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142화.
* * *
그날 저녁
평소라면 내가 방송하는 그 컴퓨터에 당당하게 앉은 그녀는 자신의 아바타를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띄우고 기습적으로 방송을 열었다.
그야말로 성녀 복귀 예정 방송.
평소라면 다른 사람들의 방송에 가거나 방송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미우의 알림설정을 듣고 방송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8천명이 모이자, 미우는 당당하게 외쳤다.
이전의 소녀의 목소리에서, 이제는 완전히 성숙한 어른의 목소리로 말이다.
“신도들이여! 성녀가 곧 돌아올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방송용 장비를 끼고 당당하게 자신의 방송 복귀 예정을 알리는 클레스타인의 모습에 나는 미우를 향한 떨리는 마음이 가라앉는것을 느꼈다.
그녀의 우렁찬 선포와 더불어, 눈물기가 섞인 웃음을 터트리면서 자신이 건강하고 건재함을, 그동안 구독자가 빠지지 않고 늘어나줘서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해주면서 아주 오랜만에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언니도, 나도 나오지 않는 미우의 독무대
선라이즈 4기생들의 중심에서 늘 화제에 오르고 언제나 활발하게 활동을 한 4기생들의 대장, 아사다 클레스타인의 복귀 방송에 나는 새삼스럽게 그녀의 팬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 저게 미우지
당당하고 맑고 예쁜 목소리로 힘차게 사람을 이끄는 듯한, 말 그대로 성녀의 카리스마가 담긴 그 모습에 나는 오후에 미우가 쳤던 짓궂은 장난으로 달아오른 마음이 다시 냉철하게 돌아가는것을 느꼈다.
역시 아이돌이란 멀리서 바라봐야하는 존재
당분간 미우에게 지나치게 스킨쉽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저런 그녀가 나 때문에 활동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되겠어
메이드 라, 매니저 유나 이전에 한 사람의 버튜버를 좋아하는 김유나라는 인간은 역시 버튜얼 아이돌들은 그저 바라만 봐야하는 존재라고, 당분간 그녀 앞에서는 몸가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기회에 단단히 했다.
“어라, 미우 곧 100만 찍겠는데?”
“우와아… 역시 미우, 하긴 공부를 위해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벌써 100만을 찍긴 찍었겠죠?”
“드디어 우리 동기에도 100만 구독자가 나오는구나…”
나름 고속이라면 고속이었다.
100만 구독자, 골드 버튼의 소유자라는 영광스러운 자리 앞에 조바심도 낼 법 한데, 그녀는 냉철하게 공부를 위해 자신의 성장기에 방송을 쉬었다.
오히려 그녀의 그런 행보에 사람들은 빠져들었고, 이따끔 팬서비스로 올리는 영상없는 노래 영상이나, 트위터의 신기능그러니까 라디오 스페이스라는 기능으로 팬들에게 자신의 관심이 식지 않음을 알린 미우의 채널은 휴식기임에도 알음알음 증가를 계속했다.
그러니까, 미우는 정말로 대단한 아이였다.
공부, 운동, 방송 세 분야를 놓치지 않는 그야말로 철인같은 존재
나와 언니는 그녀의 열정과 성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언니는 어떤 생각이 들어요? 동기생의 저런 분투에.”
“미우는 미우고 나는 나야, 물론 미우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긴 하지만…”
차분하게 자신의 손톱을 가다듬으면서 언니는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기가막히게도, 언니가 등진 창문사이에 내리쬐는 해질녘의 환상적인 주황빛이 언니의 후광처럼 비추었다.
“예전이라면 속으로 질투하고, 미우처럼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미워했겠지.
아아 역시 나는 방송을 해도 저런 아이에게는 이길 수 없구나, 저런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날 수 없겠구나 하면서 말이야.”
마시던 녹차를 내려다 둔 언니는 내쪽으로 자신의 얼굴을 기대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걸?
내 인생은 방송에서만 빛나는 게 아니라는 걸 유나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내 감정을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된 날 이후부터
내 입을 가로막던 검은 연기는 사라지고, 다른사람이 나를 사납게 노려보는듯한 환각은 사라졌으니 말이야.”
“언니…”
“물론 유리아도 성장하면 좋겠지, 나도 100만의 자리가 욕심이 나는걸
하지만 유리아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클레스타인처럼 방송을 할 수 없어.
미우에게는 미우만의 방식이있고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있는걸?
나도 지금처럼 계속 한다면 언젠가 100만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문득 언니의 과거를 떠올렸다.
겁먹은 눈에, 방송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굳은 언변
인터넷 속에서 자신을 투영해서 캐릭터의 성격을 빌린 컨셉을 따라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그러지 못했던, 겁먹은 아기 고양이같던 언니를 말이다.
하지만 내 눈앞에 선 언니의 사려깊은 발언에 나는 내 질문이 멍청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우문현답
성인식을 거친 까닭일까, 언니는 평소보다도 더욱 성숙해보였다.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성인식을 거치었다고 사람이 하루만에 이렇게 달라지는게 말이 되는가? 하는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미우의 변화를 지켜본 나는 일본인들의 유전자에는 성인식을 거쳐야만 발현되는 무슨 성숙 유전자가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유나야, 언니 믿지?”
그렇게 말하는 언니는 마치 ‘언니가 100만 구독자가 되어서 유나 평생 호강하게 해줄게’하는듯한 강인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봤자 집에서도 내가 나가자고 하지 않으면 잘 나가지 않는 집순이 주제에라고 말하는 내 자아와 회의에서 본 구독자 증가율 3위의 빛나는 언니의 그래프를 기억해!라고 말하는 내 자아가 부딪혔다.
하지만 고민할게 무어란 말인가?
나를 저렇게 사랑가득담긴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조그만 요정 여왕님의 말에 메이드인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 되는 것이다.
띵동~
타이밍도 좋게 초인종이 울렸다.
하루종일 돌아다녔고 하루종일 심장이 롤로코스터를 타듯 두근거렸다가 멈추었다가 하는 일이 잦았던 탓에 시장기가 돈 나는 서둘러 배달 음식을 받았다.
식탁에 비싸디 비싼 5만엔의 초밥들을 세팅하는 사이에 방 안에서 방송을 마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성인식을 끝내고 미우의 수험을 힘내자는 의미에서 큰 맘 먹고 지출한 비싼 초밥은 배달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준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높았다.
모든 일본인들이 사랑해 머지않을 참치 대뱃살부터 시작해서, 온갖 특수부위와 화려한 새우 장식으로 꾸며진 초밥은 5만엔 짜리 초밥이란 이래야한다, 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듯 싶었다.
이런 초밥에 술이 빠질 수 없지
언니 또한 마찬가지인지 자신의 술잔을 가지고 왔다.
나는 즐겨 마시는 스트롱제로를, 정종을 좋아하는 언니를 위한 쥰마이를 그리고 막 버튜버계를 놀래키고 온 미우를 위한 사이다를 내놓았다.
“언니, 저도 이제 성인이니까 술을 마실 수 있거든요?”
“아직 생일이 안 지났지 않아?”
“하지만 성인식을 했는걸요?”
오후에 나를 압박하던 그 기세를 되찾으려는 듯 미우는 다시 요염하게 미소지으면서 나를 올려다보며 투정을 부렸다.
나는 미우의 투정거림에 다정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수험생이…술을?”
그 말에 미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언니는 깔깔거렸다.
미우야, 아무리 네가 그래도 아직은 너는 수험생이야, 술이라니 정신차려!
아무튼 우리는 미우의 성공적인 방송 복귀와 성인의 날에 대한 축하
그리고 센터시험 대박을 기도하면서 멋드러지게 건배를 했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성인식의 밤이 저물었다.
***
“데려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성인식의 밤을 가족분이 아닌 저희들과 보내서 내심 아주머님께 미안해요.”
“어머나… ‘아주머니’군요.”
앗 무언가 말 실수를 한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미우님네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니에요. 단지 미우가 뒷마무리가 확실하지 않은 거 같아서 조금…”
“그, 그래도 시험은 잘 치지 않을까요?”
“유나씨는 방송인인데 살짝 눈치가 어두우신건지 엉뚱하신건지 모르겠네요?”
과연 잘나가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걸까?
한 여고생… 아니 한 성인을 둔 어머니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젊고 아름다운 연상이 여성이 그렇게 핀잔을 주자 나는 억울했다.
역시 성인식의 밤을 가족이 아닌 우리들과 보낸게 잘못 된거였나?
“아무튼 이만 들어가볼게요.
미우야 시험 힘내!”
“네, 언니들 고마워요.”
“미우야 화이팅!”
언니는 작은 주먹을 말아 올리면서 그렇게 응원했다.
그런 언니의 귀여운 응원에 모두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언니의 얼굴과 옷, 그리고 눈을 주시하던 아주머니는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명함 지갑에서 금빛으로 코팅이 된 명함을 언니에게 주었다.
“어떻게나 사람이 이렇게 분위기가 바뀔 수 있는건지… 전에 볼때는 무표정한 인형같던 아가씨가 지금은 피어오르는 봄의 장난꾸러기 요정처럼 분위기가 바뀌었네요.
일본 전통의 미색이 담긴 아름다운 흑발에 일본의 남성들이 좋아하는 작은 체구에 귀여운 얼굴, 그러면서도 병약함이 느껴지지 않는 건강한 근육과 올바른 자세,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군요.”
“고, 고맙습니다.”
“정말이지, 버튜버라는 게 아니라면 우리 회사 전속 모델로 삼고싶단 말이죠…
혹시 생각이 난다면 거기 명함으로 바로 연락 주세요.”
업계의 선두를 달리는 디자이너의 솔직한 말에 언니는 부끄러운듯 내 뒤로 숨었다.
그러자 먹잇감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로 옮겨졌다.
“물론 유나씨는 이쪽 업계로 오시면 톱급 계약서를 써줄 수 있어요.
요즘 젊은 여성 원투비(Want to Be) 트렌드가 한국 여성인거 아시죠?
본인도 아이돌 연습생이였다고 하니까, 이대로 모델쪽으로 넘어오게 되시면…”
“칭찬 고맙습니다.”
“어머나, 빈말 아닌데.”
사람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그분의 시선이 나를 분석하듯 위아래로 지나갔다.
“타고난 미에 극한으로 가꾼 아름다움.
건강한 생활로 다져진 좋은 피부색에 여성으로 존경받을 만한 탐스러운 엉덩이와 근육, 겨울 옷으로도 감출 수 없는 내부의 근육 라인과 섬세하게 관리가 된 피부, 빠져가는 염색약조차 패션으로 소화 가능할 본인의 아름다움.
어설프게 이쁜척하는 애들보다 차원이 다른, 신쥬쿠를 걸어다니는 갸루들이 본다면 무릎을 꿇을만한 걸크러시함, 남자들이 쉽사리 말을 붙이지 못할 것 같은 강렬한 이미지…”
하하…
나름 외모에도 자신이 있고 잘 가꾸었다고 했는데 이걸 또 전문가의 말에 듣기에는 오랜만인지라 나는 힘빠진 웃음소리를 내었다.
“정말이지 유나씨는 남 주기 아까운 사람이라니까…”
그렇게 말하는 아주머니는 아들이 있긴한데… 라고 중얼거렸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언니의 손을 잡고 다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아주머니의 아쉬워하는 시선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왔다.
“참… 무서운 분이야.”
어지간하면 먼저 말을 하지 않는 나에 언니조차 질려버렸다.
하긴 요즘 코로나로 인해서 모델들이 어설프게 보정을 한 사진들을 자주 보내서 커리어 사기를 친다는 말을 했던가?
멀쩡한 모델을 찾기 힘들어서 불평한다는 이야기를 잠시 하신 것 같았다.
“그, 디자이너란 분들이 원래 다 저런 거 아닐까요?”
“그래도 유나를 노리다니, 너무해.”
“뭐… 그래도 언젠가 잡지 촬영도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요?”
언니는 그게 무슨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저희는 방송인인데, 기왕이면 다양한 경험을 가져보는 것도 좋잖아요.
언니처럼 춤과 노래에 집중하는 것도 괜찮은데, 아무래도 다양한 화젯거리를 삼으려면 미리 이런 잡지 촬영을 하고 그 후일담을 푸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그러게…”
“그리고 언니랑 같이 촬영하는거라면… 나쁘지 않아보이기도 해요.”
진심이었다.
언니와 나는 상반된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이런 두 사람이 같은 사진을 남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런 셈이다.
언니와 나의 커플 사진을 커리어라는 이름으로 전문 사진가의 손에 찍힌다면… 우리들만 가능한 짜릿한 매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말이다.
“정말이지, 2주년 라이브가 끝난다면 할 게 많아지겠네.”
“자자, 다음으로는 회사 가면 되죠? 오늘 연습도 힘내고 와요 언니.”
“응.”
나는 아주머니가 주신 명함을 소중하게 지갑에 넣으면서,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며 회사로 운전대를 돌렸다.
그렇게 우리는 성인식이라는 이벤트를 거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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