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152화.
* * *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하였던가?
메이드 라의 데뷔 소식은 사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정확하게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기획 대상이 ‘메이드 라’라는 발표는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소식이 되었다.
“와 드디어 데뷔를 하는구나…”
“솔직히 이상했죠! 유나씨 같이 재능 넘치는 사람이 아나운서에 멈추다니…”
그녀의 데뷔 기획에 관련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었다.
그 중 주류를 이룬 의견은 ‘이제야’ 인것이다.
“저는 노래 방송 때부터 알았어요.”
“오리지널 발표 때부터요?”
“아뇨, 할로윈 방송에 듀엣 부르실때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는 휴게실
선라이즈에 소속된 직원 대부분은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도 그럴게 매니저 출신으로는 최초의 데뷔이다.
이년이 조금 지난 짧은 역사를 지닌 회사지만,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데뷔였기에 직원들은 스스럼없이 그녀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었다.
이제야 데뷔를 한다, 라는 식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곧 다른 이야기로 이어가게 되었다.
“일단 매니저는 구했나요?”
바로 버튜버와 떼려와 뗄 수 없는 매니저였다.
그 말에 매니저 출신의 직원의 표정이 착잡하게 변했다.
유나의 매니저를 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입사 시기는 선라이즈가 한창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매니저를 확충하던 때였다.
그녀 위로 존재하는 매니저는 은퇴한 이들을 빼면 스무 명이 되지 않았고, 그녀의 밑으로는 서른이 넘는 매니저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 선배 매니저들은 이미 자기만의 매니징 영역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특기에 따라 기존의 멤버들의 메니저를 맡거나 메니저를 총괄하는 헤드 메니저가 되어서 현재 바쁘게 버튜버들을 케어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유나가 보통 매니저인가?
지표가 마이너스로 향하던 속칭 망한 지표를 기록하던 유리아를 맡은 지 석 달이 지나서 50만으로 만들어 낸 매니저 계열의 전설 중 전설이었다.
그녀의 옆에 서있으면 본인의 능력부족에 초라해질 것 같다는 이미지를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유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선배 매니저의 데뷔를 자신이 매니징 한다는 개념은 전후무후한 개념이었다.
“아, 저 들은 적 있어요.”
인사부의 직원이 무언가를 떠올린듯 손가락을 튕겼다.
“완전 신인인 매니저님이 담당하신다는데요? 코이즈미 이사님이 직접 지시하셨어요.”
“아, 그래요? 역시 일의 진행이 빠르셔.”
매니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후, 남은 화제는 단 하나 뿐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래서 그녀는 어디로 소속이 되나요?”
“5기생이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6기생의 준비인가요? 그러면 새로운 후보들을 금새 모으게 되나요?”
“글세… 당분간은 5기생의 성장에 주력하지 않을까 싶은데…”
바로 소속
현재 선라이즈는 크게 세 가지 지부로 나뉘었다.
먼저 가장 많은 버튜버들이 소속되어있는 일본은 가장 많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버튜버 업계의 가장 큰손이다.
특정 기수를 뽑지 않았던 0기생부터 본격적으로 기수 제도를 도입해서 들어온 1기생부터 최근에 활동을 시작한 5기생까지, 적게는 세 명 많게는 다섯 명이 소속되어서 무한한 케미를 만들고 있는 선라이즈를 대표하는 버튜버들이다.
그 다음으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동남아와 호주까지 아우르는 OC, 즉 오세아니아 지부다.
어찌보면 글로벌 이전에 시범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사업부라고 볼 수 있는데, 일본의 덕력을 크게 수용하는 동남아시아쪽은 버튜버 문화에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호주와 뉴질랜드에 각각 한 명씩 버튜버를 유치하는 중인데 전원이 합쳐서 5명이 되지 않는 비교적 작은 사업부다.
마지막으로는 GB는 OC의 문제점을 수용해서 보다 확실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기존 유튜버 혹은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사람을 교육시킨 후 모든 준비를 확실하게 한 후 데뷔를 한 선라이즈의 걸작이었다.
고작 다섯 명이지만, 데뷔한지 1년도 되지 않아 280만 구독자를 보유하게 된 마나를 중심으로 빠르게 90만을 달성하기 시작한 에오스와 셀레네를 중심으로 서양권의 모든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는 어마어마한 사업부였다.
문제는 이런 메이드가 어디로 가게 될지가 문제였다.
“코모레비처럼 0기생으로 편입은 안 될려나요?”
“글쎄요… 시기상 적절하지 않네요.”
이미 선후배 문화가 자리잡아버렸기 때문에 갑자기 메이드를 0기생에 넣는 것은 이상했다.
“그렇다면 설마… KR지부…”
“코로나 시대에 해외 진출요? 저번 GB에 사업인가 받고 해외 오고 가느라 얼마나 문제가 꼬였는지 알잖아요?”
설마하던 한국 지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얘들아 대박!”
휴게실 사이로 1층에서 놀라운 것을 보고 온 한 직원이 자신이 본것을 말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사니씨하고 유나 님이 같이 오셨어!”
“뭐!?”
일러스트레이터 사니
클레, 오르페, 미코, 아그니, 그리고 메이드 라를 디자인 한 선라이즈의 대모님이 유나와 함께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소문에 쐐기를 박는 이야기였다.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람, 일정이 비어서 회사에 머물던 사람, ‘메이드 소식 물어올게요! 오늘 회의는 미룹시다!’라고 당당히 일정을 째어버린 매니저까지 3층의 회의실앞에서 염탐을 하듯 모여들기 시작했다.
***
“후후후, 유나 씨 오랜만이네요?”
한국이라면 꽃샘 추위다 뭐다 하면서 지옥같이 추운 2월의 초입
하지만 일본이라면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외출용 코트 위에 이전에도 본 베이지 숄과 주름치마를 입고 온 일러스트레이터 사니씨는 우아한 아가씨처럼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모델링 사건 이후 처음이죠?”
“네, 당시에는 ‘절대로 버튜버 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씀하시던 유나씨가 떠오르네요.”
“하하하…”
“사실말이죠, 저는 유나씨가 데뷔하는 것을 첫 만남부터 꿈꿔왔답니다.”
당시를 떠올리는 듯 사니씨는 자신의 뺨 위에 손을 올리고 발그레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더라도 망상을 하는 오타쿠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렇게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이 버튜버로 만들어지게 되면 얼마나 빛이 날까… 나의 디자인이 유나씨의 아름다움을 잘 담아낼 수 있을까… 정말 많은 고민이었죠.”
“고, 고맙습니다.”
“사실은 저…”
그렇게 말한 사니씨는 자신의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선라이즈의 공식 메이드 굿즈인 나의 사인과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 그것도 블랙 색상으로 한정판이었다.
“당신의 열렬한 팬이랍니다.”
“…”
“아아, 선라이즈에서 받은 모든 돈을 당신에게 슈퍼챗으로 쏠 생각에 벌써 달아오르기 시작했어요.”
내 앞에서 솔직하게 나를 덕질한다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나는 살짝 어지러웠다.
평소라면 그녀를 중재할 코이즈미 언니는 이 자리에 없었다.
대신에…
바들바들 아기새처럼 떨고 있는 불쌍한 신입 매니저, ‘유키하라 유이’씨가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전권은 유나에게 맡기 되, 중재가 필요하면 알아서 해보렴.’이라는 청전벽력같은 말을 듣고 온 이 불쌍한 신입은 무언가를 말을 하려다가 자꾸만 사니씨의 덕질성 가득 담긴 발언에 말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아, 그렇다면 어떤 의상을…”
“아, 맞다 이건 저도 언니에게 말을 하지 않는건데… 저 사실은…”
이대로 가다간 내가 쪽팔려서 죽을 거 같아서 나는 데뷔를 마음먹고 난 이후 쭉 생각해온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버튜버의 컨셉과 일러스트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일단 오타쿠들에게 잘 어필이 되어야만 하는 외모였고, 캐릭터성을 잘 보여주어야만 했다. 오죽하면 사람 머리를 동그라미, 몸통을 세모로 표현한 다음 캐릭터의 특징인 땋은머리, 긴 머리, 리본, 십자가, 박쥐 날개 등 심플한 그림만으로도 캐릭터가 구분 가야만 한다고 말하겠는가?
때문에 나는 장장 이틀동안 수많은 자료집을 뒤져보았고, 머리를 비운 채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 많은 버튜버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저, 저기 이래도 되나요?”
살짝 반신반의하는 듯한 유키하라 후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이 계약 담당자이지, ‘유나 하고싶은 대로 다 하게 해라’라는 말을 듣고 온 그녀는 내가 낸 제안이 그녀의 상상을 벗어나는 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 듯 싶었다.
“아무럼요, 신 프로젝트인데 이 정도는 되야죠.”
다름 아닌 내가 데뷔하는 일이다.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마, 맞아요. 이, 이거면 정말로 될 거에요. 세상에, 유나씨 그 사이에 완전한 오타쿠가 다 되셨군요!”
사니씨는 감격에 가득 찬 얼굴로 나의 손을 붙잡았다.
“정말 어떻게 제 마음속에 딱 맞는 그런 걸 생각하셨어요?”
“저, 이래보여도 90만 구독자의 유리아의 매니저랍니다?”
“좋아요. 사실 저도! 생각해온 게 있거든요. 사실 휴식 시간마다 늘 유나씨를 떠올리면서 캐릭터 디자인을 했어요. 여길 봐주세요!”
그녀는 가져온 아이패드에 작업 파일을 띄웠다.
유나님_시안_001 부터 시작된 파일은… 95까지 있었다.
그러니까…이게 다… 내 디자인이라고?
그… 내가 데뷔했으면 좋겠다는 마인드로 캐릭터 디자인을 95개나 했다고?
…
이게 말이 되는거야?
“자, 여기에 서사성을 부여넣자면… 일단 유리아님의 캐릭터성으로…”
“가슴, 그래 가슴을 빼놓을 수 없죠!”
어찌보면 코이즈미 언니가 없는게 패착이었다.
선라이즈의 대모라고 불리는 사니씨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업계 최정상인의 말에, 그날 계약을 겸한 회의는 장장 4시간이나 지속되었다.
* * *