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136화.
* * *
루미에 : 그런 고로… 용의 둥지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매니저 : …
매니저 : 아니… 그게 뭐 나쁜건 아니지만요.
매내저 : 저기 루미에씨 괜찮아요?
매니저 : 낯가림 심하시고 방송때 온오프 차이 크다는 거 아는 사람 적잖아요.
매니저 : 그나마 4기생의 카린 씨하고는 친하게 지내서 그분이랑 같이 입주하실 줄 알았는데
루미에 : 하아… 그러게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루미에, 그러니까 샤야 카기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휴대폰을 떨어트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청소해도 지지 않는 얼룩진 벽과 천장, 이사준비를 하느라 때가 널부러진 상자로 인해서 좁은 집안은 더더욱 좁아졌다.
이사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돈과 한계까지 끌어올린 대출로 계약금은 지불했고, 이 낡은 집 주인에게는 나가겠다고 미리 말을 전해두었고 계약서까지 작성 해두었다.
남는 것은 이사 준비였는데, 워낙 들고갈 짐이 적고 낡아서 버릴 물품들이 많다 보니 정리는금방 끝났다.
그래도 이 쓰레기장같은 집을 나가게 되니 그녀는 기뻤다.
매니저 : 그래도 이제 방송 환경은 좋아지겠네요.
매니저 : 루미에씨도 이제 3D 아바타를 좀 더 좋게 굴릴 수 있고, 새로운 고사양 게임도 접할 수 있고 그렇잖아요.
매니저 : 그리고 저도 루미에씨랑 좀 더 편하게 업무 미팅 볼 수도 있고요. 하하
루미에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늘 미안했다.
거의 도쿄의 외곽과 다름없는 자신의 집 위치와 좋지못한 환경 때문에 업무 미팅도 잘 하지 못한 덕분에 같이 일을 한지 반 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만난 횟수가 두 손을 넘지 못했다.
그마저도 자신이 이것저것 벌리는 다양한 일 덕분에 다른 매니저에 비해서 모니터링 강도나 채팅방 수위가 까다로운 편이라 혹사당하는 편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녀는 매니저에게 미안했다.
루미에 : 네, 저도 매니저 씨랑 좀 더 자주 봤으면 좋겠네요.
매니저 : 그나저나 이사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세요?
루미에 : 아 그게 말이죠… 일단 택시를 부를 생각인데…
매니저 : 잘 되었다. 안 그래도 여기에 관련해서 말인데요.
매니저 : 마침 한가한 매니저 선배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했어요.
매니저 :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니까 흔쾌히…
띵동
루미에 : 어 잠시만요. 아까 배달 주문한 식사가 도착했나봐요.
휴대폰을 내려둔 그녀는 상자 사이를 지나쳐서 주문받은 점심식사의 생각을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음식을 들고 있는 우버이츠 배달원이 아닌 낯익은 여인이 서있었다.
방송에서는 메이드 라 라는 이름을 쓰면서 선라이즈 방송인들의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있는 자신의 선배 기수이면서도, 오프라인에서는 어지간한 방송에 나오는 자칭 미인들을 쭈구리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해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샤야씨, 이사 하시는거 도와주려고 왔어요!”
이건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인력 낭비다.
아니 어째서 나 따위를 위해 유나같은 사람이 직접 온단 말인가?
혹시… 혹시 그녀도 나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녀의 문란한 여자 관계를 들은 샤야는 경계를 더욱 하게 되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샤야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전력으로 몸을 던져서 문을 막으려고 했다.
지금의 집 꼴은 최악이었다.
안 그래도 더럽고 비좁은 집인데 유나같은 미인이 들어올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유나는 쓰러지려는 듯한 샤야의 몸을 그대로 받아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이쿠, 샤야씨 조심해야죠. 예쁜 얼굴이 다치면 안 되잖아요.”
…
천연덕스럽게 사람을 꼬시는 듯한 멘트를 날리고 쌓아둔 상자에 시선을 두는 유나는 왠지모르게 얄미웠다.
겉 보기에는 화려한 연예인, 아니 아이돌 스타처럼 보이는 그녀는 겨울철인데도 춥지 않는지 반바지만 입은 채로 방을 슬쩍 둘러보더니 견적을 짜는것처럼 상자를 들어보았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마커를 꺼내 무언가를 마킹했다.
애써 비참한 자신의 집안의 형태를 말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샤야는 물었다.
“그, 저기 유나…선배님? 뭘 하시고 계신건가요?”
“아, 매니저씨에게 들었는데 이사 업체를 따로 부르신 게 아니라고 해서, 제 차 안에 상자를 넣을 때 무거운 것 순서로 밑으로 두려구요. 보아하니 주방에 있는 작은 상자에 접시같은 깨지기 쉬운 유리제품을 다 넣어두신거 같은 데 맞죠?”
“어…네.”
“네, 그런 깨지기 쉬운 제품을 따로 분류하고, 트렁크에 넣을 만한건 트렁크에 넣고, 뒷좌석에 실을만한 건 거기에 실으면 이 정도면 한 번에 움직일 수 있을거에요. 아, 컴퓨터는 어디에 있나요?”
저런 화려한 태양같은 인기 많은 미녀는 이런 좁고 더러운 공간에도 빛을 잃지 않는가?
하다못해 안색이라도 바뀌었으면 스스로 자학을 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샤야는 아무렇지도 않는 유나의 얼굴을 보고 마음속 무언가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절대 들이지 않을 자신의 방을 가르키자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평소 자거나 방송을 하는 자신의 방에 들어선 그녀는 슥 한번 둘러보더니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어머나, 이사가기 딱 좋은 상태네요? 혹시 부품을 따로 분류해두신건가요?”
“으…응, 아니 네, 아무래도 컴퓨터를 완전하게 옮길 자신이 없어서… 혹시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자신의 집에서 가장 비싼 물품인 컴퓨터의 안에는 혹시라도 모를 충격을 막기 위해 완충제를 넣은 상태였다.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이라도 그런 정도의 상식은 있었으니까.
“좋아요. 그렇다면 일단 무거운 상자부터 차근차근 옮겨볼까요? 먼저 책이나 블루레이 컬렉션같은 제품과 화장실 샴푸와 바디 워시같은 제품부터 시작해볼까요?”
“네.”
한 사람이서는 어떻게 하나, 하는 이사 준비는 순식간에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여성은 작은 경차를 타고 다닌다는 세간의 통념을 부정하듯 그녀는 커다랗고 멋진 차를 몰고 다녔는데 그 덕분에 여섯 상자 분량의 자신의 짐은 다 옮길 수 있었다.
방송을 위해 준비한 소중한 모니터를 아무렇지 않게 번쩍 들어올리는 그녀의 힘에 감탄하며 샤야는 이사를 혼자 했으면 굉장히 피곤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이삿짐 대부분을 내려둘 무렵, 예상 배달시간을 한참 초월한 우버이츠가 도착했다.
거의 떡이 되다시피 퍼진 토마토 스파게티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배달원은 ‘이대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 가게에서 보상 해주실거에요.’ 라는 말과 함께 도망치듯 사라졌다.
정말이지, 이 빌어먹을 집을 떠나는 마지막까지 끔찍했다.
“그, 미안해요. 오실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아니에요. 제가 말 없이 와서 미안하죠.”
차갑게 식은 파스타는 버리기에도 아까웠기에 샤야는 어색하게 책상에 앉고는 일회용 포크를 들어올렸다.
“그러고보니 여기 나와있는 후라이팬은 원래 여기 속해있던 물품인가요?”
“어…네.”
유나는 잠시 밖을 나가더니 무언가를 들고왔다.
요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샤야는 신기하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일을 하게 시켜야죠. 샤야씨 잠시 실례할게요.”
“에?”
그렇게 말한 유나는 부엌의 불을 최대로 올리고, 자신의 장바구니에서 무언가를 꺼내고는 후라이팬에 뿌렸다. 연기가 올라옴과 동시에 차갑게 식은 파스타를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화려하게 후라이팬을 돌리더니 무언가를 넣자 불이 확! 하고 올라왔다.
만화 영화에서나, 아니면 텔레비전 숙련된 주방장이 보일법한 화려한 팬질에 샤야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퍼포먼스 끝에 그녀는 원래 파스타가 담겨온 일회용 접시에 정성스레 파스타를 긴 젓가락으로 말아서 넣었고, 정성스럽게 원래 담겨있던 부재료들을 예쁘게 올려두었다.
아까와 같은 파스타가 맞는 지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확 달라진 요리는 식욕을 돋구게 하는 향기가 나왔다.
“수분을 쫙 날렸어요. 뭐 식감이 망가진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차갑게 굳은 오일 덩어리를 먹는 것 보다 확실히 다를거에요. 원래 이런 건 따뜻해야 맛있잖아요?”
차갑게 죽은 요리에 생명을 넣은 마법사가 뜨겁지도 않는 치 후라이팬을 흐르는 물에 뽀득뽀득 씻겨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 그리고 사진은 찍어두었으니까 컴플레인 걸 거면 거세요. 우버이츠에서는 배달된 음식 상태가 이상하면 보상을 잘 해주거든요.”
“고,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버튜버를 챙기는건 메이드의 일이니까요. 부담갖지 마세요.”
…메이드
맞다, 그녀는 메이드였지. 자신은 버튜버고
만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한 샤야는 그대로 맛있어진 파스타를 입에 넣었다.
눈이 커지고 음식 접시에 머리를 박고 체신머리없이 파스타를 먹기 시작한 그녀는 흐뭇하게 미소짓는 유나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따스한 배려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
그렇게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쓰레기를 버린 샤야는 유나의 차에 올라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살았던 거처를 마지막으로 떠난 그녀는 부동산에 들러 마지막 서류를 처리하고 홀가분하게 나왔다.
“이사 축하드려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집은 말 그대로 최악이였다.
도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부모의 품을 벗어난 첫 사회생활의 집은 말 그대로 쓰레기장이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아도 이번에 살게 될 집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명백했기 때문에 샤야는 자신의 인생을 가득 채우고 있던 비참함이 사라진것 같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 모습을 축하하듯 차를 기대고 서있는 유나의 박수 갈채를 받고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에서는 모를까, 현실에서는 자신의 일에 이렇게 축하해주는 사람이 잘 없었으니까.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자, 그럼 새로운 거처로 가볼까요?”
유나의 배려에 따라 다시 차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유나가 다정한 손길로 안전벨트를 매주는 것을 느꼈다.
이 미녀는 자신의 미모에 자각이 없는 지 자꾸만 본인의 예쁜 얼굴을 이쪽으로 아무렇지 않게 들이내민다.
사귀는 연인이 있는데 이렇게 무방비해도 되냐는 억울한 심정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샤야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제가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저는 이렇게 소심하고 낯가림 심하고…”
“집이 깨끗하잖아요.”
무슨 소리란 말인가?
샤야는 황당한 표정으로 유나를 바라보았다.
“집 자체가 환경이 더러운데, 벽지에 때 낀 자국이 없고 오래된 흔적밖에 남지 않았으니 샤야씨가 그 집에서 얼마나 열심히 집 관리를 한 지 알 것 같네요. 화장실에 곰팡이 없고 변기가 깨끗하고 악취가 안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건…”
“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집 자체가 더러운건 어쩔 수 없지만 샤야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집을 유지한거잖아요? 그 정도면 어디 가서 폐 끼치는것도 아니죠.”
“…”
“어차피 루미에와 오르페 두 사람의 방송 시간대도 비슷하니 생활 패턴도 비슷할거고, 카가씨는 오히려 그런 집에서 혼자 사는게 더 불편할걸요? 몸 불편한 사람이 혼자 살기에는 우리가 살게될 장소는 너무 음… 비즈니스 맨을 위한 용도거든요.”
“아…”
“사람이 허리가 아프면 많은 게 불편해져요. 특히 일어날 때 붙잡을 게 없으면 얼마나 괴로운데… 샤야씨도 아시죠?”
그래도 일단 간호학과 출신이랍시고, 그 정도 상식은 있는 샤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가씨는 일상생활에서도 잘 넘어질 정도로 몸이 회복 덜 된 사람이니까. 누군가가 아파할 때 옆에 있으면 굉장히 장난 아니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법이니 잘 부탁드려요. 어라? 이렇게 말하니 좀 이상하긴한데…”
“화, 확실히 유나씨와 사토씨는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사이긴 한데… 챙기시는 게 그…”
“뭐, 같은 회사 소속의 매니저와 예능인 사이의 유대감이라고 하죠. 뭐 친구사이기도 하고.”
그렇구나
인싸들은 이름 나누고 밥 같이 먹으면 친구라고 하던데…
잠깐, 그러고보니 이나리 선배님이 유나가 말하는 ‘친구 사이’를 조심하라고 하셨던가?
“아무튼 이웃으로서, 또 친구로서 잘 부탁드릴게요. 샤야씨. 아니 카기씨.”
훅 좁혀져 오는 거리감에 샤야는… 아니 카기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부탁 드립니다.”
카기는 어느 날의 회사의 방송 이후, 대선배인 이나리와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이 떠올랐다.
‘조심해, 유나가 말하는 친구 사이에 일방적으로 거리를 주는 순간 끝이야.’
‘거리를 주는 순간 끝이라뇨?’
‘저 무자각 헤테로 햇살 여캐 인싸 백합 살인마의 친구 사이라는 개념은 뒤틀려져있거든.’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진 차 안
겨울의 구름을 뚫고 비춰지는 태양빛을 등에 받으며 해맑게 미소짓는 유나의 미소는 확실히 성별을 불문하고 사람의 근본적인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누군가는 말하길 사람들을 홀리는 악마의 미소라고 하던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의 인생에 다가오고 구원의 손길을 뻗는다고 하던가?
카기는 ‘당했다’라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맞아, 그 우동집 말고도 혹시 동네의 조그마한 골목에 있는 중국집에 가보셨어요? 거기 가보았는데 세상에 주인 아저씨가 해주시는…”
해맑게 웃으면서 재잘거리는 그녀의 스스럼없는 태도는 냉소적이고 방어적인 자신이 세워둔 마음의 장벽을 아무렇지 않게 열어재껴버린다.
자신의 비참함마저 녹여버리는 듯한 그녀의 부드럽고 따스로운 눈빛에 카기는 이런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홀려도 괜찮다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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