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144화.
* * *
용과 호랑이, 아니 용과 사자의 동거 생활 소식은 은근히 빠른 속도로 사내에 퍼지게 되었고, 당연히 그녀들의 새로운 생활상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선라이즈 두 번째 100만 구독자를 보유하게 되면서 선라이즈의 인지도를 유튜브 세상에 크게 떨치게 된 전설인 오르페, 그리고 그녀의 까마득히 먼 후배이면서도 선배들 골탕먹이기를 좋아하고, 찰진 리액션으로 어그로 방송 계의 선두주자를 달리고있는 5기생의 루미에
컨셉 또한 용과 사자라는 강한 이미지가 있는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은 다양한 추측이 일어났다.
왜 용호상박이라고 하잖아? 사자나 호랑이나 비슷하니 서로 막 다투지 않을까?
아, 욕실 누가 먼저 쓰니 마니 하는거로?
에이 그래도 루미에가 대단하기는 해도 오르페는 전설인데…
루미에 성격 봐, 걔가 어디 선배님이라고 넙죽넙죽 인사하는 애가 아니잖아?
서로 자주 싸울거같은 이미지인데 말이지, 이거 사측에서 잘못 선정한거 아닐까?
흔히들 있는 일이잖아, 룸메이트 꼬이면 피곤하다는 거
이렇듯 추측은 대부분 두 사람에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방송에 복귀한 오르페나, 최근들어서 마인크래프트 게임 세상 속 대형 건물들을 전두지휘하면서 이벤트를 주최하느라 바쁜 루미에는 서로의 콘텐츠에 열중하느라 일상생활을 잘 풀지 않았다.
그런 덕분인지 ‘두 사람의 일상 생활은 아주 힘든가 보다’라는 뜬소문이 힘을 얻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르페의 방에 찾아온 루미에의 투정이 들리기 전 까지는 말이다.
“콜록 콜록.”
건조한 탓인지 유난히 방송 중에 잔기침을 많이하는 편인 오르페는 특유의 할머니 톤의 ‘에구구’ 하는 톤으로 나이 많은 드래곤 특유의 캐릭터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잦은 빈도에 걱정이 담긴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노크소리와 함께 방이 열렸다.
“언니 또 가습기 안틀었죠? 이것 봐.”
마이크 멀리서 들리는 누군가의 불만소리에 사람들은 쉽게 그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제가 내린 생강차도 안 마시고, 환절기라 안그래도 방이 말라있는데 가습기도 안틀어, 생강차도 안 마셔, 언니가 무슨 아이에요?”
“그치만… 생강차는 독하고 쓴걸… 가습기는 귀찮고…”
“내가 못 살아…”
동거인이라기 보다는 철 없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돌보는듯한 어머니와 같은 일상 대화가 잠시 멈춘 방송 사이로 흘러나왔다.
평소라면 그런 일상적인 정보를 흘리기 싫어하는 오르페는 마이크를 끄는 편이지만 오랜만에 복귀한 방송 조작이 익숙하지 않는지 아니면 기침을 자꾸 하느라 깜빡한 탓인지 그녀들의 소소한 대화가 방송에 송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웃씨에게 배도 얻어왔아요. 생강 우린 물과 함께 배를 넣으면 배의 단맛이 생강의 맛을 잡아준대요.”
“오오…”
“꿀도 탔으니까 이거 꼭 다 마셔요. 물도 잘 안 마시는데, 이런것 까지 안 마시면 옆방에도 들려올 정도로 기침소리 커지니까요.”
“으응… 고마워.”
“그럼 가습기 물 떨어지면 톡으로 저 불러요. 언니 아직 몸 다 나은거 아니니까 부담없이 불러요. 뭐, 미안하다는 표정 짓지 말고요. 어차피 언니 기침소리 자꾸 들리면 저도 신경쓰여서 어쩔 수 없다고요.”
투정이 살짝 섞인 잔소리 이후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오르페는 방송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평소에 뮤트해두는 마이크가 켜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살짝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아, 미안미안, 방송중에 갑자기 사람이 찾아와서 말이야.”
???
저게 그 루미에라고요?
선라이즈 최고의 악동, 악질 사자, 선배들 이겨먹는 사자가?
근데 방금 그건… 악동이 아니라 마마잖아
마마
사자는 마마였다
그러니까 방송에서만 어리고 오프라인에서는 마마라는거지?
“아니 뭐야, 내 동거인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거야?”
인터넷 방송인이라는 직업 특수 환경으로 인해서 같이 살고 있는 사람, 특히 가족들의 목소리가 방송에 들려오는 때도 있었다.
가족 구성원 전원이 오타쿠라 선라이즈의 덕질을 같이 한다거나, 게임을 좋아하는 자신들의 부모님을 마인 크래프트에 초대하는 등 소소하게 가족을 심심풀이용 콘텐츠 경우 삼는 경우는 없던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버튜버와 버튜버가 동거하는 일은 잘 없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르페는 사람들의 관심이 유난히 크다는 것을 금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능숙한 방송인 답게, 옷의 디자인을 찾는 척 커뮤니티를 다른 모니터로 훑은 그녀는 ‘오르페와 루미에의 불화설’이라는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송인인 그녀에게 뜬소문이란 두 개 중 하나였다.
하나는 의도적으로 방치한 채 부풀리면서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식으로 관심을 모으다가 해명한다거나, 아니면 초기에 잡아서 커지기 전에 잘라내는 것이었다.
혼자 한다면 당연히 전자가 이득이었다.
하지만 안그래도 방송 컨셉 때문인지 어그로를 많이 끌고 있는 루미에가 인성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앞길 창창한 후배에게 좋지 못할거라 빠르게 판단한 그녀는 작업하던 그림을 내려두고 새로운 캔버스를 열었다.
“흐응, 그런 너희들을 위해 이 오르페님과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도록 하지.”
오르페의 수 많은 장점이라면 뛰어난 기획력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그림 실력에 있었다.
그녀가 이따끔 하는 일상 그림 토크는 이미 수백개의 키리누키 영상을 양산했을 정도로 전달력이 뛰어난 방송으로 유명했다.
“내가 여기로 이사를 오게 된 경위는 말이야…”
그림만 그리면 방송이 쳐진다.
그렇게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적당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는 가벼운 선을 몇 번 그어서 순식간에 앞치마를 여미고 있는 루미에를 그려내었다.
“그래서 말이야, 내 동거인이 귀여워서 죽을 거 같아.”
선배들을 동경해서 들어온 후배 버튜버들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 반대도 성립할 수 있음을 오르페가 보여주기로 직접 마음 먹었다.
누가 봐도 귀여운 그림에 홍조연출까지 더해지자 오르페가 그린 루미에는 귀엽고 참해보이는 부인같았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칭찬 폭탄 세례에 시청자들은 ‘왜 이런 이야기를 이제야 하냐’는 식으로 의문을 드러내었다.
그것을 읽은 오르페가 씨익 웃었다.
“아아, 왜 이런 이야기를 잘 안했냐고?”
대답을 기다리듯 시청자들의 애를 태운 오르페가 살짝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귀여운 루미에는 나만 알려고 했거든.”
그날 밤,
선라이즈 최강의 용 오르페의 최상위 포식자의 선언에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만화가들이 활동하는 픽시브에 오르페X루미에의 해시 태그가 활성화 되었다.
***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은 일본 이스포츠 팬들에게는 생소한 영역이다.
그도 그럴게 실력을 겨루는 대전게임보다는 콘솔 게임 시장이 압도적으로 큰 일본에서는 AOS게임 특유의 습득지식이 많이 필요하면서, 실력의 고하에 상관없이 한 판이 평균적으로 20분 이상 걸리는 긴 게임은 확실한 진입 장벽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어릴 적부터 그런 콘솔 게임에 질려하거나, 글로벌 히트작들 중에서 어쩌다가 취미에 맞는 사람들은 어쩌다가 롤에 빠져들게 된다.
“**같은 중국인들!! 니네 나라로 꺼져!!”
그리고 그런 일본에 존재한 리그 오브 레전드를 가장 열심히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일본인들도, 한국인들도 아닌 중국인들이었다.
일본 서버에서 일본어를 쓰려는 노력도, go 나 do 같은 가벼운 영어도, 하다못해 인게임의 핑 시스템을 활용한것도 아닌 칭글리쉬, 혹은 짱글리쉬라 불리는 영어로 표현하는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려 하는 그들은 골칫거리였다.
ㅋㅋㅋㅋㅋ아무리 ‘중국’당했다고 하지만 너무 거침없는 거 아냐?
뭐 무지개프로덕션 소속이면 중국 혐오가 두배라고
앗…아아
무지개 프로덕션 소속의 쇼코 또한 어쩌다 롤이라는 망겜에 인생을 배팅하게 된 불쌍한 버튜버다.
파란색 머리카락을 거칠게 흔들면서, 여섯 번의 솔로킬로 멘탈이 터진 탑라이너가 기동신을 사고 달리는 꼴을 본 그녀는 오늘도 중국을 혐오했다.
안그래도 자기네 사무실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던 중국 확장기획이 공산당하면서 어울리던 동기생과 선배가 자숙을 가지게 되거나 졸업해버리는 일이 생긴 덕분에 평소의 혐오는 더욱 강해졌다.
[허접, 또 져버린거야?]
게임 채팅창으로 날라온 버튜버 친구인 미카엘의 메세지에 자극 받은 쇼코는 광란의 채팅을 시작했다.
[너 방송 중 아니지?]
[응, 우리 회사는 롤 송출 금지야.]
[아 진짜 중국 ** ***]
중학생에게 보내는 메세지라고는 생각 못할 압도적인 비속어 폭탄에 미카엘은 안타깝다는 일색의 채팅을 보냈다.
[그래서 이번 격전 마지막 멤버는 다 모인거야?]
[응, 지금 내 스승님이랑 같이 게임하는 중]
[나도 랭크 그만 돌리고 일반하러갈래…]
매일같이 팀운 망겜을 외치기는 해도 그래도 게임 자체를 좋아하는 지라아마추어끼리 프로의 기분을 낼 수 있는 인게임의 ‘격전’이라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총 다섯 사람이 모여서 하는 콘텐츠인데 자신을 포함해서 노아와 히후미라는 사무실의 동료, 그리고 힐데라는 현역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인 버튜버와 선라이즈의 미카엘 이렇게 다섯이서 참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좌절되었는데, 다름아닌 같은 사무소의 동료인 히후미가 중국 플렛폼인 비리비리에서 방송 도중 자신의 시청자들이 소속한 나라 이름을 열거하는 과정에 중국과 대만을 다른 나라로 말을 하게 되었다.
그에 화가 난 중국 유저들이 그녀의 방송 채널에 몰려들어거 깽판을 치게 되고, 그것을 포함한 여러 번 중국에서의 불미스러운 사건 탓에 회사는 중국 진출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사건의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히후미는 그대로 멘탈이 나가버리고 그대로 졸업, 즉 방송인을 그만두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을 당한 동료와는 별개로 그렇게 흐지부지 될뻔한 자신들의 아마추어 대회는 선라이즈의 롤고수를 데려오겠다는 미카엘의 발언으로 어찌저찌 속행되었다고 했고, 대회 참가를 위해 같이 일반 게임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게 그저께의 일이었다.
그래도 롤 고수라고 하니 나름 다이아쯤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쇼코는 미카엘의 아이디를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한 소환사의 전적을 둘러보았다.
“… 뭐20승?”
전적창에 도배된 20번의 승리기록
부캐라고는 해도 중국인들이 몰려 들어서 뉴비들을 절단하는 쓰레기들이 판치는 저렙 일반게임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뉴비 절단기들을 절단내면서 전승가도를 달리는 총 전적 35승 0패의 기적적인 아이디를 본 쇼코는 두 눈이 흔들렸다.
이윽고 날라온 인게임 초대장, 어쩌면 정말로 진짜 롤 고수라고 할 수 있는 다이아 랭크 유저와 함께하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는 보이스 채널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 스승님, 저 사람이 바로 쇼코씨에요.”
“쇼코씨 반가워요, 편하게 메이드라고 불러주세요.”
“그… 선라이즈의 메이드씨…에요?”
버튜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듣게되는 선라이즈의 메이드
그 소문의 존재와 직접 게임을 할 수 있게 될 줄이야…
하긴 그녀의 FPS실력은 확실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팀 게임에서 잘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부담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배워갈 점이 많다는 것을 잘 아는 쇼코는 빠르게 그녀와 친해지려고 노력을 했고, 붙임성 좋은 쇼코와 금새 친밀감을 느낀 메이드는 서로 말을 놓기로 했다.
“그래서… 메이드가 미카엘의 스승인거야?”
“응.”
“크으, 스승님이 조금 더 일찍 도와줬더라면 작년에 골드를 찍는건데.”
“만년 브론즈 탈출을 영광으로 알아야 해 넌.”
그렇게 티격태격 하는 분위기 속에서, 게임 큐를 기다리는 도중 쇼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본캐 티어가 어디야?”
메이드는 말 없이 링크창을 주었다.
모든 국가 롤 유저의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할 수 있는 통계 사이트의 주소를 누르고 들어간 그 자리에는… 휘황찬란한 붉은 빛 티어 마크가 보였다.
일반인들의 고수라고 불리는 다이아티어, 그리고 그 다이어 티어중에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올라가는 마스터 티어, 그리고 그 위에 존재하는 ‘프로의 등용문’이라는…
“그…랜드 마스터? 그, 그것도 한국?”
그녀의 가장 최근 전적에 있는 이름들을 살펴보았다.
월드 챔피언의 팀 이름을 가진 연습생, 이름만 대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명문 팀의 이름을 박은 현역 선수들이 보였다.
그 휘황찬란한 전적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쇼코는 되묻고 말았다.
“저, 정말이야?”
“게임에서 보여줄게.”
그 자신감이 가득 담긴 쇼코는 저도 모르게 헤드셋을 쓴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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