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40화 (140/307)

〈 140화 〉 139화.

* * *

코로나가 유행에 들어선지 어언 일년이 넘는 세월

세상은 여로모로 변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움직이는게 어려워진 이 시기, 사람들은 외부활동보다 내부 활동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그중에서 유튜브 트위치를 비롯한 인터넷 산업은 이시대의 각광받는 사업이 되었다.

아마 이 정도라면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여전히 인기 넘치는 산업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회사의 회의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사장과 코이즈미 언니, 현재 기술 개발 부서의 부장분과 서포트 분의 부장님 그리고 최초의 버튜버인 타케이 우미 이렇게 다섯 사람이서 시작한 선라이즈 프로덕션

이 회사는 사장의 환상적인 인맥과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 덕분에 많은 투자자와 훌륭한 버튜버들을 마련하고, 버튜버들이 꿈을 펼치면서도 일본의 인터넷 기반 미디어 시장을 괴물처럼 먹어치웠다.

그 덕분에 회사의 규모는 커지지만 그에 따른 회사 시스템은 미비했다.

‘어떻게 이딴곳이 법인이라고 법적으로 통과받은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직도나 회사 체계가 엉망이었다.

그랬던 회사가 올해 들어서 전문 경영인들을 영입하고 훌륭한 회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신년의 어수선함이 정리된 지금, 경영진에서 발표하는 첫 실적 보고 회의는 회사의 ‘간부급’인원들이라면 모두 참여하는 형태의 성과 발표회는 문자 그대로 축제 그 자체였다.

천문학적으로 오가는 금액과 로고만 봐도 알 수 있는 유명 대기업과의 협업 제안, 그리고 미디어 시장 추이와 더불어 캐릭터 산업과 2차 창작의 지표, 캐릭터 저작권 수익료와 콘텐츠 보고서에 쓰여진 내용들만 보면 농담 아니라 하루 종일 배가 부를 정도로 위안감이 들었다.

유학생 김유나, 대학생의 길을 접어치우고 올라탄 이 선라이즈라는 이름의 배는 크루즈 선이 아니라 아예 항공모함 그 자체였다.

모든 그래프가 우상향을 그리는 화려한 숫자의 향연이 지난 후, 올해에도 힘냅시다­라는 말로 시작한 우리들의 영원한 우상이자 아이돌인 나모 사장님의 인사와 함께 가벼운 신년 파티가 시작되었다.

물론 그 축하의 자리도 코로나로 인해서 회사 내부에서 소소하게 파티를 하는 정도였지만… 아무튼 나는 바뀌어버린 내 미래와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저가는 금액, 그리고 인간 관계에 대한 복잡한 생각을 하며 술…이 아니라 사이다를 들이켰다.

“차암, 이렇게 보니 유나는 특별한 존재이기는 하네.”

“코이즈미 언니 무슨 말씀이에요?”

“그도 그럴게, 너는 팀장급 매니저이면서도, 글로벌 팀의 일본 담당 팀 리더기도 하고, 우리 회사에 소속된 예능인이니까, 정말로 독톡한 포지션이지.”

“뭐… 그만큼 많이 받고 있으니 별 불만은 없어요.”

“솔직히 유나가 돈을 더 바란다면 그냥 정식 채널을 개설하기만 한다면…”

은근슬쩍 나도 나에 언니나 다른 버튜버들처럼 내 이름을 걸어두고 채널을 개설하면 어떻냐는 말,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오늘 들었던 발표 회의 중에서 GB2기생을 위한 경쟁비율이 1500:1이라는 말을 듣고 왔는데 그렇게 회사 소속의 버튜버 자리를 낼름 받아먹을 거 같나요?”

“너 그렇게 체면 차리는 성격은 아니잖니?”

그 말에 나는 살짝 상처받았다.

아니 뭐 체면을 안 차린다기 보다는… 내 마음은 차라리…

“그게 아니라 그런 대단한 경쟁 비율을 뚫고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가 된 사람들 앞에 제 자신을 떳떳하게 말할 수 없을 거 같아서요.”

처음에는 조건이 좋아서 수락한 이 계약은 어느새 나를 칭칭 감아서 회사에서 떠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애초에 잘나가던 명문대생 신분을 걷어찬 이후 나는 이 회사를 벗어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참 내, 회사 창구에 ‘메이드 라’채널 개설해주세요. 라고 날라오는 문의 메일이나 협박성 메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제가 만약 회사 소속의 공식 버튜버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공정한 경쟁을 뚫고 올라오고 난 이후가 되어야만 해요.”

“… 참 꽉 막힌 여자구나 너.”

“제가 유능한 매니저고 유능한 방송 도우미라고는 하지만, 그게 꼭 좋은 버튜버라는 법은 아니잖아요?”

가끔씩 하는거면 몰라

하지만 언니처럼 매일 꾸준히 그런 방송을 유지할 자신은 나는 없었다.

애초에 내가 무언가를 세세하게 차리는 것 보다, 다른 사람들 방송에 들어가서 그사람들이 만든 프로그램에 따라 행해주는게 훨씬 편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채팅창으로 마주하는게 나는 어색하다.

“그래 알았다. 이 아가씨야, 대신에 음반 발표나 예정대로 해주기나 해.”

코이즈미 언니는 더 이상 나를 설득할 마음이 없다는 듯 자신의 잔에담긴 술을 들이키고 멀리 가버렸다.

평소라면 다른 버튜버들과 이야기를 나눌 나지만… 이 자리에 참가한 사람들은 매니저나 회사에 소속된 일부 직원들 뿐이기 때문에 꽤나 심심했다.

그래도 뭐 내가 담고있는 회사의 앞날이 밝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나는 이대로 살아가기만 해도 문제없겠지… 뭐 그런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매니저들이 모인곳을 지나가니 이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다른사람들과 비교해도 객관적으로 평균 이상의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는 나는 그런 시선에 민감했는데, 정작 나와 눈이 마주치니 고개를 픽하며 돌리는게 느껴졌다.

“여어 유나~!”

“앗 선배님들~”

물론 매니저들 중에서는 나를 어려워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에 언니와 동기생의 카린의 매니저인 에이비 매니저 선배, 마찬가지로 에이아의 매니저인 이시카와씨가 다소 상기된 얼굴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온천 여행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나 또한 반갑게 다가갔다.

“홀로 도도하게 서있는 아름다운 미인이라니, 말 그대로 절벽 위의 한 송이 꽃 같은 여인일세.”

에이비 선배님은 술이 취하면 말이 많아지나 보다.

“으아앙 유나씨, 유우키가 제 말을 잘 안듣기 시작해요.”

이시카와 선배님은 술이 취하면 제법 성가셔지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 두사람은 나를 경원시 하지 않고 평범하게 대하는 말 그대로 좋은 선배님들이기 때문에 나는 그녀들과 편안한 기분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개성 강한 변태 캐릭터인 카린을 담당하고 있는 에이비씨는 주로 ‘방송시간에 눈을 땔 수 없다.’ ‘자고 일어나면 유튜브에 노란 딱지가 붙어서 수익화 날라갈까봐 두렵다’는 식의 푸념을 하고

어디가서나 사랑받는 캐릭터지만 다소 수수한 디자인 때문인지 그녀의 매력이 근래들어서 폭발하기 시작한 에이아의 매니저인 이시카와씨는 ‘우리 애가 어쩌구’로 시작하는 학부모의 자기자식 자랑같은 말을 했다.

요컨데 둘 다 업무량이 바쁜데 자신의 아이돌들이 좋아 죽겠다­로 요약이 가능했다.

주접 아닌 주접, 주책아닌 주책을 듣고있자니 나 또한 언니의 사랑스러움을 실시간으로24시간감상하는 시점에 대해서 주야장천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해질 무렵,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나에게 인사를 꾸벅 했다.

“안녕하세요 유나 선배님? 저는 5기생의 루미에의 매니저인 타치바나라고 합니다.”

사회 신년생이 보인다는 뻣뻣하게 굳은 몸과 아직은 몸에 익숙하지 않는 자신의 양복을 불편하게 매만지는 갓 대학을 졸업한것처럼 보이는 파릇파릇한 여성이 나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 네, 선라이즈 4기생 유리아의 매니저인 김유나라고 합니다.”

두 선배의 시선이 몰리는것을 느꼈다.

아마 저 시선의 의미는 ‘유나에게도 후배가!?’하는 시선이겠지.

“매니저인 저보다 앞서서 저희 루미에를 도와준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한층 더 꾸벅 숙여서 인사했다.

나는 손사레를 치면서 괜찮다고 표현했다.

“아니에요. 저는 단지 살고있는 이 맨션이 조금 더 떠들썩하면 하는 마음으로…”

“아, 맞다. 그러고보니 유나씨는 버튜버들이 모여 사는 사택에 같이 살고 있죠?”

“역시 선라이즈 최초의 매니저이면서 버튜버!”

매니저들이 모인 이 공간에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쏟아지는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낼 그 시선을, 나를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따르는 후배 매니저가 있고 다소 술에 오른 두 선배 매니저 사이에 있어서인지 평소보다 감당하기 버거웠다.

“하하하…”

아무래도 오늘의 파티 자리는 길어질 것 같았다.

***

고장난 기계처럼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고맙다고 과할정도로 표현하는 타치바나씨와 두 선배님들의 주접에서 벗어나 차에 올라탄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담배가 땡길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도 용캐 술 한 잔도 안 마시고 차에 올라탔다.

이래서 회사 내부 실적 발표회의 일정이 길다는거였구나…

투덜거리면서 본의아니게 10시까지 야근 아닌 야근을 하게 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니 나에 언니가 앞치마를 한 채로 나를 마중했다.

“유나 어서와~ 늦었지만 야식부터 할래? 목욕부터 할래? 아니면…”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나를 향해 동인판에서 유명한 그 모습을 따라하는 나에 언니는 섹시하다기 보다는 소꼽놀이를 하는 어린 여동생처럼 귀엽게 느껴졌다.

그런 언니의 장난 아닌 장난, 유혹 아닌 유혹에 가벼운 이마 키스로 보답한 나는 목욕부터 하겠다고 대답한 다음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언니의 센스 덕분에 욕조에 물을 받을 필요 없이 따끈따끈한 욕조에 들어와 몸을 담군 나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전망있는 버튜버 회사에 소속된 나는 한 명의 매니저이면서도 버튜버 비스무리한 존재였다.

회사의 채널을 운영하면서 버튜버들에 관련된 소식을 전하고 공식의 입장을 발표하는 대변인같은 존재이면서도, 다른 버튜버들의 방송에 들어가서 그녀들의 프로그램 진행을 도우는 독특한 존재인 ‘메이드 라’에 대한 회사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자니 솔직히 말해서 좋았다.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뭔 개인 채널이야… 에구구.”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번 발동되기 시작하면 살인적으로 불어나는 스케줄을 따라갈 수 있는 체력을 지닌 나라고는 해도, 개인 채널을 개설하는 순간 회사의 방송 도우미 포지션이나 매니저의 포지션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렇다.

욕조에 놓인 전자 달력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일의 일정을 체크했다.

미우가 고대하던 성인의 날

다른 버튜버들이라면 이 시간에 방송을 하고 있거나 방송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채널에 올려둘 동영상들에 편집을 넣거나 하겠지… 그렇게 되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성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겠고 말이다.

이처럼 회사의 일이 없을 때 6일간 방송을 켜지 않아도 되는 방송인은 없다.

“그런데 언니가 좀 성장했나? 왜 유카타가 작아보이지?”

따뜻한 물에 얼굴을 반쯤 잠기게 하며 전날 소풍에 가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유카타를 침대 위에 꺼내 둔 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확실히 언니가 이전보다 건강한 체격이 되면서, 이전의 그 앙상한 체격에 비해서는 유카타가 확실히 작아보였다.

내일 성인의 날 가는 길에 언니의 옷을 사야하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다사다난했던 오늘을 마무리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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