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151화.
* * *
“그러니까 유나 너는 겨어어어얼코 데뷔를 하고 싶지 않다 이거지?”
“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일 없어요.”
“그렇다면서 이런 아이돌 무브를 쳐? 입으로는 싫다고 하지만 몸으로는 솔직하게 반응하는구만? 어이쿠, 누가 아이돌 연습생아니었다고 말할까봐 이런 피지컬로 이런 댄스라인을 보인다고?”
내 말에 어이 없다는 듯 72인치의 거대 디스플레이에 내가 춤을 춘 키리누키 영상을 재생한 코이즈미 언니가 비꼬듯 말했다.
그러니까... 그날의 그건 일종의 실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음악과 함께하는 춤이라는 것은 신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무대를 연상하게 하는 스테이지 위에서, 나의 스텝을 보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버튜버 친구들이 옆에 있다면 더더욱 신나기 때문에 주체하지 못한 흥을 억제하지 못했다.
심지어 안 그래도 이전에 2기생들의 백댄서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나는 흥이 오른 채 춤을 춰버렸고, 그 영상은 실시간으로 녹화되어서 수많은 키리누키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칼을 갈던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메이드 라의 춤 솜씨]
[충격! 신주쿠 댄스클럽 1타 강사도 감탄한 무브]
[평소 운동광이라는 메이드 라, 그녀의 미용 비결은 바로 아이돌 무브?]
[우리들은 묻는다, 야고에게, 어째서 Maid La는 데뷔하지 않는가?]
[2주년 댄스배틀 갱신함 feat.메이드 라 춤 버전]
코이즈미 언니에게 듣자하길, 어둠의 메이드단이라는 단체가 있다고 한다.
나의 방송 활동만을 키리누키 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시작된 그 단체는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나의 데뷔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수가 물경 35만이라고 한다.
물론 단순히 키리누키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거품이 낀 숫자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거다.
“야, 서비스 센터 직원들이 오죽하면 ‘메이드 라’ 라고 키워드가 들어간 메일들을 따로 처리하겠냐? 너 이거 보이지?”
언니가 보여준건 산더미처럼 쌓인 메일
복사 붙여넣기의 스팸메일부터, 구구절절한 나의 데뷔이유 10가지를 언급하는 메일이 쌓여있었다.
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있는데, 화려하게 저질러버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 그러니까 음악이 흐르고 주변에 호응하는 친구들이 있고 박자가 신나면 저도 모르게...”
“아, 그러셔? 천상 아이돌이시네. 그럼 왜 우리 회사에 데뷔 안하냐? 3D 아바타도 있어, 너 좋아하는 애들 산더미야.
너 데뷔하기만 하면 돈 쓰겠다고 돈 흔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왜?”
궁색해진 나는 늘 하던 변명을 했다.
“그... 공정한 경쟁... 안 그래도 저희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들 비율이 1:1000이라면서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총괄 매니저를 넘어서 이제 최고 운영 책임자, 즉 COO가 된 언니는 이제 명실상부한 회사의 높으신 분이었다.
그만큼 권한과 영향력이 커진 언니에게는 해서 안 될 말이었다.
“아하, 공정한 경쟁?”
언니는 책상을 쾅! 내려찍으면서 말했다.
아예 준비해놓았다는 듯 ‘메이드 라’데뷔 프로젝트라고 적힌 문서철을 꺼내었다.
이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스카우트할 수 있고, 데뷔를 위해서라면 회사의 자금을 휘두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자인 언니는 칼을 갈았다는 듯 말했다.
“너 그러면 6기생 심사 볼래? 아니다, 영어도 잘하겠다. 이참에 GB 2기생 예비 후보 등록하거나 아니면 프로젝트 데뷔로 그냥 솔로 데뷔 화려하게 가자.”
“저, 저기 언니.”
“가즈아아아아!! 한국계 버튜버 아이돌 유나=메이드 라, 드디어 마왕성에 독립해서 솔로 방송을 하다!!!!”
“미, 미안해요. 진정해요 언니!!”
“내가!!! 다른 매니저들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메이드 라 데뷔 이야기!!! 몇 십 번 듣는줄 아느냐!!!”
광기에 물든 언니가 불을 뿜으며 소리쳤다.
“어째서!! 그 잘난 선라이즈가 포텐셜 넘치는 메이드 라를 데뷔 안 시키냐고, 우리들 회사 보는 눈이 없다는 걸 어떻게 변명하는 줄 알어!?
본인이 싫다면 그만이에요. 이러는데 정작 너는 신곡 발표다, 숨겨둔 춤 솜씨를 공개한다, 어쩌구 하면서!
차라리 그럴거면 무지개 프로덕션에 데려가라는 말까지 듣는 단 말이야!!”
으아아아
언니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언니!!”
“해명을 네가 하던가 해. 더 이상 다른 버튜버들 뒤에 숨지 마라 유나! 너의 팬들에게서 도망치지 마라!”
한참을 씩씩 거린 언니는 풀죽은 나의 얼굴을 보고는 좀 가라앉았는지 침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폭발하던 화산처럼 불타오르던 언니는 다시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냉정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봐, 도대체 뭐가 문제야? 페이? 업무량? 방송 어시스턴트가 필요해? 아니면 매니저 인력이 더 필요해?”
“...”
“사실 너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최초의 매니저 계약은 빛나는 원석같은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어.
오타쿠들에게 경원시 받을 인싸 캐릭터지만 너는 그들을 경멸하지 않았잖니.
쿠로가와 양을 그렇게 돕겠다고 하는 그 순간부터 너는 이미 낙첨된 인재였어...“
사실 그 당시 매니저 직책은 일은 적고 고작 동거생활을 돌보고, 인터넷 방송을 공부하기만 해도 페이가 따박따박 나오던 자리였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회사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시류를 타고 성장하는 와중에, 인재를 끌어모으다시피 모으는 과정속에서 나는 들어갔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런 속물적인 이유를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꿀 직장처럼 보여서 왔다고 말하는 거 부끄럽잖아...!
“일단 계약서로 붙잡아 두자... 라고 생각했던 인재였던 너는 훨씬, 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어. 게임, 노래, 기획, 공부, 언어, 패션, 댄스, 재무, 운전, 운동 그 모든 것들이 평균 이상의 인재였어. 수 많은 유튜버들을 만나보고 5천명이 넘는 인재들을 봐온 나로서도... 너같은 인재는 없었단다.”
“그... 고맙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봐. 그것도 인터넷 방송인을 보는 눈이라면 더더욱. 물론 사람 잘 보는건 나모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나 또한 내가 직접 뽑은 인재들로 100만 버튜버들을 만들기 위해 보좌를 했단 말이야. 그런 내 눈이 말하고 있어, 유나 너는 인터넷 방송을 해야할 인재라고 말이야.”
“...”
“말해주겠니? 어째서 데뷔를 그렇게 피하는 건지?”
사실 저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할 말이 없다.
어쩌면 나는 내가 피하자고 했던, 내 뇌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대답을 내려야만 했다.
“그건...”
나는 차마 언니의 얼굴을 보면서 말할 수 없었다.
차마, 이 말만큼은... 도저히 나로서는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버튜버로 데뷔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 그것은 다름아닌...
“그건 네가 아이돌 연습생이었기 때문이지? 그럴만도 해, 그 한국의 그 엔터테인먼트였어.
최고를 향해 달려온 네가, 최고만을 보는 네가, 최고의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네가, 눈부시게 빛나는 화려한 아이돌의 생활을 꿈꾸던 네가 인터넷 아이돌이 된다고 하니 거부감이 들었지?
왜냐고? 우리 완벽주의 유나에게는 버튜버 아이돌이라는 존재는 최고가 아니었으니 말이야.“
“!”
정곡이다.
사실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응원하는 입장이 아니라, 현실의 화려한 Kpop 아이돌을 꿈꾸던 내가 무의식적으로 인터넷 아이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명문 대학에 들어갈 때 받았던 압박 면접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혐한 스피치를 하는 선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내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듯 떨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언니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만지면서 말했다.
“그래, 다른 사람이 아닌 최고만을 꿈꾸고 그렇게 스스로를 예술 작품 깎듯이 살아가던 너라면... 그럴수도 있어. 너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 말이야.”
“저, 저는...”
“하지만, 이제는 어때? 왜, 굳이 미래 지향적인 아이돌이 되라는 건 아니야.
버튜버로 데뷔하고, 굳이 아이돌 활동에 열심히 안해도 괜찮단다.
왜냐면 너는 아이돌 유나가 아니더라도, 아이돌 메이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빛나고 있는 인재니까.
하지만, 너라는 존재가 과연 버튜버를 하게 되면 무대에 안 설 수 있을까?“
현실보다 빛나던 무대, 그곳에서 춤추고 노래하기 위해서 노력하던 소녀들... 이 모든 과정은 내가 알고있던 현실의 아이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들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엄격한 잣대로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까, 결국은 같았다.
한국에서 데뷔를 하나, 일본에서 데뷔를 하나, 아니면 인터넷에서 데뷔를 하나... 아이돌이라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공중파에 나오는 대신 개인 인터넷 방송을 하고
온갖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신에 게임과 덕질을 하는것을 공유하는, 그러니까 살짝 다른 특이한 아이돌이라는 점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그렇지, 유나야?"
“...”
저렇게 까지 설득하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저런 자리는 나에 언니같은 귀여운 사람이 잘 어울릴거야.
코모레비처럼 열정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자리야.
미우처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자리야.
이나리처럼 임기응변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자리야.
타마처럼 집 밖에 안나가고도 방송 소재를 무한히 만드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자리야...
그 모든 변명이 거짓말처럼 허물어졌다.
나는, 유나는, 그러니까 메이드 라는
충분히 버튜버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또다시 면전에서 듣고 있었다.
나에 언니에 대한 배신?
아니다, 언니는 오히려 나를 버튜버로 만들어하고 싶었다.
그녀와 동등한 자리에 서게 하고 싶다는 감정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까...
“유나야.”
“좋아요. 할게요.”
“!!”
언니의 기쁜 얼굴이 돈다.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책상을 치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노트북이 떨어지건, 커피가 엎어지건 상관없다는 듯 언니는 내 손을 잡았다.
그래, 회사의 골칫거리 아닌 골칫거리인 내가 그토록 기피하던 데뷔를 하겠다고 하니... 저런 반응을 보일법 하지...
새삼스럽게 나, 언니에게 폐 많이 끼치고 있었구나.
그래도 이 말만은 해야했다.
“단.”
“단?”
“최고여야만 해요. 제 사비까지 털게요. 최고의 3D 아바타를, 다른 사람들처럼 공개 채용 오디션을 보지 않고 단독으로 데뷔하는 이유를 세상에 납득시켜주세요.”
“걱정하지마 이미.”
“게임을 하면 이겨야하고, 공부를 하면 1등을 해야해요. 버튜버를 한다면, 골드 버튼 정도는 달아줘야겠죠.”
차분히 내가 가진 자원을 생각했다.
마침 내 마음에 들 정도로 완벽하게 숙달된, 마미 선배가 나를 위해 써준 곡이 떠올랐다.
편곡에 편집에, 연습에 연습을 더한 곡은 당장이라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되어 있었다.
“맡겨만 줘, 내 손에서 나온 버튜버 스타들이 한 둘이 아니야.”
나와 언니는 손을 굳게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매니저에서, 방송 도우미, 선라이즈의 공식 채널 얼굴마담... 그 다음의 종착지는 버튜버였다.
내 마음속에 정해두었던 선을 넘자,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다.
그래, 이 길은 틀리지 않았어라고 말하듯 내 두뇌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버튜버로 데뷔한다.
그리고 이 계약은, 난생 처음으로 내가 계약서를 받기 이전에 언니의 제안을 수락한 첫 계약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