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44화 (144/307)

〈 144화 〉 143화.

* * *

“드디어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던 선라이즈의 2주년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요, 다들 티켓은 구매 하셨는가요?”

­당연하죠

­양일 특전 포함, 즐기기 위한 증강 현실 디바이스도 구매 완료

­메이드씨는 안나오나요?

­라님 라님 제발 태양을 비춰주세요

­님도 노래 잘하잖아 제발 노래 불러줘!! 3D로 움직이는 메이드가 보고싶다.

나는 의도적으로 나를 찾는 채팅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 선라이즈 프로덕션은 버튜얼 업계에 뛰어든지 어언 2년, 저희 프로덕션에 소속된 아이돌들은 각자의 방송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어 내었고, 이에 보답하고자...”

­공략불가

­ㅋㅋㅋㅋㅋㅋ메이드 팬들은 어떻게하나...

­재능썩히기 원탑

­그래도 뭐 본인이 방송 어시만 하겠다는데...

“그런고로 이번 주말! 온라인 스테이지에서 여러분에게 찾아 봽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기어코 마지막까지 할 말을 다 내뱉어 낸 나는 헤드셋을 벗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나를 찾는 사람들이 무슨 조직적으로 행동을 하는지 일제히 채팅을 입력해서 그런가, 채팅을 확인하는데 상당히 피곤했다.

다른 버튜버들처럼 게임 중계나 노래 실황을 하는게 아닌, 단순히 회사의 이벤트 내역을 발표하는 이런 보도 방송에서는 상대적으로 채팅을 읽기가 수월하다. 때문에 나는 칠천 명 정도 참여한 채팅방의 내역들을 잘 볼 수 있었고, 나의 정식 데뷔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대본 짜여진 방송하고, 실제 인터넷 방송은 다르다구... 나는 그거 잘 할 자신 없단 말이야.”

여기에 들어오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거치는 신인 버튜버들이 많은 지금

안그래도 선라이즈 입사 자체가 날로먹었다고 생각하고, 방송 어시스턴트 메이드라는 웃긴 직책으로 3D 아바타를 받은 것 또한 불편한데 정식 데뷔를 한다고?

으으, 내가 아무리 유학생활을 거치면서 철면피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까지는 못하겠다.

“차암, 인기 좋구나. 유나야.”

“언니이...”

“이전이라면 유나는 나에만의 것이니까 데뷔하는거 금지! 라고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좀 생각이 다른걸?”

“아니에요. 전 무리에요 무리이.”

그리고 이런 흐름을 잘 알고있는 나에 언니는 농담 삼아 나의 데뷔를 재촉하는 말들을 자주 한다.

마치 브루투스에게 배신당한 카이사르의 심정으로 나는 언니의 놀림을 하루하루 힘겹게 이겨내고 있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스테이지 리허설을 다니고 그 와중에 게임 방송이나 합동 방송을 하는 언니의 기획력은 나로서는 따라잡지 못할 영역이었다.

클레스타인의 복귀 예정 발표 이후, 구독자 수는 빠르게 증가해서 99만명을 달성, 그야말로 100만 구독자까지 한 걸음 남은 탓인지 언니는 최근 들어서 방송을 평소보다 힘을 가득 넣어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페이즈에 휘말리지 않겠다, 라고는 해도 아무래도 신경 안 쓰이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도 최근 하는 방송은 뭐라고 해야할까,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하는 덕분인지 그렇게 방송 자체가 빡세지는 않다고 했다. 어린 체형인 유리아가 행복하게 동물의 숲을 하는 방송은 확실히 힐링 방송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타란툴라 거미에 놀라서 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섬 한 바퀴를 돌아다니는 재미있는 영상거리도 충분하고, 다른 버튜버들의 섬에 놀러가서 행복하게 떠드는 것 또한 재미있었으니 말이다.

“유나는 요즘 따로 방송을 안해?”

“하하, 저도 요즘 노래 녹음하러 다니느라 바쁘다구요.”

천 만 조회수를 가진 아티스트 니아, 다른 모습으로는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 타마의 현실 여동생이자 그녀의 매니저인 마미 선배와 친하게 지낸 나는 결국 그녀의 손에 씌어진 자작곡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훌륭하게 불렀는데, 생각보다 노래의 가사가 깊고 세세하게 호흡을 배분하니 의외로 난이도가 있어서 최근 들어서는 나도 이전의 발성 연습을 다시 하고 있었다.

“그, 그래서 그 낮은 음으로 노래 부르는거야?”

“네, 저음 수련법이라고 한국 아이돌들에게 내려져 오는 비법이에요.”

안정적인 호흡과 발성법으로 내지르는 고음은 확실히 노래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목에 부담이 많이 간다.

때문에 의도적으로 남자 목소리를 내듯 낮은 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고음을 받쳐주는 목의 기반이 마련된다...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나는 이 덕을 꽤나 많이 보고 있었다.

“그래서 유나가 그... 의도적으로 평소에도 낮게 말하고 다니는거야?”

“어... 음, 살짝 그런 편이긴 하죠?”

이전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일본에 와서 살짝 낮은 음으로 말하고 다니다 보니 허스키하다,라는 평가부터 나의 화려한 외모와 행적 때문에 그런지 걸크러쉬 아이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평가가 싫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어를 말할 때에는 의도적으로 낮은 음성을 말한다.

“...”

“언니 왜요?”

“유나의 원래 목소리 들려줘.”

“어...음...”

흠흠 크흐으음

나는 사례 들린 사람처럼 목을 풀었다.

“아↗아↗아↘아↗”

언니는 강아지의 재주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목에 의도적으로 잠긴 마음속의 자물쇠를 풀고 원래의 목소리를 내보았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건너온 유나라고 합니다.”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한 인사.

목소리만으로도 당시 아이돌 프로덕션에서 나를 메인 보컬로 삼겠다고 말할 정도로 관계자들이 극찬한 내 본래의 목소리에 약간의... 그러니까 살짝 귀여운 척을 하는 음을 내보았다.

그러자 언니는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입을 멍하니 벌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

“하하, 조금...어색하죠?”

“기만자...”

“네!?”

“평소 목소리도 깔끔한 저음으로 치트키인데, 이 목소리를 가지고 진짜 방송을 안 한다고?”

“그... 언니는 저 방송 하는 거에 대해서 부정적...”

“이... 이 유나의 예쁜 목소리를 나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운 걸 어떻게 해!”

이전이라면 ‘유나의 이런 목소리는 나만 들을거야’라고 말할 것 같은 나의 예상과 다르게

언니는 나를 기만자라고 부르면서 그렇게 불평을 했다.

아니, 그래도 언니의 목소리보다는 덜 귀여운 걸 어떻게 해!

선라이즈 목소리 치트키라고 불리는 이나리, 유리아, 타마, 클레스타인 사천왕 앞에서 차마 원래 목소리가 귀엽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단 말이야!

“진짜... 꿀성대라는 말이 있긴 있구나 싶어...”

“저기 그렇게 말하는 언니야 말로 기만자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나는 유나처럼 폭 넓은 음정을 커버하지 못하는 걸?”

그렇게 말한 언니는 보컬 트레이닝을 하듯 낮은 음부터 높은 음까지 차분하게 발성을 하였다.

확실히...차이가 있긴 했다.

그래도 언니의 그 귀여운 일본어는 내가 따라할 수 없는 영역인걸!

“그런 귀여운 목소리를 좋아 해주는 사람들보다, 유나처럼 다양한 음역대를 소화하는 사람들이 더 인기 많은 거 알고 말하는거야?”

“...”

“뭐 나야 쿠로시로 유리아라는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긴 한데... 너 행여나 그런 말 에이아한테 말하면 안된다?”

“그... 네...”

아리따운 도시 아가씨의 목소리 보다는 우렁찬 시골 아가씨의 목소리에 가까운 까닭인지, 언니의 동기생인 ‘용사’ 에이아는 초기에 목소리로 인한 악플에 꽤 시달린 편이었다.

아무튼 나는 언니에게 ‘기만자’라고 낙인 찍힌 모양인지, 언니는 평소와 다르게 나를 힐난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휴 이 보물덩어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도... 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듣던 언니는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허리에 손을 올려두고 당당한 포즈로 선언했다.

“...하긴, 유나가 나 아니면 누구에게 가겠어?”

이제는 사람을 아예 물건 취급 하는구나...

확실히 낯가림이 사라진 언니는... 방송에서 드문드문 보이던 ‘카리스마’가 진짜 성격임을 증명하듯이 거침이 없어졌다.

물론 평소에는 조용하고 얌전한 언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나, 특정 분야에 대해서 키워드가 들어와버리면 이렇게 거침없는 모습을 보인다.

뭐 이렇게 말하고 또 다음날 아침 되면 어제 말 한 행보 때문에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긴 하지만... 그런 것 조차 사랑스러운 걸 어떻게 하나?

“맞다 게이밍 메이드 유나야.”

“... 멋대로 언니 친구분의 컨셉을 저에게 덧씌우지는 말아주실래요?”

“미카엘... 그러니까 호시무라가 거의 폭발직전이던데, 자꾸 자기랑 안 놀아준다면서...”

동기생인 미카엘은 중학생이다.

그것도 야스오 장인을 꿈꾸는 실버 티어의 흔한 롤 중학생

이사 오고나서는 확실히 롤도 안들어가다 보니 그녀와 접점이 사라지긴했는데...

“그래서 이번에 오프라인 콜라보레이션을 잡았다고 하는데?”

그런 그녀는 E스포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E스포츠의 뉴스를 여기저기서 알려주고 자신의 방송에 대해서 말한다고 한다.

특정 프로게이머의 뉴스나 업계 이슈에 대해서 끊임없이 영입하는 덕분에 그녀는 반쯤 E스포츠의 홍보 대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선라이즈는 리그 오브 레전드 송출 금지잖아요?”

“응, 그래서 우리 회사 간판이 아닌 옆 사무소의 협업이야.”

당연히 버튜버는 우리 회사만 있지 않았고, 옆 회사에도 있었다.

그중 규모가 있다고 볼 수 있는 회사는 두 곳으로 하나는 중국에 진출을 나갔다가 ‘중국’당해버린 무지개색 프로덕션과 주식회사 ‘이세계’소속의 버튜버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었다.

회사 내부 기수 제도로 인해서 선라이즈 내부에서 다양한 캐릭터간의 케미 생산을 중요시 여기는 우리 회사는 그런 다른 소속사의 버튜버들과의 합동 방송에서는 꽤나 주의를 요구하는 편이긴 했다.

뭐 그래도 팬들은 회사 내부에서 보이는 자신의 최애가 다른 소속사나 개인 버튜버들과 콜라보에서 보이는 새로운 캐릭터 해석으로 인해서 최근 들어서는 그 규정이 느슨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꿈에 그리던 롤 5인큐 팟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우와...”

대단하구나 중학생...

그녀의 끈기에 감탄했다.

“회사에서 금지하는건데 다른 회사의 ‘업무 기획’에 탑승하는 건 막지 않았으니까... 배급사만 괜찮다면 오케이고.”

“그리고 라이엇은 그런거에 일절 관심 없죠. 애초에 스토리 중심의 게임이 아니니까.”

“호시무라가 아예 칼을 갈고 있더라고. 이번에는 도망치지 못할 걸?”

유나언니 유나언니 유나언니!!! 하면서 활기차게 나를 울부짖던 그 꼬마애가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그 녀석, 의외로 장난기도 심했지?

자신의 지각을 빌미로 이나리의 몰래 카메라 작전에 협력하기도 했었고...

“하하...”

나는 아무래도 그 활기 넘치는 중학생에게 단단히 찍혀버린 모양이다.

이거... 동생에게 미리 연락을 넣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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