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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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송송송
칼이 야채를 스치면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먹기 좋게 썰어지는 당근과 양파, 버섯과 감자는 맛있는 국물을 위한 근본 중 근본이다.
내가 야채를 써는 사이, 한 쪽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달궈지는 냄비에 기름을 부어 기름을 덥힌 후 고기를 넣어서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금은 얼마나 넣어야 해?”
“간은 조미료로 할거니까 한 꼬집만 넣으세요.”
“응.”
겉면이 맛있게 익어가는 사이 냄비 바닥에는 고기에서 녹아내린 기름과 육즙이 가득했다.
그걸 본 나는 언니를 비키게 하고는 고기를 따로 덜어낸 후 야채를 고기 국물에 볶기 시작했다.
“우오오오.”
“이것이 메이드!”
그 뒤에서는 내 이웃인 카기와 카가씨가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이 닮은 두 사람은 눈을 반짝 빛내면서 내가 요리하는 과정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 앞치마 내가 사준거야.”
그러고보니 내가 지금 여미고 있는 이 앞치마는 나에 언니가 사준것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언니의 표정이 의기양양해졌다.
뭐랄까, 나는 이런애랑 같이 살고 있다? 그런 자랑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으으음, 이 냄새, 맛있는 냄새!”
“그러고보니 소세지는 특유의 향이 있어서 취향에 따라 조절할건데... 얼마나 넣을까요?”
좋은 품질의 소세지는 국물의 맛을 변하게 한다.
그것은 우유를 베이스로 끓이는 스튜에게도 작용하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고기의 묵직함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스튜는 안 그래도 무거운 편이기에 이런건 물어봐야 했다.
“전부 다!”
“다 넣어!”
“고기고기!”
세 사람의 개성 넘치는 대답에 나는 들고있던 소세지를 몽땅 집어넣었다.
이게 스튜인지 부대찌개인지, 고기와 소세지가 물렁해진 야채 사이에 동동 떠다녔다.
그 후에는 우유와 화이트 소스를 부은 후 국물의 농도와 점도를 맞추고, 브로콜리를 꺼냈다.
“그... 그 흉측한 야채는... 안 넣는게 어때?”
“브로콜리가 어때서요? 풍부한 비타민에 칼슘과 엽산이 풍부해서 영양학적으로...”
“세 사람이 거절한다! 메이드는 명령을 따르라!”
세 사람이나 거부하니 어쩔 수 없지...
나는 모두에게 거절당한 슬픈 브로콜리를 차마 버릴 수 없어서 후라이팬을 따로 꺼내서 브로콜리를 버터에 볶기 시작했다.
원래는 살짝 데쳐야했지만 뭐... 이대로 구워도 맛은 있으니까.
아무튼 내가 바닥에 눌러 붙지 않게 스튜를 젓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수저를 차리거나 쓰레기를 묶어서 정리하거나 빵을 썬 후 데우고 음료를 준비했다.
이윽고 조리가 끝나자 식탁에는 게임에서나 볼법한 (사실은 유명한 게임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왔다) 하얀 스튜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빵, 그리고 나머지 야채와 브로콜리를 버터에 볶은 야채볶음이 준비되었다.
“샐러드가 있으면 좋았는데... 여러분들 너무 야채를 잘 안먹는 거 아니에요?”
“에이에이, 야채는 여기 있는 것 정도면 충분하지. 안 그래 카기?”
“선배님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지요!”
장단을 맞추는 두 사람을 보니 미소가 피식 흘러나왔다.
내가 반 강제로 집어넣다시피 한 동거생활이지만, 경제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두 사람이 지내는 데 문제는 없었다.
정말이지 일본에 있는 자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카가씨는 나와 성격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아서 두 사람이 어울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실제로 두 사람의 생활을 보니 안심이 갔다.
멀리 떨어진 후추를 카가씨에게 건네주거나, 카기에게 소세지가 듬뿍 들어간 국자를 퍼주거나, 빵을 서로 먹여주는 장면은 확실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야 나오기 힘드니까.
적어도 식탁에서 만큼은 두 사람이 잘 지낸다는 게 느껴지니 동거를 알선한 사람으로서 안심이 간다.
“근데 정말 유나씨는 대단해요. 요리도 잘해, 게임도 잘해, 노래도 잘해, 방송도 잘해.”
“그리고... 섹시하고 예쁘고...”
“저기 카가 언니? 그렇게 말하는거 진짜 기분 나쁘게 들리는 거 알아요?”
본인의 캐릭터성에 맞게 변태스럽게 나를 힐끔거리는 카가씨의 옆구리를 카기가 푹푹 찔렀다.
그나저나 언니 동생 하는 사이구나.
확실히 카가씨가 좀 나이 많고 주책인 면이 없잖아 있긴 하지.
그렇게 다소 소란스러운 저녁 식사시간이 끝났다.
대충 6인분은 한 거 같은데 냄비의 바닥이 보이다니, 의외로 여기 있는 사람들 잘 먹는구나.
요리를 한 사람으로써 자부심이 난다.
“저기 그, 유나... 선배...?는 항상 이렇게 요리를 해 드시는 건가요?”
“아, 응. 일본의 식사는 고나트륨 식사가 많아서 내 입에 짜기도 하고 건강에 좋지 않거든. 나는 운동을 해서 먹는거에 좀 더 민감한 것도 있고.”
“우와...”
“왜, 흥미 있어?”
“그... 저기 학원 같은 데 다녀야 하는 건...”
“풉, 걱정하지 마, 유튜브 보고 따라하기만 해도 어느정도 커버는 되거든.
사실 맛에는 말이야...“
“또또또 조미료 애찬론을 하는구나 유나야.”
“하지만 나에 언니, 조미료는 현대 과학의 신이라구요!”
나에게 요리를 배운 마미 선배도 나에게 이런 지론을 듣고 배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적절한 조미료로 살리는 감칠맛은 식욕을 돋구게 하고 맛을 풍부하게 하는걸.
“그, 그렇다는 말씀은 요리를 조금만 배워도 된다는 거죠...?”
“네, 방송하고는 다르게 실제로는 저는 유튜브 레시피를 보고 따라하는 걸 위주로 가르치거든요. 약한 불이란 무엇인가, 불조절은 어떻게 하는가, 야채를 한입 크기로 써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하는것들이죠.”
“그... 그렇다면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뭐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내 지론이다.
나는 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 그래도 되죠?”
참견하기 좋아하고 버튜버들을 아끼고 있는 내 성질을 알고 있는 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에... 배우는 건 우리 집에서야.”
“네, 배우는 제가 찾아가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죠.”
“아니, 유나가 다른 여자와 함께 무언가를 할 때 내 시야에 없는 게 싫어.”
그런 이유구나...
나와 카기는 어색하게 미소를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약속을 나누고 뒷정리를 도운 후 냄비를 챙기면서 말했다.
“이거 남은 스튜는 농도가 짙으니까, 아침에 덥힌 후에 찬밥을 넣어서 볶으면 훌륭한 리조또가 될거에요. 느끼할 수 있으니 양파 절임과 함께 드시는 거 추천할게요.”
“정말 도움이 되었어. 고마워 유나 씨, 그럼 잘 들어가세요.”
“네, 이따 방송 잘 지켜볼게요.”
그렇게 우리는 다시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부엌에 냄비를 가져다 두고 시계를 지켜보니 어느덧 저녁 8시였다.
평소라면 방송을 준비하거나 공부를 하는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뭐랄까,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와서 그런지 의욕이 나질 않았다.
“이대로 늘어진다아아.”
“풉, 평소의 유나라면 운동을 가니, 산책을 가니 부산을 떨지 않았어?”
“겨울철 유나는 게으름뱅이랍니다~”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일본 생활에 있어서 코타츠는 참을 수 없었다.
카가 씨의 집에는 코타츠가 없는게 아쉬울 정도로 나는 코타츠가 주는 따스함에 중독되고 말았다.
확실히, 평소라면 식후 운동을 하거나 요가를 하는 식으로 살이 안찌게 관리를 해야했지만... 뭐라 해야 할까나, 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 정신적인 무장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꿈틀대면서 서로의 발을 툭툭 건드리며 발장난을 하고 있자니, 이게 바로 인생의 극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나야 아~”
코타츠의 밑에는 발장난으로 서로를 간질거리면서, 코타츠 위로는 한가득 쌓인 감귤을 까서 서로에게 먹여준다.
이게 바로 평온한 일상 아닐까?
숨만 쉬어도 행복함이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극상의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영혼을 비우고 달력을 바라보다가, 나는 곧 성인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챘다.
성인의 날이라...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행사지.
“언니, 다음 주 성인의 날 어떻게 하실래요?”
“응?”
“미우가 성인의 날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나에 언니의 초창기 시절 언니를 여로모로 도운 미우는 미워할 수 없는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의 성인의 날에 축하를 해주지 않는 것은 서로에게 섭섭하지 않겠는가.
“응. 미우... 미우의 성인식이라면 꼭 같이 가고 싶어. 그 아이는 착한 아이니까...”
“좋아요. 그럼 저랑 같이 미우를 축하해주러 가봅시다.
그런데 성인의 날에는 무얼 하나요?“
“잘 몰라...”
나의 질문에 언니는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아차차, 실수했다.
“미, 미안해 유나야... 그 언니는...”
“아, 아니에요. 요즘은 뭐 성인의 날을 건너 뛰는 사람들도 있고, 그그, 센터시험의 전주다 보니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면이 있긴 하죠.”
“...응...”
이따끔 나는 언니가 보통의 일본인들이라면 평범하게 누릴 이벤트들을 누리지 못했다고 할 때 마다 가슴이 아팠다.
언니가 이따끔 방송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드물게 풀기는 했지만, 그게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어두운 것들이 많기에 언니도 언급을 피했고, 나 또한 굳이 언니의 아픈 상처를 헤집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 언니도 그 날 성인의 날 의식을 하죠.”
“응?”
“왜요, 아쉽잖아요. 성인의 날이라고 하면 20대의 청춘을 새롭게 맞이하는 날이고 신나는 일인데, 왜왜 게임같은 데서도 성인의 날 의식을 치루면서 모험이 시작하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 거죠.”
나는 언니의 손을 붙잡으면서 말했다.
이 작고 어린 언니의 체형은 갓 성인이 된 사람이라고 우겨도 믿을 정도로 여렸으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미우랑 같이 성인의 날 의식에 참여하는게 어떨까? 하는게 나의 생각이었다.
언니의 당황스러워 하는 얼굴은 이내 미소를 머금었다.
기쁜 듯 눈웃음을 짓는 언니의 눈가에 보이는 눈물방울을 닦아주며, 나는 언니를 가볍게 껴안아주었다.
언니가 이전의 삶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와 함께하는 삶으로 가득 채워주면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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