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38화 (138/307)

〈 138화 〉 137화.

* * *

“그렇구나, 그래서 루미에가 내 이웃으로 오게 된거구나.”

“네에, 저 잘했죠?”

“으응, 잘했어 우리 유나.”

날이 점점 더 추워진 덕분에 바깥에 나가기 꺼려지는 추운 1월

나는 좁은 이전의 집에서는 갖추지 못했던 고타츠 안에서 귤을 까먹으며 언니의 쓰다듬을 받았다.

흔하디흔한 평일 저녁, 간만에 방송 스케쥴이 없는 나와 언니는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샤야 카기씨와 사토 카가씨, 그러니까 루미에와 오르페의 이사를 돕고난 다음 날

우리는 이렇게 이웃이 된 기념으로 같이 오프라인 합동 방송을 해보는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고, 이따가 이쪽에서 저녁거리를 준비한 다음 위층으로 올라가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웃과 식사라... 이 얼마나 정겨운 풍경인가요.”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체 그렇게 말했다.

아파트로 단절된 한국과 다르게 일본에는 마을의 소식을 전하러 돌리는 회람판이나 비상 연락망, 혹은 마을 자치회의 참가 등으로 한국과 비교하면 정겨운 지역 사회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도쿄의 도심은 그럴 수 없지만... 이 동네에는 아직 그런 문화가 남아있는 지 지역 상인회가 운영하는 건물에서 다 같이 모여 마작을 치거나 음식을 교환한다고 했다.

아무튼 그런 뭉클한 근대문학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이 동네에 살아서 그런지 우리들 또한 그 분위기에 취한 모양인지 홀린 듯이 네 사람은 식사 약속을 잡았다.

회사에 오랜만에 복귀한 대선배인 카가씨에게 인사를 올리고 근황을 버튜버의 시점에서 들려주는 것 또한 괜찮다고 생각했고, 오르페 씨 또한 나와 비슷하게 사람들을 사귀고 같이 밥 먹는걸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유나는 참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구나.”

“그럼요~”

사람을 사귀고 알아간다.

낯선 이의 심정을 헤아리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간다.

이 얼마나 인생을 다채롭게 만드는 즐거운 확장이란 말인가?

“칫, 인싸.”

하지만 언니는 그게 불만인 듯 볼을 부풀렸다.

언니의 볼살이 아기 볼살처럼 말랑하다는 것을 아는 나는 그 볼을 빨아들이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애초에 인싸와 아싸를 나누는 게 이상해요. 그런걸로 나누니까 아싸는 아싸인거죠.

사람을 인싸와 아싸로 분류해서 스스로에게 선을 긋지 말아요.“

“으으, 그게 가능하다면 내가 아싸겠냐구...”

더 이상 대답하기 싫다는 듯 언니는 나른한 고양이처럼 고타츠 안으로 몸을 말아 넣었다.

뒤통수만 삐죽 내보인 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 언니는 역시 오늘도 귀여웠다.

아아 행복하다.

이게 바로 같은 공간에 산다는 것인가?

같이 산다는 거 정말 굉장한 일이었구나...

속으로 언니에 대한 10가지 주접을 떨고 나서야 이성을 되찾은 나는 흐르는 침을 닦으며 요리 유튜브에 집중했다.

과거 다양한 패션 잡지 모델을 구독하거나, 롤 매드 무비나 게임 유튜버를 보던 나의 추천 채널에는 이제 수 많은 버튜버와 요리 채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아주 가끔씩 동생의 유튜브 동영상이 보였지만 볼때마다 ‘관심없음’을 눌러주며 내 유튜브 화면을 아름다운 버튜버들의 화면으로 가득 채운 것을 감상하던 나는 [이나리가 말하는 메이드 짱] 이라는 영상을 눌렀다.

“아아아, 메이드 짱 말이군요. 후후후, 역시 신년의 막장 드라마 연기 때문일까나? 은근히 저에게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묻는 분들이 많으시군요~!”

장난스럽고 높은 텐션의 목소리

수십시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마법의 목소리를 가진 마성의 버튜버 이나리는 자신의 여우귀를 귀엽게 말면서 윙크를 했다.

“뭐, 메이드 씨와 가장 연관이 깊은 분은 역시 마계 공주님이시지만, 공주님께서는 요즘 들어서 게임 실황과 노래 방송을 주로 하시고 개인 이야기를 잘 안하시는 편이니까요. 그래서 메이드의 이야기를 보아도 은근히 흘리시고...”

으음

확실히 언니는 최근 들어서 평균적인 방송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

나와 살게 된 이후, 언니는 확실이 이전보다 방송에 몰두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뭐 그만큼 언니의 방송 퀄러티가 높아져서 나는 만족스러웠다.

“사실 아실 분들은 아시곘지만, 마왕성 공주님은 메이드에 대한 독점 욕구가 강하세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하시죠.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알고 있겠지만... 두 사람은 동거를 하고 있는 사이랍니다?“

­오오오오

­백합은 존재한단 말인가!

­메이드와 아가씨라니 이 무슨... 정석적인 판타지 백합 조합!

­독점욕이라니... 오히려 좋아.

환호하는 사람들의 주접에 내 얼굴이 붉어졌다.

그나저나 백합이라니 으음... 어.... 확실히 언니와 나는... 확실히...

“아아, 결혼이나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같은 건물 같은 호실에 같이 살고 있는 수준인거죠.문자 그대로 동거생활! 여러분들도 기숙사 룸메이트랑 사시는 분들도 있죠? 뭐 그런 느낌이랍니다.”

아무래도 이나리는 신년의 막장 드라마 연기 이후 팬들에게 나와 친하게 지내는 버튜버라고 인식이 된 모양이다.

뭐 확실히 이나리하고는 방송을 자주 찍기도 했고, 현실에서도 자주 만나서 교류를 나누었으니 확실히 나에 언니와 미우만큼 친근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리고 이 방송을 보고 있을 메이드 짱! 당신의 게임 실력 잘 보고 있답니다.

언젠가는 나하고도 같이 게임 해줘요!“

­공개 프로포즈

­아이를 밴 사이에 이어서 같이 게임을 하는 사이

­이거 설마 NTR을 노리는 건가?

­여윽시 선라이즈의 (구)최상위 포식자

이 이 미친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

나하고 이나리는 단순한 친구 사이라고!

같은 직장 동료 사이라고! 무슨 소리란 말인가!

뭐 그래도 이나리같이 귀여운 사람하고 친해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니긴 하지...

그나저나 왜 이렇게 등이 무겁지? 라고 생각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언니가 실눈을 뜬 채로 나의 등 뒤에서 영상을 같이 보고 있었다.

어어... 언제 온거지?

“유나, 이나리랑, 합동 방송, 할, 거야?”

“아뇨.”

대답은 빛보다도 빠르게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언니에게 차마 다다음 주 마미 선배의 주도 하에 그녀와 같은 레코딩 실에 녹음이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언니의 눈이 굉장히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눈빛으로 이나리를 죽일것같이 살벌한 언니의 서슬퍼런 시선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유나, 우리 메이드는 정말 인기가 많아.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우리 유나를 탐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단 말이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쓰다듬듯 언니는 내 목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차암, 이래서 인기 있는 프로듀서는 곤란하다니까?”

“에이 무슨 소리에요. 그냥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의 방송을 돕는...”

“내 방송이 먼저야.”

언니가 선고했다.

“선라이즈 2주년 방송이 끝나면, 유나는 나하고 같이 방송해. 쭉.”

“넵. 콘텐츠 생각해둘게요.”

회사에서는 마계공주 유리아와 메이드 라의 캐릭터성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지나친 합동방송을 지양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언니와 나는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내가 언니의 방송에 나오는 일이 적었다.

이따끔 하는 언니의 영어 교육 방송에 같이 나오는 정도?

하지만 그 빈도가 줄어들었고, 나와 언니는 생각보다 같은 방송에 나온 시간이 적었다.

나 또한 그걸 느끼고 있었기에 언니의 억지에 가까운 부탁을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이윽고 저녁시간

나는 오전에 시장에 다녀온 재료를 들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I love Yuria]라고 적힌 셔츠를 언니는 [I love Maid La]라고 적힌 회사의 오타쿠 굿즈 셔츠를 입고 편하게 올라갔다.

띵동

이윽고 오르페와 루미에가 살고 있는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지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문을 활짝 연 나는...

“에고고 허리야.”

“저기 그그그! 그!”

반라의 상태로 누워있는 카가씨와 그녀를 덮치듯 포개고 있는 카기를 볼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언니의 두 눈을 가린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영 좋지 못한 타이밍에 문을 연 것 같았다.

“언니 오늘은 내려가서 먹죠.”

“왜 그래? 뭔데 뭔데?”

“조금 개인적인... 아니 그러니까 이웃의 사생활은 소중하게...”

“그런거!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시뻘개진 얼굴로 겨울날 콧김을 내면서 문을 벌컥 연 카기가 그렇게 소리쳤다.

“그냥 넘어진 카가 언니를 도우려다가 저도 미끄러진 것 뿐이에요!”

“하지만... 너무 짐승처럼 나를 덮치려고 들었는걸? 흑흑 무서웠어요.”

롤의 최정상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뛰어난 피지컬을 지닌 나는 0.5초만에 깜빡이는 카가씨의 장난스러운 윙크를 보았다.

좋다. 그 장난. 나도 동참해주마!

“아이고 카가 언니가 예쁜 건 알고 있었지만... 제가 소개시켜 준 후배가 벌써부터... 이런 검은 손길을 뻗어 올 줄은 몰랐네요.”

누구라도 눈치챌 어설픈 울음소리와 삼류 배우같은 과장된 연기 톤으로 카가 언니를 달랜 나는 초등학생도 속지 않을 어설픈 우는 척 연기를 하는 카가 언니와 함께 카기를 놀리려고 들었다.

가드 불가능한 우리들의 연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떼를 쓰듯 그런거 아니라고요! 라고 소리치는 카기는 확실히 놀리는 맛이 있었다.

방송에서도 유명한 사자 샌드백은 현실에서도 놀리는 맛이 찰졌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어머나 세상에.”

언니조차도 우리들의 어설픈 연기에 어울리듯 카기를 놀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낯가림이 심한 언니로서는 이례적으로 타인에게 장난을 치는 셈이었다.

“선배님들 미워어어!”

정말 울면서 뛰어갈 것 같은 카기씨의 찰진 리액션에 우리 모두는 웃음을 빵 터트렸다.

역시, 새로 이사 온 맨션에 버튜버들을 가득 입주시키자는 내 생각은 옳은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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