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141화.
* * *
소녀는 사랑을 알게 되면서 여인이 된다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미우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걸까?
못 본 사이에 얼굴선이 조금 더 뚜렷해지고, 희미하게 남아있던 볼살이 쏙 들어가고 키가 더 커진 미우는 확실히 성인이었다.
“부럽다아. 미우는 그 사이에 키가 큰거야?”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미우를 올려다보게 된 나에 언니가 가볍게 투덜거렸다.
“네, 유나 언니가 그랬는데 밥 꼬박꼬박 잘 먹고 잠 일찍 자고 많이 자고 운동 열심히 하면 키도 커진다고 했잖아요.”
“나, 나도 그러긴 했는데...”
“으음, 아무래도 전 방송을 쉬었으니 더더욱 그러겠죠?”
언니의 볼살을 가볍게 꼬집는 미우의 그 동작은 확실히 나를 닮아있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미우의 눈웃음조차도 마치 거울의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카가씨는 성격적으로 나와 닮았다면 미우는 미용적으로 나를 닮았다고 해야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들 어서 들어가요. 성인식 같이 누리자구요!”
“어, 응!”
세 명의 성인이라기 보다는 두 명의 성인과 한 사람의 학생처럼 보인 탓일까?
아니면 나에 언니의 귀여운 외모나 미우의 만개한 미모같은 외모에 시선이 끌린 탓일까?
카메라와 사람들의 시선이 여기에 몰리는 것을 느꼈다.
“그나저나 유나 언니도 후리소데를 구매 하셨네요. 역시 잘 나가는 인터넷 방송인~”
“흠흠, 어느 무서운 할머니에게 붙잡혀버린 탓에...”
“부럽다, 저도 얼른 제 이름으로 된 후리소데 가지고 싶네요.”
“응? 그 옷은 뭐야? 솔직히 미우에게는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색감이긴 하...”
“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던 후리소데에요. 디자이너인 어머니께서 자신에게 맞게 한층 더 안감을 덧대고 끄트머리를 전통방법으로 다림질을...”
“...긴하지만 그것을 아름답게 커버해주는 문양과 액세서리가 돋보이는구나. 역시 디자이너이신 미우네 어머님, 과연 할머니 때부터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을 대대로 이어온...”
“액세서리는 제가 골랐는데요?”
“...대단한 핏줄을 이은 사케이 가의 자랑스러운 우등생 미우 또한 공부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눈을 잃지 않은 모양인지...”
나에 언니는 나와 미우의 대화를 듣고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땀으로 등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우의 이상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애써 피하면서 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대망의 성인식
사실 행사 자체는 별 볼일 없었다.
축제처럼 노점상이 차려진것도 아니었고, 코로나 때문인지 전통 문화 식(?)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모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가사도 모르는 국가 제창후에는 그냥 높으신 사람들... 그러니까 시장과 도지사, 그리고 시의회 직원들 그리고 사회에서 젠체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자... 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을 뿐이니까.
뭐 다른 점이 있다면 코로나니까 조심합시다. 정부 지침을 잘 따릅시다. 수준의 연설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인 나에게는 심드렁하게 들린 그런 말들이 두 사람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꽤 신랄하게 풍자되기는 해도, 실제로는 조금 다른지 두 사람은 꽤 뿌듯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으니까.
“뭐랄까, 여기서 느껴지는 외국과의 이질감.”
“네?”
“일본인들은 확실히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구나.”
“으음....”
정치권 뉴스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는 한국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그다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특히 정치에 관심이 지대한 상류층이나 운동권에 뛰어든 학생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학생은 정치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누가 그러던가? 젊은이들 중에서 일본에서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정치가문의 자제, 전통 기업의 자제 아니면 인터넷 우익들 뿐이라고.
한국 커뮤니티에서 신랄하게 비꼬기를 중세 일본(잽)랜드 라고 하는 그런 느낌의 감각을 여기서 느끼게 되었다.
그도 그럴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지사의 말에 저렇게 감명을 받는단 말인가?
한국에서 국회의원의 연설에 이런 감동을 받을 사람들이 적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뭐 그래도 모두가 성인이 되어서 기쁘다, 라고 솔직하게 얼굴로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확실히 귀여웠다.
“뭔가 의기양양한 얼굴이네 유나야.”
“뭐랄까, 다들 사회인에 뛰어든 게 귀여워 보이잖아요? 안 그래요 언니?”
“우와 유나 언니 그거 너무 아저씨 마인드에요. 이러다가 지나가는 여자 애 잡고 ‘언니랑 비밀친구할래?’라고 속닥이는 거 아니에요?”
“무슨 비유가 그러니.”
깔깔거리면서 천천히 2020년도 성인식의 폐식을 관람하며 무언가 문화적인 의미가 깃들었을 거라 생각하는 깃발과 춤, 그리고 저음의 스피커로 들리는 느린 템포의 일본 곡을 들으면서 우리는 가벼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윽고 식이 마치고 모두가 2차를 향해 가는 분위기 속에 나와 언니는 미우를 바라보았다.
“미우야 얼마 안 있으면 시험인데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
“후우...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놀고 싶은데... 역시 시험이 좀 문제네요...”
그런 미우의 손에는 코인 락커에서 찾은 무거운 커리어가 보였다.
역시 고삼, 일반 가방으로는 담지 못하는 무거운 책들을 어깨에 부담 주는 대신 커리어에 담아 다니는구나!
“그래서 외박하려구요.”
“응?”
“어디로?”
나와 언니는 동시에 대답했다.
“어디긴요,”
우리들의 어께에 손을 착, 올리며 그녀는 당당하게 선포했다.
“당연히 언니네들의 새 집이죠!”
... 커리어에 든 것은 책이 아니라 하루 묵을 용품들이었구나!
그래도 갓 성인이 된 애기 사회인의 반짝반짝한 눈을 거절하지 못한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도 미우가 있다가 떠난 사이타마의 집에 적적함을 느낀 나는 미우가 내심 그리웠기도 했고, 여태까지 열심히 공부한 학생을 시험 전날에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우와아아, 여기가 그 유명한 사택이에요?”
“응. 따끈따끈한 신축 건물이지.”
차에서 캐리어를 꺼낸 우리들은 후리소데에 먼지가 묻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보안키를 꺼내서 문을 연 다음 보이는 신축 건물 특유의 깨끗한 분위기에 감탄을 터트린 미우와 함께 우리들은 로비를 지나 집으로 들어왔다.
집 안에 들어오고 난 이후의 미우는 이전과도 같았다.
“킁킁킁, 이게 나에 언니의 냄새와 유나 언니의 냄새가 뒤섞인 집...”
“세상에! 정원이 1층에 바로 보이네요! 여기에 바비큐 해먹으면 맛있겠다!”
“우와 이거 신형 청소기잖아요. 가구는 세상에, 모두 새거에요? 다 새로 맞추신 거 대단해요!”
마치 어린이집에 처음 방문한 어린이처럼 그녀는 여기저기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거실과 정원, 부엌과 언니의 방을 둘러본 미우는 내방의 문을 벌컥 열었다.
“침대...가 크네요? 혹시 두 사람?”
“어... 응, 나는 이층 침대를 원했는데 언니가 무조건 크고 비싼게 좋다고 해서.”
“덕분에 다른 가구들도 싸게 샀잖아!”
미우의 표정이 급격하게 흐려진 것을 본 나는 아차 싶었다.
그도 그럴게, 아침에 급하게 벗고 나오느라 방 이곳 저곳에는 나의 속옷들이 널려있었기 때문이었다.
“흠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내 부끄러운 허물들을 치웠다.
갑자기 미우가 우리집에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무안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슬금슬금 내 속옷들을 치웠다.
미우는 이후에는 옷장을 드르륵 열어본다던가, 내가 방송하는 컴퓨터, 언니가 방송하는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는 거실의 소파에 앉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턱을 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차차, 일단 옷부터 벗고 보자. 그나저나 이런 옷들은 일반 옷걸이에도 걸리려나?”
“아무래도 비닐에 씌워서 보관해야할 거 같아. 유나야 혹시 커다란 옷 비닐같은거 있니?”
“끄응... 이전에 세탁실에서 받아온 게 있어야 할텐데...”
“아, 언니가 그냥 사올게. 아무래도 유나는 후리소데 색이 하얀색 배경이다 보니 오늘은 가만히 있어. 미우의 옷도 밝은 주황빛 계열이니까 그냥 검은색인 언니가 사올게.”
“그...그러면 부탁드릴게요 언니.”
언니는 후리소데 차림으로 총총거리면서 자신의 지갑을 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역 앞에 위치한 거대한 가게에는 이런 옷들을 걸만한 튼튼하고 커다란 옷걸이를 팔고 있으니, 아무래도 30분은 걸릴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새삼 아까 아침에 후리소데를 살 때 보관방법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그렇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는 미우를 바라보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혹시 후리소데의 보관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니?”
“물론이죠 언니... 일단 옷부터 벗어보실까요?”
“어? 어? 응...”
일어난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후리소데를 단단히 여미고 있는 오비(허리를 고정하는 거대한 천)를 풀기 시작했다.
과연 디자이너의 따님, 입을 때는 오분 가까이 걸린 후리소데를 푸는 데는 고작 30초면 충분했다.
나는 미우의 시선이 풀린 옷 후리소데 사이에 보이는 내 맨살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
“이것아, 숙녀의 속살을 그렇게 바라보면 쓰니.”
“언니는 왜이리 무방비해요?”
그렇게 말한 미우는 주저없이 내 배에 자신의 손을 올려다 두었다.
“이전에도 이렇게 복근 만져보라면서 제 손을 끌어서 올리거나 하셨잖아요.
그때부터 느낀건데 언니는 정말 무방비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저기...미우야?”
“그렇게 몸으로 사람을 홀리는데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나요...”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는 옷 사이에 손을 넣고는 나를 끌어당겼다.
아직 익숙하지 않는 옷 때문에 나는 스르륵 그녀에게 몸이 끌려갔다.
“언니, 저도 여자거든요?”
“그, 그렇지...”
“더 이상 어린 여고생이 아니라고요. 언니가 건네주는 술을 못 마시는 그런 아이가 아니랍니다.”
코를 마비시키는듯한 아찔한 화장 냄새에 가려진 미우의 달콤한 체향이 맡아졌다.
이전과는 한층 달라진 성숙한 얼굴로 코가 닿는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미우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었다.
사람이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가, 고작 몇 주 사이에 이렇게 사람이 달라지게 되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박력에 눌린 나는 엉겁결에 소파에 몸이 파묻히게 되었다.
“그, 그래도 아직 학생이잖니? 좋은 대학교에 가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좋은 남자들도 만나고 캠퍼스 연애도 해보고... 그리고...”
“그런 언니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내 입술에 자신의 검지를 얹은 미우가 그렇게 속삭였다.
“대학교에서 연애 하셨나요?”
그 말은 ‘그러는 너는 남자 사귀었냐!’ 라는 질책 보다는...
바람난 애인을 부드럽게 힐난하는 투정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미우는 사케이 가의 미우가 아니라, 선라이즈의 매혹적인 성녀 클레스타인이었다.
클레스타인의 아바타가 그녀와 겹쳐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힐난에 고개를 저었다.
“저기 미우야, 아무튼 일단은 진정하고.”
“언니, 저는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언니야 말로 조금 진정해보시는 게 어때요?”
“그러면 이 손도 좀...”
“흐응, 이전에는 꼬마였으니까 자신의 근육을 만지게 하는 손길은 괜찮고, 이제는 제가 어른이니까 다르게 느껴지시는 건가요?”
눈을 요망하게 치켜뜨면서, 여우의 눈과 같은 호선을 그린 미우가 그렇게 물었다.
문득 나는 성인식에서 본 여우 가면이 떠올랐다.
미우의 표정은 그 여우 가면을 연상하게 하듯 참으로 요사스러웠다.
성인이 된 그녀는 더 이상 성녀가 아닌 요괴(??)였다.
“나, 나는...”
어느새 풀어헤쳐진 자신의 옷 사이로 은근슬쩍 몸을 드러내는 미우는 확실히 꼬마가 아니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낼 정도로, 후리소데로는 가릴 수 없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대답, 못하시겠죠?”
“...”
“그러게, 사람이 그렇게 순진해서야 쓰나요? 언니는 너무 같은 여자들에게 무방비하다니까.”
나를 질책하듯 말한 그녀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옷을 예쁘게 풀고는, 커리어에 활동하기 편한 티셔츠와 바지를 꺼내 입으며 말했다.
“아무튼, 제가 착해서 다행이지 언니가 같은 여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지 잘 아셔야 할 거에요. 안 그러면... 가끔씩 못된 사람들이 언니를 이렇게 저렇게~”
“그, 그래도 나는 다른 여자들은 물론이고 평균적인 남자들보다 더 강한 육체를...”
“그래서 방금 저의 압박을 힘으로 밀어내실 수 있으셨나요?”
나는 깨갱, 하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확실히 여성으로부터 유혹을 처음 받은 나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사람 사이에는 주도권이 있다고 하던가
나는 처음으로 그 주도권을 미우에게 내준 기분이 들었다.
밖에 나간 언니가 돌아올 때 까지 우리는 아무런 말을 나누지 않고, 서로 달아오른 열기를 삭히는데 집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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