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148화.
* * *
나의 기분을 묘사하자면 그거다.
그래, 블루레이 DVD로 엄청나게 굉장한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갑자기 내가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성우들이 잔뜩있는 토크쇼에 놀러가는 오타쿠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면 내 취향이 잔뜩 들어간 게임을 클리어하는 순간 개발자가 나를 초대했다거나… 뭐 그런 상황이었다.
사실은 업무 관계자의 호출이지만, 평소에도 자주 보는 얼굴들도 있지만 아무튼 선라이즈 멤버들이 뒷풀이 하는데 초대를 받는게 다 어디냐! 하고 나는 문을 열었다.
“저 불렀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회식 도중이란 이런것이다! 하는듯한 그녀들이 보였다.
다들 술을 한 잔 걸친 채 나를 바라보는데, 이전에 만난 적 있는 버튜버들도 있었고, 만난적이 없는 버튜버들도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아직 선라이즈의 모두를 직접 만난적이 없구나, 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살짝 뻘쭘해졌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바로 전긍정의 유나 아닌가!
나는 바로 동방예의지국의 조선유교걸답게 90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라이즈의 4기생 쿠로시로 유리아의 매니저 겸 집사부 소속의 메이드 라를 담당하고 있는 유나라고 합니다! 호출이 있어서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 네, 안녕하세요.”
“아, 소문의 메이드씨… 그 가게를 잘못 찾아오신 줄 알았어요.”
버튜버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나를 알고 있는 이들 중 손을 흔들어 반겨준다거나,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서 악수를 하는 적극적인 사람과 그들에게 이질적인 ‘인싸’적인 외모에 살짝 겁을 소극적인 사람들이었다.
아무튼 간에 그녀들은 오늘 하루 끝내주는 무대를 보여준 예술인들이 아닌가? 나는 그녀들과 언젠가 좋은 친구 사이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갈망하며 정중하게 다시 인사를 올리고 코이즈미 언니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보아하니 레스토랑은 크게 동쪽과 서쪽을 나뉘었는데, 라이브 주년 행사를 전/후반으로 나누자면 내가 먼저 들른곳은 전반부의 동쪽이었고,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언니들이 있는곳은 서관이었다.
드르륵! 하면서 미닫이 문을 열자 이내 나는 독한 술냄새애 코를 붙잡았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알코올로 사람을 죽이려는거야?
꽤나 얌전한 술자리였던 동관과 다르게 서관은 엉망진창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버튜버가 아닌 회사사람이 코이즈미 언니밖에 없는 지, 언니는 난감한 표정으로 뻗어있는 이로하와 나에언니, 츠유를 가리켰다.
술을 엄청 마셔서 아예 골아떨어졌는지 세 사람은 서로를 배게 삼아서 자고 있었다.
그런 후배들의 쓰러진 모습을 안주 삼아서 술을 홀짝거리고 있는 리나(다비) 선배와 치에리(마녀)선배는 술을 훌쩍 거리고 있었고, 2기생의 샤디아(아그니)씨는 흥이 올랐는지 이름 모를 선배의 손을 붙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몇 번 교류를 나누어서 얼굴을 알고있는 아카리 역할의 우루카미 아사히씨는 콧잔등에 술잔을 올려두고 균형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런 아카리 선배와 자주 어울리는 버튜버 ‘엘리야’라고 짐작되는 여인은 노심초사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의외에도 여러 버튜버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술에 취해서 고삐 풀린 짐승이 되어버린 현장에 나는 내 역할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뒷정리구나…
하긴, 선라이즈 최고의 힘센 여자인 내가 해야지 뭐…
이게… 아이돌들의 어두운 면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 저를 왜 불렀어요?”
왜 불렀는지 알고 있지만 심술이 난 내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알,잖,아?”
저저 스타카토 화법으로 압박주는 거 봐, 어휴…
“그래도, 말이야, 유나아야, 내가,,, 너라서,,,”
“네네, 예쁘고 강한 저니까 믿을만해서 불렀다는 거 아니에요? 입도 무겁고 행실도 올바른 매니저가 저밖에 없다니 참 슬프네요.”
“너… 우웨에엑.”
아니 아까 전화할 때에는 멀쩡했는데 그사이 취했다고?
나의 떨떠름한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코이즈미 언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나 그렇게 보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냐… 우웨에엑.”
“…아무리 봐도 그런데요?”
“야!!”
비닐 봉지에 헛구역질을 하던 언니가 갑자기 내 어깨를 잡았다.
언니를 알게 된 이후 이렇게 편하게 말한적이 없었는데?
“내가 너 때문에!! 얘들 다 술로 죽여놨어!!”
“그, 그게 어째서 제 탓인데요?”
“우웨에엑…”
하지만 해명을 하려던 코이즈미 언니는 결국 올라오는 것을 참지 못했는지 화장실로 급히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능글맞게 바라보던 치에리씨가 나에게 슬쩍 기대면서 말했다.
“유나씨 오랜만이네요.”
“아, 치에리 씨 잘 지내셨죠?”
“에에, 죄 많은 유나 씨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답니다.”
“…네?”
“그게 말이죠… 후후후, 사실은…”
그러니까 그런거였다.
일명 ‘누가 유나랑 제일 친한데?’ 라는 유치한 화제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녀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처음에 불을 붙인건 다름아닌 리나(다비)선배였다고 한다.
술이 오른 그녀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 이름을 들은 선배가 ‘그래서 누가 제일 친한데?’라는 유치한 말에 제대로 도발이 걸려버린 그녀들은…
결국 내 이름을 걸고 술 배틀을 벌였다고 한다.
일명 주당 유나에게 어울릴 짝이라면 술을 잘 마셔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말이다.
우습게도 그 승부의 승자는 저기 화장실에서 머리를 붙잡고 돌아오는 코이즈미 언니였다는게 킬링 포인트다.
내가 무슨 국민 아이돌도 아니고, 이런 자리에서 내 이름을 울부짖었다니 정말… 무서웠다.
뭐야 그게! 어색해질뻔한 술 자리를 본인의 주량으로 재워버린 코이즈미 언니야 말로 선라이즈의 총괄 매니저, 회사를 이끌어나가는 기둥임이 틀림없다.
나는 ‘뭐 왜!’ 하고 따지는듯한 코이즈미 언니의 시선을 받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튼 나는 술에 취해 골아 떨어진 나에 언니를 업고, 이로하를 안았다.
성인 여성이 다른 성인(나에 언니는 일단 어른이긴하니까) 둘을 들어올리는 장면은 드문지라 장내의 시선이 나에게 모이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럼 일단 실례하겠습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한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차에 실었다.
다행히 차는 큰 모델이라 다섯 사람이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았기에 골아 떨어진 두 사람을 뒷좌석에 태우고 츠유를 데리러 다시 방에 들어갔다.
“언…니?”
잠에서 어느 정도 깨어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츠유가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평소에 똑부러진 츠유라고 해도 술 앞에는 장사 없는지 그녀의 모습은 꽤 과관이었는데, 술을 마시면 열이 잘 오르는 타입인지 땀을 계속 흘리면서 겨울임에도 당당하게 상의의 단추를 풀어재낀게 참으로 매사에 당당한 그녀다웠다.
하지만 패션이고 나발이고, 속살이 드러나는대다가 바깥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기에 나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듯한 표정을 짓는 츠유의 윗옷을 여며주려 했다.
유난히 당황해보이는 츠유는 그런 내 손길을 처내고는 허둥지둥하며 팔을 위아래로 흔들다가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제, 제가할게요. 미, 미안해요.”
하지만 술에 취한 사람이 제대로 손을 쓸 수 있을리가 없었다.
자신의 셔츠도 제대로 못 닫는 츠유의 모습을 본 나는 과감하게 그녀의 옷을 대신 닫아주었다.
“어머나.”
“과감하시기도 해라…”
하지만 그게 무어라 오해를 샀는지, 술에 취한 버튜버들이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저런 미인이라면… 난 오케이야.”
뭐가 오케이에요.
리나씨, 사람 딱밤마렵게 하시네…
“술자리에서 세 다리를 걸치는건가요? 우후후.”
세 다리라니
누구와 누가요?
큰일 날 소리를 하시네 치에리 씨…
아무튼 업고 간 두 사람과 다르게 자기의 의지로 일어난 츠유는 일어나서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곱 걸음만에 넘어질 뻔한 걸 내가 잡아주었다.
“요것아, 이럴 땐 그냥 언니에게 의지해..”
“하, 하지만…”
“이견과 의견은 받지 않겠어요. 아이돌 츠유 씨.”
자꾸만 발버둥치는 그녀를 끌어안기, 그러니까 흔히들 공주님 안기라고 하는 그 자세로 들어올린 나는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를 완벽하게 만들어준 버튜버들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내 품에 발버둥치던 츠유는 이내 포기를 하고 얌전히 내 에스코트를 받았다.
두 사람에 비해서 키가 큰 츠유를 앞좌석에 태운 나는 나에 언니에게 그러하듯 안전벨트를 매어주었다.
그래도 아이돌이라 그런가?
평소라면 인상을 찌푸릴 타인의 술냄새도 그렇게 고약하지 않은것 같았다.
“언니… 미안해요.”
“뭐가?”
“여로모로… 이것저것…”
“미안하기는 무슨, 야 오늘 내가 버튜버들 무대 보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줄 알아?”
그렇게 말한 나는 당당하게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흔히 말하는 명품 브랜드의 코트 속에는, 미처 갈아입지 못한 코모레비의 굳즈 셔츠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니까… 공연 순서에 따라서 나는 옷을 갈아입었는데 마침 코모레비가 피날레 곡을 부르기 위해서 등장한 탓에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는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진심만큼은 전해졌는지,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 언니… 저, 저는…”
얘는 술을 마시면 감정 조절이 힘들어지는 케이스구나.
그렇게 파악을 한 나는 얌전히 팔을 벌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츠유는 안전밸트를 풀고 나에게 안겨서 울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우리 츠유 고생 많았지. 2주년 라이브도 무사히 마쳤고 개인 라이브도 무사히 했겠다. 이제 너는 진짜 아이돌이야.”
설령 그녀의 무대가 가상공간이라고 해도 말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오늘 행해졌던 총 15명의 퍼포먼스 중에서, 채팅창을 얼게 만들만큼 완벽하게 압도적인 무대를 보인 것은 츠유라는 것을 말이다.
2주년 라이브가 끝나고, 누가 최고였는가? 라는 질문에 모두가 코모레비의 무대를 꼽을 정도로 그녀가 보인 연출과 춤, 노래는 흠잡을 곳 없이 완전무결했다.
그래, 마치 톱 레벨의 Kpop아이돌들처럼 말이다.
나에 언니를 좋아하고 유리아를 가장 좋아하는 나라고 해도, 무대 연출과 압도적인 성량으로 어설픈 일본의 ‘아이돌 문화’를 짓밟듯이 화끈하게 무대를 선보인 츠유는…
아이돌의 꿈을 걷고자 희망했던 내가 보더라도, ‘우상’을 삼고 싶어하는 지향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저는… 저는… 으아앙.”
그렇게 이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뛰어들 당시에도 명확하지 않는 버튜버의 길, 그것도 아이돌 버튜버를 하겠다는 그녀의 꿈을 지지해준 사람은 적지 않았을까?
거기에 삼년의 무명생활은 그녀를 적잖게 지치게 만들었을거고, 유명해져서 인기가 올라올 무렵 집에 커다란 빚이 생긴다면 스무살의 여자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일이었을것이다.
“하지만 너는 해냈잖니.”
첫 개인 공연에서 그녀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근래들어서 방송으로 인기를 끈 코모레비라고 해도, 당시 그녀의 라이브 규모는 크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모인 인원은, 도중에 구매해서 참여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무려 25만명
그런 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훌륭하게 자신을 보여주었다.
아이돌이란 이런 것이라고, 버튜얼 아이돌을 꿈꾸는 사람은 이정도를 보여줄 수 있다고 그녀는 훌륭하게 증명했다.
실시간 시청자 수를 콘서트 관람객 수로 치환해서 보는 버튜버는 코모레비 그녀 뿐이다.
그만큼 그녀는 진심으로 이 무대에 자신을 보여주었다.
“언니… 언니…”
“옳지 옳지.”
장녀로서
빚을 가진 아버지를 둔 장녀로서
타지에서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며, 그녀에게 손을 벌리는 장녀로서 얼마나 마음에 쌓인게 많았을까?
빚으로 인해서 앨범을 내기 어려워지게 될 때에는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
간신히 얻은 유명세에 치고나가지 못하게 될 두려움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는가?
자신의 꿈에 대해서 확실한 확신을 가지게 된 날, 한껏 마신 술로 감정을 억제하는 힘이 약해진 츠유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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