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149화.
* * *
아무튼 나는 술에 취해 꼴아떨어진 아이돌들을 각자의 집으로 데려다 줬다.
츠유의 여동생 츠무기, 이로하의 여동생인 마미 선배 두 사람에게 무사히 술에 취한 아이돌들을 방 안까지 옮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마저 침대에 옮긴 나는 기진맥진...하지는 않았고 그냥 심심했다.
시계를 보니 열 시 정도이다.
버튜버들의 끝내주는 무대를 보고 난 이후 오프라인의 그녀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몇 없을 건데, 내가 그 중 하나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마치 종강 이후의 술자리에서 보일법한 그녀들의 모습에 나는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술 취한 사람들을 돌봐주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 않는가?
하지만 술에 취한 아이돌들이라면 그녀들의 술주정과 잠꼬대마저도 귀여웠다.
그리고 무대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그녀들이 나사 풀린 모습으로, 인터넷 방송에서도 보이지 않는 느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알콜 가득한 장소에서 술을 한 잔 걸치지 못한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냉장고에 있는 스트롱 제로를 한 캔 땄다.
그러고는 겨울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청승을 떨기 시작했다.
선라이즈에 들어오고 난 이후의 나, 나에 언니의 방송을 돌려보면서 매니저 공부를 하던 나, 방송에 슬금슬금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방송인이 되어가는 나... 등등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상념의 사슬은 결국 나에 언니의 무대까지 이어졌다.
‘내가 방송인이 아닌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
겁먹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던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돌이란 누군가를 매료시키는 사람이구나.’
댄스 연습실에서 과거의 아픔을 떨쳐내고 ‘언니를 매료시키겠다’고 선언한 내 춤을 본 언니가 그렇게 말했다.
돌이켜보니 그때부터 언니는 불평하지 않고 내 운동을 따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도 빛나고 싶어.’
누군가에게 선망되는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에게 우상(Idol)이 되는 것은 생각 의외로 매력적인 일이다.
누군가가 나에 의해서 바뀐다는 것, 나를 닮고 싶어한다는 롤 모델이 된다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그렇게 언니는 나처럼 되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나는 언니의 아이돌인 셈인거지...
그리고 그런 언니는 이제 아이돌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춤추면서 사랑을 속삭이던 쿠로시로 유리아는 확실하게 나의 마음을 가져갔다.
“그렇다고 연습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싶어하지 않으실 줄이야...”
뭐 그만큼 언니가 선보인 첫 무대는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혼자서 감정을 정리할 무렵, 라인 통화나 일반 통화가 아닌 카카오톡 통화가 걸려왔다. 화면을 보니 동생놈이었다.
“여보세요?”
“아아, 누나 잘 지냈어?”
“뭐... 누님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단다.”
행복하게 버튜버 덕질하면서, 그녀들과 함께 일하며 덕업일치를 누리고 있는 중이지.
“다행이다. 근데 누나... 혹시 한국에는 언제 돌아올거야?”
“...”
“나야 이제 봄 시즌부터 한국에서 복귀를 하는 데, 누나가 언제 오는지 궁금해 하는 어르신들이 많으셔.”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예쁜 유나
그것은 타인에게 선망 받고 싶어 했던 과거의 내가 쌓아올린 삶의 업적이다.
어른들에게는 이쁨 받고, 또래에게는 사랑 혹은 동경을 받던 나의 삶이었다.
때문인지 큰 명절이 다가올 때는 항상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구나, 한국은 이제 명절이 다가오는 시기네.”
“응, 작년 추석때야 우리들이 서로 외국에 있었다 치지만... 근데 누나는 한국이 그립지 않았어? 나는 중국에 있었는데도 엄청 그리웠는데.”
“글세다...”
딱히 한국이 그리운 적은 없었다.
가족보다 더욱 가족 같은 버튜버들이 나와 함께 살고 나와 함께 웃고 울어주는 덕분인지 많은 유학생들이 으레 겪는다던 향수병은 나에게 있지 않았다.
“누나 좀... 확실히 거기 들어가고 나서 달라지긴 했네.”
“너도 버튜버들하고 같이 살아보렴. 내 옆방에는 버튜버들이 산단다.”
“... 큭.”
중국에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한 내 동생은 어느 사이엔가 버튜버 오타쿠가 되었다.
녀석의 최애는 다름 아닌 클레스타인, 감히 누나가 최애삼은 유리아를 덩달아 최애로 섬기지 않는 발칙한 녀석이다.
“아무튼 뭐... 이번에 친척들 보면 그렇게 전할게.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한국 일본 오고 가는 거 빡세다는 거 내가 어필 잘 해둘게.“
“짜식아, 고맙다.”
아무래도 가족 행사에 참여 못할거 같아요~ 라고 내가 직접 말하는 것 보다 이렇게 동생편으로 말하는게 훨씬 편하긴했다.
역시 동생이 있으니 편하긴 하군
“그래, 누나가 행복해 보이니 다행이네.”
“너, 마치 내가 예전에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한다?”
“그냥 목소리부터 힘이 쭉 빠져 있잖아? 예전에 이 시간에 누나 전화 걸면 일찍 자서 아침부터 운동 나가야한다고 전화 걸면 싫어했는거 알어?”
“그, 그건 그렇지.”
확실히 작년, 아니지 재작년 기준으로는 낯선 생활에 적응하느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한 번은 동생이 11시에 전화를 걸어서 화를 내기도 했었지...
“하지만 요즘은 어때? 코로나인것도 있지만 사람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만나던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밤 시간대 되면 일찍 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 나가는 것 보다 애니메이션이니 게임이니 노래니... 아니면 ‘메이드 라’ 방송하고 새벽에는 버튜버 덕질하잖아?”
“뭐, 뭐! 그렇게 말하는 너도 오타쿠잖아!”
“아니, 내 말은 그렇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많이 보낸 적이 있냐 말이야.
밥 먹을때도 영양분 따져가며 체지방 관리하던 사람이고 수면 시간 정확하게 지키며 휴식 없이 살아가던 누나가, 스스로의 재미만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는 오타쿠 생활을 하는 게 보기 좋다는 거야.“
“...”
“누나 인생은 롤이 아니야. 무조건 모든 행동이 이득으로 이어지게 살아야 하는 법은 아니라고. 지금 봐봐, 누나와 거리를 두고 동경하거나 존경하거나 따르던 사람들이 아닌 누나와 진심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잖아?”
“그, 그건 어떻게 알고 있어?”
“뭐긴, 커뮤니티에 ‘메이드 라 열애설’검색하면 온갖 버튜버들이 누나와 사귀고 싶다라는 말을 방송에서 얼마나 자주하는데. 오죽하면 선라이즈의 서큐버스 퀸이라는 별명이 생기겠어?”
서, 선라이즈의 서큐버스 퀸이라니
나는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나저나 누나의 근황을 버튜버로 알게 되는 동생이라니
이거 맞어?
동생에게 팩트를 후들겨 맞은 나는 눈앞이 흐릿해졌다.
“백합 오타쿠인 동생은 누나의 백합 생활을 진지하게 응원하니, 하렘을 차리건, 순수한 연애를 하건 알아서 하셔.”
“야!!”
감히 하늘같이 존경하고 떠받아 모셔야할 누나를 이렇게 놀려!?
“그래서, 누나는 누구하고 지금 진한 교류를 하고 있어? 역시 누나이야기 제일 많이 하는 코모레비?”
“...!?”
“아니면 같이 살고 있는 유리아님? 설마 클레스타인에게 손 뻗은 거 아니지? 그 사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미성년자였잖아. 누나가 그런 가스라이팅을 할 리 없고... 크리스마스 이후 누나 언급이 잦아진 타마쨩? 아니면 요즘 들어서 누나에게 친근하게 말하는 이나리?”
“그, 그렇고 그런 거 아니거든? 누가 손만 잡았다고 연애하고 사귄다고 과대망상 잔뜩 끼얹어가며 해석하는 오타쿠들 아니랄까봐!! 야!! 네가 해명 글 올려!!”
“누나, 내가 올리면 사내 기밀 유출이야.”
아, 그랬지 참!
아무튼 그녀들과 나는 친구...
친구?
...친구 맞지?
아니 적어도 타마만큼은 친구 맞지?
그, 그러면 타마가 아닌 사람들하고는?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그녀들과의 인연을 생각해본다.
“누나? 지금 설마 하렘 주인공처럼 누구하고 사귀지? 이런거 깨닫는 식상한 전개는 아니겠지?”
“아, 아니거든! 야 누가 누구하고 사귄다니 참! 차암! 터무니없는 이야기야!”
“아 그래? 역시 그냥 캐릭터 베이스가 서큐버스라서 그런가, 유난히 그런식으로 해석되는가 보네.”
“그, 그런거야 그래! 그런거라고! 이 망상쟁이 오타쿠들 같으니라고!”
“흐으음... 알겠어.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고, 선라이즈의 2주년 라이브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거 축하해. 한 사람의 버튜버 팬으로서 정말로 즐거웠어.”
“야, 너, 너 내 말 믿지? 천하의 누나가 하는 말을...”
띠롱
이 자식 끊었어!!
아악!!
술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들어서 갑자기 거리를 좁혀오는 그녀들 덕분인지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느꼈다.
하아......
동생 녀석 덕분에 당분간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는 몸가짐을 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진짜 그녀들이 내 이름을 그렇게 많이 언급한다고?
늘어난 업무와 많이 찾아보게 된 버튜버들 때문에 최근 버튜버 덕질을 키리누키로 하게 된 나는 그게 몹시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심경이 복잡해진 덕분인지 그날 밤, 나는 냉장고에 있는 술들을 잔뜩 마시고 나서야 나는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