게에 느껴지는 열기에 몸이 따스해지는 지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은 그녀는 수다스럽게 반응하는 우동 가게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메뉴판을 보고는 유부가 올라간 키츠네 우동을 주문했다.
나 또한 튀김우동을 주문하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요. 새 건물 느낌이 나죠?”
“네, 솔직히 처음에는 사택치고는 약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그럴만 하네요.”
“아무래도 사택이라는 옵션을 생각해보면 좀 저렴한 건 아니죠. 대신에 교통편도 편하고 어지간한 있을 만한 거 다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괜찮다니요?”
“샤야 씨 같은 후배가 이웃으로 살면 재미있을 거 같거든요.”
나에 언니의 귀여움과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올바른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 이웃에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혹시 아는가
나와 같이 나에 언니... 그러니까 유리아의 덕질을 같이 해줄지 말이다.
그런 내 제안에 솔깃함을 감추지 못한 그녀는 녹차를 한 모금 삼키고 말했다.
“사실은 저... 이번 회사의 주택 청약에 붙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집세가 비싸서... 입주를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해서 벌레도 안 나올거 같아서 직접 와봤는데... 온 사실이 후회되네요.”
“으음, 역시 가구를 새로 맞춰야 하는 게 부담스러운가요?”
“네에...”
“그렇다면 저와 쿠로가와 씨처럼 둘이서 지내면 어떤가요?”
샤야 후배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심란한 듯 손 안의 찻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떠다니는 녹차 가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
깊어지는 그녀의 표정을 본 나는 거듭 제안했다.
“아까 보시다시피 아시겠지만, 의외로 둘이서도 같이 지낼 만 하답니다.
솔직히 방 크기도 혼자 살기에는 좀 많이 적적할 정도로 넓다니까요.“
“그... 저는...”
“자아 아가씨들 기다리셨어요. 어머나, 여기 아가씨도 참 곱네요.
아들이 있었으면 소개시켜 주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역시 유나 아가씨 옆에는 정말 이쁘고 다양한 매력의 아가씨들이 잘 모이네요.
호호호, 아가씨가 예뻐서 그런가?“
“어머나, 아주머니 고마워요. 잘 먹겠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따스한 우동
일본인들의 소울 푸드인 우동을 앞에두고 무어라 말을 하려던 샤야는 이윽고 우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젓가락을 들고 국물을 마신 그녀의 두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다.
그러고보니 여기 가게의 제일 인기 많은 메뉴가 키츠네 우동이었지?
“마, 맛있어요.”
“그쵸? 이 가게의 우동은 일본에서 먹어 본 우동 중 가장 맛있어요.”
친절하고 붙임성 좋으신 아주머니와 무뚝뚝하고 과묵한 아저씨가 하는 이 우동집은 이사 온 지 이제 10일이 되어가는 지금 벌써 네 번이나 찾아올 정도로 맛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멈추고 식사에 집중을 했다.
우동 그릇의 바닥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정리된 샤야는 나에게 말했다.
“저, 저는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와 같이 살 자신이 없어요.
특히나 회사의 동료라면 더더욱 말이죠.“
“으음...”
“혼자서 사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요. 솔직히 말해서 두려워요. 아 어쩌지? 나를 미워하면 어쩌지? 내가 나 홀로 사는 방식에 익숙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아아
역시 방송에서의 샤야, 그러니까 루미에와 현실에서의 샤야씨는 다르구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포기하면 되겠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지금 거주 환경은 이 집을 가볍게 포기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루미에의 방송은 3D 게임이 들어가면 확실히 많이 버벅거렸지.
“그, 그리고 전 같이 살만한 룸메이트가 없어요.”
5기생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많은 선배들과 합동 방송을 진행한 루미에
인터넷에서의 그녀는 활발하고 붙임성 좋은 사람인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그 주목을 활용해서 어그로를 끌거나 이미지 메이킹을 해서 5기생중 가장 빠르게 캐릭터성을 정립한 그녀였다.
아무래도 그녀들에게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 그러니까 오프라인에서이 이런 쭈굴쭈굴 한 태도를 보여주기 싫다는 인상을 난 받았다.
“...맞죠?”
“네, 부, 부끄럽지만...”
“그런데 샤야씨는 선라이즈 이전에 회사에서 지내셨다고 했죠? 어떤 회사였나요?”
“그... 의료 기기쪽의... 저 그래도 나름... 간호학과를 나온 사람이라서...”
간호학과, 선라이즈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이라...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다.
***
띵동
“에고고고.”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는 사토 카가는 아직 몸이 불편했다.
자신을 아껴주는 매니저는 그런 그녀가 자취 생활을 하는 것에 큰 불안감을 표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GB의 인원도 아닌 자신이 부모님이 계신 해외로 나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 그녀는 병원 생활이 아닌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게다가 버튜버가 9개월 넘게 방송을 쉰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후배들의 등골을 빨아먹는 나쁜 선배라는 인식이 박히기 전에 그녀는 어서 복귀를 하고 싶었다.
그래도 자신이 없는 동안 쟁쟁한 후배들이 들어와서 자신과 자신들의 동기가 노력해서 성장시킨 회사를 더더욱 크게 빛냈다고 했던가?
아직 자신의 기록을 깬 후배들은 없지만 카가는 적잖은 위기감을 느꼈다.
특히 근래 들어서 폭발하기 시작한 4기생과 GB 1기생들은 그녀가 보기에도 대단했기 때문에 그녀는 다시 현역으로 돌아와서 그런 후배들과 어울리면서 즐겁게 방송하고 싶었다.
“그래도 아픈건 싫다아.”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과 책상에 다리 올리기를 좋아하는 좋지 않는 앉는 버릇 때문에 그녀의 허리는 젊은 나이임에도 심각하게 나가있었고,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을 정도로 그녀는 몸이 불편했다.
눈도 좋지 않는 터라, 오후 세 시까지 낮잠을 자는 그녀는 두 시에 울린 초인종을 탓하고 안경을 겨우 찾아서 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내가 택배를 시켰던가? 하는 생각에 문을 열자 거기에는 아래층에 사는 이웃인 유나와 낯선 꼬맹이... 아니 낯선 소녀... 아니 낯선 여자가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카가씨, 어라 방금 일어나셨나 보네요?”
“용의 잠을 깨우다니 무엄하구나.”
“풉, 눈곱이나 때고 말하세요.”
저 생글생글 웃는 인싸성향의 미녀는 자신의 개드립도 잘 받아줘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대충 눈을 비볐다.
“아, 이쪽은 사토 카가씨, 그리고 여기는 샤야 카기.
어라, 그러고보니 이름이 비슷하네요.“
한국인이 두 일본인을 소개시켜 주는 풍경이 조금 재미있다 생각되는 카가는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여인에게 손을 건내면서 말했다.
“선라이즈 2기생의 미즈나시 오르페라고 합니다. 드래곤씨라고 불리고 있어요.”
“그그그! 아! 그! 저! 어! 그! 서,서선라이즈 4기생의 루, 루미에 아풉.. 아포카리스라고 합니다아. 그그”
졸도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깜짝 놀란 여인의 정체가 자신의 후배였다니, 그러고보니 슬슬 이 맨션에도 사람들이 이사올 때가 되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유나의 토닥거림에 숨을 되찾는 그녀가 제법 만화 캐릭터처럼 코믹하다고 생각되었다.
“잘 부탁드려요. 루미에 후배님.”
의도적으로 존경어로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사색으로 변했다.
속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카가는 90도 인사를 꼬박 숙였다.
후배에게 표하기에는 과례(??)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 도, 도도도 도게자를”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진정해요 샤야 후배.”
사람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문자로 @,@ 라고 표현하던가?
카가는 사람의 눈이 저렇게 빙글빙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아닌 현실에서 보게 될 줄 몰랐다.
퍽이나 귀여운 꼬마이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이쪽 몸을 힐끗 거리는 게 갓 여자를 알게 된 남자 초등학생같은 반응이었다.
흐음, 루미에라는 방송인은 방송에서 꽤 의기양양하고 자신감 넘치는 활기찬 인싸 캐릭터였는데...
그렇게 생각이 도달하자 카가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 그 번뜩거림을 읽은 눈치빠른 이웃이 말했다.
“카가씨 몸이 불편하시잖아요? 그렇다고 매니저와 함께 살 수 있는 노릇은 아니고요.”
“그렇죠.”
“그렇다면 이 후배는 어떤가요?”
“저저저 저말입니까요? 저저저 저라고요 저 저!?”
겁에 질린 토끼와 같은 샤야를 생명체 최상위종에 선 용같은 카가가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이 사택에서 재미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감한 그녀의 낮은 웃음소리가 맨션 안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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